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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라(눅22장39-46)
성경본문: 누가복음22:39-46
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40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41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43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45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46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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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교회 절기상 종려주일에 해당하고, 내일부터는 고난주간이 시작합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오신 그 자체가 고난의 시작이지만 그 고난이 절정을 이룬 마지막 주간을 고난 주간이라고 교회는 부릅니다.
내일부터 시작하는 한 주간,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기회로 우린 해마다 특별기도회를 갖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바로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주님의 교훈이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가끔은 이와 같이 예기치 않는 일로 인해서 얻는 기쁨이 있습니다.
계속되는 본문인데 우리 상황에 이와 같이 일치하는 것이 감사합니다.
사실 지난 월요일 오후에도 교역자 말씀 연구 모임에서, 각자가 해온 본문연구를 돌아가면서 발표하는 것을 통해서 말씀을 가까이하는 즐거움을 맛보았습니다.
몇 주 전에는 대구에서 목회를 하는 정광욱 목사님이 다른 일로 울산에 온 김에 우리 모임에 함께 했고, 지난 월요일에는 어디서 무슨 소문을 들었는지 거제 섬(!)에서 목회를 하는 김명식 목사님이 작심하고 울산까지 와서 나눔의 자리가 더 풍성했습니다.
모두들 목회에 바쁜 틈을 내어서 본문을 준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그렇게 모두들 애써 준비한 만큼 특별한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열두 명이 각자 정성껏 준비한 김밥을 싸가지고, 봄날 아름다운 꽃그늘 아래서 펼쳐놓은 것은, 시장에서 12인분 김밥을 시켜서 점심을 먹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여러분도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월요일 오후 말씀을 나누면서 참 잘 준비해온 교역자들을 보면서 모두 다 나보다 더 잘 준비해왔다는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그런데다가 화요일부터 일은 밀려들고, 또 다음 주간은 고난주간 특별기도회에다가, 금요일 정사기념예배에 또 한 편의 설교를 더 준비해야하는 1+1축제라는 염려를 미리하다 보니, 오늘 주일 강단을 누구에게 맡기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맡기려고까지 시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니 그것은 울산교회 성도 여러분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주일도 터키에 다녀온다고 여러분을 말씀으로 섬기지 못했는데, 저 대신 누군가가 설교를 하면, 일단 듣는 여러분의 마음이 편치를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아무리 저로서는 함께 듣고 싶은 좋은 설교자를 발견했다고 해도, 여러분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입장에서는 맡겨서 좋은 설교를 함께 나누고 싶었지만, 여러분의 입장을 생각해서, 바쁘면 밤을 새워서라도 주일설교를 준비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제가 설교를 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는 문자를 화요일에 보냈더니, 한 분 장로님이 “예, 지난 주일도 서운해 하는 교우들이 많았었습니다. 강건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라고 답문을 보내왔습니다.
게다가 수요일 저녁에는 한 자매가 “목사님! 몇 주간 목사님의 목소리를 주일에 듣지 못해서 참 허전합니다~ 이제 수요예배 시작하려 하는데, 목사님 생각이 많이 나네요, 건강하고 유익한 시간 보내시고 어서 돌아오셔서 꿀 같은 말씀 전해주세요.!!^^”라고 카톡을 보냈길래 “웬 몇 주간? 어디 다녀오셨슈?”라고 물었더니
“ㅎㅎㅎ 이번 주 한번인데 몇 주간처럼 느껴졌나 봐요, 하하하.!!!”
일이 이렇다보니 정말 밤을 새워서라도 준비할 만한 힘이 생겼습니다.
칭찬과 격려는 서로를 향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요즈음 수요기도회에 나오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같은 본문으로 지난 수요일에 은혜를 받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은혜가 있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아까 찬송한대로 “지난 이레 동안에 예수 인도했으니 . . . ” “주의 공로 힘입어 은혜 주심 빌 때에” 은혜 베푸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세상 걱정 버리고 은혜 받게 하시고 . . .” “기쁜 하늘 잔치에 참여”토록 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보다 경건한 자세로 한 주간을 보내고 십자가 위에서 “내가 목마르다”하신 주님의 마음으로 이웃의 고통의 고통에 참여하는 마음으로 한 끼 금식을 하는 일, 금식을 실제로 했던, 하지 못했던, 거기에 해당하는 한 끼 금식 헌금을 드리는 일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이번 금요일, 벌써 수년전부터 시작한 성금요일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기념한 정사(釘死)기념예배에 시간을 내어보시기 바랍니다.
