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권은 다음날 아침에야 현덕이 도망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손권은 즉시 막료들을 불러들여 대책을 의논했다. 장소가 먼저 말했다.
“그자를 놓치면 반드시 앙화가 닥쳐올 것입니다. 바로 추격해서 잡아들여야 합니다.”
손권은 즉시 진무와 반장에게 정병 5백을 거느리고 현덕을 잡아오라는 명을 내렸다. 두 장수가 말에 올라 바람처럼 달려갔다.
손권은 분을 참지 못하고 근처에 놓여있던 옥벼루를 들어 바닥에 내팽개쳤다. 벼루가 단번에 두쪽으로 갈라졌다. 손권이 이처럼 씨근덕거리니 누구도 말을 붙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정보가 용감하게 앞으로 나와 말했다.
“주공, 화를 잠시만 누르시고 소장의 말을 들어주십시오.”
“뭐요?”
“소장이 보기에 진무와 반장은 유비를 잡아오지 못할 것입니다.”
“뭐라? 그것들이 감히 내 명을 어길 거란 말이오!”
“소군주께서는 어려서부터 무예를 익혀 성품이 엄정 강직하십니다. 웬만한 장수들조차 대하기를 두려워할 정도입니다. 소군주가 이미 유비를 따르기로 마음먹은 이상 진무와 반장이 유비를 잡아오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진무와 반장은 이때 30대 초반이었다. 손부인이 호통을 치면 대거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손권은 망설이지 않았다. 즉시 자신의 보검을 풀어 장흠과 주태에게 내주었다.
“너희 둘은 이 칼을 가지고 가 현덕과 내 누이의 목을 베어 온다. 명을 어기면 너희들의 목을 벨 것이다!”
장흠과 주태는 물러나와 천 명의 군사를 끌고 추격에 나섰다. 이들은 진무와 반장의 위에 있었으며, 특히 주태는 과거 선성에서 손권 대신 창칼을 맞아가며 손권을 구해준 큰 공로를 세운 바 있었다. 화타가 다녀가지 못했다면 그곳에서 목숨을 잃을 만큼 중상이었다. 손권은 그 은혜를 잊은 적이 없었다. 항상 손권이 주태를 존중했기 때문에 손부인도 주태에게는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주태가 현덕과 손부인을 잡아올 수 없다면 아무도 그들을 잡아올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현덕은 제법 빨리 도망치고 있었다. 하지만 수레를 끌고 가는 길이라 아무래도 기병들처럼 속도를 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손부인이 아무리 강단이 있다 해도 여자의 몸으로 밤을 새워 달릴 수도 없었다. 객잔에 머물 여유는 없었지만 노숙은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럭저럭 시상까지 도착하게 되었다. 이제 이곳만 지나갈 수 있다면 형주로 들어가는 것은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결국 꼬리를 잡히고 말았다. 밤을 새워 쫓아온 진무와 반장의 기병대가 멀리 보이기 시작했다. 계속 후미를 주시하던 조운이 급히 현덕에게 달려가 상황을 보고했다.
“적들이 추격해 왔습니다.”
현덕은 크게 낙담해서 조운에게 혼잣말처럼 되물었다.
“적들이 벌써 여기에 도달했으니 어째야 좋을까?”
“주공께서는 먼저 가십시오. 제가 막아내겠습니다!”
그러나 그러기도 틀렸다. 산굽이에서 한떼의 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앞에 선 장수가 창을 휘두르며 우렁차게 호통을 쳤다.
“유비는 속히 말에서 내려 포박을 받아라! 주 도독의 명으로 서성이 너를 기다린 지 오래다!”
주유는 현덕이 도망칠 것을 예상하여 형주로 넘어가는 길목에 서성과 정봉을 보내 놓았다. 정병 3천이 그들과 함께 하고 있으니 현덕의 군사로 대항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앞뒤로 적군을 맞게 되었으니 조운이 아무리 만부당의 용사라 해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현덕이 탄식을 했다.
“앞은 갈 수 없고 뒤는 쫓기는 신세가 되었군. 빠져나갈 길이 없으니 어째야 좋을지 모르겠어.”
그러나 조운은 의외로 침착했다.
“주공,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군사가 준 비단주머니가 아직 하나 남아 있습니다. 이미 두 개의 주머니에서 나온 계책으로 큰 효과를 보았으니 이 마지막 비단주머니에도 분명 절묘한 계책이 들어있을 것입니다. 군사는 가장 위급할 때 이 주머니를 열어보라 했습니다. 주공께서 살펴보십시오.”
