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내용이 이어집니다.
기분이 언짢으면 보이는 것도 언짢게 보인다. 주차장 요금에다 사찰입장료 때문에 속이 뒤틀려져 있는데 법당에 불상이 뭐 그리 대단하고 존경스럽게 보이겠는가. 그런 그들이 보는 불상에는 자비성도 없고 아름다움도 없다. 그저 큼지막하게 얼굴이 넓은 황면우상이 장승처럼 무덤덤하게 앉아 있는 모습만 보일뿐이다. 그런 표정과 모습에 이상의 경배심은 일어나지가 않는다. 더 나아가 어디 무릎을 끓고 예경하고픈 신심이 일어나겠는가.
법당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죽은 자들의 위패들과 영정사진들을 보고 그들은 또 무슨 생각을 하고 갈까. 거기에 한자로 쓰여진 색색의 종이번이 주렁주렁 달리고 추향의 향내가 탁하게 피어오르는 영가단에 쌀밥과 탕국이 올라가고 북을 치며 요령을 흔드는 집전승려들들 보고 그들은 또 어떤 생각들을 하고 갈까.
인륜의 도리를 강조한 공자의 가르침을 철저히 외면하고 냉정하게 출가한 불교승려가, 공자가 죽어야 사람이 살 수 있다고 하는 이 시대에 아직도 구태의연하게 그런 푸닥거리 같은 유교식 제사를 산속 깊은 법당에서 행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은 과연 불교를 어떤 수준으로 보고 갈까.
얼마의 돈 때문에 불교 전체의 이미지가 훼손되어 그 고유의 가치가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는데도 정작 불교 당사자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우선 단것이 곶감이라고 나중은 생각하지 않고 현재의 이익만 쫓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사람들이 불교에 호의적일 수 있겠는가. 호의 있어야 호감이 생긴다. 호감이 있어야 관심이 있고 관심이 있어야 부처가 제대로 보이고 부처가 제대로 보여야 부처의 말씀이 들어오는데 어떻게 부처님을 믿는 불자가 계속 증가할 수 있겠는가.
이번에는 내용이 깁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첫댓글 나무아미타불_()_
불교가 전래되고 정착하는 과정에서 기존 토속 신앙 등과 습합된 비불교적 요소는 과감하게 덜해낼 필요가 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