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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 제45장 어머니와 아들
기이한 곳이었다. 사방에는 온통 죽림(竹林)이 둘러져 있었고, 몇 채의 모옥이 보였다. 그리고, 그 사이로 구름이 바람결을 따라 오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마치 선경을 방불케 하듯… 그 가운데의 모옥, 몹시도 정결하고 검소한 방이었다. 묵죽(墨竹)으로 만든 침상 하나가 전부인…
한데, 탁자 옆에는 두 사람이 보였다. 청수하게 생긴 선풍도골의 한 노인(老人)과 흑의(黑衣)를 걸친… 아! 흑의인(黑衣人), 천하에 이렇게 못생긴 사람도 있을까? 얼굴 가득히 흉터가 나 있으며, 한쪽 팔은 끊어져 옷 소매만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두 눈에는 한(恨)이 담겨져 있었다. 이때, 노인은 흑의인을 향해 탄식처럼 말했다.
"애야, 네 아들이 이관(二關)마저도 통과했다고 한다."
흑의인은 싸늘하게 웃었다.
"호호호… 그 애는 반드시 삼관마저도 통과할 거예요. 그리고 반드시 저를 구해 줄겁니다. 모자(母子)의 정(情)은 그 무엇으로도 막지 못하니까요…"
흑의인, 아! 그는 여인(女人)이었던가? 그리고 모자(母子)… 모자(母子)의 정(情)이란…? 오오! 예문빈! 이 흑의인이 바로 그녀란 말인가? 표리천영의 어머니인… 사랑하는 남편 을 위해 복수의 길을 떠났던… 한데, 어찌 이토록 처절한 모습이란 말인가? 표리천영의 기억 속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어머니로 남아 있었다.
그렇다. 십년전… 여계현의 유향장원을 떠나기 전에는 그녀의 모습은 가히 천하제일의 미(美)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남편의 원수를 만나 혹독하게 당했단 말인가? 그리고, 그녀가 어떻게 이곳 해천검궁 에 있단 말인가? 더욱이 아들이 구해주다니… 그녀는 해천검궁에 감금되어 있는 것인가? 아직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여튼 이때, 노인은 창 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그 아이는 결코 너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예문빈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외조부님!"
외조부! 노인은 그 말에 흠칫 몸을 떨었다. 하나 결코 눈을 돌리지는 않았다. 예문빈은 말을 이었다.
"도와 달라는 부탁은 이제 하지 않겠어요. 그러나… 제 혈도(穴道)를 이제는 그만 풀어 주세요. 우리 모자(母子)는 반드시 하고야 말겁니다."
그녀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또박 또박 강조해서 말을 이었다.
"당신의 손자인 천릉백작 표리성의 복수를…!"
오 오…!
--- 천릉백작 표리성! 표리천영의 선친(先親)인 그… 그가 그럼 해천검궁의 인물이었단 말인가?
노인, 그는 여전히 무심했다.
"그럴 수는 없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 법, 노부는 그 아이를 그냥 돌려보낼 것이니라."
그는 말을 마치고 문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한 그의 귀로 예문빈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렇다고 조부님이 지켜온 백 년의 평화가 유지될 줄 압니까? 환상천계… 그들은 반드시 혈겁을 일으킬겁니다. 또한 표리천영, 그 아이는 당신의 증손자란 사실을 명심하세…"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노인의 걸음은 모옥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한데, 그의 눈은 조금 전처럼 그렇게 무심하지 못했다.
"백 년의 은거… 하나 이젠 그 평화도 깨질지 모르겠군."
노인의 음성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핏빛 노을은… 노인의 무심한 얼굴 위에도 어김 없이 내려앉았다.
× × ×
절봉(絶峯), 깎아지른 듯한 절봉의 밑에는 조그만 동혈(洞穴)이 보였고, 그 한 옆에는 조그만 초가(草家)가 한 채 세워져 있었다. 지금, 그 초가 앞에는 한 명의 중년유생(中年儒生)이 백의(白衣)를 나부 끼며 표표히 서 있었다. 눈(眼), 무심한 듯 영롱한 그의 눈길은 저만치서 다가오고 있는 일인(一人)을 향하고 있었다. 일인(一人),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백의미서생, 그는 표리천영이었다.
