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아늑다라삼야삼보리(得阿䅞多羅三菩提)가장 높은 깨달음 얻다.
•해는아침마다 동쪽에서 또 저녁이면 서쪽 하늘을 벌겋게 물들이면서 진다. 밤이면 달빛이 천강(千江)에 그림자를 드라원 하늘에는 별들이 은조각처럼 곱다.
•봄바람은 소녀의 작음 가슴에 설래게 하고 만산홍엽(滿算紅葉)의 가을 빛은 늙은이를 심란(心亂)하게 만든다.그런 것들은 그런대로 놔두자!(나)는 누구냐?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느냐?이곳이 문제가 아닌가?(집도 들도 물속에 잠긴 물난리 속에서도 목말라 죽는구나!)
•아늑다라삼약삼보리) Anuttara- Samyak- Sam- bodhi(아누다라삼약삼보리)음역할 것으로)(위 대는 깨달음 )이란뜻
•아누다라는(無上)즉 위가 없음이니 제일 높다는 뜻이요.
삼약삼보리는 정변지(正偏智)또는 정등정각(正等正覺)이니 바른 깨달음이다.
•아누다라삼약삼보리는(위없은 깨달음)이요.가장(바른 깨달음)이다.
세상에는 도인(道人)도 많고 깨달았다기는 사람이다
온갖 종교의 창시자는 그들 나름대로 깨달았다난 사람이다.
그들 뿐 아니라 시중의 점장이들도 스스로 깨닮았다.
도통 헀다는 사람들이 많다
아누다라삼약삼보리는 부처님의 깨달음이다.
석가모니부처님의 깨달음이요.
모든 부처님의 깨달음이다.
이 부처님의 깨달음과 내용이 다른 깨달음은 깨달음이로되(잘못 깨달음)이다.
•의사는 의사로되 가짜 의사요.박사박사로되 가짜 박사다.아누다라 삼약삼보리는 인생의가장 절실한 문제를 바르게 깨달은 깨달음이다.
하늘을 날고 물위를 걸어가거나,남의 마음을 훤하 들여다 보거나 앞 일잘 알아 맞추는 그런 도리를 깨달은 것이 아니라.바로 자기 자신의 -괴롭고 슬픈마음,태어나고 주는 제 몸의 문제를 스로 밝힌 깨달음이다.
실달타가 보리수 어래 단정히 않자7일만에 동녁하늘의 밝은 새벽별을 보시고 깨달으신 진리는 하늘을 날고 물위를 걸으며 남의 집 사정 빤히 들여다 보는 그런 신통도 아니요,별이 무엇인지 깨달으신 것도 아니다.
그 별을 바라보는 실달타 자신의 문제 온갖 괴로움을 참고 견디며 진리를 찾겠다하고 하는 자기자신의 참 모습을 깨달은 것이다.그러므로 부처님이 비록 보리수 밑에서 아누다라삼약삼모리를 얻으셨다 하지만 그것은 보리수도 아니요.
새벽별과도 관계가 없다.
해와 달이 무슨 상관인가?
•아침마다 동쪽에서 떳다가 저녁이면 어김없이 서쪽 하늘로 지는 해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도 상관없다.
하늘을 뤌훨 날으는 재주는 새보다 더 빼어난 재주꾼이 없고 물속을 헤엄치는 것은 물고기가 제일이다.
히늘을 위로하고 땅을 밟고 서 있는 나-이 나가 누구이며 무엇인가?
바로 이(나)에 대한 깨달음이 무상정등정각인 아누다라삼약삼보리이다.
•내가 누구인가?
조금도 틀림없이 자기자신의 주제파악을 제대로 하는것-이것이 아누다라삼약삼보리이며,부처님의 깨달음이다. 나를 깨닫고 나면 하늘과 땅의 존재와 사랑하는 부모형제 처자권속의 존재며 새와 다람쥐의 존재가 스스로 밝혀지는 것이다.
•왜냐하면(나)는 바로 창조주요,조물주요,부처님인 까닭이다.
왜(나)의 존재가 창조주요,부처님인가?
주위를 둘러보라 발밑을 내려다보라,하늘과 땅이(나)로부터 시작하지 않았는가?동서남북의 경계가 바로 나의발 바닥이요.
위,아래도 바로 나의 몸뚱이가 서 있음으로 존재한다.
나는 동서남북과 사유상하(四維上下)의 탄 중심 바로 그 허공의 구심점에 있다.내가 한 발자국 움직이면 그에 따라 동서남북과 상하가 따라서 달라진다 그러므로 하느님이요 이 세상의 주인이다 나로부터 비롯했는데 주인 아나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므로(나)를 깨달으면 하늘 땅 생기전의 비밀도 알수 있고 자연스래 하늘 땅 생긴 내력도 알게 되는 것이다.이 무슨 허황된 소리인가?
그러기에 옛 사림이 노래하기를(목에 피가 맺히도록 울어바도 소용 없네 입 다물고 남은 봄 날을 지낼지어다)라고 했다.스스로 깨닫지 않고는 아무리 즐어봐도 다 부질 없는 이야기요 허황한 소라도 들리는 법이다.
•아누다라삼약삼보리란→얻을 것도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얻은바가 있으면 참으로 아누다라삼약삼보리가 아니다,
깨달음이란→깨달음일뿐 상표가 붙은 물건이 아니요.아누다라삼약삼보리도
나의 참 모습 현실의 진상(眞相)일뿐 박사학위처럼 자격증처럼 주고 받고 간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실 물을 얻었다.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갈증을 없앨수 없다,마셔야 비로소 목마름을 면한다 그러나 이미 마셔버리면 물이 없다.
위(胃)속에 들어가면 이미 물이 아니다.(나)의 일부다 그러므로 얻은 물이 따로 없듯 아누다라삼약삼보리도 얻은 바 없는 것이다.
아누다라삼약삼보리도 깨닫기전에는 분명 존재하는 것이지만 깨닫고 나면 얻은 아누다라삼약사보리가 없다.그러므로 금강경에 이르시기를(이름이 아누다라삼약삼보리다)하신 것이다.
•아누다라삼약삼보리는 마치 학의 울음소리와 같고 뿔난 물고기 같은 것이다.
학의 울음소리를 얻을수 있겠는가?뿔난 물고기를 잡을수 있겠는가?그러나 학의 울음소리를 얻고 뿔난 물고기를 잡는 수가 없지도 않다.
(아누다라)하는 말의(아)자가 나오는 곳(아)하기전의 곳을 찾아보라.
(홀로 되고 보니 비로소 홀아비 서로움 알겠는가.
홀로 되고 보니 비로소 홀아비 서러움을 알겠는구나,이 토록 쓸쓸한 밤을 어찌 홀로 지샜는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