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길도 많다. 올레길, 둘레길, 외씨버선길 등 그 지역의 문화를 표상하듯 아름답고 상징성이 담긴 옛길들이 복원되어 꾸미고 가꾸고 힐링의 방편으로 활용되고 있다. 안동에도 퇴계 선생께서 즐기셨던 예던길이 있고, 안동의 유교문화를 상징하는 유교문화길과 하회마을과 병산을 잇는 선비길도 있으며, 경상북도청 신도시 둘레길도 있다. 유교문화길은 다양한 삶들이 서려 있는 길이다. 글 읽는 선비의 이야기와 어려운 세상을 현명하게 살았던 어머니의 이야기가 있고, 추운 겨울 편찮으신 부모님을 위해 잉어를 구해온 효자의 이야기가 있으며, 위기의 나라를 구했던 선조들의 이야기와 의좋은 형제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재미있는 산신령의 이야기와 도깨비 전설을 듣고 또 보태며 걸었던 나그네 이야기가 있는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유교문화길은 안동을 가장 안동답게 느낄 수 있는 길이다. 낙동강을 따라 펼쳐져 있는 안동의 정자 이야기 이번 호는 어버이에 대한 효심과 보본의 정신이 서려 있는 삼구정(三龜亭,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13호)을 찾아 유교문화길을 걷는다.
소산리 동오에 자리 잡은 ‘삼구정’
당일에 모형(牡荊) 꽃나무가 가득 피었을 때 색동옷과 오리신발 모두 기뻐하였지 세월 흘러 망아지가 처량한 바람 부는 나무 지나니 옛 물건에 신이 도와 돌거북 생겨났네 하늘은 들의 빛 말아 올려 아득한 곳으로 돌아가고 산은 구름 그림자 가르고 잔물결로 빠져드네
기이한 경치 보기 좋아하여 잔치 자리 베푸니 훈지(塤篪)를 형제가 부는 것 기록해야 하리. |
삼구정에서 바라보는 풍산들과 그 너머에 우뚝한 학가산의 자태는 과히 압권이다.
『이락정집(二樂亭集)』에 실린 신용개(申用漑)의 삼구정김씨안동별서(三龜亭金氏安東別墅)이다. 시의 첫 행에 모형 꽃나무가 만개했다는 것은 형제가 함께 유명해짐을 비유하는 말로써 삼구정을 지은 지례현감 김영전과 동생 영추, 영수를 이르는 말이고, 색동옷과 오리신발 모두 기뻐했다는 것은 ‘후한 현종 때 왕교(王喬)가 엽현(葉縣)의 현령이 되었을 때 매월 초하루와 보름이면 서울을 오가며 먼 길을 왕래했는데 수레가 없었다. 올 때는 항상 두 마리 오리가 날아오는 것을 보고 현종이 이상하게 여겨 태사 하망지(何望之)에게 명하여 그물을 쳐서 잡아보니, 신발 한 짝만 있었다는 고사이다. 주로 신선의 신발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지방관을 지칭한다.’ 세월이 지나 망아지가 처량한 바람 부는 나무를 지난다는 것은 ‘망아지는 현자(賢者)가 타고 다니는 것으로 망아지를 타고 떠나는 것은 지방관이 떠나는 것을 이른다. 여기서는 아들이 지방관의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것을 가리킨다.’
옛 물건에 신이 도와 돌거북이 생기고, 하늘은 풍산들의 맑은 빛을 말아 올려 아득한 곳으로 돌아가고, 산은 구름 그림자 가르고 잔물결로 빠져드네. 노모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자식의 애틋한 마음과 기이한 경치 보기 좋아하여 잔치 베푸니, 형은 질나팔(塤)을 불고 아우는 이에 화답하여 지(篪)를 분다는 뜻으로 형제가 화목함을 칭송하고 있다.
안동지방의 정자는 대부분 방을 가지고 있지만 삼구정은 사방을 활짝 열어 주변 경관이 시원하게 시야에 가득 찬다.
