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 말씀(2025.10. 12) 말씀/ 창세기 1:28
삶의 주체자로 살라 "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 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추석 연휴 잘 보냈습니까? 저도 지난 주 서울에서 엘리와 사위가 내려와서 루디아 기족들과 함께 식사도 하고, 연휴기간에는 사모와 누가와 함께 즐건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명절을 보내면서 1년에 한두 차례지만 이런 특별한 날을 정해서 가족들을 만나고 선물도 교환하며 정을 나눈다는 것이 참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날이 없다면 그냥 쉼 없이 분주하게 살아갈 수도 있을 텐데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특별한 날이 동물들에게는 없고 사람에게만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가요? 인간에게는 단지 생존이 아니라 삶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근본 차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삶도 어떤 삶인가에 따라서 질적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하니다. 삶의 주체자로 사는가 종속자로 사는가입니다. 삶의 주체자로 살라! 이것이 오늘 오늘 다루고자 하는 말씀 주제입니다. 내 인생의 전체 주인은 누구입니까? 당연히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내 삶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나 자신입니다. 내 삶을 내가 이끌어가지 않으면 누가 나를 이끌겠습니까? 남이 끌어간다면 그것은 그냥 종이나 로봇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도하는 삶과 끌려가는 삶은 우리는 분명히 구분해야 합니다. 넘어져도 돌 하나 쥐고 일어서라는 말이 있습니다. 넘어지고 일어서는 것도 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공부도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것입니다. 책도 누가 읽으라고 해서가 아니라 내가 읽는 것입니다. 인적이 드문 섬에 들어가 여행하는 것도 나이고, 악기를 하나 배워 연주하는 것도 나 자신입니다. 어느 회사에 들어가 일할 것인가 결정하는 것도 나입니다. 무엇을 하는 것도 나이고 그만두는 것도 나입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도 나입니다. 큐티하는 것도 내가 하는 것입니다. 시켜서 하는 것은 내 일이 아닙니다. 그런 모든 삶의 모습이 주체자의 모습입니다. 그러니 내 삶을 멋있고 아름답게 꾸며가는 것도 나에게 달려있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비록 억울하게 누군가에게 맞거나 죽임을 당하는 순간이 와도 죽음 앞에서 조차도 주인 된 자의 자리를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믿는 것도 내가 믿는 것이지 누가 강요해서 억지로 믿을 수는 없습니다. 주님이 나를 따르라고 하셨어도 따르는 것은 나 자신입니다. 설령 주의 종이 되어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해 바치고 순종한다 해도 그 소명을 받아들이고 택하는 것은 나 자신입니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합니까? 주체자가 되어 삶을 능동적으로 살아갈 때 비로소 제대로 살 수 있고, 존재의미를 느끼고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체자가 될 때 모든 삶에 긍정적 에너지가 솟아나고, 끝없는 창조의 세계가 열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셉의 삶을 보십시오. 모세도 다니엘도 바울도 그들의 삶을 보면 참 은혜롭습니다. 노예가 되든 쫓기는 신세가 되든 옥에 갇혔든 이들은 삶의 주도권을 내놓은 적이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든지 기도하고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면서 역사를 창조해냈습니다. 요셉이 형들에 의해서 애굽 상인에게 팔려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가 되어야 했지만 그는 형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삶의 주체자가 되어 열심히 일했습니다. 보디발의 인정을 받아 가정 총무까지 되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아 노예 신분이지만 분명히 거절하고 무고하게 옥에 갇힙니다. 그러나 거기서도 사람을 원망하거나 하나님을 불신하지 않았습니다. 옥중에서도 성실하게 죄수들을 섬겼습니다. 간수가 요셉을 신뢰하여 제반 일을 그에게 맡기게 되고, 거기서 그는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굽는 관정원장을 만납니다. 최선을 다해서 섬기며 그들의 근심 어린 얼굴까지 잃고 내면의 고민을 상담해줍니다. 그 중에 술 맡은 관원장이 복귀하게 되어 요셉이는 억울한 옥살이에서 풀여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지만 술맡은 관원장은 요셉을 잊어버립니다. 또 다시 그는 운명에 잡힙니다. 그러나 자포자기 하지 않았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옥살이를 합니다. 오랜 후에 바로가 꿈을 꾸게 번민 할 때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을 바로 왕에게 고합니다. 즉시로 그는 옥에서 나와 바로의 꿈을 해몽해주고 그 문제의 해결책까지 자세히 제시합니다. 