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축구 팬들의 입에 가장 자주 오르내리는 이름은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62ㆍ네덜란드) 감독이다. 이용수(55)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지난 7일 네덜란드에서 판 마르베이크 감독을 만나고 돌아오고 “판 마르베이크에게 한국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공식 제의했다”며 “그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판 마르베이크가 감독직을 수락하면 그는 한국 지휘봉을 잡은 다섯 번째 네덜란드 사령탑이 된다. 2002 한ㆍ일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끈 거스 히딩크(68), 2006 독일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 때 팀을 맡은 요하네스 본프레레(68), 독일 월드컵 본선 지휘봉을 잡은 딕 아드보카트(67), 2007 아시안컵 사령탑이었던 핌 베어벡(58) 모두 네덜란드인이다.
한국 축구가 네덜란드와 큰 인연을 맺게 된 것은 히딩크의 영향이 크다. 히딩크가 큰 성공을 거둠에 따라 대한축구협회가 네덜란드 출신 지도자에 신뢰를 갖게 된 것이다. 한때 영국 에이전트사 KAM이 축구협회와 긴밀한 관계에 있었던 것도 ‘네덜란드 지도자 바람’에 원인이 됐다. 히딩크와 아드보카트, 베어벡은 모두 KAM이 추천한 감독들이다. 네덜란드 지도자들은 대부분 영어에 능통해 의사소통이 쉽다는 장점도 있다.
이용수 위원장이 네덜란드에 친숙한 것도 판 마르베이크 감독의 한국행 가능성을 크게 점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다. 2000년 네덜란드 출신의 히딩크 감독을 영입하는 데 앞장섰던 인물이 바로 이 위원장이다. 당시 기술위원장으로 한ㆍ일월드컵 성공에 큰 역할을 했던 이 위원장은 브라질월드컵 이후 다시 기술위원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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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 마르베이크
차기 한국 감독이 유력한 판 마르베이크는 ‘토너먼트의 승부사’로 불리는 감독이다. 네덜란드의 명문 클럽 페예노르트를 이끌고 2002년 UEFA컵, 2008년엔 KNVB컵(FA컵)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판 마르베이크의 감독 경력 중 하이라이트는 네덜란드 사령탑으로 남아공월드컵 준우승을 이끌어낸 것이다. 네덜란드는 당시 32년 만에 월드컵 결승에 올라 스페인에 아깝게 0대1로 패하며 2위를 차지했다. 판마르베이크는 “나는 둘 중 하나가 나가떨어지는 ‘녹아웃(knock-out) 시스템’을 즐긴다”며 “토너먼트에선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어 짜릿하다”고 말했다.
독일 도르트문트 사령탑 시절 인터뷰를 보면 그의 선천적인 승부사 기질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유년 시절 친한 친구와 길거리에서 1대1 축구를 많이 했다. 둘 중 하나가 ‘더는 못하겠다’고 할 때까지 공을 차 끝까지 살아남은 쪽이 이겼다”며 “내가 걸어온 축구 인생이 이런 식”이라고 말했다.
판 마르베이크는 수비에 중점을 둔 끈끈한 축구를 구사한다. 포백 앞에 서는 수비형 미드필더의 역할을 중시하고, 최전방 스트라이커를 비롯한 선수 전원에게 적극적인 수비 가담을 요구한다. 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 네덜란드의 대표적 골잡이였던 뤼트 판 니스텔로이를 뽑지 않았던 것도 수비력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반면 명성에 기대지 않고 그라운드에서 혼신의 힘을 쏟아붓는 선수들은 판 마르베이크의 선택을 받았다. 그는 페예노르트 감독 당시 송종국과 오노 신지(일본) 등 아시아 선수들의 성실함을 높이 평가하며 중용했다.
한국 선수와의 엇갈린 운명도 있었다. 판 마르베이크가 작년 여름 독일 명문 함부르크SV 재건을 위해 지휘봉을 잡았을 때, 함부르크의 샛별이었던 손흥민은 레버쿠젠으로 이적했다. 손흥민은 그해 11월 친정팀과의 경기에서 한국 공격수 최초로 유럽 무대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의 5대3 대승을 이끌었다. 굴욕적 패배를 당한 함부르크는 이후 8연패를 당하는 수모를 맛봤고, 결국 판 마르베이크를 경질했다.
판 마르베이크는 직설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자신을 ‘빅마우스(Big Mouthㆍ떠버리)’라고 표현한다. 감독석에서 점잖게 무게를 잡는 대신 수시로 선수들을 독려하고, 거침없이 문제점을 지적한다. 하지만 이 때문에 선수들과 마찰을 빚은 적도 많다.
유로 2012 당시 판 마르베이크는 수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는 아리언 로번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에 그라운드의 로번은 “닥쳐!”라고 응수했다. 로빈 판 페르시도 훈련 도중 감독에게 대든 적이 있다. 유로 2012에서 네덜란드 대표팀은 3전 전패로 예선 탈락했다. 판 마르베이크 감독 경력에서 가장 오점으로 남은 대회다.
판 마르베이크는 최근 네덜란드 일간지 텔레흐라프 인터뷰를 통해 한국 감독직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그는 “한국에서의 모험에 흥미가 있다”며 “네덜란드 코치들이 있지만 한국인 코치와도 함께 일하고 싶다”고 했다.
판 마르베이크는 감독으로서의 계획도 밝혔다. 그는 “유럽 무대에서 뛰는 한국 선수들이 있어 감독 업무의 일부는 유럽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평소 가족과의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판 마르베이크는 협상 과정에서 네덜란드에 있는 시간을 충분히 보장해 달라는 요구 조건을 내건 것으로 알려졌다. PSV에인트호번에서 박지성과 함께 뛰기도 했던 네덜란드 대표팀 주장 출신 마르크 판 보멀(37)이 판 마르베이크의 사위다.
텔레흐라프는 한국이 판 마르베이크에게 2018년 러시아월드컵 본선까지 4년 계약을 제의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이에 대해 “한국행을 결정한다면 나에겐 정말 마지막 감독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