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영원으로 빗물처럼/김규나
인생 끝까지 같이 못해서 미안해.
걸음을 멈추고 부재중 전화 후 남겨진 문자메시지를 읽었다. 남자가 보낸 미안해,라는 단어를 아무런 감정 없이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이 사람도 나이를 먹는구나, 여자는 생각했다.
은량사 영탑靈塔공원을 둘러싼 숲에서 직박구리 짖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가지 끝에 앉아 의기양양, 사냥한 잠자리를 입에 물고 있었다. 복화술을 하니? 삶과 죽음, 어느 편도 연민하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너희들! 하고 여자가 잠시 바라보는 동안, 새는 입을 벌려 큰 소리로 또 한 번 전리품을 으스댔다. 그 틈을 노려 잠자리가 젖은 벚나무 우듬지로 숨어들었다. 잠시 어리둥절해 하던 새도 날개를 펼쳤다.
오랜 가뭄을 끝내고 가을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거리를 두고도 외롭지 않은 나무와 나무, 탑과 탑, 그 사이를 낮게 날아다니는 참새의 좁은 이마 위에. 나무 꼭대기에 높이 앉아 깍깍, 직박구리를 놀려대는 까치의 깃털 위에, 휘어진 가지마다 흔들리는 마른 나뭇잎 위에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우리 집이야.
오래 전, 탑 앞에 서서 남자의 팔짱을 낀 채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 아무도 모르게 몇 년 꼭꼭 돈을 모아 마련한 탑이었다.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된 다음,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더라도 함께할 집, 불에 타고 뼈가 바수어져 재만 남더라도 한 지붕 아래 영원히 같이 살고 싶은 집이었다. 봉분이나 납골함이 아닌, 수행자의 사리탑처럼 수백 기의 석탑이 조성된 은량사 경내에서 죽음의 음습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남자도 여자만큼 기뻤는지는 알 수 없었다. 죽음을 준비하기에 여자도 남자도 그땐 너무 젊었다.
미래를 설계하는 건 현재에 몰입하지 못한 때문이고 죽음을 움켜쥐는 이유는 인생이 햇빛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가까운 것을 잡을 수 없어 멀리 달아나고, 사랑할 수 없어서 증오하며, 삶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누군가는 죽음을 채비한다. 삶과 행복과 사랑에 탐욕스러웠으므로, 여자도 죽음의 거처를 마련하고서야 비로소 삶이 안전하게 느껴졌다. 이승에서 머물, 내 집이란 것도 없을 때였다. 무덤이 주는 안도감이란, 사라져가는 사랑 때문에 휘청거리던 생에 대한 집착이었다는 것을, 죽어서도 함께할 운명.이라는 혈서 같은 다짐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남자가 이별을 선언했을 때였다. 남자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무덤은 더 이상 여자의 것이 될 수 없었다. 죽어서도 함께할 거라 믿었던 사람, 그리고 죽음 뒤에 돌아갈 집을 동시에 잃어버린 여자는 오랫동안 초조했다.
익명의 발신자로부터 여자의 이름 석 자가 적힌, 아무개 씨 핸드폰이냐고 묻는 문자를 처음 받은 건 일 년쯤 전이었다. 달라진 앞자리와 가운데 전화번호, 그러나 마지막 네 개의 숫자를 읽는 순간, 남자라는 걸 알았지만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궁금하지 않았고 어떤 식으로든 인연의 매듭이 다시 이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남남이 된 후 한 번도 통화한 적 없었지만, 아직도 번호를 기억하고 있다는 자각은 쓸쓸했다.
남자가 다시 메시지를 남긴 건 그 후 또 한 번의 여름이 시작되고 계절이 한창 무르익을 무렵이었다. 잘 지내느냐는 안부와 함께 자신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영탑의 명의를 여자 앞으로 바꿔주겠다는 내용이었다. 헤어질 당시 분할할만한 재산이라고 할 것도 없었지만 모든 소유권은 남자 앞으로 되어 있었다. 탑을 살 때도 가장의 이름으로 사야 했고 그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게 어떻게 네 거야? 돈에 환장했구나. 그러나 여자가 탑을 달라고 했을 때 얼굴을 붉히며 소리치던 남자였다. 십오 년이 지나서 왜 돌려주겠다는 것일까, 여자는 궁금했다.
