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은 현행범, 현행범을 잡아라!
미북관계는 ‘핵무기’ 문제에서 ‘인권’ 문제로 그리고 위폐, 마약, 담배 위조 등 정권차원이 주도한 ‘범죄’ 문제로 패턴이 옮겨져 왔다. 김정일이 핵무기를 만들고 있다고 자인하고, 핵무기로 미국을 위협하고 있는 사실만을 가지고 미국은 북한을 공격할 수 있을까? 명분은 충분하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 애로가 있었다. 하나는 중국과 한국이 결사반대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이라크를 핵무기 개발국으로 지목하여 공격하고 나니 핵무기가 없었다는 데 대한 비난여론이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일이 인권을 유린하고 있다는 국제적 분위기만을 가지고 미국은 북한을 공격할 수 있을까? 코소보에서의 밀로셰비치처럼 현실적으로 인종을 청소하고 나선다면 문제는 달라지지만, 편린으로 엮어진 증거들과 탈북자들의 증언으로 구성된 정황증거만을 가지고 어느 날 갑자기 북한을 무력으로 공격한다는 것은 좀 어색한 일이다.
하지만 마약, 위폐, 위조품으로 경제질서를 교란하는 행위는 현행범으로 부각될 수 있다. 12월7일, 버시바우가 처음으로 북한을 범죄정권으로 불렀을 때만 해도 북한의 범죄는 과거에 저지른 범죄라는 느낌을 주었을 뿐, 현재 진행형이라는 느낌을 주지 못했다. 그런데 12월23일에 그는 북한에 대고 위폐제조를 즉각 중단하라 경고했다. 이는 북한을 현행범으로 부각시키는 말이었다.
현행범에 대한 미국의 인식
미국 의회조사국(CRS)에서 테러 마약 위조지폐를 담당해 온 라파엘 펄 연구원은 12월22일,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한다.
“북한의 달러공격은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다.”
“북한의 달러 위조는 큰 전략적 실수이며, 머지않아 파국(explode)을 맞게 될 것이다.”
“얼마 전까지 추정만 하던 사안 가운데 이젠 사실(fact)로 확인된 것이 많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할 수 있는 말에 제약이 많다.”
“인쇄기계와 잉크 분야는 정말 공개하기 곤란하다. 북한은 최고급 위조 기계도 도입했지만, 자신들이 만든 위조지폐가 제3국의 위폐 감식기를 통과할 수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최고급 ‘위조지폐 검색기계’도 갖고 있다. 미국은 이런 내용을 다 파악하고 있다.”
“북한은 최근 마약수출을 줄이고 가짜 미국 담배 제조 및 판매에 주력했다. 어느 국가도 가짜 담배가 유통된다고 해서 국가안보와 연결지어 생각하지 않는다. 북한이 틈새를 파고든 것이다. 미국 정부는 북한산 가짜 담배가 한국에 유입되고 있다고 파악하고 있다. 북한은 가짜 담배 장사로 엄청난 이익을 남기고 있다. 이런 돈이 결국 김정일의 비자금(slush fund)으로 쓰인다. 충성파에게 계속 단물을 제공하려면 사치품 구입도 필요한 법이다.”
“북한은 달러화를 공격했다. 기축(基軸)통화인 달러는 미국의 군사력 유지, 자유민주주의 전파의 근간이다. 북한은 미국 힘의 원천을 공격했다는 점에서 전략적으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미국의 인내심이 없어지고 있다. 5년 전만 해도 북한을 단죄하겠다는 의지가 10점 만점에 2점 정도였다면 지금은 4점까지 올랐다. 6, 7점이 된다면 북한은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위조지폐 유통 혐의로 체포된 사람이 북한당국과 어떻게 직접 연결돼 있는지를 보여 주는 확고한(solid) 증거가 많다. 북한은 빈협약까지 어겨 가며 해외 대사관을 불법거래의 기지로 활용한다.”
