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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국가의 성장과 물질문화 1
지은이 :오강원,최종택,김용성,요시이 히데오(吉井秀夫),김낙중,텐리쿤(田立坤),김규호,후리하타 준코(降幡順子),이성주,여호규
발행일 :2015.07.20.
판 형 :46배판
페이지 :412쪽
ISBN :979-11-86597-03-3
도서소개
책은 세계 인류문명 발전의 시각에서 한국 전통문화의 고유 가치를 발견하고 탐구하고자 기획한 ‘문명과 가치 총서’의 첫 번째 책이다.
고구려·백제·신라로 대표되는 삼국시대는 발달된 형태의 국가가 형성되고, 국가로 상징되는 고도로 복잡화된 사회의 물질적 기반과 환경이 완비되었다는 점에서 한국 문명이 발생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삼국시대 초기 국가 단계의 물질문화 양상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현상으로, 거대한 기념물로서의 고총고분, 화려한 금공제 위세품, 기술력의 산물인 수공업 제품, 도시화에 따른 새로운 문화경관의 형성 등에 주목하고, 이러한 물질문화가 등장한 역사적, 정치·사회·기술적인 맥락을 구체적으로 밝히고자 하였다.
차례
례
*총론
1부. 고총 고분의 형성과 매장 시설의 변화
• 선고구려·고구려 초기의 기술 혁신과 고분 구조와 장제의 전환-환인 일대를 중심으로 (오강원)
• 집안 통구 분지 고구려 고분군의 조영 과정 연구 (최종택)
• 신라 고총의 발생과 전개 (김용성)
• 분구의 구축 과정을 통해서 본 삼국시대 분묘의 비교 연구 (요시이 히데오)
2부. 초기 국가의 상호 작용과 위세품 제작의 사상
• 규두대도를 통해 본 백제, 영산강 유역 세력, 왜의 관계 (김낙중)
• 고대 등자에 관한 새로운 고찰 (텐리쿤)
3부. 생산 기술의 발전과 전문화에 대한 과학적 연구
• 삼국시대 고분 출토 금·은·금동 제품의 특성 고찰 (김규호)
• 5~7세기 일본의 금·은·금동 제품의 자연과학적 조사-야금 관련 유적 출토 유물 및 도장구 비교·조사 (후리하타 준코)
4부. 도시화와 초기 국가의 문화 경관
• 초기 국가의 물질문화와 문화 경관 (이성주)
• 삼국 초기 도성의 형성 과정과 입지상의 특징 (여호규)
*부록_금동이식 분석 자료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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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팀에서는 이러한 기획과 목표 아래 진행된 각 연구들이 일정한 중간 단계의 목표를 갖고 상호 응집되고 소통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본 연구팀의 대주제인 「三國時代 國家의 成長과 物質文化」에 포괄되어 있는 각 연구 주제를 중분류하여 다시 네 개의 중간 주제를 설정하였다. 그러한 성격의 중간 주제로는, 첫째 ‘高塚古墳의 形成과 埋葬施設의 變化’, 둘째 ‘初期國家의 相互作用과 威勢品 製作의 思想’, 셋째 ‘生産技術의 發展과 專門化에 대한 科學的 硏究’, 넷째 ‘都市化와 初期國家의 文化景觀’이 있다.
이 연구팀의 연구는 2013년 현재 이러한 편제의 의해 2년간 20개의 세부적인 연구 주제가 진행되고 있다.
연구팀에서는 연구를 진행하는 가운데 관련 학계에 연구 결과를 사전 공표함은 물론 연구 결과를 더욱 내실 있게 하기 위해 관련 연구자들과의 집체적인 토의하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취지에서 2년 연속 연구 기간 가운데 매 해 11월 각 연구 주제에 대한 토론자를 선정하고 학문적 경륜을 갖춘 연구자를 종합토론의 좌장으로 삼아 국제 학술 회의를 개최하고자 한다. 이에 2012년 첫 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같은 해 11월 23일(금) 한국학중앙연구원 강당 2층 세미나실에서 9시 30분부터 18시 30분까지 「삼국시대 국가의 성장과 물질문화 I」을 주제로 한 국제 학술 회의를 개최하였다.
당시 개최된 국제 학술 회의의 발표자․토론자․종합토론 좌장․통역자는 아래와 같다.
