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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 30년 전쟁은 필연이었는가? (1)
mr.snow 추천 1 조회 604 18.10.24 20:15 댓글 1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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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8.10.24 21:03

    첫댓글 오 재밌네요 ㅎㅎ한국쪽에는 번역이 잘 안되어 있는 분야라서 더욱 관심이 갑니다.

  • 작성자 18.10.24 21:41

    감사합니다

  • 18.10.24 21:24

    국내에선 30년전쟁쪽은 책보단 학생님 연재글의 영향이 강한데 여기서도 신교도 동맹은 율리히 계승분쟁으로 유명무실해졌다고 하더군요. 상호간 긴장은 어느정도 있었지만. 다만 연재글은 보헤미아쪽을 더 중시하는 감이 있던데 루돌프2세가 여러모로 실정을 거듭하다가 동생이 봉기하자 보헤미아 신교 귀족들이 황제에게 뻗대다 상당한 수준의 자유약속을 얻어냈는데 마티아스 이후의 후계자 페르디난트가 개신교 박해로 악명이 높고 하필 대리인들 중에 악명높은 강경파가 있었고 거기다 약속에서 미처 규정 안 된 교회령내 신교교회 문제로 분쟁이 생기자 강경한 신교도 귀족들이 투척사건을 일으킨거라 서술되어있는데 이거랑

  • 18.10.24 21:38

    최신 연구가 연관이 있나요?

  • 작성자 18.10.24 21:45

    @롱기누스 보헤미아의 투척 사건은 제국 정부 고위직을 개신교 신자에게 개방하는 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가장 직접적인 관련이 있습니다. 예전 서술들은 당시의 행정문서와 당대 기록들보다는 조금 뒤의 연대기에 더 많이 의존하는 문제와, 영미권 역사서술의 오랜 반가톨릭주의 전통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30년 전쟁과 관련해서 가장 최신의 논의는 피터 윌슨 선생의 2009년 저작 Europe's Tragedy이니 참고하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 18.10.24 21:49

    @mr.snow 그럼 종교 포함 모든 면에서 삽질을 거듭하는 루돌프 2세에게 빡친 보헤미아 귀족들이 마티아스의 반란으로 위기에 빠지고 도주해온 황제를 위협해서 받아냈던 보헤미아 왕국 내 종교 자유 및 보헤미아 귀족들의 권리 증진 약속 문제는 의외로 30년전쟁과는 연관이 없다는 거라고 봐도 되나요?

  • 작성자 18.10.24 22:16

    @롱기누스 보헤미아의 상황이 30년 전쟁의 직접적 기원인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문제는 단순히 누가 실정을 하고 삽질을 하고 탄압을 해서 그렇게 되었다는 내러티브가 상황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킨다는 점입니다. 루돌프든 마티아스든 기본적으로 중재를 중시하는 온건파에 속한 사람이고, 가톨릭과 개신교 강경파들에게 욕을 먹어가면서도 온건파 진영 내에서 지지를 받으며 상태를 유지해나갔습니다. 페르디난트 본인도 강경한 이미지와 달리 얼마든지 프로테스탄트 쪽과 타협할 의지가 있었고요.

  • 작성자 18.10.24 22:17

    @롱기누스 프라하의 투척 사건을 주도한 소수 강경파 개신교 귀족들은 페르디난트의 약속을 믿을 수 없다면서 보다 실질적인 보장을 요구하며 대립한 것인데, 그리 광범위한 지지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광범위한 지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투척 사건이라는 초강수를 쓴것이기도 합니다.

  • 18.10.25 17:19

    제가 아는 바로는 1차 대전과 같은 위기관리의 문제로 보이는데..(특히 왕되겠다고 나서버린 가을왕님의 뻘짓...ㅡㅡ;)

  • 18.10.25 20:26

    엥 사소한 거긴 한데 팔츠 그 양반은 겨울 왕 아니었나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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