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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옆에 있는 분들과 인사 나눌까요?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여러분 특별히 5월 달은 무슨 달이라고 우리가 보통 말을 하죠 네 가정의 달이죠. 이런 의미 있는 이유들을 붙여놓은 이유가 뭐냐면 그 시간 시간들을 통해서 우리가 평상시에 놓쳤던 것들을 회복하는 시간인 것 같아요.
특별히 여러분들 가정 가정들마다 주님 안에서 더욱더 하나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작은 천국을 경험케 되는 귀한 통로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부부 간의 관계도 회복하시고 또 부모와 자식 간에 형제 간에 관계가 회복되는 귀한 5월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그러기 위해서는 누가 먼저 움직여야 될까요?
남편이 아니죠 내가 먼저 움직여야 돼요. 한번 우리 해봅시다.
내가 먼저 시작하겠습니다.
권사님 내가 먼저 남편한테 이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말들을 할 때가 참 많아요. 지금 대부분 여기 계신 분들은 최소한 신앙생활 몇 년 이상 하신 분들입니다. 많게는 모태 신앙인들도 계시고요. 신앙생활을 몰라서 못하는 분들은 이제 별로 안 계세요. 어린 아이들을 제외하고 이제 지금 몇몇 분들 초신자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성경도 알고 또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되는 것도 압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말씀대로 살아갈 힘이 우리에게 없다고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성경도 읽고 또 설교 말씀도 듣고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그런데 여전히 삶의 자리로 돌아가면 두렵고 떨리고 또 뭔가 신앙적인 말 한마디 꺼내는 것이 어색하고 지쳐서 주저앉고 싶은 날들이 우리에게는 가득합니다.
여러분 신앙이 연약해서 그럴까요? 성경적인 지식이 없어서 그럴까요?
오늘 성경에 분명한 이유를 발견하게 되는데 단 하나의 이유는 우리에게 주신 사명. 우리의 신앙은 내 힘과 내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성령님 없이는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길 원합니다.
오늘 사도행전 1장 8절은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가운데 한 말씀이지요.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사명을 주는데 그 사명을 이행하기 전에 먼저 능력을 받으라 가서 전파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오늘 말씀을 보니까 먼저 기다리라. 그리고 능력을 받으라라고 말씀하셨어요.
여러분 이 순서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사도행전 1장 8절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이건 뭐 아마 대부분 암송도 하실 겁니다. 근데 이 한 구절 안에 오늘 우리가 다뤄야 할 핵심적인 단어들을 몇 가지를 제가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바로 이 성령 관능 증인 이 단어를 중심으로 오늘 말씀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고 계신데 지금 어떤 힘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어요. 네 의지와 결심 아니면 내가 지금까지 해온 습관 그런 것들로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눈 제목처럼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의지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오늘 제자들을 살펴보면 제자들의 스펙으로 한번 우리가 이야기를 해보죠. 제자들은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예수님과 동행을 했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놀라운 일들을 많이 목격했죠. 오병이어도 봤고요.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오시는 것도 봤고요. 심지어 죽은 사람을 살리는 장면도 목격했습니다. 폭풍우를 한마디 말로 잠잠케 하시는 예수님의 능력도 경험했어요.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죽으셨고 그분이 다시 살아나신 그 부활도 목격하였습니다. 지금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적인 기준으로 볼 때 신앙인의 기준으로 볼 때 요 정도 경험을 했고 이 정도 스펙이라면 얼마든지 이제 나가서 당장 주님의 말씀을 전하십시오. 전도하십시오라고 말을 해도 전혀 손색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까 예수님이 이런 제자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세요?
4절부터 보십시오. 분부하십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아라. 그리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말씀합니다. 아니 지금 부활의 주님을 경험했습니다. 이제 그 부활의 주님의 능력을 온전히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소식을 빨리 전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기다리래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제가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의 신앙생활은 내 의지, 내가 가지고 있는 경험과 지식, 그걸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그것만으로는 잠시 잠깐 뭔가 반짝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순간에 무너지기 쉬워요. 성령이 임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힘 있게 뭔가를 한다 하더라도 결국 인간의 힘으로 내 의지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모세의 이야기를 잠시 이야기를 하자면 모세는 40세에 의지를 세웁니다. 자기의 민족이 너무나도 고통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 사람들을 향하여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행동합니다. 이집트 애굽 군인을 쳐 죽이잖아요. 힘도 있고 능력도 있고 의지도 있고 또 뜻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떻습니까?
