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9호선이 발화시킨 민간투자사업의 문제는 껍질을 벗기면 벗길 때마다 그 참혹한 실상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고통 없이 서서히 몸을 갉아먹는 암세포처럼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사회 전반에 탐욕의 블랙홀이 뚫려 버렸다. 권력과 의회와 자본이 하나가 되어 합법적으로 진행된 서민 주머니 털기가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아무 탈 없이 진행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의 자정기능과 능력이 형편없이 소진되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특히 민간투자사업의 실행과정에서 주도하는 측의 장밋빛 전망을 담은 보도자료만 앵무새처럼 공표했던 일부 언론이 이제 와서 심판관의 역할을 자처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움은 더욱 커진다.
공공부문의 몰락은 사회 양극화의 급행열차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의 가장 큰 특징은 경쟁을 통한 효율화이다. KTX 민영화를 줄기차게 주장하는 국토부의 관료들도 경쟁을 통해 독점의 폐해로부터 철도를 구원하겠다는 것을 가장 큰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경쟁을 통한 효율화의 결과는 결국 독점으로 귀결된다. 경쟁에서 탈락하는 기업이 몰락할수록 승자는 더 힘이 세지고 과점과 독점으로 이어져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좀먹는 괴물이 되어버린다. 때문에 국가는 시장경제체제의 효율성을 살리는 경쟁을 강조하면서도 그 결과로 나타나는 독점의 비효율을 막아야만 하는 이율배반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했다. 이에 따라 경쟁을 촉진하는 장치들을 마련하는 것 외에 카르텔이나 독점의 방지를 위한 여러 법적 제도적 장치들을 나라마다 두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산업자본주의시대는 기업활동을 촉진시키는 사회적 인프라를 국가의 몫으로 정하고 사회적 비용을 들여 구축했다. 사회간접자본(SOC)이라 불리는 기반시설들은 거대한 투자비와 그 사회적 성격으로 인해 국가가 감당해야 할 부분으로 인식됐고 경제를 활성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SOC분야는 경제성장을 촉진 시키는 것 외에 국가 구성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사회에서 꼭 필요한 교육, 에너지, 이동권 등을 보장하는 장치로서 기능했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진행되는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와 이에 따른 이윤율 하락은 기업들에게 새로운 이윤 창출 창구를 요구했고 마침내 사회기반시설부분의 장악을 통한 이윤확보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여기에 거대하게 성장한 산업금융복합 자본들은 충분한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과 자신감으로 정부의 역할 축소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게 되었다. 신자유주의의 기본 테마인 '작은 정부', '민영화(사유화)'의 회오리가 전 세계에 자본주의를 구할 유력한 대안으로 제시되었고 영국의 대처리즘과 미국의 레이거노믹스가 그 깃발의 선두에 섰던 일을 우리는 알고 있다.
대안은 없다며 폭력적으로 진행된 영국과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바로 공공부문의 해체를 통해 구현되었다. 산업전반에 대한 구조조정과 노동조합의 분쇄, 경쟁을 통한 승자 독식의 패러다임이 진행되는 동안 눈에 보이는 실물 경제지표의 반짝 효과와 단기 호황은 신자유주의 정책의 정당성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었고 사회는 이미 대세로 굳어진 신자유주의 흐름에 밀려 갈 뿐이었다.
신자유주의를 통해 자본은 위기를 극복하고 일부 기업들은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어냈으며 국가의 경제지표도 향상되었다. 그러나 그 성장의 열매는 국가의 구성원 중 극히 일부의 거대자본에 집중되었고 어두운 그림자는 대다수 사회 구성원의 몫이 되었다. 복지혜택의 축소, 실업, 물가고 등으로 사회전체는 급격하게 양극화의 물살을 탔다. 20:80의 사회라고 불리던 것이 10:90으로 마침내 1:99라는 상징적 슬로건으로 자리 잡았다. 무너지는 공적 시스템과 그에 비례해서 확장되는 사적 이윤체제는 이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좀먹는 가장 큰 해악으로 변해가고 있다.
민간투자사업으로 위장한 민영화
한국에서 민간투자사업이 시작된 것은 1994년 '사회간접자본시설에 대한 민간자본 유치 촉진법'이 처음으로 제정 되면서였다. 이에 따라 인천공항고속도로가 최초의 민자사업으로 추진되었고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니 메니지먼트(PM)니 등의 생소한 용어들이 새로운 경영기법인 것처럼 등장했다. 민자사업은 민영화의 위장잠입(UNDERCOVER)형태이다. 민자사업은 그 대상을 사회간접자본으로 삼아 광범위하게 추진되었다. 포항제철처럼 완결적 구조의 공기업을 민간에 매각하는 전통적인 민영화 방식이 아니라 소유권은 국가가 갖고 운영권만 확보해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로 진행됐다. 이런 이유로 민자사업은 사적기업의 이윤창출 도구로 기능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국가가 관리하고 민간기업의 효율성을 도입하여 사회에 기여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여기에 가장 큰 함정이 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사회기반시설 전반에 걸쳐 사회적 자산이 사적 수익 창출의 도구로 변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조용하고 서서히 진행되었는데 정부가 촉진하고 법이 보장하면서 당연하고 자연스런 국제적이고 사회적인 현상처럼 보이게 했다. 이것은 끓는 물에 닿은 개구리가 놀라 탈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서서히 온도를 높이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사회 구성원 전체에 부담을 전가했고 그 결과 오늘 날과 같은 숨 막히는 민영화의 압박에 노출되게 된 것이다.
KTX 민영화를 추진하는 국토부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수서발 KTX는 절대 민영화가 아니고 민간경쟁체제 도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5월 4일까지 약 8일간 걸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여러분께서는 수서발 KTX운영을 외주화 할 경우 수서발 KTX의 운임이 인하되고 서비스가 좋아질 거라 생각 하십니까?"라며 아예 질문항목을 외주화로 바꾸어 버렸다. 어떻게든 민영화란 프레임을 바꿔보려는 몸부림이다.
철도민영화의 폐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나라 영국의 현재 모습이 국토부가 추진하는 민영화 방식이다. 기반시설은 국가가 소유하고 민간이 일정기간 운영권을 갖고 재계약 여부에 따라 사업을 지속하는 것이다. 국토부의 논리라면 영국의 철도는 민영철도가 아닌 셈인데 이런 주장은 국제적 웃음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 영국철도는 민영화 초기 시설과 운영을 모두 민간에 매각했다. 이런 사실을 들어 지난 2002년 국토부(당시 건교부)가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한국철도의 민영화 모델은 실패한 영국의 모델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그러나 영국철도는 민간에 매각했던 시설부분을 정부가 인수하면서 재공영화 되었고 지금 국토부가 추진하는 방식의 구조로 자리잡았다.
철도 민영화와 구조개편 방안을 제출 했던 세계은행은 민간 참여의 방법으로 9가지를 제시했는데 "국가소유 기업에서 운영분야의 개방, 사업권 분할, 서비스 공급계약, 경영위탁계약, 사업권 승인" 등 국토부가 추진하고 있는 내용들을 보면 세계은행이 말하는 민영화의 핵심요소들을 모두 담고 있다. 민자사업처럼 가면을 쓴 채 민영화란 맨얼굴을 보이지 않겠다는 것인데 이미 국민들은 진실을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