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한 편___이원준
단팥빵과 보름달
이원준
창밖 가을햇살에
정체된 머리를 달래고 있는데 빽빽거리는 행상트럭이 골목 안으로 들어선다. 동글동글 사과를 가득 짊어진
채 집들을 일깨우기 시작한다. 달고 싱싱한 제철을 들여놓으라는 되돌이표 외침에 귀부터 흠뻑 젖는다. 상상 속에서 새큼달큼한 사과를 한 입 베어 무는 사이, 한 주부가
총총걸음으로 나타나는 게 보인다. 막 정차한 트럭을 향해 바삐 가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일전에 사들인 사과 가운데 몇 알이 썩어서 버렸다는 볼멘소리가 곧 들려온다.
사과장수가 처음부터 그렇지 않았을 거라며 설명한다. 아마도 한 데 오래 두었기 때문이라고
설득하지만 그녀는 막무가내로 우긴다. 고분고분하던 사과장수도 트럭에서 내린 뒤로는 변한다. 둥근 것마저 쉽게 직선으로 말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일까. 왜 그
따위 것을 팔았느냐는 직설에 어쨌든 죄송하다며 둥그스름히 모아졌던 그의 손이 달라진다. 일방적인 자기
책임도 아닌데 뭐 그리 야박하냐는 반격의 손가락을 뾰족이 치켜든다. 그 위치보다 더 높은 곳으로 상대의
손가락도 끝을 세운다. 두 사람 사이에는 금세라도 상처될 쇳소리만 오간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그 끝은 더더욱 날카로워진다.
마음이 베일
듯하다.
양보와 너그러움이
사라진 시대에 종종 보게 되는 살풍경이다. 웃는 일보다 울거나 화내는 일에 더 익숙한 세상의 한 풍속도다. 구입한 상품에 작은 문제라도 발견되면 득달같이 따지고 증거사진까지 인터넷에 올려 만천하에 공개한다. 물론 부당함을 짚고 넘어가는 일은 판매자의 도덕성과 건전한 소비문화를 위해 당연한 일이겠다. 만약에 하자상품보다 보관방법 때문에 생긴 결과라면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어쨌든
자신의 불찰마저 이기심으로 변할 때 배려와 이해가 들어설 자리는 없지 않을까 싶다.
심난해져 있는데
다행히 전화벨이 나를 앉힌다. 수화기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조심스레 흘러나온다. 인터넷 온라인마트 상품담당 매니저라는 중년의 여자다.
일주일 전쯤
배송에 앞서 품절상품을 알리는 전화가 왔을 때 기억해 두었다. 주문한 전통있는 단팥빵 대신 대체상품을
보내도 되겠느냐는 내용이었다. 유명업체는 아니지만 한때 인기 있었던 한 개그맨의 ‘옥동자’라는 캐릭터를
내세운 단팥빵이라고 했다. 정해진 매뉴얼대로 해도 되는 상황에 그녀가 진심을 보이는 듯 느껴졌다. 수화기 너머의 간절한 표정이 읽혀졌다고 하면 지나친 감성일까.
“그거 먹으면
혹시 그 사람처럼 얼굴이 변하는 거 아니죠?”
양쪽 모두에게
시원한 출구 하나가 필요하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녀가 깔깔 웃어댔고 나 역시 홀가분해졌으니 오판은
아니었다. 애드리브 없는 삶은 재미없다는 내 공식을 재확인한 셈이기도 했다. 단팥을 품은 빵이라는 동종의 간식거리에 특별한 차이가 있겠느냐마는, 호기심이
생겨 내심 기대가 없지 않았다. 은연중 꽤 오래 전 유행했던 ‘못 생겨도 맛은 좋아!’라는 초코바 광고가 떠오른 탓도 있다.
새로움에는 예상치
못한 실망도 있는 법인가. 배송 온 대체상품은 원래의 맛에 길들여져 있어서인지 무언가 부족했다. 포장에 인쇄된 파안대소의 옥동자를 보며 먹자니 묘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서
다시 그리운 단팥빵을 주문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었다.
“저, 고객님 이번에도 양해말씀을 구해야 될 것 같아요.”
공교롭게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워낙 인기있는 제품인지라 이해는 간다. 수화기
속 그녀는 그때보다 더욱 미안해한다.
“그 빵 먹고
저 정말 얼굴이 달라졌으니 책임지세요.”
그 말에 눈동자를
위로 치켜뜬 채 골몰하는지 잠시 틈을 두었던 그녀가 경쾌한 소리를 낸다.
“호호호, 원래의 고객님 얼굴이 궁금한데요.”
그녀의 안도와
여유가 오히려 나를 기쁘게 한다. 더 반가운 것은 이번 대체상품은 추억이 새록새록 묻어나는 빵 보름달이라는
사실이다. 연이은 배송불편에 따른 보상으로 요구르트 열다섯 개짜리 한 묶음이 덤이란다.
“차라리 보름달처럼
둥글넓적하게 되는 게 낫겠네요. 저 지금 고마워서 달덩이가 됐습니다.”
또 그녀가 아이처럼
웃는다. 수화기를 내려놓고서도 한동안 여운으로 남는 소리다. 사는
일이란 생각하기에 달렸다는 말을 새삼 되새겨본다. 더불어 사는 삶이란 약간의 불편함과 손해를 감수하며
타인을 생각할 때 완성되는 것은 아닐지.
살다가 문득
하늘을 보았는데 새 한 마리 없는 것과,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사람 하나 없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절망일까? 양쪽 모두 희망적이지는 않겠지만…. 세상 모든 일에 ‘ㅎ’이라는
자음 하나씩 피어나고 ‘^^’이라는 마음 하나씩 그려지기를 소망해본다.
창밖의 안부가
궁금해 내다보니 불협화음이 있던 곳에 평화스러운 고요가 놓여있다. 한때의 모난 것은 떠나고 본래의 마음자리만
남은 모습일 것이다. 몇 알의 얼굴 붉어진 동그란 사과와 하얀 미소가 교환된 자리이리라.
두어 시간 후
도착한 보름달의 포장지를 서둘러 벗긴다. 순간 어깨가 들썩여지는 것은 입 안에 감도는 달큼함 때문만은
아닐 테다. 입가에 보드라운 크림 같은 미소까지 묻어난다. 어디선가
환하게 떠 있을 또 하나의 보름달도 가슴으로 바라보는 즐거움이다.
나만의 명절이
맛있다.
이원준 /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1991년 『현대시세계』로 등단했다. 저서 『흔들림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한 모습이다』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