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힘들 내시라고 글을 올립니다.
서정웅님이라는 분의 글입니다. 잔잔한 감동을 느껴 보세요...
삶의 진리란 무엇일까요? 생각 외로 가까이 쉬운 일일 수 있을 겁니다.
▶▶ 영어'present'는 '현재'와 '선물'이란 뜻이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삶은 선물이랍니다. 레오 톨스토이의 이야기 하나를 소개합니다.
매우 철학적인 황제가 3가지 의문을 품고 고민했습니다.
첫째는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때는 어느 때인가,
둘째는 내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인가,
셋째는 어떤 일을 수행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였습니다.어떤 신하도 학자도 그의 의문에 속 시원히 대답하는 이가 없었습니다.황제는 산 속에 묻혀 지내는 현자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런데 현자가 사는 곳 가까이 갔을 때 어떤 사나이가 피를 흘리며 황제 앞으로 뛰어 왔습니다.황제는 응급처치를 하여 그를 살려주었습니다.알고보니 그는 황제에게 불만을 품고 암살하려고 숲길 속에 숨어 있다가 경호원들에게 발각되었던 것입니다.황제는 그를 용서해주었습니다.때마침 이 광경을 처음부터 바라보고 있던 현자는 황제의 3가지 질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폐하,폐하께서는 이미 스스로 해답을 얻으셨습니다.
첫째,가장 중요한 때는 원수가 피흘리며 달려왔을 때입니다.현재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둘째,가장 소중한 사람은 살려달라고 폐하 앞으로 달려왔던 사나이입니다.왜냐하면 그를 살려주지 않았다면 그는 영원히 잃어버렸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어떤 일을 수행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일과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폐하께서 최선을 다해 그를 살려내셨기 때문에 원수와 화해할 수 있었습니다."
▶▶ 삶의 여유를 가지는 데는 조건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61세이상 노인들이 하루 7.5명꼴 자살한다합니다. 61세 이상 노인의 자살률이 전체 인구 자살률의 2.3배에 이르는 것이지요. 또 가정 내 노인학대가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아들 또는 며느리에 의한 노인학대가 전체의 76%를 차지했습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홍신(金洪信·한나라당) 의원은 경찰청이 제출한 국감자료를 분석한 결과 2001년 자살한 61세 이상 노인은 전체 노인 10만명당 61.69명으로 전체 국민 10만명당 27.46명의 자살에 비해 2.3배 정도 많았다고 밝혔다.
살기가 각박해서 마음에 여유를 가지지 못한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인생은 장거리 마라톤입니다. 골다 메이어(Golda Meyer)는 76세에 이스라엘 국가를 이끌었었고, 독일의 철학자 칸트(Immanuel Kant)는 70세가 넘어서 가장 위대한 작품들을 집필했어며, 괴테(Johann Goethe)는 80세 이후 파우스트의 두 번째 부분을 썼습니다. 빅토르 위고(Victor Hugo)는 80세가 지나서도 훌륭한 작품들을 세상에 내놓았어며, 베르디(Verdi)는 80세가 넘어서 오페라를 작곡했습니다. 모네(Claude Monet) 는 85세 이후에도 훌륭한 작품을 계속 그렸고요 미켈란젤로(Michelangelo)도 89세에 여전히 대작을 그렸습니다. 슈바이처는 95세까지 일하는 즐거움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유럽에서 돈 몇 달라를 가지고 와서 평생을 뉴욕의 뒷골목에서 잡화가게를 하던 죠지 이스트 리버맨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78세 된 이 노인은 낮에 노인 센터가 나가 서양 장기를 두는 것이 취미였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체스 상대인 할아버지가 아파서 나오지를 못했습니다.
멍허니 앉아 있는 이 할아버지를 노인센터 여직원이 소일삼아 그림을 그려 보시라고 권했습니다.
"나는 평생 그림이라고는 그려 본적이 없는디..."
"그림이 별거입니까? 켄버스에 물감을 칠하면 그것이 그림이지요."
그래 그림을 그리는데 옆에 있는 분들이 평생처음 그리는 이 할아버지를 보고
"할아버지 그림이 개성이 잇어 좋은데요!" 하고 칭찬을 해 주었습니다.
그 후 이 할아버지는 12주를 유화를 지도하는 문화센터에 나가 지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101세에 22번째의 개인전을 열고 "미국에 샤갈!" 이라는 극찬도 받았지요.
▶▶ 책임있는 부모로서 부끄럼 없이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다윗은 우리야의 가정에 저지른 죄를 빼고는 별 부끄러움 없이 잘 살았으나 아들 솔로몬은 중년 이후부터 무책임하게 살았습니다.그래서 아버지가 천신만고 끝에 이루어준 통일왕국을 자기 아들 대에 분열시켜버렸습니다.