봄이면 새싹이 무성하고, 가을이면 누런 벼가 구름처럼 일렁이는 곳~
풍산읍 소재지에서 하회마을 쪽으로 방향을 잡아 지방도로 접어들면 안동한지를 지나 급하게 꺾인 다리를 지나면 만나는 마을이 풍산읍 소산리이고, 정자는 이 마을 입구에 자리 잡고 있다. 삼구정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더할 나위 없이 여유롭다. 멀리 북으로는 학가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동·서·남쪽으로는 풍산들이 시야에 가득 찬다. 남쪽으로는 낙동강의 지류가 언뜻언뜻 보이고, 그 뒤로 하회의 주산인 화산이 꽃봉오리를 감싼 듯 우뚝하다.
허백당(虛白堂) 성현(成俔: 1439∼1504)이 지은 삼구정기에는 “이 정자는 '동오'라는 봉우리 위에 걸터앉아 있으며, 동쪽과 서쪽·남쪽이 모두 큰 들이고 그 지세가 시원하게 트여서 조망이 끝이 없는 곳에 자리 잡았다.”고 적고 있다. 이어 “정자의 남쪽에는 곡강이라 불리는 큰 내가 있는데, 낙동강이다. 마라(馬螺)라는 못이 있고, 그 못 위에 절벽이 힘차게 솟았는데 높이가 만 길은 될 것이다. 강 위에는 수풀이 잇달아 10리쯤 뻗치었다. 정자의 북쪽에도 산이 있는데 학가산(鶴駕山)이다. 두 냇물이 이 산으로부터 나와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가며, 두 물이 합쳐지는 곳이 병담(屛潭) 또는 화천(花川)이라고 한다. 그 산의 봉우리에는 석벽이 있는데 천 길이 넘어 병벽(屛壁)이다. 쌍계의 북쪽에는 기묘한 바위가 있는데 붕암(鵬巖)이라 하고, 시내 양쪽에는 밤나무 천여 그루가 겹겹이 푸르게 늘어서고, 정자 아래 논밭은 봄이면 새싹이 무성하고, 가을이면 누렇게 익은 벼가 구름처럼 일렁이니 참으로 기이할 만큼 좋은 땅이로다!”라고 감탄하며 삼구정 주변의 풍광을 적고 있다.
또, "좋은 때와 길(吉)한 날이면 어머니를 모시고 정자에 올라 노래자(老萊子)처럼 어머니를 모신다. 뜰에는 자손들이 가득하고, 어머니는 마냥 즐거워하신다. 그 즐거움을 어찌 이루 다 기록할 수 있겠는가. 대체로 세상 사람은 그 살 곳이 있다고 해도 좋은 경치 얻기는 어려우며, 좋은 경치를 얻었다 하더라도 그 즐거움을 얻지 못하는 일이 많다. 그런데 지금 김씨 집안은 좋은 땅을 얻고, 어진 사람을 얻고, 어버이는 수를 누려 온갖 아름다움을 갖추었으니, 이 어찌 선(善)을 쌓고, 경사(慶事)를 기른 소치가 아니겠는가. 거북만큼 오래 사는 것이 없고, 돌만큼 단단한 것이 없으니, 자식으로 어버이의 장수를 바라는데 거북처럼 오래 살고, 돌처럼 변함없이 건강하기를 바라는 것은 누구나 바라는 바이다." 라고 어버이 섬기기를 자손 대대로 지금처럼 하면 마땅히 청사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길 것이라 하였다.
노모께서 거북처럼 장수하고 돌처럼 견고하게 지내실 것을 바라는 뜻에서 당호를 삼구정이라 했다.
건축 배경과 특징
안동김씨(安東金氏) 소산(素山) 입향조(入鄕祖)인 김혁(金革)의 증손으로 사헌부 장령을 지낸 김영수(金永銖, 1446∼1502)와 김영전(金永銓, 1439∼1522), 김영추(金永錘, 1443∼?)가 88세 되는 노모 예천권씨(醴泉權氏)를 즐겁게 해드리고자 지었다.