도망자가 되었어요. 광야로 도망갑니다. 위대한 광야에서 40년의 생활을 하게 되죠. 양을 치고 그런데 여러분 그 40년의 시간은 우리가 볼 때는 낭비의 시간이지만 하나님은 이 모세를 준비하는 시간이셨습니다. 때가 되었을 때 호렙산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드러내시고 이제 내가 너를 보내리라고 말씀하세요. 하나님이 볼 때 가장 적절한 타이밍에 준비케 하시고 그를 보내셨다고 하는 것이죠.
예수님도 마찬가지예요. 공생애를 살아가는 과정을 보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이후에 성령이 임재하고 난 그 이후에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내가 준비한 것, 내가 뭔가 때가 되었다고 하는 그때가 아니라 성령이 우리에게 임재하였을 그때에 바로 시작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타이밍을 신뢰하고 기다리는 것 그것이 믿음의 여정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뭔가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들이 있으시죠?
그런데 그것을 하나님께 계속 물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거예요. 지금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타이밍이 아니라 내 안에 조급함으로 내 안에 성급함으로 달리고 있는 그러한 영역이 있지 않은지를 한번 점검해 보십시오.
학생들은 어쩌면 학업이 그러한 영역이 될 수도 있어요. 부모님들 세대에게는 내 자녀의 어떤 문제가 당장 앞에 떨어져 있는 문제같이 여겨져서 시급하게 그렇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 기다리는 것 하나님의 타이밍을 기다리고 묻는 것은 게으른 것이 아닙니다. 기다림 가운데 준비되는 과정이 있고 하나님이 그 때를 알게 하시면 그게 가장 빠르고 정확한 시기가 될 수 있다라는 사실을 기억하길 원해요.
여러분 오늘 두 번째 단어가 권능인데요. 이 권능이라고 하는 단어는 디나미스라는 단어를 썼는데 다이너마이트의 어원이 된 말입니다. 한마디로 폭발적인 힘 내부에서 터져 나오는 에너지를 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을 감정으로 좀 이렇게 오해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뭔가 예배를 드리고 마음에 이렇게 뭔가 감동이 오고 진한 뭔가 있고 울컥한 마음이 있으면 오늘 은혜받았어. 오늘 성령이 임한 것 같아 뭔가 예배의 분위기가 뜨겁게 찬양하고 이럴 때 뜨겁게 박수 치고 이럴 때 우리는 뭔가 성령의 임재를 경험한 것으로 이야기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근데 여러분 성령은 우리의 삶을 실제로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성령이 임할 때 우리의 삶은 변화가 일어나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우리 한번 따라 해볼까요?
두려움이 담대함으로 바뀝니다. 예 베드로를 생각해 보십시오. 베드로는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에 예수님이 먼저 이야기를 해줬음에도 불구하고 그 여종 앞에서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겨우 계집아이 한 아이의 그 말 한마디에 의지가 무너져 버렸어요.
그런데 이랬던 베드로가 어땠습니까?
성령님 강림하고 난 이후에 오순절 사건 이후에 베드로를 보니까 2장 14절에 이렇게 말을 합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시작
한 서도 안에 서서 그를 용서하되 유대인들과 저를 사명 사하라. 이를 너희로 알게 할 것이
아멘 불과 며칠 사이에 똑같은 베드로입니다. 예수님 앞에서 예수님이 예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예수님 앞에서 부인했던 겁쟁이 베드로가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의 임재를 경험한 베드로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담대하게 말씀을 증거하고 있는 겁니다. 성령이 임하니까 두려움이 담대함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죠. 이게 바로 능력입니다.
두 번째 침묵이 증언으로 바뀝니다. 우리 한번 따라 해볼까요?
침묵이 증언으로 바뀝니다.
우리가 4월달에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쭉 했죠. 제자들이 어떻게 했어요?
문을 꼭 닫고 숨어 있었습니다. 두려워서 떨고 있었죠.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그런 상황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고 난 이후에 어떻게 됐습니까?
