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온 뒤의 보문
文 熙 鳳
일요일이다. 이른 시각부터 추적추적 초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나의 가슴에 추억의 그림을 그려가며 내리고 있다. 산이 부르고 있었으나 우중충한 날씨 때문에 선뜻 응하지 못하고 ‘방콕’ 중이었다. 오후 늦게서야 내 마음을 알았는지 비가 그쳐주었다.
부랴부랴 등산복 차림으로 스틱까지 챙겨 보문산을 향하여 발길을 옮겼다. 메마른 삶의 뜨락이었는데 촉촉한 정감의 이슬비의 예방을 받고 길이 많이 촉촉해졌다. 경사진 곳을 오르니 금세 숨이 가쁘다. 그래 심장에 강한 자극이 오니 그에 적응하기 위한 내 육신의 조건 반사이리라. 이렇게 운동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옛 친구를 만난 듯 기분이 좋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오래 쓰지 않아 녹슨 장도 같은 마른 낙엽들이 서걱서걱 말을 걸어왔었다. 그렇지만 오늘은 촉촉하게 젖은 몸으로 고개를 숙여 몸을 낮추고 인사한다. ‘비와 낙엽’이란 말이 슬픈 사랑을 연상케 한다고 그 누가 말했던가. 그런데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신을 낮춰 보시(報施) 정신을 발휘하는 낙엽이다. 덜 익은 인격의 가벼운 몸놀림이 아닌 고매한 인격의 중량감 있는 행동을 보여주는 낙엽이다.
맑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보문은 여러 식솔들을 거느리고 산다. 한 자리에 꼿꼿하게 서서 젊음을 과시하는 수많은 수목들과 자기 동네에 세들어 살고 있는 뭇 동물들을 보듬어 안고 살아간다. 보문은 여러 악기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다. 계절 따라 각종 음악회를 열어준다. 내로라하는 화가들이 사는 곳이다. 가슴이 따스한 문인들이 사는 곳이기도 하다. 서로 도우며 우정을 과시한다. 가까운 친인척 같다.
큰 나무가 작은 나무를 깔보는 일이 없고, 작은 나무가 큰 나무를 부러워하는 일도 없다. 그저 자기 임무에 충실할 뿐이다. 큰 나무건 작은 나무건 잎을 틔워 희망을 선물했고, 크고 작은 열매로 우리들에게 기쁨을 주었다.
송림 사이를 산책하니 가슴이 확 트이고 싱그러운 송향에 정신까지 맑아진다. 어떤 나무는 떨굴 것 모두 떨구고 한두 자식 데리고 겨울나기를 하려 했던 모양이지만 인정 없는 바람과 야속한 비에 속상해 하는 모습이다. 그마저 떠나면 얼마나 적적한 노후를 맞을까.
그와 대조되는 적단풍나무는 여태까지 선연한 빛을 간직한 식솔들을 그대로 거느리면서 청춘을 만끽한다. 여름내 혼자서 수음(手淫)하던 단풍이 아니었던가. 청사초롱에 불 밝힌 모습이다. 삼십 대 초중반의 아줌마 같다. 그 옆의 청단풍은 식솔 모두 떠나보내고 빙어 가슴속 같은 속살을 자랑한다. 가지 끝마다 방울방울 매달린 빗방울들이 찬연한 빛을 연출한다. 꼭 방년의 아가씨 같다. 저 멀리 보이는 희뿌연 하늘은 저녁 밥상을 준비하는가 보다. 그걸 보니 갑자기 뱃속이 허전해진다.
정상을 향해 오르면 오를수록 맑고 순후한 공기가 내 후각에 신선함을 제공한다. 정상이 가까워지니 나에게도 세상을 호령할 힘이 생긴다. 보문은 계절에 관계없이 나를 젊음의 호수에 침잠시킨다. 가슴 위를 흐르는 땀과 순후한 공기가 만나 화촉을 밝히는 아주 늦은 오후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주는 절대적인 힘을 갖고 있는 보문산에 오르길 백 번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