조운이 품 속에 간직해 왔던 비단주머니를 현덕에게 바쳤다. 현덕이 읽어보고 급히 손부인 앞으로 달려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오후와 주유가 공모하여 나를 이곳에 불러들인 것은 실로 이번 혼사 때문이 아니었고, 오직 나를 붙잡아 형주를 얻고자 하는 모략이었소. 형주를 빼앗았다면 나야 벌써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오. 부인과 같은 향기로운 미끼로 나를 낚으려는 수작이었으니 내가 걸리지 않을 도리가 있었겠소? 나는 이런 계략을 알고 있었으나 죽음을 무릅쓰고 이곳에 왔소. 다 부인이 남자와 같은 기개를 가져 나를 구해주리라 믿었기 때문이었소. 나는 벌써 오후가 나를 해치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 때문에 형주에 위기가 닥쳐온다는 말로 돌아가고자 했던 것이라오. 다행히 부인이 나를 버리지 않아 함께 여기까지 올 수 있었소. 지금 오후는 사람을 보내 뒤를 쫓고 주유는 사람을 보내 앞을 끊었으니 부인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소. 부인이 내 청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나는 부인의 수레 아래 깔려죽어 지난날의 정에 보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오.”
손부인의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오라비가 날 누이동생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나라고 못 그럴 것 같습니까? 이번에는 소첩에게 맡겨놓으십시오!”
손부인은 수레를 앞으로 끌어가게 한 뒤 수레 앞에 친 발을 치우게 했다. 손부인이 내다보니 앞을 가로막은 장수는 서성과 정봉이었다. 이때 서성은 삼십대 초반이고, 정봉은 그보다 어려 20대 중반밖에 되지 않았다. 손부인이 사나운 눈길로 노려보자 그것만으로도 그만 기세가 꺾이고 말았다. 손부인은 두 사람을 노려보며 매섭게 소리쳤다.
“너희 둘이 감히 모반을 하려는 거냐!”
서성과 정봉은 즉시 말에서 내려 인사를 올리고 변명을 했다.
“모반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저희는 주 도독의 명으로 유비를 기다리며 군사를 머물게 한 것뿐입니다.”
“주유 역적! 우리 동오가 저를 저버린 적이 없거늘 이 무슨 짓이냐! 내 지아비는 대한의 황숙이시다. 내가 벌써 어머니와 오라버니한테 허락을 받고 형주로 돌아가는 것인데 너희가 지금 길을 막고자 하는 것은 우리를 죽이고 재물을 약탈하겠다는 심보가 아니면 무엇이냐?”
“감히 그럴 리가요! 소군주께서는 노여움을 푸십시오. 저희들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주 도독의 뜻을 따르고 있을 뿐입니다.”
“너희가 주유는 무섭고 나는 무섭지 않단 말이냐! 내가 주유라면 못 죽일 줄 아느냐!”
손부인은 시종들에게 수레를 앞으로 몰라고 명을 내렸다. 서성과 정봉은 감히 막지 못하고 옆으로 물러섰다. 현덕 일행은 재빨리 손부인의 뒤를 따라 그곳을 벗어났다. 조운은 전혀 주눅들지 않고 침착하면서도 위엄있는 모습으로 군사들을 통솔해서 서성과 정봉을 감탄케 했다.
현덕 일행이 채 오십여 리를 가기 전에 진무와 반장이 그곳에 도착했다. 현덕이 그곳을 무사 통과한 것을 알고 진무와 반장은 발을 동동 굴렀다.
“유비를 놓아보내다니! 우리는 주공의 명을 받들어 유비를 잡아가기 위해 왔소! 함께 추격합시다!”
네 사람은 급히 군사를 몰아 현덕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반나절을 가지 않아 현덕 일행의 꼬리를 붙잡고 말았다. 현덕이 손부인에게 일렀다.
“뒤에 오병들이 도착했소. 어쩌는게 좋겠소?”
“심려치 마시고 앞서 가세요. 여기는 자룡과 소첩이 맡겠습니다.”
현덕은 삼백 명의 병사를 데리고 강변을 향해 달려갔다. 조운은 남은 이백의 병사를 도열시키고 손부인의 수레를 앞세운 채 동오 군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네 장수는 손부인이 앞에 나와 있는 것을 보고 군사를 멈춘 뒤 말에서 내려 인사를 올렸다.
손부인이 매섭게 말을 꺼냈다.
“진무, 반장은 무슨 일로 왔느냐?”
“주공께서 두 분을 모셔오라 명을 내리셔서 왔습니다. 함께 돌아가시기를 청합니다.”
손부인이 정색을 하고 야단을 쳤다.
“이런 것들을 봤나? 너희가 우리 남매를 모함해서 이간질이라도 시키겠다는 거냐? 내가 결혼을 하고 시댁으로 가는 것이지, 어디 정분이라도 나서 도망질을 치는 거냐? 내가 벌써 어머니께 여쭙고 허락을 다 받았다. 오라버니가 여기 오신다 해도 예법에 따라 일을 처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감히 너희 두 놈이 병장기를 들이대고 날 죽이고 싶다는 거냐?”