중년유생은 그가 가까이 오기를 기다려 포권을 하며 입을 열었다.
"어서 오시오. 노부는 부운검자(浮雲劍子)이라 하오. 기다리고 있었소이다."
노부…? 하나, 표리천영은 마주 포권을 하며 대답했다.
"표리천영이라 하외다. 이곳이 삼관인 것 같소만…"
부운검자(浮雲劍子)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그렇소, 하나 소협께 한 가지 충고를 하고 싶소이다."
"…?"
표리천영이 의문의 시선을 던 지자, 그는 곧 입을 열었다.
"소협은 검도(劍道)를 깨달았으며 인간의 욕구를 이겨내었소. 그러나… 삼 관은 노부가 지키고 있는 육십 년 이래 단 한 사람도 통과한 예가 없었소."
육십 년…! 부운검자(浮雲劍子), 그는 표리천영의 두 눈을 직시하며 말을 이었다.
"삼관은 한 번 들어가면 돌이킬 수 없는 것이오. 또한 본궁에서도 멈 추게 할 수 없으니 곧 생사(生死)의 갈림길이라 할 수 있소이다."
일순, 표리천영은 다시 이어지려는 그의 말을 끊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소. 그러나 소생은 돌아갈 마음이 조금도 없소."
"…"
부운검자(浮雲劍子)가 잠시 표리천영을 주시하다 탄식처럼 말했다.
"그렇다면 할 수 없구려. 삼관은 천기(天機)를 헤아릴 줄 알아야 하며, 나아가 천리(天理)를 깨우쳐야만 생문(生門)을 찾을 수 있소."
"…!"
표리천영은 검미를 살짝 찌푸렸다.
(생문(生門)…? 그렇다면 이번에도 진(陣)인 가?)
이때, 부운검자(浮雲劍子)는 동혈을 가리키며 말했다.
"입구는 바로 이곳이오. 기관은 시간의 흐름에 의해서 작동되오."
(기관(機關)…?)
표리천영은 속으로 되뇌였다. 부운검자(浮雲劍子)는 말을 이었다.
"명심할 것은, 극(極)으로 운행을 시키며 상생(相生)을 밟아야 문(門)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오."
그는 말을 마치고 표리천영을 향해 정중히 포권을 했다.
"그럼 무사하기를 빌겠소."
그는 표리천영이 마주 예를 표하기도 전에 초가(草家)안으로 사라졌다. 표리천영, 그는 그의 뒷모습을 잠시 주시하다 동혈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기관이라… 결코 후회는 않으리라."
그는 동혈을 향해 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가 막 동혈 속으로 첫발을 내딛는 순간, 꽈르르… 릉! 꽈꽝! 엄청난 굉음과 함께 주위가 돌연 칠흑처럼 어두워졌다.
(입구가 닫혔 군…)
그것을 미처 깨닫기도 전에 다시, 끼기기… 미세한 음향이 그의 뒤에서 터져나왔다.
(…?)
표리천영은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에 한 줄기 광선이 비쳐졌다.
"별빛…"
조그마한 구멍, 그곳을 통해 한 줄기 별빛이 스며들고 있는 것이었다. 표리천영은 다시 시선을 돌려 전면을 주시했다. 어둠, 오직 죽음처럼 깊고 어둡기만 했다.
(아직 움직여서는 안된다. 천기(天機)… 그것을 헤아리기 전에는…)
그는 그 자리에서 정좌했다.
(천기란 무엇을 말함인가? 오직 한 줄기의 별빛만으로도 그것을 헤아릴 수 있다는 말인가?)
기다렸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서… 일 각… 이 각…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흐렀을까? 돌연, 표리천영의 눈에 경이의 기색이 가득히 떠올랐다.
"오오… 저럴 수가…?"
월광(月光),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달(月)이 떠오르고, 그 달빛이 구멍을 통해 암혈(暗穴)로 차츰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북극성… 용화성.. 토행성…"
별, 수많은 별들이 그의 눈 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단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일이다… 하늘, 그것을 이렇게 정확하게 옮겨놓을 수 있다니…"
마침내, 달(月)과 구멍이 일치되는 순간, 그의 경악은 극에 이르렀다.
