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타령 하는 산
송순(松荀) 튼 가장귀에 산이 드렁 코를 골다
정적 깬 꿩 울음에 애꾸눈을 굴리다가
곱사춤 신나게 추곤 각설이를 하느니
* 더렁산(484m); 경기 양평. 무명의 표고점(標高點)인데, 그 곳 주민이 그렇게 부른다. 갈라진 샛지릉이 많아 독도(讀圖)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갑자기 장끼가 “꿩꿩” 울어 한낮의 적막을 깨트리자, 능선은 신들린 듯 곱사춤을 추기 시작한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이하 략)
*《한겨레문학》제출 단시조 2수. 2004년 4월.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부제 산음가 山詠 제1-153(149면). 2018. 6. 25 도서출판 수서원.
2. 항룡유회(亢龍有悔)
두 뿔은 우뚝하고 먹비늘 꿈틀거려
항룡(亢龍)이 되려거든 역린(逆鱗)만은 감춰두고
바람도 가려 타야 돼 아차하면 토룡(土龍) 돼
* 비룡산(飛龍山 526m); 경기 양평.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가 두 곳 있는데, 하나는 암봉(안내산악회 리번)이고, 하나는 묘터이나 이곳이 정점(능선분기점)으로 추정된다. 여하튼 비룡상천형의 산으로 날렵한 바위와 암릉이 있으며, 산 둘레는 산악자전거 길이 잘 나있다.
* 이 시조에는 천기(天機)가 숨겨져 있다. 대권을 누가 쟁취하느냐는 바람이 좌우한다. 입후보자의 관상(특히 이마)을 잘 살펴보면 짐작이 갈 것이다. 이 글을 쓸 때가 2002년 3월 20일 인데, 당시 연말 대선 유력후보로 노무현 씨와 이회창 씨가 거론되었다.
* 항룡유회; 존귀한 지위에 있는 사람은 항상 몸가짐을 조심하지 않으면 실패할 우려가 있다는 말. 주역의 상구(上九)를 항룡에 비유하여 이름.
* 역린; 용의 턱 아래 거슬러난 길이 한 자 가량의 비늘로, 건드리면 탄 사람을 찔러 죽인다. 흔히 군주의 진노를 비유한다(한비자).
* 토룡; 지렁이
* 《詩山》 제46호 2005년 봄호.
* 《동방문학》 2004년 10~11월호. 문학회생 프로그램 추진위원회 제출 시조 2수.
* 졸저『한국산악시조대전』제 235면.
3. 황조롱이 날리기
톡 쏘는 눈초리에 휜 부리 황조롱이
끙끙대 잡은 후라 길러보고 싶다마는
멋지게 제자리 비행해 들쥐 옴짝 못하게
* 응봉(鷹峰 759.4m) 강원 홍천. 정상 막바지에 이르면 급경사라 푹 꺼졌다 불쑥 솟는다. 우아하게 제자리 비행술을 뽐내는 황조롱이(천연기념물 제323-8호)를 닮았다. 주위에 대룡산, 구절산, 연엽산 등이 포진해 있다. 1980년8월8일 당시 ‘위컴’ 주한미군사령관은 한국인의 근성을 ‘들쥐’에 비유했다.
* 졸저『한국산악시조대전』제 351면.
4. 옛 동산의 노래
새초롬 돋은 새싹 봄볕에 노곤해요
살얼음 암반 위에 휘파람새 깃 말릴 제
봄 산은 내 품에 안겨 나비잠을 자고요
* 고동산(古桐山 591m); 경기 가평 양평. 북한강변에 있어 야생화 산행지로 적합하며, 살얼음이 남은 이른 봄 계류의 풍광과 새소리가 좋다. 보통 화야산(755m)이나 뾰루봉(710m)과 묶어 등산한다.
* 한국 좋은 동시 재능기부회(대표 김관식) 제출 동시조 2수.(2020. 8. 8)
* 졸저『한국산악시조대전』 부제 산음가 산영 1-37(69면). 2018. 6. 25 도서출판 수서원.
* 『교과서에 실어도 좋을 ‘단시조’』 522면. 2022. 10. 15 (사)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 발행.
5. 몽중답계(夢中踏鷄)
-꿈속에서 닭을 밟다
역동의 필선(筆線)이다 꿈속에 계도(鷄圖) 보다
후다닥 홰친 소리 문득 놀라 깨어보니
춘곤(春困)이 덮쳐온 찰나 닭발 밟고 말았네
* 계족산(鷄足山 889,6m); 강원 영월. 봉우리 다섯 개가 마치 닭발처럼 생긴 영월 제1의 산으로, 봄이 되면 산매화 향기가 온산을 진동한다. 자락에 있는 정양산성(왕검성)이 고색창연하다. 산 위에서 내려다본 동강과 남한강이 무척 아름다워 마치 선경에 온 듯 착각을 일으킨다.
*《시산》 제46호 2005년 봄호.
*《동방문학》 2004년 10~11월호. 문학회생 프로그램 추진위원회 제출 시조 2수.
* 졸저『한국산악시조대전』제 66면.
6. 이무기를 부림
고스락 바위신선 흰 날개 펴오르나
구름과 씨름하던 얼뜨기 지쳤으니
용소골 이무기에게 발바닥을 핥게 해
* 백우산(白羽山 894,7m); 강원도 홍천군. 산 북쪽 경수천 용소계곡은 홍천8경에 드는 청정한 곳으로 용의 전설이 깃든 너래바위가 좋다. 겨울철 눈 덮인 산이 마치 새가 흰 날개를 편 것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청류 덕분에 여름철을 더 선호한다. 하산 후 발을 씻고, 자갈밭이나 바위를 가볍게 걸으면 피로를 달래준다. 408번 지방도로 가족(可足)고개에서 오른다.(2015.10. 24 기존 자유시를 시조로 대체)
* 《시산》 제51호 2006년 여름호 5수 중. 자유시로 기고.