그들은 거리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임한 성령을 덧입어서 각 나라의 말로 말씀을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베드로는 하루에 3천 명이 회심하는 역사를 일으키는 그런 도구로 쓰임 받게 되죠. 그들의 입을 막은 것은 두려움이었습니다. 하지만 성령이 임하니까 그들의 입이 열리고 담대하게 증언자가 되어졌다는 사실이죠.
또한 패배가 사명으로 바뀌게 하는 역사가 바로 성령으로부터 이루어집니다. 십자가 사건 이후의 제자들은 완전히 패배감에 쪄들어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어요.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속량하실 자 한마디로 자신들이 꿈꾸던 이스라엘을 독립케 할 그런 정치적인 메시아로 생각을 했던 겁니다. 그런데 그분이 십자가에 죽고 나니까 그들은 완전히 희망이 무너져버린 거예요. 패배감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고 나니까 그들이 세상을 뒤집는 사명자가 되었습니다.
18세기에 영국의 윌리엄 윌리엄 윌버포스 이 사람은 노예 제도를 폐지하기 위해서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적으로 법안을 상정합니다. 20년 동안 법안이 계속 부결당해요. 사람들은 이 노예 제도라고 하는 거를 신앙 안에서는 뭔가 잘못됐다라고 인식은 하고 있지만 이거를 내려놓는 순간 경제적으로 손실을 입게 되고 여러 가지 이해관계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부결되고 말았어요.
어쩌면 인간적으로 보면 20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한 것이고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후에 이렇게 고백을 해요.
하나님이 내 앞에 이 사명을 주셨다. 내가 포기하는 것은 하나님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 윌리엄 윌버포스가 버티게 된 것은 자기의 의지, 자기의 뜻이 아니라 복음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이것을 붙들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자기가 죽기 3일 전에 이 노예제 폐지 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패배로 보인 패배처럼 보인 40년의 그 긴 사명의 시간이 이루어낸 결과입니다.
여러분 성령의 능력은요. 상황이 바뀌면 우리가 담대해지는 게 아니에요. 환경이 바뀌면 아닙니다. 환경과 상황은 그대로지만 성령이 임하면 내가 바뀌게 되는 거예요. 그게 바로 디나미스입니다.
여러분 한번 나 자신을 살펴보자고요. 내가 지금 두려워 떨고 있는 것이 있지는 않은가 혹시 신앙생활한다고 하면서도 복음을 증거하라고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내 입을 열지 못하게 하는 요소가 무엇인가 나의 삶에 패배감으로 젖어 있는 나의 상황은 무엇인가?
그 자리에 성령님이 역사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여러분들 감정으로 준비된 후가 아니라 상황이 준비된 후가 아니라 성령이 임하시면 이런 변화의 역사는 우리에게도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 그러면 여기서 왜 성령을 우리에게 약속하시고 주시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말씀하고 있죠.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서 니네 좀 편안하게 살아 능력 받아서 니네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 이루어 이런 의미로 주셨을까요?
사도행전 1장 8절에 보면 명확하게 말을 하고 있죠.
성령의 능력이 임하는 것은 바로 내 증인이 되리라. 그 능력으로 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이 증인이라는 이 단어에 원어가 마르티스인데요. 순교자의 어원입니다. 그러니까 법정에서 내가 직접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는 그 증인을 생각하시면 돼요. 목숨을 걸고라도 순교자처럼 목숨을 걸고라도 진실을 말하는 사람 바로 그것을 여기서 말하는 증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변호사가 되라고 말하지 않고 증인이 되라라고 말씀하신 그 이유도 있을 것 같아요.
변호사는 뭘로 설득을 할까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논리로 사람들을 설득합니다. 하지만 증인은 논리가 아니에요. 자기가 경험한 것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는 사람이 증인인 것입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살아왔고 내가 이런 경험을 하게 하셨는데 바로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나는 이렇게 변화되었습니다. 이게 바로 증인된 삶의 우리의 증언이라는 사실이죠.
오늘 이 주일 아침에 한번 나 자신을 되돌아보자고요. 내가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나는 지금 어떠한 증인으로서 증언할 것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 또 우리가 어디까지 복음을 증거해야 될 대상인가 이것도 명확하게 이 말씀 가운데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보십시오. 예루살렘 온 유대 사마리아와 땅 끝 이것은 단순하게 지리적으로 확장되는 개념으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의 삶으로 적용해 보면 여기서 예루살렘은요.