작년까지 참석하지 못했더라도 올해부터는 금요일 오전 11시에 그리고 저녁 8시에 두 차례 정사(釘死)기념예배의 자리에 나아오십시오.
그러면 이제 오늘 본문을 살펴봅시다.
오늘 본문은 어쩌면 이렇게 내일부터 시작하는 고난주간 특별기도회를 앞둔 우리를 위해서 적절한 본문인지요!
오늘 본문은 감람산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그러면 잠간 본문을 통해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먼저 스케치해 봅시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어디에서부터 나오셨지요?
예, 최후의 만찬을 한 다락방입니다.
그 다락방에서 나와 “감람산”으로 가셨습니다.
거기서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고 일러주시고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부분인 기도하신 내용은 집중해서 다시 살필 것입니다만, 아버지의 뜻을 받아드리기 위한 기도의 몸부림을 치실 때에 천사가 하늘로부터 나타나 힘을 돋우어 드렸다는 특별한 기록이 나옵니다.
그리고 기도를 마치신 후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신 자리에서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잠든 것을 보시고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고 하신 기록이 나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떻게 오늘 우리는 본문이 주는 유익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물론 본문에 별도의 질문을 던지면서 질문의 얼개에 따라서 살필 수도 있습니다만 우린 오늘 같은 스토리가 있는 본문을 살필 때 가장 쉬운 방법은 스토리를 따라 가며 교훈을 얻는 방법입니다.
저는 오늘 쉬운 길로 여러분을 안내하려고 합니다.
우선 앞서 오늘 본문을 스케치 한 대로 이야기의 시작부분, 예수님께서 기도에 몰입하시기 전 장면부터 살피겠습니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39절)라는 오늘 본문의 첫 절을 살펴볼까요?
유월절 만찬에서 시작해서 최후의 만찬으로 이어지는, 그리고 요한복음에 기록된 긴 교훈을 끝내신 다음, 예수께서 다락방에서 나오셔서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셨습니다.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감람산에 가서 쉬시는 것(눅 21:37)이 고난주간을 앞둔 예수님의 일과였습니다.
물론 기도는 예수님의 생활습관이자 삶의 방식이었던 것은 성도라면 누구나 인정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습관을 따라”라는 기록은 예수님의 일반적 생활습관이나 삶의 방식을 가리키는 것이라기보다는 마지막 예루살렘 성에서의 사역, 특히 유월절을 앞둔 것이라고 보아야 정확할 것 같습니다.
그 마지막 날들을 “감람산”에서 기도하시므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기도의 삶을 사신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 누가는 어떤 제자보다 예수님의 기도생활을 강조한 복음서 기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누가는 다른 복음서 기자가 관심을 쏟지 않은 기도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스냅으로 남겼고, 기도에 관한 예수님의 교훈을 기록으로 남겼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기도로 연단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십시오.
예수님은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 이 습관은 유지하고 있을뿐더러,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원동력으로 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습관은 반복된 행동의 결과입니다.
기도의 습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기도의 습관을 가지고 싶다면 여러분은 먼저 반복된 기도생활을 해야 합니다.
온 교회가 함께 하는 이와 같은 특별기도회는 새로운 기도의 습관을 갖고 싶은 분들에게 좋은 시작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를 여러분의 생활습관으로, 삶의 방식으로 갖고 싶다면 무엇보다 먼저 기도하는 시간과 장소를 정하십시오.
유월절을 앞둔 예수님께서는 감람산에서의 밤 시간과 새벽시간을 활용하였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는 것은 복음서에 기록된 주님의 모습 때문입니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막 1:35)하셨다고 마가는 증언합니다.
누가는 제자선택을 앞두고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눅 6:12)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갖는 밤과 새벽의 특별기도시간은 성경적 전통을 따른 것입니다.
인용한 본문에서 시간뿐 아니라 장소에 대한 예수님의 선호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가는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누가는 “기도하시려 산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시끄러운 곳보다는 조용한 곳, 그런 면에서 산은 그런 조건을 갖춘 곳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제 거의 시설을 갖춘 녹동 캠프장도 기도의 장소로서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기도원 부지로 20여 년 전에 구입해둔 녹동을 올해부터 활용해 보십시오.
기도를 생활습관으로, 삶의 방식으로 갖고 싶은 성도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다시 말씀드립니다.
모든 습관은 반복된 행동의 결과입니다.
기도의 습관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기도하는 시간과 장소를 확보하십시오.