1부 高塚古墳의 形成과 埋葬施設의 變化
■ 先高句麗․高句麗 初期의 기술 혁신과 古墳 구조와 葬制의 전환(吳江原, 한국학중앙연구원)
토론(정원철, 서해문화재연구원)
■ 集安 通溝盆地 高句麗 古墳群의 조영과정 연구(崔鍾澤, 고려대학교)
토론(양시은, 서울대학교박물관)
■ 新羅 高塚의 發生과 展開(金龍星, 한빛문화재연구원)
토론(강봉원, 경주대학교)
■ 墳丘의 構築過程을 통해서 본 三國時代 墳墓의 비교연구(吉井秀夫, 일본국 경도대학)
토론(曺永鉉, 대동문화재연구원)
2부 初期國家의 相互作用과 威勢品 製作의 思想
■ 圭頭大刀를 통해 본 百濟․榮山江流域勢力․倭의 관계(金洛中, 전북대학교)
토론문(金宇大, 일본국 경도대학교)
■ 고대 등자에 관한 새로운 고찰(田立坤, 중국 요령성문물보호중심)
토론(金斗喆, 부산대학교)
3부 生産技術의 發展과 專門化에 대한 科學的 硏究
■ 三國時代 古墳 출토 金․銀․金銅製品의 특성 고찰(金奎鎬, 공주대학교)
토론(이한상, 대전대학교)
■ 5세기부터 7세기 日本의 金·銀·金銅製品의 自然科學的 調査(降幡順子, 일본국 내량문화재연구소)
토론(신용비, 국립경주박물관)
4부 都市化와 初期國家의 文化景觀
■ 初期國家의 物質文化와 文化景觀(李盛周, 경북대학교)
토론(金成南, 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
■ 三國 初期 都城의 형성과정과 입지상의 특징(余昊奎, 외국어대학교)
토론(양정석, 수원대학교)
종합토론
좌장 : 崔盛洛(목포대학교)
통역 : 박재복(경동대학교), 노지현(일본국 벳부대학교 박사)
이 연구서는 본 연구팀의 위의 취지와 목표 및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완성된 원고를 한데 묶어 출판한 연구 결과물이다. 그러면 이제 최종적으로 선보이게 된 각 연구의 개략적인 내용과 성과 등을 간단하게 요약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1부 ‘高塚古墳의 形成과 埋葬施設의 變化’를 구성하고 있는 吳江原, 崔鍾澤, 金龍星, 吉井秀夫의 연구부터 소개하기로 하겠다.
吳江原의 「先高句麗․高句麗 初期의 기술 혁신과 古墳 구조와 葬制의 전환」은 고구려 건국 전후를 물질문화의 변동 등을 근거로 몇 개의 단계로 나눈 뒤, 초기 고구려(기원전 1세기 중엽~0년)의 적석묘가 환인 일대의 선고구려 I기(기원전 4~3세기)의 대형 개석 아래에 부석을 깐 지하식의 대석개묘로부터 시작하여 이후 수장층의 정치 권력의 성장과 함께 기원전 3세기 말~2세기 초 부석이 강화되고 개석이 소형화되면서 매장주체부가 반지하식인 초기 적석묘로 전환되었고, 이것이 다시 기원전 1세기 매장주체부가 지상 적석부 위로 올라가고 적석부가 고대화된 초기 고구려의 적석묘로 전환되었다고 보았다.
吳江原의 연구는 그간 초기 고구려 적석묘의 기원을 고분 외형의 유사성만을 근거로 단순 비교하는 것에서 벗어나, 최근 새로이 조사된 무덤과 취락지 등에 대한 세밀한 비교 분석을 토대로, 기원전 4~3세기 환인 일대 수장층의 새로운 장법과 묘제로 자리 잡은 다인화장의 대석개묘가 구조와 기능 개선은 물론, 지역 수장층의 의도에 의해 점차 지상화되어 가는 과정에 점진적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을 입증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장법 또한 그러한 변화에 맞추어 가족 단위의 화장에서 개인 또는 부부 중심의 화장으로 변모되었다고 보았는데, 이 또한 주목할 만하다.
崔鍾澤의 「集安 通溝盆地 高句麗 古墳群의 조영과정 연구」는 집안시 통구 분지 고구려 고분군의 조영 과정에 대한 연구 결과이다. 통구 분지에는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였던 국내성과 1만여 기가 넘는 고분이 밀집되어 있다. 이 연구에서는 2002년도에 간행된 통구 고분군의 실측 보고서를 바탕으로 고분군의 개요를 살펴보고, 규모와 구조형식 별 분포를 검토한 후 공간적 분포 양상을 분석하였고, 마지막으로 고분군의 조영 과정 및 그와 관련된 몇 가지 문제에 대한 가설을 제시하였다. 통구 고분군은 조성 초기부터 일정한 원리와 규칙 아래 조영된 것임을 확인하였고, 조영 과정을 5단계로 구분하였다.
