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래빠는 계속 말하였다.
"약사 승려여, 사랑하는 내 아들아, 그대의 꿈은 그대 속에서 진리가 자라나 완전히 꽃피는 것을 예시하고 있다. 이 늙은 아비는 다시없는 확신과 지견으로 그대의 꿈이 의미하는 바를 그대에게 자세히 설명하였다. 나의 예언을 잊지 말고 그 실현을 지켜보도록 하여라. 때가 무르익어 그 꿈이 실현되면, 지금 그대가 나에게 지니고 있는 신심보다 더 큰 신심이 그대의 가슴속에서 일어나게 되리라. 그때 그대는 불가사의한 방식으로 '행함이 없는 마음[無爲心]의 본질' 을 깨닫게 되리라. 이리하여 바로 그 자리에서 그대는 삶과 죽음으로부터 완전히 해탈하게 되리라. 또한 아들아, 신실한 수도자가 되려거든 결코 꿈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꿈에 집착하다가는 결국 악마의 유혹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만약 스승의 가르침에 순종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좋은 충고를 무시하며, 자신을 치켜세우는 교만의 노예가 되면 마침내 자신의 마음조차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아, 그대는 친구들의 결점
을 보지 말고, 사악한 생각을 일으키지 말 것이며, 잡다한 일에 사로잡히지 말아라. 실수는 언제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데 기인한다. 그리고 아들아, 인생이란 단지 태어나고 죽는 바르도[中有界]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태어나고 죽는 경험이란 비실재요 미망이요 강요된 꿈의 한 형태일 뿐이다. 낮 동안의 정신적인 작용이 잠재하는 습관적인 사념을 만들고, 습관적인 사념은 다시 밤 동안에 여러가지 미망적인 영상을 만든다. 의식이 이것을 감지하니 이를 가리켜 꿈이라 한다. 곧 이것을 미혹적이고 마법적인 '꿈의 바르도'라고 한다. 습관적인 사념들이 깊이 뿌리내리면 그로 인해 선악업을 짓게 된다. 이리하여 '윤회의 바르도'가 생기고 고통과 쾌락을 경험하게 된다. 이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몽환행(夢幻行)과 환신행(幻身行)을 수행해야 한다. 이 수행에 통달하면 바르도[死後中有界]에서 보신(報身)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는 완전함에 도달하기까지 부지런히 수행해야 하리라."
이에 감뽀빠는 바르도에 관한 몇 가지 쉽고 실제적인 가르침을 주시도록 간청했다. 미라래빠는 '바르도의 노래'로 응답하였다.
존귀한 모든 스승들께 예배올리며
많은 은혜 내리신 스승 마르빠께 귀의하옵니다.
아들아, 그대 청에 응하여 바르도의 노래를 부르리라.
윤회계의 모든 중생들과
열반의 모든 붓다들은
본래 평등하거니와 본질도 같나니
아들아, 이는 정견의 바르도[中有行]이네.
모든 형태의 붉고 흰 기운과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본질은
진실한 무분별의 경지에 불과하나니
아들아, 이는 수행의 바르도이네.
환상(幻像)의 무수한 형태와
생하지 않은[不生] 제 마음[自心]은
본래 '하나'요, 둘이 아니니
아들아, 이는 정행의 바르도이네.
습관적 사념으로 생긴 간밤의 꿈과
그들의 비실재를 깨닫는 이 아침의 식견(識見)은
마라[魔]의 빛 속에서 같은 것이니
아들아, 이는 꿈의 바르도이네.
다섯 가지 오염된 근간[五蘊]과
오방(五方)의 지순한 붓다들은
무분별의 원만행에서 '하나'이네.
아들아, 이는 생기행과 원만행의 바르도, 진리의 바르도이네.
방편에서 온 아버지 딴뜨라와
지혜에서 일어난 어머니 딴뜨라는
본생(本生)의 세 가지 입문식에서 '하나' 이네.
아들아, 이는 본질의 바르도이네.
자리행(自利行)은 변함없는 법신 속에서 표출되고
이타행(利他行)은 언제나 현현하는 색신(色身)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자리와 이타는 본디 '하나'에 불과한 것.
아들아, 이는 삼신(三身)의 바르도이네.
자궁문의 부정한 미망의 몸과
불신(佛身)의 지순한 모습은
바르도의 위대한 깨달음에선 '하나'이네.
아들아, 이는 대성취의 바르도이네.
첫댓글 생사는 비실재요 미망이요 강요된 꿈의 한 형태일 뿐이다.
나무아미타불 _()_
나무아미타불_()_
나무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