"…"
그는 아예 말을 잊었다. 수 만을 능가하는 듯, 별들과 은하수까지 그대로 옮겨놓은 이 신비(神秘)에 절로 머리가 수그러들 정도였다.
"인력(人力)과 자연(自然)의 조화(造 化)… 한낱 보석들로 우주(宇宙)를 그려낼 수 있다니…"
그러나, 그는 경악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의 눈은 다시 날카로운 정기를 뿜어냈다.
"천기(天機)… 저 수많은 별들 중 에서 관연 어느 것이 생문(生門)인가?"
그의 시선은 수없이 많은 별들을 일 일이 훑고 지나갔다.
(시간이 없다! 달(月)이 지면 곧 사문(死門)이 발동되리라…)
그때 문득, 그의 눈이 반짝, 하고 이채를 띠었다. 금성(金星)이 일순 파란 광채를 내뿜는 것을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금성… 지금은 금(金)의 기운이 가장 왕성 한 때이다."
표리천영은 주저하지 않고 우수를 쳐들었다.
"금극목(金極木)… 천목성(天木星)이다!"
순간, 파앗…! 파팟--- 팍---! 한 줄기의 지풍(指風)이 천목성을 가격했다. 동시에, 우--- 우--- 우--- 웅---! 하늘은 돌연 일정한 법칙에 희해 움직이기 시작하지 않는가? 표리천영의 시선은 자리를 바꾸는 별들의 움직임을 뒤쫓기 시작했다.
"다음은 상생(相生)의 원리를 얻는 다고 하였던가?"
수 만에 이르는 별 들 중에서 정확한 별자리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지금처럼 운행하고 있는 경우는 두 말할 나위가 있으랴. 한데,
"목생화(木生火)… 화생토(火生土)… 토생금(土生金)… 금생수(金生水)…"
츄아앗…! 파팟--- 팍! 그의 우수는 화성(火星)에 이어 토행성(土行星), 금성(金星)의 순으로 옮겨졌다. 순간, 쏴--- 아--- 아---! 운행을 계속하던 천체(天體)가 돌연 아득히 먼 곳으로 밀려나갔다. 이어, 꽈르르… 릉…! 덜컹! 굉음과 함께 전면에 하나의 석로(石路)가 생겨났다. 위로 길게 이어져 있는 석로는 일정한 크기의 계단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해천검궁.. 과연 어머니의 행방을 알 수 있을까?"
표리천영, 그는 기관을 통과했다는 기쁨보다도 왠지 모를 두려움이 앞섰다. 십 년 전에 헤어진 어머니에 대한 알 수 없는 감정 때문에… 그리움! 그토록 소중한 어머니이기에, 행여 불행한 소식이라도 들을까 두려움이 앞서는 것이었다.
× × ×
"놔요! 나를 내버려 두세요. 그 아이를 만나야 해요."
예문빈은 발버둥쳤다. 하나, 혈도가 제압된 그녀는 자신을 옮기고 있는 검사(劍士)를 뿌리칠 수 없었다. 아들… 일점혈육을 만나려는 예문빈의 소망은 극에 이르렀다.
"조부님… 제발 저를 풀어주세요."
그녀는 눈물로 애걸했다. 그러나, 노인은 아예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애야… 네 가슴 속에 한(恨)이 남아있는 동안은 너를 놓아줄 수 도… 너의 모자(母子)를 만나게 할 수도 없다.)
노인의 몸은 미미한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때, 예문빈의 악에 받친 음성은 차츰 멀어지고 있었다.
"조부님… 저는 그 애를 만나야 해요! 조부님…"
노인의 눈에 얼핏 눈물이 스쳤다.
(또한… 만약 그아이가 정말로 마(魔)의 화신이라면 어쩌면 내 검으로 그를 찌르게 될지도 모르는터…)
노인은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차라리… 인연을 끊음이 옳지 않겠느냐?)
이때 였다. 한 검사(劍士)가 다가와 부복하며 입을 열었다.
