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터전에서 했던 턴동작 말이죠 - 우린 언제나 그걸 연습해요."
"로베르토 카를로스가 프랑스를 상대로 했던 프리킥을 해보려고 여러번 시도해봤던 것도 기억나요.
하지만 더 자주 연습했던 건 지네딘 지단턴이었어요."
"제 어린시절을 되돌아보면, 카를로스와 지단은 언제나 제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었던 선수예요.
그 둘에 대해선 길게 말하지 않아도 되겠죠 - 모두 그들을 알고, 제가 어린아이였을 때 엄청난 영향력을 과시했었거든요."
어렸을 적, 세오는 칼스루에의 외곽지역에서 자유 시간을 언제나 축구공과 함께하곤 했다.
"제 어릴적 기억은 긍정적이에요.아직도 친구들과 그 시절에 대해 얘기하기도해요.
되돌아보면, 학교가 끝나자마자, 지역에 있는 축구장에 가서 어머니들이 밤늦게 우리를 끌고 데려갈 때까지 거기서 놀곤 했어요.
찰흙으로 된 운동장도 있었고 그 옆에 인조잔디 경기장도 지어졌어요, 거기서도 놀곤 했죠."
"많은 친구들과 함께 한 그 시절은 정말 좋았어요 - 사실 가끔은, 피치 위에 너무 사람이 많아서 가끔 7-8명은 밖에서 기다려야 할 정도였어요.
어린시절을 되돌아볼 때, 그 즈음의 저녁시간은 아직도 제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아있어요.
요즘에는 운전을 하다 축구 경기장을 지나쳐도 경기를 하고 있는 아이들이 매우 드문 것 같아요."
왜 그런 것 같아요?
"답은 간단해요 - 스마트폰과 컴퓨터 때문이죠.
우리가 어린 시절 그랬던 것처럼 밖에서 만나는대신, 요즘 아이들은 서로 메세지를 보내고 온라인에서 서로를 만나 게임을 하더라구요.
그게 더 편하겠죠 - 집에 있는 쇼파에 앉아 헤드폰으로 대화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어릴 적에는 전혀 그러지 않았어요, 그리고 저는 그 시절 밖으로 나가 축구를 할 기회가 있었다는 것에 행복해요.
요즘은 그런 경우들이 더 이상은 없는 것 같아 약간 슬퍼지기도 해요.하지만 아이들이 자신들이 하고싶은 것들을 하는 게 맞겠죠?"
그 시절, 늦은 밤 경기장에 나가 놀곤 했던 것들은 확실히 좋은 결과를 낳았다.
세오가 8살이 되던 해, 그는 카를스루에 SC에 입단하게 되었고 그 곳에서 평화로운 발전을 이루며 8년 동안 머물렀다.
그러나 그 때, 세오의 커리어에 엄청난 사건이 찾아온다.
2009년에 그는 호펜하임에 합류하기 위해 KSC를 떠나게 된다.일 년 후에 슈투트가르트에도 합류하였다.
그 후엔 또 샬케에 있는 콜라시나츠를 발견할 수 있다.
메수트 외질 또한 그 자신을 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게 도움을 줬다고 말한 바로 그 코치의 밑으로 들어간 것은 모든 것을 다 바꿀만한 한발짝이었다.
"더 풍부한 경험을 한 지금 그 시절을 되돌아보면, 그 때 저질렀던 실수들은 다시 하고 싶지 않아요.저는 정말 많은 실수들을 했거든요.
카를스루에서 호펜하임으로 갔어요, 그 곳에선 일이 잘 풀리지 않았죠.
그리고나선 슈투트가르트에 갔는데 거기서 또한 일이 잘 되어가진 않았어요, 이러한 일들은 보통의 어린 선수들에게도 많이 일어나는 일이에요.
그 때 저에게 샬케에 갈 기회가 생겼고, 거기서 지금의 저를 만들어주신 알게르트 코치님을 만났어요."
"그 당시 샬케의 U-19 알게르트 코치님을 만날 때까지만 해도, 제가 뭘 이룰 수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어요.
그는 저를 한 쪽으로 데리고가서 제가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그의 말을 귀기울여 듣고, 그와 함께 있는 2년 내에 훈련받은대로만 한다면, 저에게 성인팀으로 들어갈 기회가 분명히 생기리라고 말하셨어요.