“북한은 그동안 무역거래대금을 지불할 때 자금부족 때문에 현물과 현찰을 섞어서 줬다. 신용거래는 불가능하니까. 그런데 몇몇 나라에는 위조지폐를 섞어 지불했다. 북한이 여러 나라의 돈을 위조해 무역거래에 사용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누가 북한과 거래를 하려고 하겠나.”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는 이렇게 말했다.
12월22일: “북한이 달러를 위조했다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증거가 있다. 북한 정부 기관이 달러 위조에 관여됐다는 신빙성 있는 증거도 갖고 있다.”
“북한 정부 관료들이 위조지폐를 은행 계좌에 입금시키려다 적발된 사례도 있다.”
“물적 증거와 정황증거, 목격자의 증언 등이 모두 고려되며, 이번 경우 증거가 매우 확실하다.”
12월23일: “북한이 단순히 위폐 제조를 중단한다는 약속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우리가 검증 가능한 구체적 행동을 취해야 한다.”
“올해 초 한국에서도 북한산 위폐가 대량 적발됐다.”
“한국 경찰은 올해 초 슈퍼노트를 수사할 때 원산지 결론을 내리지 않았지만 우리는 범죄과학, 정보 분석 등 포괄적 수사를 해 이것이 북한산임을 굳게 믿고 있다.”
김정일 대리전 맡은 한국 정부
1) 국가정보원은 1998년 ‘21세기 새로운 위협 국제범죄의 실체와 대응’이라는 책자에서 “북한이 연간 1,500만달러에 달하는 수퍼노트를 제작 유통시키고 있다. 평양 근교에 ‘2월 은빛 무역회사’라는 위폐 제작 전담기관을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1998년과 99년, 국회보고 자료에서도 “북한은 3개의 위조지폐 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초정밀 위조 달러를 해외에서 유통시키다가 1994년 이후 13회에 걸쳐 460만 달러 이상 적발되었다”고 밝혔다.
2) 경찰은 지난 4월 중국에서 슈퍼노트(100달러짜리 위조지폐) 1,400장을 들여와 국내에서 환전한 혐의로 이모(49) 씨를 구속하고 위폐를 유통시킨 3명을 불구속 입건한바 있다.
3) 2002년에는 북한 나진항에서 부산항으로 들어온 정기화물선에서 마약 91㎏이 숨겨진 컨테이너를 적발하고도 공개하지 않은 적도 있다.
김정일의 범죄행위를 익히 알고 있는 한국정부가 미국을 적대시하며 김정일 편을 들고 있다. 외교당국은 “한 쪽 주장만으로 사실 되지 않는다”며 미국을 자극했고, 정부는 “증거가 부족하다”, “신중해야 한다”며 적대감을 표했고, 국정원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한국정부에 대한 미국의 반응
1) 12월20일: 미하원 국제관계위원장 헨리 하이드:
“핵 확산, 화폐 위조, 총체적인 인권 침해와 불법 행위들로 미국 국민과 국제 공동체의 안전과 번영을 위협하는 정권을 변명해 주려는 사람들은 미국이나 미국민의 친구가 아니다”
2) 미국의 ‘북한 불법행위 대응팀장’을 지낸 데이비드 애셔 전 국무부 자문관:
“한국 정보 당국자들이 북한의 위조달러 제조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모두가 ‘거짓말쟁이들’이다.”
“한국 정부에 몇 년 전부터 북에서 오거나 북을 경유하는 컨테이너에 대한 철저한 검색을 요청했으나 뚜렷한 이유 없이 이를 거부했다.”
앞으로의 전망
내년 1월에 열리기로 한 제6차 6자회담은 이미 물 건너 간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김정일은 이제 미국과의 대화 창구를 잃어버렸다. 앞으로 한국정부가 김정일 정권을 대신하여 대리전을 수행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가 벌일 싸움이 볼만할 것이다.
2005. 12.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