"궁주님, 모시고 왔습니다."
아아…!
--- 해천검궁주(海天劍宮主)! 바로 이 노인이었단 말인가? 표리천영에 게는 증조부가 되는 이 노인이… 노인의 표정은 금시 본래의 무심함을 되찾았다.
"음, 그런가?"
시선을 돌린 노인, 해천검궁주는 이내 한 백의미서생을 볼 수 있었다. 표리천영! 바로 그였다. 표리천영의 시선도 노인의 얼굴을 주시하고 있었다.
(해천검궁… 그들의 얼굴은 한결같이 생명이 없는 것 같군.)
이때, 해천검궁주는 잠시 그를 주시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노부는 천검(天劍)이라고 하네…"
표리천영은 일순 몸을 떨었다.
(천검(天劍)…? 그렇다면 삼천황(三天皇)의 일인…)
오오…! 당금무림에는 가히 전설적인 신화(神話)가 있다.
… 환우삼천황(桓宇三天皇)!
천뇌천황(天腦天皇).
천검천황(天劍天皇).
명성천황(冥星天皇).
일신의 무공은 극에 이르렀으며, 악을 원수처럼 미워하는 정파의 우상…!
그들은 백년전(百年前)에 동시에 천하를 풍미하였으며, 어느 누구도 그들 앞에서 감히 검(劍)을 휘두르지 못했다. 일언(一言), 그들은 한마디 말로도 천하를 평정할 수 있었으며 어느 누구도 그들의 일초(一招)를 당하지 못했었다. 하나, 그들이 무림상에 모습을 보인 것은 잠시 뿐… 지금은, 어느 누구도 그들의 행방을 알지 못하는 터였다.
(한데… 해천검궁주가 바로 환우삼천황 중 일인인 천검천황이었다니…!)
표리천영, 그는 내심 경이감을 금치 못했다. 그는 정중히 포권을 하며 말했다.
"소생은 표리천영이라 합니다."
천검천황은 그에게 자리조차도 권하지 않았다.
"한데 무슨 일로 본궁을 방문하였는가…? 어쨌든 삼관을 통과하였으니 원한다면 일초(一招)의 검공(劍功)을 전수받을 수 있네."
원래, 해천검궁은 삼관을 통과한자에게 일초의 무공을 전수하는 규율이 있었던 것이다. 일초(一招)의 검학(劍學)! 그 것이라면 당장 무림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가 되리라! 하나, 표리천 영은 천검천황의 말을 귓가에 흘리며 입을 열었다.
"검공은 필요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알고 싶은 것이 있어서…"
천검천황은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대체 무엇을…? 노부가 알려줄 수 있는 것이 라면…"
표리천영은 조심스레 물었다.
"혹 이 곳으로 한 여인(女人)이 찾아오지 않았는지…"
"여인…?"
천검천황은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하고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본궁에는 단 한 사람의 여인도 없네."
표리천영은 암울한 표정을 떠올렸다. 단 한가닥의 기대마저도 물거품이 되려는 순간이었다.
"혹 그녀에 대한 소문이라도… 그분의 이름은 예문빈…"
일순, 천검천황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저었다.
"노부는 물론, 본궁의 검사들도 지 난 백년 동안 이곳을 나간 적이 없네. 그러니 속세의 일일랑 묻지 말게."
"…"
표리천영은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머니…)
천검천황은 그러한 표리천영을 힐끗 주시한 후 검사에게 말했다.
"환검(幻劍), 소협을 안내하라."
이어,
"소협, 그럼 노부는 이만 실례하겠네."
천검천황은 신형을 돌려 사라져 갔다. 환검! 각진 얼굴의 중년사내였다. 그는 천검천황이 사라지기를 기다려 표리천영을 향해 입을 열었다.
"소협께서는 일초의 무공을 배울 자격이 있으며 이곳에서 하루를 묵으실 수 있소."
표리천영의 귀에는 그 말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가있는 먼 동녘에 희뿌연 햇살이 번지기 시작했다. 해가 뜨려는가? 차가운 햇살이 어둠을 갈가리 찢어 버리는데… 밤새, 나는 대체 무엇을 찾아 헤매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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