그리고 이번 한 주간을 시작으로, 아예 40일 정도를 계속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생활습관으로 뿌리를 내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활습관은 여러분의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꽃을 피우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주님을 닮은 삶을 살고 싶은 분은 내일부터 시작하는 기도의 자리를 사모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삶에 기쁨과 감사가 가득할 것입니다.
첫 장면에서 하신 주님의 한 마디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40절)
예수님을 부인하게 될 위험에 빠진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할 뿐 아니라 그들에게 기도하라고 두 번씩 명령합니다.
당신의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며 하신 첫 말씀하십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40절)
그리고 두 번째로 당신의 기도가 끝난 후에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제자들을 보시고 하신 말씀 가운데 나옵니다.
“어찌 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46절)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두 번 반복되는 “기도하라”(40, 46절)는 말은 강렬하고도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드리는 기도입니다.
다가올 유혹에 맞설 수 있기 위해서 지금 제자들은 그런 기도가 필요합니다.
스승을 버리고 도망하거나 그와의 관계까지 부인하게 될 유혹입니다.
특히 예수께서 날이 새면 십자가에서 처형당하는 것을 목격하게 될 때 여전히 그들 메시아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인지, 자신들이 기만 당했다는 생각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인지가 관건입니다.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만이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에 두 번이나 반복해서 “기도하라”(40, 46절)고 명령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야고보 선생은 흩어진 열두 지파에게 보낸 그의 편지에서, 맨 먼저 다룬 주제가 시험과 유혹이었던 것처럼, 그 때 제자들뿐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도 시험과 유혹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마땅히 우리의 삶의 방식과 생활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첫 부분 마지막 구절로 가봅시다.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41절)
이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하라고 명한다음 자신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먼저 제자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셨습니다.
그 거리가 몇 미터냐 되냐구요?
그런 궁금증이 있는 분들이라면 올 봄이 다 가기 전에 반드시 녹동으로 올라가서 밤에 기도해 보십시오.
하지만 돌을 던져서 각자가 기도할 자리를 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밤엔 너무 멀리 있으면 두려움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너무 가까이 있으면 옆 사람의 기도소리가 여러분의 기도의 집중을 방해할 것입니다.
귀를 기울이면 옆 사람의 소리도 들을 수 있는 거리, 하지만 기도에 몰입하면 더 이상 들리지 않는 이상적인 거리가 바로 “돌 던질 만큼”한 거리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정말 우리가 관심을 기울일 구절은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는 주님의 기도자세입니다.
당시 일반적인 유대인의 기도자세는 서서 기도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우리는 이 구절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무릎을 꿇고 기도하므로 당시의 전통을 깨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가 가진 기도의 부담이 너무 무거워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달리 도움을 구할 수 없는 간구자의 자세입니다.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의지할 곳 없는 간절한 기도자의 자세입니다.
누가가 쓴 사도행전을 보면 특별히 집중적인 기도를 드릴 때에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무릎을 꿇고”, 첫 번째 순교를 당한 스데반의 기도자세였습니다.
“무릎을 꿇고”, 다비다를 살린 베드로의 간절한 기도자세입니다.
“무릎을 꿇고”, 선교여행에서 마지막 작별을 하던 바울의 간절한 기도자세이기도 합니다.
자, 그러면 이제 오늘 본문의 핵심을 이루는 주님의 기도를 들어봅시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42절)
여기서 예수님은 다가오는,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시지 않을 수 없는지 몸을 사리는 기도를 드립니다.
물론 태어난 순간부터 그의 길에는 십자가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그는 끔직한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언제나 의식하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두려움은 죽음에 대한 것뿐만 아닙니다.
정말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세상 죄를 위하여 경험해야 하는 쓴잔입니다.
하나님과의 완전한 분리를 맛보아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영원 전부터 항상 누렸던 아버지와의 교제로부터의 단절을 직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합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죄 없으신 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죄가 되셔야 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그렇기에 아버지의 뜻을 기꺼이 수용하길 결국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42절)
예수님은 정말 아버지의 진노의 잔을 피해가길 원하셨으나 그보다 더 그가 열망했던 것은 아버지의 뜻을 행함으로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길 원하셨습니다.
이 기도는 자신의 뜻을 아버지의 뜻 아래 내려놓겠다는 고백이요 어떤 상황에서라도 아버지를 신뢰하겠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숙명적인 수용이 아니라 기쁨의 결단이 되기 위해 존재 전체를 건 기도의 투쟁입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을 뛰어넘어 아버지의 뜻을 받아드리기로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는 나의 소원과 욕망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망과 의지를 확인하고 거기에 나를 맞추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도, 피하지도, 분노하거나 관조하지도, 물러서거나 절망하지도 않고, 담담히 아버지의 뜻을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 기도는 우리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작업입니다.
