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2. 본론
가. 근본 하나님은 대상이 아니다
나. 몸과 마음은 ‘나’가 아니다
다. 변하지 않는 ‘관찰자’로 살아가기
라. 왜곡된 해석과 본질의 상실
3. 결론
4. 한 줄 요약
5. 마무리
1. 서론
인간은 오랫동안 근본 하나님을 외부에 존재하는 절대적 대상으로 이해해 왔다. 하늘 위에 계시는 분, 인간을 바라보고 판단하시며 때로는 구원하시는 초월적 존재로 근본 하나님을 تصور(아랍어로 “타사우르(tasawwur) 인식)해 온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오랜 종교적 전통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그러나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근본 하나님을 하나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과연 근본 하나님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대상은 언제나 바라보는 주체와 구분된다. 내가 바라보는 근본 하나님이 있다면, 그 근본 하나님은 이미 나의 인식 안에서 하나의 대상으로 규정된다. 이름을 붙이고 형상을 만들며 개념으로 설명하는 순간, 본질은 다시 인간의 이해 안에 갇힐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 말하는 ‘근본 하나님’은 어떤 외부의 대상을 가리키는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인식과 존재의 근원으로서, 인간이 외부에서 찾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깨달아야 할 본질을 가리킨다.
이 관점에서 성경의 여러 표현들은 단순히 과거에 일어난 외부 사건만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존재 안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언어로 새롭게 읽힐 수 있다. 결국 질문은 바뀐다. “근본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가 아니라 “나는 무엇을 근본 하나님이라고 대상화하고 있는가?”그리고 이 질문은 인간의 시선을 외부에서 내면으로 돌려놓는다.
2. 본론
가. 근본 하나님은 대상이 아니다
인간의 인식은 대상을 필요로 한다. 눈에 보이는 것을 바라보고, 들리는 것을 듣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을 개념화한다. 우리는 대상을 규정함으로써 세계를 이해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이 존재의 근원까지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근본 하나님을 하나의 대상으로 규정하는 순간, 근본 하나님은 인간의 인식 체계 안에 들어온다. 이름과 형상과 개념으로 설명되는 순간, 인간은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근본 하나님을 정의하게 된다. 그러나 근본은 대상보다 앞선다.
대상을 인식하는 주체가 있기 전에 이미 존재하며, 생각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있으며, 인간의 개념이 형성되기 전에 이미 존재하는 것이 근본이다. 따라서 근본 하나님을 외부의 대상으로 찾는 것은 오히려 근본에서 멀어지는 방식이 될 수 있다.
성경에서 빛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비추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를 향한다. 이처럼 근본 생명 역시 특정한 사람의 소유물이 아니라 모든 존재의 근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근본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인간이 그것을 외부의 대상으로 찾고 있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대상을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만들어 내는 자신의 인식 구조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시선은 밖에서 안으로 향한다.
나. 몸과 마음은 ‘나’가 아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몸을 ‘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몸은 끊임없이 변한다. 어린 시절의 몸과 현재의 몸은 다르고, 지금의 몸 역시 시간이 지나면 달라진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생각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라진다. 감정은 기쁨과 슬픔, 분노와 평온 사이를 움직인다. 욕망 역시 계속해서 모습을 바꾼다.
그런데 변화하는 것을 모두 ‘나’라고 부른다면, 그 안에서 변하지 않는 나를 어떻게 발견할 수 있는가? 여기에서 중요한 구분이 생긴다.
몸은 내가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생각도 내가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감정도 내가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들을 인식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인간의 시선을 한 단계 더 깊은 곳으로 이끈다. 몸과 마음을 억압하거나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몸과 마음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되, 그것을 곧바로 자신의 궁극적인 정체성과 동일시하지 않는 것이다.
생각이 일어난다고 해서 내가 그 생각 자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감정이 일어난다고 해서 내가 그 감정 자체가 되는 것도 아니다. 몸의 상태가 변한다고 해서 나의 근본까지 함께 변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참된 자각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서 시작될 수 있다. “지금 변하고 있는 이것을 바라보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다. 변하지 않는 ‘관찰자’로 살아가기
여기에서 ‘관찰자’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는 존재가 있다. 감정이 변화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존재가 있다. 몸의 상태가 달라지는 것을 알아차리는 존재가 있다. 이 글에서 말하는 관찰자는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 내자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끊임없이 변하는 몸과 마음을 자신의 궁극적인 존재와 동일시하지 않고, 그 변화 자체를 바라보는 자리로 돌아가자는 의미다.