바로는 요셉의 모든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습니다. 그와 같이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없음을 알고 그를 애굽의 제 2인자의 자리에 앉히고 모든 일을 위임 합니다. 온 세계가 7년 대 풍년이 될 때 곡식을 저장하고, 그 다음 7년 대 흉년의 때를 준비해서 세상을 구원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는데 귀하게 쓰임받게 됩니다. 그를 애굽 상인에게 팔았던 형들도 총리 앞에 와서 절을 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 꿈이 마침내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요셉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삶의 주체 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어릴 때부터 채색을 옷을 입고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지만 형들에 의해서 막내둥이로 힘이 없었습니다. 형들이 잡으면 잡혀야 했고, 죽이려 하면 죽어야 했고, 노예로 팔아버리면 노예가 되어야 했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도 그가 할 수 있는 힘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죽도록 일을 하는 것이 그의 의무였고, 누명을 쒸우며 써야 했습니다. 그는 현실의 조건과 인간적인 조건을 보면 삶의 주체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가짐은 자신의 삶에 대해서 언제나 주체자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주인이 시켜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일했습니다. 옥에 갇혀서도 자발적으로 죄수들을 섬겼습니다. 간수의 눈에 띄었습니다. 그의 몸은 노예의 신분에 매이고 옥에 갇히는 수모를 당했지만 그 자신은 어떤 운명에도 매이지 않았습니다. 삶의 주인으로 살았습니다. 운명을 딛고 일어서서 마침내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결국은 온 세상도 자신을 팔아버린 형들도 그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젠가 한 청년의 요강 닦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가난한 한 청년이 남의 부자집 머슴노릇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처지를 부끄러워 하지도 비관하지도 않고 작은 것부터 성실하게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작은 일이 주인의 요강을 깨끗이 닦는 일이었습니다. 청년은 매일같이 아침 일찍 일어나 자발적으로 시키지 않은 일 주인의 요강을 깨끗이 닦았습니다. 모든 일을 억지가 아닌 성실하게 감당하는 이 청년의 자세를 지켜 본 주인은 그가 보통 청년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머슴살이하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하여 학자금을 대어 주며 평양에 있는 숭실학교에 보내 공부를 시켰습니다. 마침내 청년은 숭실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오산학교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 분이 민족주의자요. 독립운동가인 그 유명한 조만식 선생님이십니다. 그는 항상 제자들에게 인생의 성공비결을 물을 때마다 이렇게 일러주었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사회에 나가거든 요강을 닦는 사람이 되십시오" 섬기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섬기는 것은 자발적인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주인 된 삶의 모습입니다. 세상에 나가 주인 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게 성공의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주와 그리스도로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섬기시기 위해서입니다. 섬김은 주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덕입니다. 종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섬긴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시키는 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섬기는 것은 주인만이 하는 것입니다. 삶의 주체자로 사는 사람들의 특징이 바로 이렇습니다. 누가 시켜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환경을 탓하거나 사람에게 불평하거나 운명을 비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처지에 처하든 스스로가 자원하여 주인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 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고전 9:19-23) 그는 스스로 종이 되었지만 종이 아닌 자유자였습니다. 스스로 율법 아래 있는 자처럼, 스스로 약한 자처럼 행동했습니다.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얻고자 종이 된 것입니다. 종이 되었지만 사실은 그 삶의 주체자였습니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여러분 세상 멋지게 살고싶습니까? 다른 것 없습니다. 