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이 발췌한 <역사란 무엇인가>의 중요 대목
오늘날의 모든 언론인들은 여론을 움직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적절한 사실을 선택하고 배열하는데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흔히 ‘사실’은 스스로가 마라한다고들 한다. 이것은 물론 진실이 아니다. ‘사실’이라는 것은 역사가가 불러줄 때만 말을 한다. 어떤 ‘사실’에게 발언권을 줄 것인가, 또 어떤 순서(order)로 어떤 맥락(context)에서 말하도록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역사가인 것이다. ‘사실’이라는 것은 자루와 같다. 그 속에 무엇인가를 넣어주지 않으면 사실은 일어서진 않는다. 14쪽
역사가는 임시로 선택한 사실들과 그러한 사실들을 선택하도록 한 해석, 그것이 타인의 것이든 자기의 것이든,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작업을 시작한다. 그가 작업하는 동안 사실에 대한 해석과 사실의 선택 및 정리는 다같이 쌍방 간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미묘한 또 거의 반무의식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역사가는 현재의 일부이고 사실은 과거에 속하기 때문에, 이 상호작용은 현재와 과거 사이의 상호 관계를 아울러 내포하고 있다. 역사가와 역사의 사실은 서로에게 필요하다. 사실을 갖지 못한 역사가는 뿌리 없는 허망한 존재다. 역사가가 없는 사실은 생명 없는 무의미한 존재다. 그러므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나의 첫 번째 대답은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작용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끝없는 대화”라는 것이다. 42~43쪽
역사가와 그가 선택한 사실의 상호작용은 추상적이고 고립된 개인들 사이의 대화가 아니라 현재의 사회와 지난날의 사회 사이의 대화다. 야코프부르크하르트(Jacob Burchardt)의 말을 빌린다면, “역사란 한 시대가 다른 시대 속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일들에 관한 기록”인 것이다. 과거는 현재로 비추어 보아야 이해할 수 있으며, 현재 역시 과거의 조명을 받아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79쪽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본질은 과거 여러 세대의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자기의 잠재 능력을 발전시켜나가는 데 있다. 현대인도 5000년 전의 조상보다 더 큰 두뇌를 가진 것이 아니며 더 뛰어난 선천적 사고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현대인은 여러 세대의 경험에서 배우고 그것을 자기의 경험과 결부시킴으로써 사고의 효율성을 몇 배로 확대하였다. 생물학자들이 부정하는 획득형질의 유전이야말로 사회 진보의 토대인 것이다. 역사는 획득된 기술이 세대에서 세대로 전승됨으로써 이루어지는 진보다. 163쪽
진보에 대한 믿음은 어떤 자동적인 또는 불가피한 진행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인간 능력의 계속적 발전에 대한 믿음이다. 진보는 추상적인 말이다. 인류가 추구하는 구체적 목표는 역사의 흐름에서 때에 따라 나타나는 것이지 역사 밖에 있는 어떤 원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170쪽
과학이든 역사든 사회든, 인간 세상의 진보는 현존하는 제도를 조금씩 점진적으로 개선(piecemeal reform)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이성의 이름으로 그 제도와 그것을 떠받치는 공공연한 또는 은폐된 가설(assumption)에 근본적인 도전을 감행한 인간의 대담한 결의를 통해 이루어졌다. 223쪽
나는 단지 역사가의 작업이 그가 속한 사회를 얼마나 정확하게 반영하는가를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흘러가는 것이 사건만은 아니다. 역사가 자신도 그 흐름 속에 있다. 역사책을 볼 때 표지에 있는 저자의 이름을 찾아 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언제 집필되었고 언제 출판되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때로는 이런 것이 더 많은 비밀을 드러낸다. 만일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다시 들어갈 수 없다고 한 철학자의 말이 옳다면, 한 역사가가 같은 책을 두 번 쓸 수 없다는 말 역시, 같은 이유로 진실일 것이다. 60~6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