제가 그와 일하기 시작하고부터 제가 발전하고 있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어요 - 저는 분명 발전했고, 전술적으로도 더 나아졌으며 경기를 뛰면서도 나아지고 있었어요.
그 시점부터, 제가 이렇게만 계속한다면 저에게도 프로팀에 들어갈 기회가 있겠구나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그가 얼마나 큰 영향력이 있는 사람인지 알 수 있도록 알게르트는 꼭 만나봐야하는 코치예요.
비단 저와 메수트만이 그에게서 은혜를 입은 사람이 아니에요 - 분데스리가와 그의 도움으로 프로세계에 한 발짝 딛은 선수들이 전 세계에도 엄청 많을 거예요."
"소년일 시절 그를 만났고, 저의 성격형성에도 도움을 주시며 저를 진정한 남자로 만들어주셨어요.
그는 그렇게 하는 방법들을 정말 잘 알아요.트레이닝을 가질 때면 그가 이 직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분명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샬케가 유망한 어린 선수들을 키워내는 데 그토록 성공적인 이유엔 알게르트가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겔젠키르헨에 위치한 샬케에 머무는 6년 동안, 세오는 분데스리가의 탑수비수가 되었다.
그러니 그가 그토록 깊은 애정을 가지고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모든 것이 샬케 위주로 돌아가는 겔젠키르헨에 살면서 그런 경험을 한다는 건, 그런 클럽에서 경기를 뛸 수 있었다는 건 정말 특별해요.
저는 그 곳이 제 집이라 생각해요, 정말로 편안했고 모든 친구들 또한 그 곳에 살며 아직도 시간이 있으면 들리거든요.
집을 들리는 건 항상 즐거운 일이죠."
도르트문트를 상대로한 레비어 더비는 어땠는지?
"그 경기가 다가오면, 그 한 주 동안은 정말 긴장을 하면서 지내요.
도시에 나가면 사람들이 다가와서 "걔들을 납작하게 만들어줘!" 라는 말을 듣기도 하구요.
그러한 경기에 나가는 건 정말 특별해요, 그리고 그 경기의 일부분이 될 때 그 더비경기가 이 지역 전체에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진정한 이해가 가능하죠.
더비경기를 이기는 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나 자신을 자랑스럽게 만들어줘요 - 더비경기는 그 이후 3경기를 내리 패배하더라도, 팬들은 여전히 그 더비를 이긴 것에 대해 만족할만큼의 위력이 있어요.
정말 특별한 경기라는 것 밖에는 할말이 없네요."
세오는 독일의 많은 유스들과 함께 측면자원 중 하나로 대표되며 자라왔지만, 2013년에 보스니아로부터 국가대표 제안을 받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않아, 그는 아르헨티나를 상대로한 친선경기로 성인팀 데뷔를한다.
흰색(독일)에서 블루 유니폼(보스니아)으로 바꾸는 게 얼마나 힘들었나요?
"저는 휴가가 있을 때면 언제나 보스니아를 방문해요, 제 모든 가족들도 그 곳 출신이구요.그러니 그 결정을 내리는 건 그다지 어렵진 않았어요.
제가 그 결정을 내리게 되면, 제 가족을 자랑스럽게 만들 수 것임을 분명하게 알았어요.
전쟁으로 인해 너무나 많은 걸 잃어왔기 때문에, 제가 국가를 대표해서 뛰는 건 모두를 자랑스럽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그건 저 자신도 자랑스럽게 만들어요, 제가 국가에 무언가 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정말 좋아요."
"어린 시절에 학교에서 6주간의 방학이 있을 때, 시간을 보스니아에서 보내는 것보다 좋은 일은 없었어요, 그만큼 행복했어요.
그 때만큼은 밤 늦게까지 놀아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어요.부모님 또한 저를 걱정하지 않구요. - 가끔은 삼촌,이모께 놀러가기도 했어요.
그 시절은 정말 즐거웠고 언제나 그 곳에서 살고 싶다고 버릇처럼 말해요.
제 어머니의 고향이면서, 항상 시간을 보내곤했던 마을 이름은 Cukovina라고해요."
"이견 없이 독일 유스 국가대표팀에서도 좋은 시간을 보냈어요.2013년 이스라엘에서 열렸던 U-21 유로까지 저는 독일을 대표해서 뛰었어요.
가족에게도 이 문제에 관해 상의했지만 언제까지나 나 자신이 결정지어야만 하는 문제(대표팀을 바꾸는 것)였죠.
