父子가 함께 동원훈련 “진한 가족+전우애 느낀 생애 최고의 순간”
맹수열 기사입력 2022. 11. 28 17:22 최종수정 2022. 11. 28 17:33
백성술 군무사무관·백정훈 예비역 대위
긴장반가움과 동시에 걱정…부끄러운 아들 되지 말자 결심
평등
아들과 훈련, 어색하고 당황
다른 예비군과 똑같이 교육
애틋
인자한 아버지 눈웃음에
누구보다 집중하며 훈련
감동
“고생한 아버지 건강하시길”
속 깊은 아들 대답에 고마움
존경
묵묵히 복무하는 아버지
세상 누구보다 자랑스러워
육군동원전력사령부 51동원지원단에서 진행된 동원예비군 훈련에서 교관 백성술(오른쪽) 군무사무관이 훈련을 마친 아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육군동원전력사령부 51동원지원단에서 진행된 동원예비군 훈련 중 교관 백성술(왼쪽) 군무사무관이 아들에게 지뢰탐지기 운용법을 교육하고 있다.
지난달 19일 육군동원전력사령부 51동원지원단 훈련장. 같은 공병장교의 길을 걸은 부자(父子)가 한 훈련장에 섰다. 교관인 아버지를 본 예비군 아들의 마음은 쿵쾅거렸지만, 정작 아버지는 제대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동원훈련은 그렇게 덤덤하게 끝났지만, 두 사람의 마음속에는 깊은 여운이 남았다. 보기 드문 부자 군인의 동원훈련 뒷이야기와 전하지 못한 감정을 서면 인터뷰로 소개한다. 글=맹수열 기자/사진=부대 제공
“훈련은 학교에서 하는 체험학습이 아닙니다. 저는 교관으로서 예비군들 모두를 똑같이 교육할 의무가 있습니다.” 51동원지원단 백성술 군무사무관
“아버지에게 부끄러운 아들이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잔뜩 긴장했습니다. 정작 아버지는 저를 전혀 의식하지 않으시더군요. 열정적으로 교육하시는 아버지는 제가 알고 있던 아버지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백정훈(예비역 대위) 씨
1988년 공병 소위로 임관한 백 사무관은 21년 9개월의 군 생활을 마치고 소령으로 전역했다. 하지만 군에 대한 뜨거운 사랑은 그를 다시 군문(軍門)으로 이끌었다. 2011년 7월 예비전력관리 군무원으로 임관한 그는 현재 51동원지원단에서 예비군 후배들을 교육하고 있다.
아들 백씨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공병병과 장교로 군 생활을 시작했다. 지난해 6월 전역한 백씨는 코로나19 여파로 중단됐던 예비군훈련이 재개되면서 병무청으로부터 동원훈련 소집통지서를 받았다.
“사실 처음에는 ‘이제 동원훈련을 받는구나’ 하며 무심코 지나쳤는데, 소집통지서에 적힌 훈련 부대를 보니 51동원지원단이더군요.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가게 됐다는 사실은 반가움과 걱정을 동시에 줬습니다. 어색하지는 않을까? 혹시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여러 생각이 들었었죠.”
내색은 안 했지만 백 사무관 역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그는 “훈련장에서 아들을 만날 것이라는 생각은 살면서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다”면서 “아들은 대학생이 된 뒤 독립해 군 복무를 마칠 때까지 항상 떨어져 있었기에 더더욱 놀라운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치 직장에서 상사와 하급자로 가족을 만나듯 어색한 것은 물론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이 얼굴을 마주한 것은 그날 오후 공병 주특기 훈련장에서였다. 며칠 전부터 많은 생각을 했던 백 사무관이 내린 결론은 ‘평등’. 다른 예비군과 마찬가지로 대하기로 한 ‘교관님’의 얼굴은 여느 때와 같았다. 백씨는 그날의 경험을 이렇게 기억했다.
“아버지는 저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더 마음을 편하게 해줬죠. 아버지는 군 생활 동안 제가 경험한 어떤 학교기관 교관들보다 열정적이셨습니다. 농담을 즐기던 아버지의 눈빛과 목소리가 아니었죠. 정말 자랑스러웠습니다.”
표현은 안 했지만 아들의 훈련 모습을 보는 아버지의 부정(父情)은 애틋했다. 백 사무관은 아들을 조금이라도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아들에게 다가가서 ‘힘든 점 없니?’ ‘불편한 것은 없고?’ 이렇게 묻고 싶기도 했습니다.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죠. 더 챙겨주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훈련 분위기를 엄중하게 유지해야 하는 교관의 임무는 반드시 지켜야 했죠. 그래서 훈련이 끝나고 말을 걸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백씨는 그 와중에도 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을 순간순간 느꼈다고 한다. 아버지와 함께하는 지뢰탐지기 운용 실습 시간. 능숙하게 장비를 조작하는 그를 보는 백 사무관에게서 인자한 눈웃음을 엿봤다고 한다. 백씨는 “아버지와 아들이 처음으로 전투복과 방탄모를 쓰고, 지뢰탐지기를 운용한 시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한 전우애와 전율을 느낀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다”면서 “누구보다 집중하며 진지하게 훈련에 임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모든 훈련이 끝난 뒤 다시 마주한 부자는 ‘감격’의 재회를 나눴다. 백 사무관은 아들에게 “수고했다. 어디 불편한 점은 없었지?”라고 짧게 말을 건넸고, 아들은 “예비군들을 위해 수고하는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고 화답했다.
“훈련 중 신경 써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부터 했죠. 제법 추워진 날씨에 훈련받느라 고생했다고도 했고요. 오히려 아들의 대답이 저를 더 감동하게 하더군요. 아들은 ‘아버지가 어떤 마음으로 다른 예비군들과 똑같이 대하셨는지 잘 알고 있다’면서 ‘저는 잠시 왔다 가지만 동원훈련을 위해 몇 개월 동안 준비한 아버지가 더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건강 잘 챙기시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더 짙어졌습니다.” 백 사무관의 말이다.
동원훈련을 마친 백씨는 방탄모로도 가려지지 않았던 아버지의 눈웃음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가족과 군을 위해 장교로 임무를 수행하고, 전역 후에도 그 길을 이어 묵묵히 복무하는 아버지를 본 그날이 마치 선물처럼 느껴졌습니다. 세상 누구보다 존경하며, 본받고 싶은 아버지 모습을 보면서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인생의 대부분을 군에서 보낸 백 사무관은 이제 군 생활의 마무리를 준비하고 있다. 모든 일에 끝은 있다지만 백 사무관에게는 유독 시간이 빠르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는 우리 군을 위해, 또 아들과 가족을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항상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과연 모두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진심이었는지 다시 되돌아보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이제 제가 군에서 생활할 시간이 많이 남지는 않았지만, 제 인생 대부분을 보낸 군을 위해, 우리 가족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해 임무를 수행하겠습니다.”
맹수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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