몇년 전 한 잡지가 뉴욕의 두 가문을 추적해 아주 흥미로운 통계를 발표했습니다.맥스 주크라는 사람은 예수를 믿지 않았으며 불신자와 결혼했습니다.이들 사이에 모두 1천26명의 후손이 있는데 그중에 3백명은 단명,1백명은 교도소 수감,1백90명은 아주 부도덕 하게 살았고,1백명은 술주정뱅이로 그 가문이 뉴욕에 끼친 손해가 무려 13억원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조나단 에드워드라는 목사는 경건한 부인을 맞았습니다.그는 경건한 성직자며 열정적인 목회자였습니다.그의 자손은 7백29명이었는데 그중 3백명은 목회자,78명이 대학교수,6명은 베스트셀러 작가,3명은 국회 의원,1명은 부통령을 지냈습니다.이 가문은 뉴욕에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큰 유익을 주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양 극단의 차이를 보면서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요.
▶▶ 인생은 좋은 것을 심어면 좋은 것을 거둔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체험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좋은 것은 많이 심어 많이 거두고 악은 모양이라도 과감히 벗어버려야 합니다.
`스웨덴의 나이팅게일'로 불린 오페라 가수 제니 린드는 전성기때 무대를 떠났습니다. 그녀는 부와 명예와 사랑을 한몸에 받은 시대의 영웅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인기의 달콤함을 경험한 린드가 곧 무대에 복귀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무대를 떠난 이후 완전히 소식이 끊겼습니다.
몇년 후 한 친구가 린드를 찾았는데, 그녀는 무릎 위에 성경을 올려놓고 저녁노을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기쁨과 감격이 충만한 표정이었습니다. 친구가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전성기 때 무대를 떠난 이유가 무엇인가? 그 격정의 무대가 그립지 않나?"
제니 린드는 아름답게 물든 저녁노을과 성경을 가리키며 말했다지요.
"무대 위의 기쁨은 순간의 환희일 뿐이야. 이 성경과 아름다운 자연은 내게 영원한 기쁨을 선물하고 있어!"
행복의 열쇠는 마음에 있었습니다. 영원한 것에 대한 소망은 안식과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 가계에 흐르는 저주는 끊어버려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의 업보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어 죄를 용서받아 운명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미국의 한 소년이 아버지로부터 용돈을 타내기 위해 꾀를 냈다.돈이 필요해요.당장 돈을 주지 않으면 자살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아버지는 자살한다는 말에 크게 놀라 아들에게 돈을 주었다.재미를 붙인 소년은 그후 돈이 필요할 때마다 아버지에게 자살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그 소년이 장성해 한 여성과 결혼했습니다.그런데 출산 과정에서 아내가 죽었고, 젊은 남편은 그 충격을 이겨낼 힘이 없었다.아이를 혼자 키울 자신도 없었습니다.결국
그는 권총으로 머리를 쏘아 자살하고 말았습니다.`자살'이란 말을 입에 달고 다니던 그의 삶이 그대로 실현된 것이다.
비극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난산으로 죽고 아버지는 자살한 이 아이의 성격도 점점 흉폭하고 비관적으로 변해갔습니다.청년이 된 그를 거들떠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어느날 청년은 거리에서 시민들과 악수하고 있는 윌리암 맥킨리대통령을 총으로 쏘아 죽게했습니다.그는 현장에서 체포됐고 얼마 후 사형을 당했습니다.
우리가 낙관적이고 긍정적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의 61세 이상 노인의 자살이 전체 노인 10만명당 61.69명으로 전체 국민 10만명당 27.46명의 자살에 비해 2.3배 정도 많았다는 건 비극입니다.
▶▶ ‘거지도 제 멋에 산다’
강원도에 들어간지 한 10여년 되는 법정스님이 이달 초일에 창원 KBS홀 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기도 안 들어오는 곳입니다. 처음엔 불편했는데, 전기 들어오면 냉장고, TV도 들어올 것이고 그러면 온갖 세상 이야기, 기계에서 나는 잡소리 다 듣고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라디오를 듣는데 기상예보 듣고 끕니다. 정치인들 얼마 먹었네 하는 이야기 들으면서 그런 상처까지 산 속에 불러들이기 싫습니다. 중독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강원도 바람은 내리꽂히는 바람이라, 가끔 아궁이 불 붙이다가 깜짝 놀라 아궁이에 대고 욕도 퍼붓지요. 욕설도 적당하면 스트레스 해소되고, 혼자하는 것은 노래도 됩니다.
오염되지 않은 물 많이 마시고, 많이 걷습니다. 혼자서 변변찮은 푸성귀 먹고 살지만 우주의 에너지를 받아선지 좋습니다. ‘늙은 중이 언제까지 거기 살거냐’ 하는데, 언제까지가 아니고 그냥 하루하루를 사는 것입니다. 거지도 제멋에 사는거지요, 나답게..".
▶▶ 레오 톨스토이의 또다른 이야기입니다.