崔鍾澤의 연구는 우선 기존 관련 연구자들의 연구가 대부분 구조가 알려진 개별 고분의 형식 분류와 편년에 집중되어 있는 것에서 벗어나 고분군 전체의 조영 과정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최종택은 고분의 구조적 속성과 공간적 속성을 함께 분석하여 고분군 전체의 조영 과정과 원리를 이해하려고 시도하였다는 점에서 나름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개별 고분의 구조 형식과 출토 유물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한 정치한 편년이 이루어지지 못한 점이 아쉬운 점으로 남는데, 이러한 점 추후 연구자의 계속적인 연구를 통해 보완될 것이라 생각된다.
金龍星의 「新羅 高塚의 發生과 展開」는 경주 일대의 고분이 신라식 목곽묘에서 적석목곽묘로 전환되고 그와 동시에 왕묘를 중심으로 한 고총이 축조되다가 신라의 확장과 더불어 주변 지역으로 확산되는 것에 주목하여, 신라 영역 내에서 확인되는 고총 체계를 통해 당시 신라의 사회적 구조와 단계에 대해 밝히고자 하였다. 金龍星은 여러 층차의 분석을 통해 고총 축조기 신라는 취락-읍락-지방 소국-신라 왕도(경주)의 4단계로 위계화된 사회 구조를 형성한 초기국가였고, 이 시기의 지방 지배 형태는 직접 지배가 아닌 간접 지배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한 곧이어 율령국가로 전환되면서 고총이 쇠퇴하는 것으로 보았다.
金龍星의 연구는 기존의 고분 연구를 바탕으로 하되 새로운 시각과 해석을 통해 신라라는 국가의 탄생과 전개 과정을 단계적으로 파악하고자 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신라 초기의 사회에 대해서는 문헌 기록의 불충분성으로 고고학계는 물론 역사학계에서도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져 있지 않다. 이러한 점에서 고분의 변천 과정과 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신라의 발생과 발전 과정을 모색한 그의 연구는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고 판단된다. 이 연구는 나아가서 한반도 남부의 국가 발생에 대한 거시적 논의와 관련해서도 일정한 시사점을 줄 것으로 생각된다.
吉井秀夫의 「墳丘의 構築過程을 통해서 본 三國時代 墳墓의 비교연구」는 한국의 삼국시대 고분과 일본의 고분시대 고분을 분구의 조성 맥락에 초점을 맞추어 비교 분석하였다. 연구 결과 고대 한국과 일본의 대형 고분은 분구선행형과 분구후행형 고분으로 대분류할 수 있는데, 분구선행형은 납관․매납의례 등의 장송 의례가 분구 정상부에서 이루어진 까닭에 분구 정상부의 평탄면 조성과 분구의 대형화가 이루어지게 되었고, 분구후행형은 분구의 기능이 매장시설의 복개와 무덤의 표지 역할에 한정되어 있었던 까닭에 경주의 고총에서 드러나듯이 일본 열도와는 다른 형태의 분구 형태가 결정되었다고 보았다.
吉井秀夫의 연구는 기존에 한국의 삼국시대 전기~중기와 일본의 고분시대 고분을 연구할 때 주로 매장주체부를 중심으로 한 시설에 주목하였던 것에서 벗어나 고총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인 분구의 지역적 구축 맥락의 차이를 분석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러한 연구는 연구자의 기존 연구를 기반으로 확대된 것이기는 하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고구려․백제․신라로 대표되는 삼국시대 고총 고분 분구의 고대 한국적인 축조 맥락의 유사성은 물론 개별 정치체와 지역에 따른 차이, 그리고 고대 한국과 일본 고분의 분구 조성과 기능의 차이를 보다 분명하게 제시하였다는 점이 주목된다.
