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판 경험해본 41세 ‘백인 오바마’, 美 첫 성소수자 장관… 편견 넘어야
[美 대선주자 인물탐구]〈9〉 피트 부티지지 교통장관(민주당)
바이든 정부 초대 교통장관 맡아… 낡은 인프라 고쳐 인지도 높여
철도-항공 사고 대응능력 비판도
하버드 출신-달변, 오바마 닮아… 1월 조사땐 ‘당내 지지율’ 1위도
“‘말(talks)’이 아닌 ‘돈(funding)’이 미국의 다리를 짓는다.”
피트 부티지지 미국 교통장관(41·사진)이 올 2월 루이지애나주 캘커슈강 다리 보수 공사 현장에서 한 말이다. 2021년 2월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초대 교통장관이 된 그는 9개월 후부터 시행된 1조2000억 달러(약 1560조 원) 규모의 ‘인프라 투자 및 일자리법(IIJA)’을 통해 노후화된 교량, 도로, 철도 등의 보수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연방정부의 돈을 곳곳에 뿌리면서 이를 자신의 성과처럼 홍보할 수 있어 집권 민주당에서 차차기 대선을 노리는 주자 중 유리한 고지에 있다는 평을 듣는다.
그는 미 최초의 성소수자 장관이다. 또 그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현 바이든 행정부 인사 중 2020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겨룬 유이한 인물이다. 10여 명의 주자가 난립했던 당시 경선에서 그는 일찌감치 사퇴하고 ‘바이든 지지’를 선언했다.
이미 대선 경선에 도전해 봤다는 점, 80대인 바이든 대통령의 나이 등을 감안할 때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해도 집권 2기에는 그와 해리스 부통령 같은 차기 주자의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 ‘양날의 검’ 장관직
올 1월 ‘오늘 민주당 대선 경선이 있다면 누구를 뽑겠는가’라는 뉴햄프셔대 조사에서 부티지지 장관은 16%의 지지율로 바이든 대통령(15%),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10%),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8%) 등을 모두 제쳤다.
하버드대 졸업, 뛰어난 연설 능력, 젊은 나이 등 ‘엄친아’ 이력은 초선 상원의원에서 백악관 주인으로 직행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흡사하다. 그가 종종 ‘백인 오바마’로 불리는 이유다. 다만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 일각의 편견이 존재하고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인 흑인 유권자의 지지도 저조하다. 여러 조사에서 흑인은 다른 인종에 비해 성소수자에 대한 거부감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장관직은 그의 인지도를 높여주는 동시에 많은 비판도 가져오는 ‘양날의 검’으로 꼽힌다. 11일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인근 고속도로에서 유조차 화재로 일부 도로가 붕괴됐다. 그는 즉각 트위터에 “복구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썼다. 빠른 입장 표명은 장관 취임 후 잦은 사건 사고와 이에 따른 논란 때문으로 풀이된다. 2월 초 오하이오주 이스트팰러스틴에서 화물 열차 40량이 탈선해 유독 물질이 유출되고 수천 명이 대피했다. 그는 사고 발생 20일 후에야 현장을 찾았다. 그보다 먼저 이곳에 온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부티지지가 주민을 배신했다”고 꼬집었다.
1월에는 연방항공청(FAA)의 전산 오류로 미 전역에서 4000여 편의 항공편이 지연되고 600여 편이 취소됐다. 역시 주무 장관인 그에게 적지 않은 비판이 쏟아졌다. 정치매체 더힐은 “장관직이 그에게 악몽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 첫 커밍아웃 성소수자 장관
그는 1982년 인디애나주 소도시 사우스벤드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지중해 섬나라 몰타계 이민자, 모친은 미국인이며 둘 다 지역 명문 노터데임대 교수를 지냈다. 하버드대에서 역사와 문학을 전공했고 ‘인재 등용문’으로 꼽히는 로즈 장학생에 뽑혀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철학정치경제(PPE)를 공부했다.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노르웨이어 등 8개 언어가 가능하다. 해군 정보 장교로 아프가니스탄전에 참전했고 매킨지 컨설팅 등에서 일했다.
2012∼2020년 고향 사우스벤드에서 재선 시장을 지냈고 당시 성소수자임을 밝혔다. 2018년 고교 교사 겸 작가 채스턴 글레즈먼과 결혼했다. 2021년 쌍둥이를 입양했다.
2019년 4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만 해도 전국적으로는 무명에 가까웠다. 백인 부유층, 고학력자 등의 높은 지지로 다음 해 2월 아이오와주, 뉴햄프셔주 경선에서 각각 1, 2위를 차지하며 초반 돌풍을 일으켰다. 자금력 한계 등으로 한 달 후 사퇴했다.
김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