가난하던 미약하던 종의 신분이든 주인의 신분이든 주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세상에 나가서 믿음 좋은 사람인 것처럼 행동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다고 큰 소리치지 마세요. 나도 약하고 나도 가난하고 부족한 사람임을 인정하고 고백하세요. 하지만 실제 삶은 섬기고 리드하는 주인으로서의 삶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은 감동을 받습니다. 그게 멋진 삶입니다. 없어도 있는 것같이, 가난한데 부자처럼 존재가 부요한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반면 우리가 삶의 주도권을 놓아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때부터 나는 왜? 원망이 시작됩니다. 남을 탓하게 됩니다. 이기적이 됩니다. 하나님 원망하고 사람들을 원망합니다. 자신의 삶을 비관하고 남을 의존하게 돕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 경쟁하며 피곤한 삶이 시작됩니다. 큰 자 앞에 비굴하게 되고, 쪼그라 들고, 의욕도 없어지고, 삶의 권태가 따르고 무슨 일을 해도 쉽게 싫증나고, 재미가 없습니다. 끌려가는 삶이 그렇습니다. 삶은 무력해지고 게을러지고, 비굴해집니다. 누가 시키는 일은 무엇을 해도 힘듭니다. 그러나 내가 스스로 알아서 하는 일은 무엇인가 해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할 수 있습니다. 설거지 청소도 누가 시키면 짜증이 나는데 스스로 하면 땀 흘려 수고해도 즐겁습니다. 공부도 스스로 해야 재미있고 효과가 있는데 누가 하라하면 하다가도 싫어집니다. 인문 고전 책 읽는 것도 유익하지만 숙제로 한다면 재미없을 것입니다. 신학교 다닐 때 감동도 없는 주제로 논문 쓰려하니 재미 하나 없고 힘들어서 안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스스로 책을 선정하고 읽고 묵상하고 글을 쓰면 재미있습니다. 누가시키지 않아도 몇시간이고 집중하여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지난번 몇 분들과 병풍도 맨드라미 축제에 다녀와서도 피곤한줄 모르고 글을 써서 사진과 올려서 많은 분들이 좋은 반응을 보냈습니다. 내가 스스로 하면 그렇습니다. 지금 어느새 70이 넘었지만 책에 대한 열망은 식지 않습니다. 학창 시절 학교 공부 특히 음악 공부 별로 안 좋아했는데 스스로 하는 인생 공부는 재미있습니다. 음악을 잘 모르지만 색소폰도 15년나 하였습니다. 내가 자원해서 연구하고 배우면 조금씩 성장하는 기쁨도 있고 끊임없이 할 수 있습니다. 시를 못 쓰는 사람이 시도 어려편 썼는데 사람들이 감동을 받습니다. 이렇게 삶의 주체자로 살아가면 하루를 살아도 창의적인 인생이 되고 즐겁고 행복합니다. 더 근본적인 것은 왜 우리가 주체적으로 살아야 하는지 성서적 근거입니다. 하나님이 인생을 그렇게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8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 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28)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다스림받는 존재가 아니라 다스리는 존재도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근본 창조의 주인은 하나님이시지만 인간 역시 피동적 종으로 만드시지 않고 주체적인 존재로 만드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복하고 다스리라! 하늘과 땅과 바다 등 자연만이겠습니까? 예수님은 그러므로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근본 누구나 남의 밑에 들어가 일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2인자도 힘들고 3인자도 힘들어한다. 본질상 지배자로 주인의 DNA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실제로 남의 밑에 들어가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거의 다 일것입니다. 그렇지만 두 종류입니다. 하나는 비굴하게 남의 덕을 보려고 자존심 버리고 남의 밑에 있는 주체성을 잃어버리고 사는 읽사람이고, 또 하나는 외형적으로는 남의 밑에 있지만 실제로 주인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오히려 두 번째 남의 밑에서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진짜 주인으로 살라시는 것입니다. 바울처럼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해서 더 큰 덕과 도량으로 주체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종의 신분이라도 삶은 주체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아무것 없어도 스스로 부를 누리고, 가난해도 많은 사람을 부요케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스스로 낮은 자리에 앉아서 모든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게 진짜 주인입니다. 예수님은 보잘것 없는 육신의 몸으로 오셔서 죄인들을 섬기셨습니다. 허물과 죄를 담당하시고 종처럼 사시다가 죽기까지 하나님 앞에 복종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예수를 만유의 주로 높이셨습니다. 여러분들도 육신으로 사는 날 동안 세상을 섬기는 종처럼 그러나 주체자로 산다면 마침내 높임을 받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도 예수님처럼 삶의 주체자로 사는 자들 되기를 기도합니다. 수동적으로 인생을 살지 않고 내 삶의 주체자로서 능동적으로 삶을 리드해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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