다음으로는 2부 ‘初期國家의 相互作用과 威勢品 製作의 思想’을 구성하고 있는 金洛中, 田立坤의 연구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金洛中의 「圭頭大刀를 통해 본 百濟․榮山江流域勢力․倭의 관계」는 백제권의 한반도와 일본 열도에서 6세기 후엽 무렵 공히 유행한 규두대도의 비교 분석을 통해 백제․영산강 유역의 세력․왜의 관계에 대해 분석하였다. 그는 규두대도가 6세기 후엽 사비시대 백제의 장식아이디어와 대도 제작 기술이 결합하여 백제에 의해 처음으로 창안된 이후, 위세품으로서 영산강 유역은 물론 일본 열도에까지 빠르게 확산되었는데, 규두대도의 확산에는 백제와 왜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영산강 유역의 토착 집단 또한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고 보았다. 한편 규두대도의 제작은 백제 왕권 하의 공인층에 의해 주도되었던 것으로 보았다.
金洛中의 연구는 일본 열도에서 유행한 장식대도의 일종인 규두대도가 영산강 유역의 백제 고분에도 부장되어 있는 고고학적 현상에 대한 분석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그의 연구에서 주목할 것은 백제와 일본 열도에서 출토된 규두대도의 형식과 문양 요소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하여 백제 지역의 출토품이 일본 열도로부터 반입된 것이 아니라 백제에서 제작된 것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제시하였다는 점이다. 이외 규두대도의 확산과 관련하여 영산강 유역 토착 집단의 역할을 상정함으로써, 영산강 유역이 6세기 중엽 이후에도 일정한 역할을 하였을 가능성을 제시한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田立坤의 「고대 등자에 관한 새로운 고찰」은 삼국시대 동아시아 지역 초기 등자의 제작 방식과 형태,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형식 분류와 각 형식의 시공간성 및 각 형식 간의 상관 관계에 대해 분석하였다. 그는 초기 등자를 병부와 륜부의 구조에 주목하여 ‘長柄木芯鐙子’라 명명한 뒤, 이를 구체적인 제작 방식과 형태를 기준준으로 ‘A형: 屈木爲鐙’, ‘B형: 揉木爲鐙’, ‘C형: 斫木爲鐙’으로, 그리고 C형은 다시 륜부 내측 중간의 돌출부 유무에 따라 CI식과 CII식으로 분류하였다. 이 가운데 A형이 가장 고식이고, B형은 동아시아 전역에 분포하며, C형은 삼연 외에 고구려 영역 등에도 분포하는 것으로 보았다.
田立坤의 연구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중국 동북 지역의 4~5세기 고분에서 출토된 초기 등자의 제작 방식에 주목하여 이를 바탕으로 외형적 속성이 결정되게 된 기술 및 구조적 맥락과 각 형식의 변천 관계에 대해 살펴보았다는 점에 있다. 또한 이러한 분석을 진행하는 가운데 고구려의 등자에 대해서도 상당한 관심을 기울여 고구려 초기 등자의 제작 방식과 기원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는 점 또한 주목된다. 아쉬운 점은 한국과 일본 등 주변 지역 출토물에 대한 정치한 비교 분석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인데, 연구자의 추후 성과에서 지속적으로 보완되길 기대해볼 따름이다.
다음으로는 3부 ‘生産技術의 發展과 專門化에 대한 科學的 硏究’를 구성하고 있는 金奎鎬, 降幡順子의 연구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金奎鎬의 「三國時代 古墳 출토 金․銀․金銅製品의 특성 고찰」은 삼국시대 고분에서 출토된 금․은․금동 제품을 자연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그 특성을 밝혀내고자 한 연구이다. 구체적으로는 기존에 발표된 부여의 능산리 사지와 왕흥사지 및 경주 일원의 황남대총․금관총․교동 고분․계림로 14호분 등에서 출토된 황금제품, 그리고 이번 연구를 통해 새로이 분석 조사한 강릉 초당동 고분․영진리 유적, 양산 상심리 유적 츨토의 금동이식 등의 분석 결과를 기초로 삼국시대 고분에 부장되어 있는 금동이식의 순도를 포함한 재질적 특성을 제시하였다.
金奎鎬의 연구는 금․금동제품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통해 재질과 성분을 정확히 밝혀내 비교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부여 능산리 사지와 왕흥사지의 금은 순도가 백퍼센트인 순금이고, 경주 일원의 고분 부장품은 순금 제품과 20K 이상 높은 순도의 금제품에 속하는 반면, 신라권의 외곽에 위치하고 있는 강릉 초당동과 양산 상삼리의 금동이식은 순도가 20K인 것도 소량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매우 낮은 순도의 금제품, 심지어는 금에 비하여 은의 함량이 높은 금제품 또한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분석 결과는 중심과 지역의 문제를 연구하는데에도 일정한 시사점을 준다.