고난주간 특별기도회, 이 한 주간,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 뜻보다 더 선하시고 지혜롭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완전무결합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은 신뢰하고, 거기에 우리의 삶을 맡기는 평안과 기쁨을 맛보시길 바랍니다.
그 긴박하고 간절한 기도의 순간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43절)고 기록합니다.
한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예수님께 힘을 공급합니다.
히브리서는 말합니다.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히 1:14)
예수님의 기도의 응답으로 하늘 아버지께서 천사를 보냈습니다.
“미안하다, 아들아, 너는 반드시 이 컵을 마셔야만 해, 하지만 여기 보낸 천사를 통해 그 임무를 수행할 힘을 공급할게”라고 하는 듯싶습니다.
천사의 등장을 통해 예수님의 고난의 길이 사단과의 영적전쟁임을 부각시킵니다.
어두움의 권세는 일시적인 승리(요 13:30)를 하지만 궁극적인 승리는 감람산에서 기도로 승리하신 주님의 것입니다.
천사의 등장은 자신의 소명을 감당하길 원할 때 하늘이 우리 곁에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기도할 때 우리를 휩싸는 개인적인 고뇌와 갈등은 다시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과 하나님의 위로로 바뀝니다.
본문에 나타난 천사의 등장은 누가에겐 생소한 것이 아닙니다.
탄생기사를 시작으로 자주 등장합니다.
마가는 광야의 시험장면에서도 천사의 수종(막 1:13)을 말하고 있습니다.
광야의 유혹보다 더 심각한 현장에서 천사를 보내심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동시에 처절한 고뇌를 때론 겪어야 할 우리에게는 감격적인 장면입니다.
어떻게 보면 제자들의 배신도 당하기 전에, 십자가의 긴긴 고통을 겪기도 전에, 예수께서는 기도에 자신을 모두 소진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역설적으로 이 자신을 다 쏟아 부은 기도가 자신을 버티게 하는 힘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는 자리로 나아가서 자신을 새롭게 아버지의 뜻에 내어맡기는 기도를 드립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에 자신을 내어맡기는 것입니다.
자신의 욕망보다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내어드립니다.
고통이든 죽음이든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과의 교제의 깊은 자리로 나아갑니다.
그 간절한 기도의 장면을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44절)고 기록합니다.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신 장면을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고 누가는 실감나게 표현합니다.
누가는 우리에게 우리의 연약과 상처를 동일시할 수 있는 분으로 예수님을 그립니다.
그날 밤 기도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영적인 치열한 전투입니다.
하지만 유혹의 어두운 시간을 환한 승리의 시간으로 바꾸어줍니다.
이제 오늘 본문의 마지막 장면으로 가봅시다.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45~46절)
다른 복음서의 기록을 보면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마 26:38)는 부탁을 합니다만 제자들은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제자들이라는 누가의 표현은 예수님의 따뜻한 마음이 전달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슬픔으로 증폭되어 기진맥진하여 견디지 못합니다.
겨우 아마 자정이나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긴긴 하루였기에 피곤했을 것이고, 예수님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사실로 인해 감정적으로 완전히 소진되어 있었기에 기도하기는커녕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주님께서 안타까워 다시 한 번 당부합니다.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앞으로 닥칠 시험을 견딜만한 제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물론 그 때 제자들은 잠에서 깨어나야 하기에 “일어나” 기도해야 하지만 오늘 우리를 향해서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상황과 여건에 휘둘리지 말고 “깨어나” 기도하길 바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일부터 시작하는 고난주간 특별기도회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밀려드는 상황에 허우적거리지 말고 신앙인답게 살기 위해서 기도의 자리로 나아오십시오. 결정적인 순간에 준비하지 못함으로 실패를 향해 나아가지 마십시오.
구주대망 2022년 “신앙생활 일터에서” 승리하길 위해서 기도의 자리로 반드시 나아오십시오.
시험에 들지 않도록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기도하는 자리로 나아오십시오.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지 못해서도 실패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도 우린 시험에 허우적거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소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기도하지 않아서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늘 능력을 공급받지 않으면 우린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기도의 연단은 승리의 삶을 살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고난주간 특별기도회를 통해서 예수님의 생활습관이자 삶의 방식을 자신에게 이식시키길 바랍니다.
특히 이제 남은 삶을 의미 있게 살기를 원하시는 성도님들에겐 이번 특별기도회가 새로운 지시를 듣는 작전타임이 되길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