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에 살고 있는 자영업자 이모(53)씨는 지난 달 중순 모 부동산컨설팅 업체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경기도 용인지역에 있는 땅이 싸게 나왔는데 개발 예정지 인근이어서 투자가치가 높으니 한번 상담을 받으라는 내용이었다.
이 컨설팅업체 직원은 이씨에게 “회사가 보유한 토지가 용인 시가화 예정용지(개발 예정지) 부근이어서 곧 개발될 것”이라며 “개발 계획이 확정되기 이전에 매입해야 최고의 수익을 낼 수 있다”고 투자를 재촉했다.
이씨는 고민 끝에 개발예정지 인근이면 같이 개발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용인 모현면 일대 토지 1000㎡를 사기로 하고 이달 초 계약금을 지불했다. 하지만 최근 현장을 방문하고 나서야 ‘쪽박’을 차게 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계약금까지 내고 매입하려는 토지는 기획부동산이 1만㎡의 토지를 쪼갠 것으로 토지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데다 주변에 도로·수도시설이 없어 집이나 다른 건물을 지을 수 없는 일명 ‘맹지’였던 것이다.
경기도 용인시 등 수도권 주요 지역을 중심으로 토지거래 텔레마케터인 속칭 ‘기획부동산’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들 기획부동산의 주요 투자 권유 대상지는 용인·남양주시 등 최근 도시기본계획을 수립한 지역들이다. 기획부동산은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새 정부의 한반도 대운하 건설 예정지를 중심으로 ‘영업’ 활동을 벌였으나 투자 수요가 갈수록 줄고 국세청과 지방자치단체의 단속도 심해 활동 무대를 수도권 주요 지역의 개발 예정지 인근 지역으로 옮긴 것이다.
투자자 현혹 수법 갈수록 지능화
기획부동산이란 대규모의 부동산, 특히 토지를 계약금 10% 정도만 주고 토지주와 토지 위탁매매 계약을 체결하고 이를 적당한 크기로 단독 또는 공유분할한 뒤 텔레마케터와 같은 조직적인 판매망을 통해 판매하는 일종의 피라미드식 판매조직을 말한다. 이러한 판매과정에서 정보가 취약한 일반인들에게 감언이설과 확정되지도 않는 개발계획을 동원해 시세보다 몇 십 배나 높은 가격으로 매매한 뒤 사라지는 독특한 조직이다.
기획부동산의 영업력은 갈수록 정교화하고 있다. 이들은 “지금 1억원을 투자하면 사업이 본격화될 때 3억원 이상 벌 수 있다”고 유혹한다. 구체적인 지명을 거론하며 ‘인근에 복합단지 조성 예정’이라는 그럴 듯한 개발계획을 제시하는 곳도 있다.
요즘에는 시가화예정용지를 앞세워 “개발호재로 향후 지가 상승이 예상된다”며 지역 신문 광고이나 인터넷을 통해 투자자들을 끌어 모으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시가화예정용지란 개발이 안되는 녹지지역 등을 주거·공업·상업지역 등으로 개발하기에 앞서 도시기본계획상에 개발 예정지로 지정된 땅을 말한다.
물론 시가화예정지도 기획부동산이 땅을 사거나 이를 쪼개 되팔 수 있다. 다만 보전산지로 지정된 곳은 쪼개 팔 수 없다. 그런데 기획부동산이 시가화예정용지보다 주변 지역을 ‘작업’ 대상으로 삼는 이유는 뭘까? 시가화예정지는 개발 때 공시지가 수준에 가까운 감정평가금액으로 수용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투자 매력이 생각만큼 크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기획부동산은 수용 염려도 없고 개발예정지 인근이어서 개발 바람도 함께 탈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지는 시가화예정지 주변 지역을 영업 타깃을 삼는다.
기획부동산은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한 심리전도 병행하고 있다. “현재 OO 일대 땅값이 개발 기대감에 평당(3.3㎡) 200만원이지만 우리는 평당 70만원에 팔고 있다”며 상대적으로 가격이 싸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한다. 심지어 시가화 예정지 주변 땅 투자는 오히려 철저한 사전 조사 없이 매입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조언(?)까지 해준다.