降幡順子의 「5세기부터 7세기 日本의 金·銀·金銅製品의 自然科學的 調査」는 5~7세기 일본 열도의 각지에서 출토된 야금 관련 유적과 도장구의 금․은․금동제품을 납동위체비 분석을 통해 원재료를 동정하였다. 연구 결과 은제품의 경우 출토 시기에 따라 납동위체비의 분포 범위가 다른 경향을 뛰고 있다는 점과 금동제 장식대검의 경우 6세기 후반에는 일본 열도에서 생산된 원료를 사용하게 되었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이외 백제에서 기원한 것으로 여겨지는 獣面打出帯金具의 원료는, 중국의 화중이나 화남 또는 한반도에서 생산된 것일 가능성이 있어 백제 유물과의 비교가 절실하다는 점을 제시하였다.
降幡順子의 연구는 여러 제약으로 새로운 유물을 분석하지는 못하였지만, 기존 분석 데이터를 종합하여 그간 크게 주목하지 못한 양상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왜계로 분류되고 있는 일부 금동제 장식대도 가운데 한반도에서 생산된 납이 사용된 것이 있고, 귀면타출대금구의 유력한 원료 생산지 가운데 하나가 한반도라는 점은 5~7세기 고대 한국과 일본의 교류와 관련하여 주목할만한 현상이다. 다만 은제품 분석에서 한일 양국의 은 광산 데이터가 충분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산지 추정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점이 아쉽다.
다음으로는 4부 ‘都市化와 初期國家의 文化景觀’을 구성하고 있는 李盛周, 余昊奎의 연구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李盛周의 「初期國家의 物質文化와 文化景觀」은 초기국가의 형성 과정에서 나타나는 물질적 양상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할 것인지, 그동안의 연구에서 집중해 왔던 국가 사회의 조직적 특성을 추론하고자 하는 관점을 넘어 중심지 형성과 고총군의 형성․위세품 제작 등의 물질적인 양상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고 그것이 당시 사회에서 어떠한 작용을 하였는지에 대한 담론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아울러 초기국가의 물질적인 양상이 이념의 물질화를 통해 나타난 것이라고 전제한 뒤, 한국 초기국가의 형성 과정에서 이념이 어떠한 방식으로 물질적 수단을 가지게 되며 그것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분석하였다.
李盛周의 연구는 도성의 출현과 고총 고분의 위계적 분포 및 위세품 분배 등의 초기국가에서 나타나는 물질적 양상을 단순히 국가형성론이라는 관점만이 아닌 초기국가의 중심지 형성을 과정적으로 살폈다는 점, 그 과정에서 물질적인 양상으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것이 지배 집단의 고분군이라고 보고 그 의미를 해석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또한 기존의 위세품의 분배 체계에 대한 논의를 넘어 비 실용적인 제작 기술이 경쟁적으로 발전하는 이유와 시기에 따라 위세품의 종류․재질․기술 등이 차별화되는 과정 등에 대해 검토하였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余昊奎의 「三國 初期 都城의 형성과정과 입지상의 특징」은 문헌 사료를 중심으로 하되 여기에 고고학적 조사 성과를 결합하여 삼국시대 초기 도성의 형성과 입지적 특징에 대해 연구하였다. 먼저 문헌 사료 분석을 통해 삼국시대 초기의 도성이 궁실과 신전을 갖춘 단계, 별도의 정무 시설과 대규모 창고 시설을 확충한 단계의 두 단계를 거쳐 완성되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어 고고학적 조사 성과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는 삼국시대 초기 도성이 왕궁을 중심으로 하는 왕성의 성격이 강하였고, 성벽을 경계로 도성 안팎을 구분하는 공간 관념이 아직 출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余昊奎의 연구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삼국시대 초기 기록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삼국시대 초기 도성이 확충되어가는 과정을 문헌 자료라는 구체적인 근거를 기반으로 발전적으로 분석하였을 뿐 아니라, 고고학적 조사 성과에 대한 검토를 통해 삼국시대 초기 도성이 늦은 시기의 그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도성의 구조와 형태를 띈 것이 아니라 왕궁을 중심 건축물로 한 왕성의 성격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였다는데에 있다. 왕성과 도성의 구분은 고고학에서는 분명하지만, 이 시기의 물질 양상을 문헌 사료를 통해 확실하게 반증한 점이 돋보인다. (총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