아버지께도 몇 가지의 조언을 얻었지만, 그 때의 저 자신은 결정을 내리기에 충분한 나이였고 실제로 그렇게 했어요.
축구선수로서 언제나 좋은 순간, 나쁜 순간을 모두 겪게 돼요.그러니 가족이 있다는 건 정말 중요해요, 특히 저의 경우에는 더 그런 것 같아요.
아버지는 제가 힘든 시절을 보낼 때 조언을 많이 해주셨고, 전 가족과의 유대감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결정을 한 이후, 세오는 브라질 월드컵으로 향하게 된다.
"정말 기뻤어요.그 때 20살이란 나이로 정말 어렸는데 진짜진짜 기뻤어요.
보스니아가 월드컵에 처음 진출했다는 것이 저를 감상에 젖게 만들었죠, 특히 공항에서 열렬히 환영해주시는 분들 덕에 더욱 더요.
월드컵에서 뛰었던 경험은 정말 특별했고, 그건 그 누구도 저에게서 앗아갈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있어요."
"그 때 저는 집에 있었어요.그들은 월드컵 초청장을 샬케로 보냈지만, 우편이 지연되었던거죠!
코치는 보스니아 티비에서 스쿼드를 발표했고 제 아버지가 그걸 보고 계셨어요.
그는 그걸 라이브로 보고 저에게 바로 전화를 하셨죠 - 하지만 우편이 도착하지 않아서 저는 믿을 수가 없었어요.
며칠 후, 샬케에 우편이 도착했고, 국대에 승선하게 된 걸 보고 정말 진짜 기뻤어요."
"불행히도 아르헨티나를 상대로했던 첫 경기에서, 그것도 첫터치로 자책골을 넣고 말았어요..
8만 관중의, 마르카냐 스타디움에서 말이죠.
어린 나이로 월드컵에 출전해 정말 받아들이기 힘든 순간이었지만, 그런 종류의 경험이 저를 한 발짝 더 발전하게 해줬다고 생각해요.
그런 일이 일어난 게 정말 창피했지만 저를 발전하게 해준 건 분명해요."
세오가 많은 클럽들의 관심을 산 때가 바로 그 시절이었다.하지만 그는 샬케에 남기로 결정했다.
"그 때, (샬케를 나가는 게) 올바른 결정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남기로 결정했어요.
선수로서 단 한 시즌 좋은 경기력을 펼치고 바로 나가버릴 순 없거든요.몇년동안 꾸준히, 최고의 경기력을 가져와야해요.
그 당시에 이적을 하는 게 올바른 결정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준비가 되지도 않았어요.그리고 그 때 저는 젊었으니까요.
가족과 에이전트와도 대화를 했고 해외로 나가지 않고 분데스리가에 남기로 결정을 내렸어요.
아직도 그 결정엔 만족해요."
그리고 몇 년 후, 세오는 다른 클럽들의 제안을 뿌리치고 드디어 프리미어 리그에 도착해 아스날에 합류하게 된다.
그 결정을 하게 만든 요인은 무엇인가요?
"네, 다른 클럽들의 오퍼도 있었어요,하지만 이 곳의 전체적인 제안이 더 옳아 보였던 거죠.
제가 여기 오게 될 걸 몰랐을 때도, 저는 오랜 기간 아스날을 응원해왔어요.그들은 공격적이고 정말 매력적인 축구를 하잖아요.
아스날 경기를 보는 걸 항상 즐겨왔고 바로 그 클럽에 제게 관심이 있다 들었을 때, 아르센 벵거를 만나게 되었을 때, 망설임없이 제가 이 곳에 합류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 때부턴 모든 것이 착착 진행되었죠."
"5년 전, 제가 19살일 적, 저는 풋내기였고 성공하기 위해 모든 걸 빨리빨리 터득해야했어요.
이제 제 자신이 드디어 성숙해졌다고 느껴요, 하지만 성격적인 면으로는 그리 바뀌지 않았다 생각해요 - 저는 언제나 한결같은 사람이에요.
5년 뒤의 나도 오늘의 나 자신과 같은 사람이길 희망해요."
https://www.arsenal.com/news/long-read-sead-kolasinac-his-roots
첫댓글 좋은글이네요!
드락슬러 좀 꼬셔주세요 ㅠ
잘봤습니당
파이팅
세오 ㄷ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