진무와 반장이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난처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어차피 손권과 손부인은 만년이 흐른다 해도 남매지간일 수밖에 없었다. 만일 내일이라도 손권이 마음을 돌린다면 자기들 목숨이 위태로울 판이었다. 더구나 오국태가 이 일을 허락했다면 그 끝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감로사에서 가화의 선례도 있었지 않은가. 공연히 일을 꼬이게 하는 것보다는 그냥 인정을 베풀어 모른 척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들이 우물쭈물 말도 못하는 것을 본 손부인은 조운을 불러 길을 떠나게 했다. 하릴없이 조운의 뒷모습만 바라보던 서성이 입을 열었다.
“우리 넷은 주 도독을 만나 상의드리는 게 좋지 않겠소?”
하지만 눈앞에서 현덕을 놓치고 주유에게 가본들 고운 소리 듣기는 틀린 일이라 넷은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설왕설래만 거듭했다. 반나절 쯤 지나 후방에서 흙먼지가 일어나며 한 무리의 군사가 달려왔다. 장흠과 주태의 군사가 도착한 것이다.
장흠과 주태는 말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큰소리로 네 장수에게 물었다.
“너희는 유비를 보지 못했느냐?”
“지나갔습니다. 이미 반나절 쯤 지났습니다.”
“왜 잡지 않았냐?”
네 장수는 손부인이 나서서 막은 사연을 털어놓았다. 장흠이 말했다.
“주공은 이런 일이 생길까봐 여기 이 칼을 내리셨다. 소군주를 베고 유비의 목을 가져오라 하시면서 어기는 자는 참수형에 처하겠다 하셨다.”
네 장수의 안색이 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벌써 한참을 갔을텐데 어쩌면 좋겠습니까?”
“그들은 보군이라 아직 멀리 가지 못했을 것이다. 서성, 정봉은 주 도독께 이 일을 알리고 수로에 쾌속선을 띄워 유비를 막도록 조치해라. 나머지 장수들은 추격을 계속한다. 누가 먼저 유비를 따라잡든지 간에 불문곡직 베어버린 뒤에 이야기해라!”
장흠이 명쾌하게 상황을 정리하자 서성과 정봉은 급히 주유에게 달려갔다. 추격은 다시 시작되었다.
이때 현덕은 시상을 벗어나 유랑포(劉郞浦)에 도착했다. 강을 넘어가면 형주다. 그러나 배가 보이지 않았다. 강물은 조용해 배를 타기만 하면 곧장 형주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배가 도통 보이지 않으니 마음만 다급해졌다. 현덕이 시무룩해지자 조운이 위로를 했다.
“주공은 이제 호랑이 입에서 벗어났습니다. 이제 형주의 경계까지 왔으니 군사가 반드시 뭔가 조치를 취해놓았을 것입니다. 뭘 그리 걱정하십니까?”
조운이 공명에 대한 믿음을 그렇게 이야기하자 현덕도 어느 정도 마음이 놓였다. 동오 쪽을 바라보자 지난날 경구에서 탐락에 젖은 생활이 새삼 부끄럽기만 했다.
“자룡은 어서 배를 찾아보라.”
조운이 명을 받들고 강변으로 내려갔을 때 동오 방면에서 흙먼지가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현덕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제는 사람도 말도 모두 지쳐 있었다. 더 이상 도망친다는 것도 불가능했다. 앞에는 강이 가로막고 있으니 이번에야말로 죽음을 벗어날 방법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조운의 부르짖음이 들렸다. 현덕이 황급히 강안을 바라보자 전함 20여 척이 늘어서 있는 것이 보였다.
“하늘이 도와 배가 도착했습니다! 빨리 강가로 내려와 배에 오르십시오!”
현덕 일행이 배에 오르자 선창에서 윤건에 도복(道服)을 입은 공명이 나와 웃으며 말했다.
“주공 경하드립니다. 공명이 이곳에서 기다린 지 오래입니다.”
현덕은 공명의 손을 잡고 기뻐했다. 현덕이 탄 배가 강변에서 멀어지고 있을 때가 되어서야 동오의 장수들이 그곳에 도착했다. 공명이 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하하, 내가 너희들이 이쯤 도착할 줄 알고 있었다. 너희는 돌아가 주랑한테 내 말이나 전하거라! 다시는 미인계를 쓰지 말라고 말이다! 하하하!”
장흠과 주태는 화살을 쏘아댔으나 이미 배에 미치지 못했다. 현덕을 태운 배는 쏜살처럼 사라져갔다.
첫댓글 삼국지매니아로써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도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
이번주도 잘봤습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많은님들이 계속 읽어주어 지속적으로 올리겠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