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⑩
고라신(갈릴리)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누가복음 10:13) 고라신에 살았던 유대인들은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우리처럼 복된 사람들이었다. 그들만큼 예수님을 많이 체험한 사람들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라신 사람들을 향한 예수님의 목소리에 귀기울여보면 그들 마음속에 정작 예수님은 없었던 것이다.
갈릴리 북쪽 호숫가에 예수님 제2의 고향으로 불리는 가버나움(Capernaum)이 있다. 이곳에서 곧장 산기슭을 따라 약 4㎞ 정도 올라가면 성경에서 언급하는 고라신이 나온다. 고라신은 해발 45~65m 경사 지역에 넓게 자리를 잡은 도시지만 갈릴리 호수가 해저 200m 정도 되다 보니 호수로부터는 245~265m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셈이나 마찬가지다.
고라신 지역에 유대 종교인들이 정착하고 도시를 형성한 시기는 대략 주후 1세기 후반부터라고 본다. 구약시대부터 갈릴리 지역(납달리와 스블론)은 유대 종교인들이 ‘이방의 갈릴리’(사9:10)라고 부를 정도로 편견을 가지고 폄하했던 지방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토록 편견으로 가득했던 유대 종교인들이 주후 70년 로마 군인들에 의해서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고 파괴되자 자신들의 거처를 갈릴리 지역으로 옮겨 정착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오늘날 유대 종교인들의 신앙 근간을 유지해주는 미쉬나(Mishnah)와 예루살렘 탈무드(Talmud)가 갈릴리 지방에서 완성되었다.
갈릴리 호수를 중심으로 북쪽 지역 일부와 북동쪽 지역(골란 지역)은 용암 분출로 인해 제주도와 같이 검은색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고라신이 바로 이와 같은 현무암 지역에 위치해 있다. 그러다 보니 유적지에 들어서면 가옥, 회당 할 것 없이 온통 검정 돌로 이루어진 도시가 눈에 들어온다. 보통 답사 일정상 이곳에 들르는 시간은 대부분 오후 1시쯤이다. 갈릴리 호수 주변의 높은 온도, 그리고 검은색 흙과 돌에서 뿜어져 나오는 태양 열기가 합해져 방문자들의 의욕이 단숨에 꺾이곤 한다. 이와 같은 고라신의 지형과 기후 조건은 이스라엘 전 지역 중 보리와 밀을 가장 빨리 익도록 만든다. 그래서 바벨론 탈무드의 기록에 의하면 하나님께 가장 먼저 보리의 첫 추수 한 단을 드리는 초실절을 준비하기 위해서 고라신에서 보리 단을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져갔다.
1869년 이후 고라신 유적지를 국립공원으로 보존하기 위한 마지막 발굴 작업(1980~1984년 )이 있기까지 크고 작은 연구들이 진행되었다(1926년에 막호울리와 오리에 의해서 회당 발굴이 완전히 이루어지고, 수케니 교수의 연구, 1962~64년 그 밖의 주변 지역 발굴이 진행됐다). 그때마다 학자들과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것은 마을 사람들의 종교, 생활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고라신의 회당이었다.
고라신 회당으로 올라가는 계단
이곳 회당은 온통 검은색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이층 구조로 추정하는데 주후 1세기 말에서 2세기 초에 세워진 것으로 초기 회당의 전형적인 건축 구조와 양식을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회당과 관련하여 특이한 것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회당 입구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계단 넓이와 높이가 일정하지 않은 구조다. 마치 예루살렘 성전에 오르는 계단의 구조와 동일한 의도를 가지고 고안된 듯싶다.
주후 5~6세기 회당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회당 내부 바닥 모자이크에 이방 신들의 모자이크 문양(Zodiac:12개의 별자리)이 등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1~2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고라신의 회당에도 비슷한 문양이 보인다. 땅이나 하늘에 있는 어떠한 형상이라도 새기지 못하도록 한 것이 율법인데 가장 경건한 유대 신앙인들의 회당 내부에 메두사의 모습이 돌에 새겨진 것이다. 이에 대해 그 누구도 시원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모세의 의자
고라신 회당에서 또 하나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마태복음 23:2절에 언급된 ‘모세의 자리’(랍비들이 회당에서 율법을 가르칠 때 앉는 자리로 마치 자신들만 모세의 권위를 독점적으로 계승한 것처럼 오만하게 처신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꾸짖을 때 예수께서 사용하신 풍자적 표현)가 그것이다.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돌의자가 기증한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채로 발견되었다.
갈릴리 지역 답사는 보통 온종일 이루어진다. 저녁쯤에 갈릴리에 도착해서 호텔에 여정을 풀고 다음 날 아침 일찍 호텔을 나선다. 오전 중에 골란고원을 거쳐 이스라엘 최북단(갈릴리 호수에서 70~80㎞) 헬몬산 기슭에 있는 바니아스와 단 유적지를 답사하고 갈릴리 호수로 돌아와 점심식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점심 식사가 1~2시간 늦어지는 것이 다반사다. 그렇다고 점심 식사 후 휴식을 취하거나 호텔로 이동하는 것도 아니다. 갈릴리 호수 주변에 있는 기념교회들을 방문해야 하루 일정을 마치기 때문에 이 모든 일정을 차질 없이 진행하기 위해서는 방문지마다 효과적으로 시간을 분배해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고라신은 단 지역에서 호수로 돌아오는 길목에 위치해 있어 언제나 점심시간에 쫓겨 가며 도착하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짧은 시간 둘러보며 각자 알아서 기념사진 찍고 다시 차에 오르는 것이 전부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서둘러 종종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면 이렇게 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고라신이 어떤 곳인가? 벳새다, 가버나움과 더불어 예수님께서 가장 많은 권능을 베푸셨던 곳이다(마 11:20-24, 눅 10:13-16).
고라신 회당
고라신에 살았던 유대 종교인들은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우리처럼 복된 사람들이었다. 그들만큼 예수님을 직접 경험하고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보시며 절규하듯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라며 고백하는 예수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면 정작 그들의 마음속에 예수님은 없었던 것이다. 고라신에 살았던 유대 종교인들은 많이 알았지만 작게 믿었던 것이다.
지금 유적지 사이로 만들어진 이 길이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그때 그곳에 있는 그 길이다.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이곳까지 온 우리가 정작 주님께서 가신 그 길을 걸어가면서도 주님을 만나지 못한다. 우리도 많이 알지만 작게 믿는 것은 아닌가 싶다.
고라신(Korazim)
예수님이 가장 많은 기사를 행했지만 믿지 않았던 도시(마11:20-24, 눅10:13-16)
미쉬나(Mishnah)
유대교인들은 구전 율법도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로 받은 것으로 성문 율법과 동일한 권위를 인정하고 있다. 이런 구전 율법이 주후 2세기 말 랍비 유다에 의해서 종합된 것을 미쉬나라고 부른다. 미쉬나는 씨앗(Zeraim), 절기(Moed), 여성(Nashim), 손해(Nezikin), 성물(Kodashim), 정결(Teharoth)의 6편으로 되어 있다.
탈무드(Talmud)
미쉬나에 주석을 더한 것이 탈무드이다. 4세기 후반 팔레스타인의 학자들은 예루살렘 탈무드(또는 팔레스타인 탈무드라고도 부름)를 편찬하고, 5세기에는 바벨론 탈무드가 편찬되었다. 탈무드는 유대인의 모든 도덕, 민속, 역사, 삶의 방식 등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첫댓글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을 걸어간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