우리는 보통 생각이 일어나면 그 생각을 따라간다. 감정이 일어나면 감정에 끌려간다. 욕망이 생기면 욕망을 따라 행동한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나 그것을 바라볼 수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분노가 일어날 때, “나는 분노한다.”라고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안에서 분노라는 감정이 일어나고 있구나.”라고 바라볼 수 있다. 생각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라고 규정하기보다, “지금 이러한 생각이 일어나고 있구나.”라고 바라볼 수 있다. 이 작은 차이가 내면의 자유를 시작하게 한다.
성경의 지성소를 이러한 관점에서 상징적으로 바라본다면, 그것은 외부의 특정 공간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 곧 변화하는 현상 너머의 본질을 상징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지성소는 인간의 시선이 더 이상 외부의 대상에 머물지 않고 근본을 향하도록 하는 상징이 된다.
그러므로 신앙의 방향도 달라진다. 무언가를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더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그 변화에 휘둘리지 않는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관찰한다는 것은 삶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라. 왜곡된 해석과 본질의 상실
성경을 읽을 때 가장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언어와 해석의 문제다.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의 단어는 다양한 문화와 언어를 거치고, 번역과 해석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그 과정에서 본래의 상징적 의미가 약화되거나 외부적 사건으로 고정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태초’와 ‘창조’라는 개념을 오직 시간의 시작과 외부 세계의 생성이라는 의미로만 이해한다면, 성경이 인간의 존재와 내면을 향해 던지는 메시지를 놓칠 수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특정 번역을 무조건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본문의 언어와 문맥, 상징 구조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다.
‘태초’를 단순한 시간의 첫 순간으로만 읽는 대신 존재의 근원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고, ‘창조’를 단순히 외부 세계가 만들어진 사건으로만 보지 않고 인간 존재 안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질서와 변화의 과정으로 묵상할 수도 있다.
이렇게 읽을 때 성경의 방향은 과거에서 현재로 이동한다. 성경의 이야기는 단순히
“그때 그런 일이 있었다.”에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이야기가 지금 나에게 무엇을 드러내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때 성경은 과거의 기록을 넘어 현재의 자기 인식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그리고 인간은 성경 속 사건을 바라보는 관찰자에 머무르지 않고, 그 사건이 자신의 내면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피게 된다. 이것이 왜곡된 해석에서 본질적인 읽기로 돌아가는 하나의 길이다.
3. 결론
근본 하나님을 외부의 대상으로 찾는 순간, 인간은 끊임없이 대상을 찾아 헤매게 된다. 그러나 근본을 대상으로 만들지 않는 순간, 시선은 달라진다. 외부에서 내부로, 대상에서 본질로, 변화하는 현상에서 그것을 바라보는 자리로 이동한다.
몸과 마음은 끊임없이 변한다. 생각도 변하고 감정도 변하며 삶의 환경도 변한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그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는 자리가 있다. 이 글에서 말하는 ‘관찰자’는 바로 그 자리를 가리킨다. 그리고 성경의 지성소는 이러한 내면의 가장 깊은 자리로 들어가는 상징적 언어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깨달음은 외부에서 새로운 근본 하나님을 얻는 일이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근본을 알아차리는 일이다.
신앙은 대상을 더 많이 붙잡는 것이 아니라, 대상화하려는 자신의 마음을 내려놓는 데서 더 깊어질 수 있다. 결국 인간이 찾아야 할 것은 밖에 있는 어떤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근본이다. 그 생명의 그 빛. 바로 그 근본이다.
4. 한 줄 요약
근본 하나님은 밖에서 찾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변화하는 몸과 마음을 넘어 내면에서 깨달아야 할 그 생명의 그 빛이다.
5. 마무리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밖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더 좋은 것을 얻으려 했고, 더 높은 곳에 올라가려 했으며, 더 많은 지식을 가지려고 했다.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근본 하나님을 찾기 위해 밖을 바라보고, 진리를 찾기 위해 새로운 대상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어쩌면 가장 중요한 질문은 다른 곳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그리고 그보다 더 깊은 질문이 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이 질문 앞에 잠시 멈추어 서면, 지금까지 ‘나’라고 믿어왔던 것들이 하나씩 구분되기 시작한다.
몸은 변한다. 생각도 변한다. 감정도 변한다. 욕망도 변한다. 그러나 그것들이 변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자리는 남아 있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더 이상 근본 하나님을 하나의 대상으로 붙잡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상 이전의 근본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때 신앙은 외부를 향한 끊임없는 탐색에서 내면의 깨어남으로 방향을 전환한다.
밖이 아니라 안으로. 대상이 아니라 본질로. 변화하는 현상이 아니라 근본으로. 그 길의 끝에서 새로운 무엇을 발견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있었지만 보지 못했던 것, 늘 함께했지만 대상으로 만들 수 없었던 것, 생각하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 그 생명의 그 빛. 그것이 바로 근본이다.
그 생명의 그 빛(근본)!
첫댓글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