내가 살고 있는 나의 삶의 자리, 내 가정 또 직장 이웃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음 주일은 우리 가족 초청 주일로 예배할 거예요. 우리 동역자들 가운데 가족들 믿지 않는 분들이 여럿 계시죠. 이번 한 주간은 집중해서 한번 기도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들을 초청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함께하는 은혜가 더하게 될 줄 믿습니다.
또한 유대 유대는요. 내 삶의 반경 내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의 공동체를 말합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이렇게 모여 있는 우리 예배 공동체 여러분들의 삶에 만나는 사람들 정도의 수준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죠.
근데 여기서만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사마리아 나와 다르고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 심지어 내가 외면하고 싶은 사람에게까지도 복음을 증거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땅 끝까지 이것은 내 능력 밖의 세계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는 그 장소까지 땅 끝까지 바로 복음을 증거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증인의 삶은요. 처음부터 땅끝으로 가는 게 아니에요. 먼저는 내 주변을 살피십시오. 예루살렘 나의 시작점 먼저 내 가족과 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드러내는 것이 먼저 시작입니다.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잘 알고 있지요. 아무도 없는 시간대, 가장 덥고 불편한 그 시간대에 우물을 찾아왔습니다. 과거가 너무나도 화려하고 지금도 남자와 동거 중인 이 사람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는 이 사람이 그 자리에 갔는데 그곳에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를 만나고 대화하는 과정 속에 이 여인이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그 여인이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달려가 외칩니다.
내게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여러분 이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서 지금 신학 공부를 한 사람이 아닙니다. 완벽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 여인의 이 한마디가 진정성 있는 증인으로서의 한마디가 사마리아의 한 마을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오는 진정성 있는 복음의 통로가 되었다는 사실이에요.
전도가 참 어렵게 여겨지죠. 또 안 되는 시대라고 말들을 합니다. 근데 여러분 우리의 지식으로 우리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이 여인처럼 예수님을 경험하게 되고 성령의 임재가 임할 때 저 단순한 한마디 말 한마디로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오게 되는 은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증언은 완벽한 사람이 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복음을 증거하는 것도 내가 뭔가 성경을 많이 알고 내가 뭔가를 해야 된다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하기 어렵죠. 증인은 경험한 사람이 하는 겁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예루살렘은 누구입니까? 한번 생각을 해보시죠. 나와 지금 가까이 있는데 신앙생활을 함께하지 않는 내 예루살렘은 누구인가 내 삶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내가 예수님의 증인으로서 그들에게 증언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한번 살펴보길 원합니다.
완벽한 말이 필요한 게 아니에요. 먼저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여러분들 안에 일어난 작은 변화를 그들에게 전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 뒤에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니까요.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시기 전에 먼저 오늘 말씀에서 능력을 약속하셨죠 그 능력은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은 감정이 아니고 우리의 삶을 바꾸는 실질적인 힘입니다. 우리의 두려움을 담대함으로 바꾸고 우리의 침묵을 증언으로 바꾸시며, 우리의 패배의 삶을 사명의 삶으로 바꾸는 능력이 바로 성령님임을 믿습니다.
여러분 이번 5월달은 우리 성령님을 더욱더 깊이 묵상하고 간구하며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는 귀한 달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성령의 능력의 목적이 뭐라고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은 알겠지만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뭔가 신앙의 힘이 없이 지쳐가고 있는 분들 계십니까?
어쩌면 그 고백은 정직한 고백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고백에 대한 주님의 대답은 이러합니다.
기다려라. 그리고 너희에게 약속한 성령을 받으라.
오늘 이 자리에 우리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 여러 가지 기도의 제목으로 강구하시지만 특별히 다른 것이 아닌 성령을 구하는 우리가 되길 원해요. 마가의 다락방에서 간절하게 주님을 향하여 주님께 간구하며 기도했던 그 120명의 성도들처럼 내 힘이 아닌 위로부터 오는 능력, 바로 성령을 구하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의 놀라운 변화의 시작점이 이루어지는 귀한 5월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