몇 번의 문자가 오가고 몇 차례 통화를 했다. 남자의 목소리는 어제 들은 것처럼 그대로였지만 반말을 해야 할지 존대를 해야 할지, 두 사람 모두 자리를 찾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처리해줄 듯 약속했지만 미련이 남은 사람처럼 바쁘다고, 일이 생겼다고, 남자는 차일피일 미루었다. 여자는 독촉하지 않았다. 어차피 남자와 함께할 게 아니라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탑이었다. 남자도 어쩌면 오랫동안 마음의 빚으로 안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여자가 아닌, 지금의 아내와 그 탑에 나란히 눕는다는 상상은 가능하지 않았으리라. 저승의 집을 팔면 이승의 집에 묶여 있는 빚을 갚을 수 있겠구나, 남자가 탑을 주겠다고 한 후 여자는 통장을 뒤져 심드렁하게 계산기를 두드렸다. 가을이 끝날 즈음이 되어서야 남자는 서류절차를 마무리해주었다.
많이 늦어져서 미안하고 인생 끝까지 같이 못해서 미안해…. 항상 건강히 잘 지내고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랄게.
은량사 사무처에서 해지서에 사인을 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남자가 보낸 메시지를 여자는 천천히 다시 읽었다. 짧은 문장 안에 남자가 두 번이나 써 놓은 미안,이라는 단어가 목구멍을 바늘처럼 찔렀다. 진작 이 말을 할 줄 알았다면 남자와 여자는 헤어지지 않았을까. 죽음조차 함께할 수 있을 만큼 사랑한다고 믿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오랜 세월, 남자를 참 많이도 미워했다. 어쩌면 그 힘으로 살았을지도, 여자는 그 힘으로 글을 썼을 것이다.
더 많이 사랑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한쪽 손으로 우산을 들고 다른 손으로 휴대폰을 열어 차곡차곡 문장을 완성하다가 손을 멈추었다. 한때는 '우리집'이었으나, 오랫동안 ‘당신의 집’일뿐이었던 곳. 그러나 이제는 누구의 집도 아닌 탑을 바라보며 여자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삭제 버튼을 눌러 자음과 모음을 차례차례 지웠다.
살다 보니 당신한테 이런 말을 듣는 날도 오네요.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당신도 행복하길.
잠시 망설이던 여자가 메시지를 전송했다. 적당한 간격, 온당한 예절, 잘 헤어진다는 건 아무런 감정을 남기지 않는 타인이 될 때 완성된다. 오랜 인연의 앙금이 마침내 빗물처럼 녹아 영원 속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바람에 실려 온 풍경 소리가 빗방울과 섞여 석탑의 처마를 타고 뚝뚝 떨어졌다. 멀리서 직박구리가 다시 짖었다. 새의 뱃속이 잠자리의 무덤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오늘, 아니면 내일 잠자리는 어차피 한 생을 끝낼 것이다. 사후 세계가 있는지, 윤회와 환생이 있는지 여자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내년 가을이 되면, 또 수많은 잠자리가 날아다닐 것이다.
빗줄기가 굵어지고 있었다. 여자는 탑을 등지고 돌아섰다. 불멸을 소망하는 이는 무덤을 높이 쌓고, 떠난 사람이 그리운 이는 묘비를 깊이 새긴다. 그러므로 다시는, 무덤을 갖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여자는 깨달았다. 무덤을 꿈꾸지 않는 생은 검박하고도 가난하다. 그 모든 궁핍이 풍요로워서 빗물에 젖어가는 동안, 열망과 갈망과 욕망, 소망과 희망의 차이를 내려놓았다. 바람望이 하나라도 남아 있지 않아서, 여자는 빗속에서 오래도록 자유로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