한 가난한 농부가 평생을 남의 땅을 부치며 가난하게 살았는데, 하루는 귀가 번쩍 뜨이는 소문을 들었습니다.어느 지방에 가면 엄청난 땅을 소유한 부자가 사는데, 그리 많치 않는 돈으로 그가 하루 온 종일 뛰어 다니며 표시한 모든 땅을 몽땅 다 준다는 겁니다.
이 농부는 있는 것 없는 것 다 팔아 그 자금을 마련해서 찾아 가서는 그 땅부자를 만났습니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는데, 사실이었습니다. 그 부자가 말했습니다.
"오늘 푹 자고 내일 아침 해뜨기 직전에 저기 보이는 언덕으로 나오시오!"
다음날 해가 뜨기도 전에 일찍 일어나 언덕 위로 갔습니다. 그 땅 부자가 이미 나와 있었습니다. 그 땅 주인은 사리나무를 한 다발과 도시락을 하나를 주며 말했습니다.
"몇 백 미터를 가다가 표시로 이 사리나무를 땅에 꽃어시오! 그 표시한 안에 있는 땅은 모두 당신 땅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의 조건이 있어요. 해가 지기 직전까지는 이 언덕에 도착해야 합니다. 너무 욕심을 부려 멀리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면 다 무효가 됩니다."
그 농부는 해가 뜨오르기가 무섭게 달려 나갔습니다. 사실 달리지 않고 걸어다녀도 억수로 부자가 될 수 있는 조건입니다. 그러나 집에서 고생하며 초조히 기다리는 아내와 굶주려 지친 자식들의 얼굴이 뜨올랐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뛰었습니다. 도시락 먹는 시간도 아까워 뛰면서 먹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욕심 부리지 않기 위해 해가 중천에 이르기 전에 방향을 틀어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벌써 지쳤지만, 오늘 하루만 고생하면 가족들에게 훌륭한 남편이요, 아버지가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하니 감격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지는 해는 속도가 빨랐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사리 나무를 당에 꼽아 표시하면서 서둘렀습니다.
아! 감격스럽게도 언덕이 보였습니다. 그 언덕 위에 땅 주인이 미소를 지어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언덕에 도착하자 해가 서산 밑으로 가라않았습니다.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성공했어요!"
그런데 그 농부는 너무 지쳐서 퍽 스러지더니 가쁜 숨을 몰아 쉬더니, 심장이 멈추어 버렸습니다. 그 땅주인은 애석해 하며, 하인들을 불러 가로 1 미터 세로 2 미터도 체 않되는 땅을 파더니 그 농부를 거기 묻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인간에게 얼마의 땅이 필요한가?"
저는 살아 오면서 40대나 50대에 열시미(?) 살다가 쓸어져 죽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요즘은 주로 한 줌의 재가 되더구만요...
▶▶ 소박하게 살라!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어거스틴은 "더 많은 물건을 갖는 것보다 더 적은 욕구를 갖는 것이 낫다"고 했어며, 노자는 "지식을 추구하면 매일 무언가를 얻는다. 그러나 지혜를 추구하면 매일 무언가를 버린다!"고 말했습니다.
소박과 절제는 삶의 여유를 줍니다. 아무리 백화점, TV같은 방송에서 끊임없이 소비하라고 아우성치는 물질만능과 대량소비 사회지만, 심령이 가난한 자의 행복을 빼앗아 갈 수는 없습니다.
고깃배를 세워둔 채 느긋하게 누워있는 어부를 보고 부유한 사업가가 어이없다는 듯 물었습니다.
“왜 고기를 안 잡는 거요?”
“오늘 잡을 만큼 다 잡았소”
“왜 더 잡지 않나요?”
“더 잡아서 뭘 하게요?”
“돈을 벌어 모터 달린 배를 사고, 더 깊은 바다에 나가 고기를 더 잡을 수 있잖아요. 또 큰 그물을 사서 고기를 더 잡고, 배를 늘려 선단을 거느리죠. 그러면 나처럼 부자가 될 수 있잖아요.”
“그 다음엔 뭘 하죠?”
“느긋하게 인생을 즐기죠”
“당신은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오?”
행복해지려면 더 벌고, 더 모으고, 더 늘려야 한다는 상식을 깨고 ‘안분지족(安分知足)’의 태도로 현재를 여유 있게 즐기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면서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BC469~BC399). 그의 생업은 조각가였지만 노련한 기술을 갖지도 못했고 이름을 날리지도 못했어나, 그저 굶지않을 만큼의 노동을 하면서 남는 시간을 젊은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전기도 난로도 수돗물도 없이 살았던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정신분석학자 스위스의 칼 구스타프 융(1875~1961)도 소박한 삶의 전형이구요.
느긋하게 저녁을 먹고, 큰 소리로 책도 읽고, 시도 쓰고, 노래도 흥얼거린다고 누가 잡아 갑니까요? 너무 자극적이고 표피적인 일에 매달리고 있는 현대인들이 불상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