정자는 동오라 부르는 언덕의 머리에 앉았는데 동·서·남의 세 방향은 풍산들이라 조망이 시원하게 틔어 있으며, 남쪽에는 곡강이라 하는 낙동강의 지류가 흐르고 있어 절경에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다.
정자의 토석담 밖에는 노거수가 몇 그루 둘러 있어서 더욱 운치를 돋우고 있다. 당호는 이곳에 거북이 모양의 돌이 3개가 있어 붙인 것으로 거북이는 십장생 중의 하나이므로 어머니가 거북이처럼 오래 살도록 기원하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조선 초기 정자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마을 입구에서 멀찍이 바라보면 마을 쪽에서 삼구정 쪽으로 나지막한 언덕이 이어지고 있으며, 그 끝자리에 우뚝하니 삼구정이 서 있는 형세이다. 마을 쪽으로부터 이어오는 언덕을 동오(東吳)라 부른다. 서쪽 담에 있는 일각문을 들어서면 우선 탁 트여 있는 정자의 너른 모습이 보인다. 대문과 정자 사이의 좁은 마당에는 마당을 비집고 큰 돌 세 개가 놓여 있다.
삼구정 편액의 명칭과 의미는 이곳에 거북 모양의 고인돌 3개가 있어 붙여진 것으로, 노모께서 거북처럼 장수하고 돌처럼 견고하게 지내실 것을 바라는 뜻이 내재해 있다. 삼구정 기문에 의하면, 형제들이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가까운 고을 수령으로 부임해 왔을 뿐만 아니라, 이 정자를 지어 좋은 날 좋은 때 조석으로 가마에 태워 모시고 올라가, 그 옛날 효자로 이름난 노래자(老萊子)처럼 색동옷을 입고 재롱을 피워 노모를 즐겁게 해드린 광경이 잘 묘사되어 있다.
삼구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크기로 4면을 모두 개방하여 주변 경관을 조망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정자 마루는 우물마루로 깔았고, 공포는 초익공양식(初翼工樣式)에 5량 가구의 팔작집이다.
삼구정을 돌아 나오며 삼구정기를 지은 허백당 선생의 마음을 읽는다.
‘나 같은 사람도 미천한 곳에 고향이 있긴 하지만 명리의 굴레에 매여 물러나 돌아갈 수가 없고, 또한 부모님과 이미 멀어져 모두 돌아가셨다. 비록 진수성찬이 준비되어 있어 자로(子路)가 부모님을 봉양하기 위해 쌀을 지고 천 리 밖까지 가려 했던 마음처럼 나도 부모님을 봉양하고 싶지만, 끝내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러니 김씨 집안의 착한 자손들이 어머니를 봉양하고 즐겁게 해드리는 모습이 너무 부럽기만 하다.’고 한 선생의 마음이 이심전심이 되어 다가온다.
몇 해 전 지리산 자락의 호젓한 암자인 국사암을 찾았을 때 읽었던 월호스님의 책 『언젠가 이 세상에 없을 당신을 사랑합니다』의 한 대목을 떠 올리며 이번 답사를 접는다.
어디론가 영원히 먼 길을 떠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 길에 오직 한 사람만 동행할 수 있다면, 그 길을 누구와 함께 떠날 것인가요?
이렇게 소중한 사람에게 나는 정말 소중한 만큼 잘 대해주고 있는가요?
그만큼 나의 시간과 정성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요?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건 없는지요? 멀리 있는 인연에게
한눈팔려 정작 가장 가까운 인연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지금 당신이 있는 이곳의 인연을 소중히 하십시오.
당신 가까이에서 따뜻한 체온으로 당신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이들을 말입니다.
그들이야말로 당신이 넘어져 울고 있을 때 손을 내밀어 줄 사람들이며, 당신의 심장이 차갑게 식어갈 때 온기를 넣어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