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 가운데 인생 끝날 때까지 가족이라고 붙어 지낼 수 있는 존재는 아마도 사람일 것입니다. 대부분의 동물은 키울 때는 목숨을 걸고 지켜주어도 자라고 나면 반대로 목숨을 걸고 내보냅니다. 어미로서의 본능은 독립할 때까지입니다. 그런데 유독 사람은 평생 떨어지지 않습니다. 아마도 양육 기간과 상관관계가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 사람은 잉태 기간도 길고 양육기간도 깁니다. 최소한 20년은 됩니다. 요즘은 40년 가까이 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자식의 자식까지 맡아서 이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단한 접착력입니다. 그래서인가요? 꿈까지 이어주려는 부모도 있습니다. 부모 세대에 못 다 이룬 꿈을 물려주는 것입니다. 순조롭게 이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지요.
왕년의 레슬링 국가 대표선수였던 ‘귀보’에게는 아들 하나가 있습니다. 일찍 상처하고는 아들 하나 바라보며 인생을 걸 듯 살고 있습니다. 체육관을 운영하며 생활이 그다지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아들 키우며 주부생활 하랴 일하랴 쉽지는 않은 삶입니다. 바라던 대로 금메달리스트로 은퇴하였더라면 나라에서 나오는 연금으로 한결 나은 생활이 보장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너라도 아비처럼 되지 말고 제발 금메달리스트가 되기를 바란다는 간절함이 있습니다. 아들 ‘성웅’이가 그런 아비의 뜻을 잘 받들어 선수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자기의 원함인지 아니면 아비의 소원을 따라감인지, 소위 자의인가 타의인가 하는 것입니다.
억눌려 있던 감정이 폭발하는 계기가 생깁니다. 오랜 동안 격의 없이 살아온 이웃집이 있습니다. 그 아비들은 마치 형제처럼 우애 있게 지냅니다. 그 자식들도 서로 형제처럼 오가며 지냅니다. 그 집 딸 ‘가영’이 성웅이와 또래입니다. 남매처럼 지내다 친구처럼 되었습니다. 나이가 드니 색다른 감정이 생길 수 있습니다. 사내 녀석인 성웅이는 아직 그런 감정을 표현할 만한 자신감(?)은 없습니다. 물론 자신의 감정을 아직 정리하지 못한 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성의 감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요. 친구처럼 티격태격하지만 전과 다른 미묘한 감정이 솟아나는 것도 피하기 어렵습니다. 운동 연습하랴 시합 준비하랴 마음의 여유가 그다지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성웅이에게 엄마가 되겠다고 하는 겁니다. 기막힐 일이지요. 그러고 나서는 가영이 태도가 변하기 시작합니다. 정말 자기 아비에게 마구잡이로 접근합니다. 처음에는 눈치 채지 못하다가 귀보도 알아챕니다. 그러나 어려서 치르는 홍역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가려 합니다. 사실 학창시절 남학생은 여자선생님을, 여학생은 남자선생님을 흠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드물게 학교 졸업 후 남녀 불문하고 나이 차를 극복하고 정말 부부가 되는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한때의 폭풍감정으로 마무리됩니다. 이성에 대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처음 배울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요. 그런데 그냥 지나가는 감정이 아닌 듯 도가 자꾸 지나칩니다. 결국 본인인 귀보에게 고백까지 합니다. 당황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참다못한 성웅이 바로 가영의 집에서 폭로합니다. 그런데 그 때는 이미 귀보와 가영이 서로가 자기 위치를 찾는 시점입니다. 묘하게 엇박자가 되기에 이야기의 긴장감이 유지됩니다. 귀보의 꾸준한 설득과 진행되는 환경이 가영의 마음을 정리하도록 이끌어줍니다. 그러한 개인의 과정을 따라가지 못한 성웅이 참았던 분노를 터뜨린 것입니다. 세상의 일이란 것이 사람의 마음에 맞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지요. 소위 타이밍이라는 것이 어긋나서 오해와 불신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다툼과 갈등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사실 그러한 일들을 겪고 무마하며 성장하고 발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로 인하여 뜻하지 않게 관계가 깨지고 어렵고 힘든 과정을 지나가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경기에 임하던 성웅이의 갑작스런 폭발로 부자지간의 오랜 앙금이 풀어지고 새로운 시작이 만들어집니다.
분명 스포츠가 나오기는 하지만 스포츠 영화는 아닙니다. 등장하는 레슬링은 아비와 아들을 연결해주는 매개일 뿐입니다. 아비의 꿈과 헌신, 그로 인해 만들어진 아비의 삶, 그리고 그것으로 말미암은 자식의 억압된 삶이 나타납니다. 자식이 아비의 꿈을 이루어줄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까? 요즘 사고방식으로는 용납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자식으로서 함부로 팽개칠 수도 없는 끈끈한 정이 가로막고 있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부모는 자식 잘 되라고 밀어주는 것이지만 자식의 입장은 또 다릅니다. 그 나름의 성품과 특징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지요. 자식 하나 키우기도 이렇게 힘든데 둘 셋을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러나 경험이 쌓이지 않겠습니까? 하기는 사람마다 다르듯 자식도 다 다릅니다.
부자지간의 갈등 소재로 남녀 연애감정을 사용하였습니다. ‘사랑’이란 소재를 이렇게도 써먹는구나 싶습니다. 어쩌면 쉬우면서도 자극적인 소재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품위가 좀 떨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나마 배우들 연기가 많이 덮어주었습니다. 영화 ‘레슬러’를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