* 졸저『한국산악시조대전』제 200면.
7. 상춘음(賞春吟)
산도화(山桃花) 붉게 물든 나른한 산등성이
봄처녀 눈꺼풀 위 땀구슬이 맺힐 쯤
바스락 춘성(春聲)에 놀라 왕호두알 또르르
* 광덕산(廣德山 699m); 충남 천안, 아산. 광덕보시(廣德布施)에서 유래되었는데, 옛 이름은 태화산(泰華山) 또는 가마봉이다. 모습은 연꽃을 닮아 부드러운 여성상을 풍기며, 정상부는 호두알처럼 동글동글하다. 637년 자장율사가 창건한 고찰 광덕사 경내에 우리나라 최초의 호도(천안 특산물) 전래자인 고려시대 류청신(柳淸臣)의 공적비가 있고, 동북쪽 약500m 지점에 황진이(黃眞伊-개성), 이매창(李梅窓-부안)과 더불어, 조선의 3대 명기(여류시인)로 꼽히는 운초(雲楚) 김부용(金芙蓉)의 묘가 있다.
* 춘성; 봄이 오는 소리. 낙엽을 뚫고 솟아오르려는 새싹들의 움직임을 한참 동안 자세히 관찰하면 들릴 듯 말 듯 탄생의 신비를 직접 느낄 수 있을 게다.
* 《서울문학 》 기고 2004년 6월.
* 졸저『한국산악시조대전』부제 산음가 산영 1-55(81면). 2018. 6. 25 도서출판 수서원.
* 《농민문학》 제128호(2024년 겨울) 테마 기획 ‘호두’ 단시조 1수.
8. 무도(無道) 유감
봄볕은 따스한데 나그네 수심 깊어
정도(正道)는 군(軍)이 차지 에움길은 고속국도
제비꽃 군화에 밟혀 비명 지른 철조망
* 양지산(陽支山 150m) ; 경기 시흥. 한남정맥의 한 야트막한 표고점으로 지도상 봉재산이다. 마루금(바른 길)은 군부대 철조망이 처져있어 갈 수 없고, 우회길 조차 고속도로가 나 있어 당황스럽다. 우리는 방음벽 콘크리트 턱 위를 딛고 곡예하듯 통과해야 하니, 도대체 사람들은 어느 길로 다니란 말인가? 야생화는 보초서는 군인의 발에 무심히 짓밟히고, 철조망은 왕래하는 자동차 소음에 윙윙대며 흔들거려 참으로 혼란스럽다.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는 제비꽃(오랑캐꽃)이 처량하다.
* 왜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얄팍한 꾀나 요령을 피울까? 정도만 걷는 사람은 정말로 바보일까?
* 《서울문학》 2005년 봄호 시조 2수.
* 졸저『한국산악시조대전』부제 산음가 산영 1-407(314면). 2018. 6. 25 도서출판 수서원.
9. 돌아오지 않는 반향(反響)
한양 땅 바라보며 조(趙)도령 외쳐대다
그린 님 오지 않아 망부석(望夫石) 된 넋티고개
다시 또 황조가(黃鳥歌) 부른 간헐음(間歇音)의 메아리
* 망경산(望京山 600m); 충남 천안 아산. 넋티고개가 등산기점 혹은 종점이다. 과거 보러간 조도령이 그리워, 서울만 바라보다 지쳐 죽은 낭자의 넋이 깃든 고개라 전한다. 능선이 부드럽고 조망이 좋아 가족산행지(정상까지 1.8km에 불과)로 적합하며, 보통 광덕산과 함께 등산한다.
* 황조가; 고구려 제2대 임금 유리왕(瑠璃王)이 지은 가사. 편편황조(翩翩黃鳥) 자웅상의(雌雄相依) 염아지독(念我之獨) 수기여귀(誰其與歸) -펄펄 나는 꾀꼬리는/ 암수 서로 정다운데/ 외로워라 이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꼬
* 《서울문학》 2005년 봄호 시조 2수.
* 2017. 7. 2 제목과 시조 종장후구 수정.
* 졸저『한국산악시조대전』제 164면.
10. 반가사유(半跏思惟) 하는 산
수국(水菊) 핀 곱슬머리 꺽정 닮은 너른 이마
미소 띤 가섭(迦葉)부처 백옥 같은 저 귓밥
바위에 바른 턱 괴고 반가사유 하시다
* 불곡산(佛谷山 468.7m); 경기 양주. 대동여지도에는 양주의 진산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일명 불국산(佛國山)이다. 주봉(上峰) 북서쪽으로 스릴 넘치는 암릉길을 따라 상투봉(425m), 임꺽정봉(445m, 옆길은 한북정맥)등 빼어난 암봉이 도사리고 있다. 불국정토를 상징하듯 백옥처럼 멋진 바위산이다.
* 사유(思惟)를 하지 않는 민족은 발전이 없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고뇌와 사색을 잃어버렸다. 매사에 즉흥적이고 쉽게 잊어버리며, 감정만 앞세우다 보니 차가운 이성이 존재하겠는가?
* 졸저『한국산악시조대전』부제 산음가 山詠 1-280(231면). 2018. 6. 25 도서출판 수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