정식으로 사도 권리행사 어려워
실제 용인시 모현면 갈담리 산XX 번지의 임야 2만5289㎡는 현재 지역 언론지에 “시가화예정지 인근 특급 토지분양”, “개발호재 예상지”라는 광고 문구로 투자자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이미 작년 말부터 분양이 시작돼 공유지분 형태로 여러 명의 등기가 완료됐다고 한다. 또 용인시 포곡읍 금어리 일대 임야도 이 같은 방식으로 분양이 되고 있다. 이들 기획부동산은 “분양 필지는 이미 133만1000㎡ 저밀도 전원형문화복합도시 예정지”라며 투자자들을 현혹하고 있다.
하지만 용인시 관계자는 “현재 모현면과 금어리 등지에서는 전원주택단지 개발과 관련한 어떠한 신청이나 허가도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시가화예정용지 주변 개발은 요원하다. 시가화예정용지에 포함되도 개발이 쉽지 않은 판에 주변 개발에 대해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건교부의 최종 승인을 받은 도시기본계획상 시가화예정지라도 개발 추진 과정에서 취소되거나 축소될 가능성 있다. 개발 계획 수립 과정에서 특정 지역이 주거지역 등으로 개발하는 게 적당하지 않다고 판단될 경우 개발 계획 수립 주체인 지방자치단체는 해당 지역을 개발 예정지에서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군 등 지자체의 중장기 개발계획을 담은 도시기본계획은 20년 단위로 수립되는데, 지방자치단체장은 필요하면 5년마다 이를 변경할 수 있다.
시가화예정용지 주변은 여전히 개발규제를 받기 때문에 개발될 가능성이 아주 낮다고 볼 수 있다.
또 기획부동산이 분양하는 토지는 대부분 활용도가 낮은 땅이거나 공유지분 형태로 쪼개진 것들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러한 광고 문구만보고 투자했다간 낭패를 보기 쉽다”고 조언한다. 공유지분 형태로 쪼개 파는 땅을 매입할 경우 나중에 분할이 안돼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엔 기획부동산업자들이 ‘독립등기’ 방식으로 땅을 매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사기 소지가 명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확한 지점이 표시돼 있어 소유권은 인정받을 수 있지만 도로 등의 토목공사가 전혀 돼 있지 않아 땅의 활용가치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도로를 내고자 할 경우 인접지역의 땅을 사들인 소유주를 만나 공동으로 도로를 내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는 합의가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투자한 땅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대처 방안은?
부동산전문가들은 전화를 통해 부동산 매입을 권유하는 행태는 기획부동산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일단 의심해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개발 기대감에 섣부른 투자에 나설 경우 낭패를 볼 수 있으니 시가화 예정지 주변이라도 철저한 사전 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땅 사기분양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한 필지의 땅을 여러 사람이 같이 소유하는 공유 지분 형태로 쪼개 파는 곳은 가급적 분양받지 않는 게 좋다. 업체가 내세우는 개발계획만 믿지 말고 현장을 방문하거나, 지방자치단체에 문의하는 등 이를 반드시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인의 투자 권유도 사실 확인 없이 투자했을 경우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특급 비밀이라는 정보도 허황된 정보일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지 부동산중개업소에 들러 자세하게 상담을 받은 뒤 현장 실사를 거쳐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때문에 신빙성있는 전문가와 함께 토지 이용 인허가 여부를 확인한 후 독립된 전ㆍ답ㆍ임야 형태로 된 것을 구입하는 것이 좋다. 기획부동산업자들은 매매 후 사후관리를 하지 않기 때문에 매도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토지와 같은 비환금성 종목에 투자해 대박을 꿈꾸는 마음부터 고칠 필요가 있다. 토지 투자는 10년을 보고하는 장기투자다. 확실한 개발 호재나 확정된 개발 사업의 진척도를 봐가며 투자해도 늦지 않은 것이다. 또 본인이 직접 발급받은 토지문서나 등기부등본을 기초로 해당 지자체 담당자에게 직접문의 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자료원:중앙일보 2008. 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