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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까지는 뉴질랜드 북섬의 주요 명소들을 돌아보았다. 이번 호는 남섬의 시원한 빙하 이야기로 시작한다.
지금 한국은 영하의 추운 날씨지만, 뉴질랜드는 대개들 반라로 거리를 다니는 한여름이다. 이런 여름에 반바지 차림으로 오를 수 있는 빙하를 소개한다. 이것이 바로 뉴질랜드만의 특별한 아름다움이다.
빙하는 비록 그 움직임이 매우 느리지만 크레바스, 눈사태, 낙석 등 매우 위험한 요소들이 많이 도사리고 있다. 히말라야나 로키산맥 등 고산지대의 빙하는 거기에 이르기까지 대단히 많은 시간과 체력과 경비, 그리고 고소병 등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므로 소수의 전문 산악인들만이 빙하의 그 장대한 아름다움과 힘을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뉴질랜드 남섬, 그 중에서도 서부에 위치한 '남반구의 알프스(Southern Alps)'라 불리는(실제로는 알프스보다 몇 배 큰 규모인) 지역의 폭스 빙하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매력적인 빙하다.
타스만해에서 불과 20km밖에 떨어지지 않은 폭스 빙하는 해발 3,000m에서 시작해 250m선에서 끝나는데, 남섬의 국도 옆 엎어지면 코가 닿을 위치다. 게다가 빙하 주변에 각종 온대 식물군이 자라고 있다.
하지만, 빙하의 끝부분이 높은 기온에 노출되어 있고, 전체 빙하의 경사가 매우 심해 안전한 빙하라고는 할 수 없다. 경사가 완만한 20km가 넘는 타스만 빙하보다 훨씬 불안정한 빙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접근이 쉬우며 매력적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이곳에서는 비교적 싼 가이드 비용으로 빙하 트레킹이 가능한 여행상품이 마련되어 있다. 약 7시간 트레킹 가이드에 1인당 뉴질랜드 달러로 79달러(한화 약 50,000원 정도)이다.
이 빙하 근처에는 눈을 의심케 할 만큼 아름다운 메데손 호수(Lake Matheson)가 있다. 이 호수는 뉴질랜드 명소 중 최고의 포토제닉상을 받을 만한 풍경을 가졌다. 메데손 호수로 유입되는 물은 근처의 지하 토탄층을 지나면서 탄닌(Tannin) 색소가 녹아들어 아주 짙은 홍차색이 난다.
이 짙은 홍차색 물은 주위 풍경을 거의 원색 그대로 되비치는 한편 호수 사방으로 둘러싸여 있는 깊은 숲에 의해 어지간한 바람은 모두 차단돼 마치 거울 같은 평정을 유지한다. 이 수면에 뉴질랜드의 최고봉인 마운트 쿡과 그 다음인 마운트 타스만이 비추어지며 '풍경 중의 풍경(View of Views)‘을 연출하는 것이다.
최고의 히치하이킹(?)을 하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호키티카에 오후 7시30분에 도착하는 비행기를 탔다. 뉴질랜드의 소도시를 연결하는 비치크래프트(Beechcraft) 1900D라는 19인승의 작은 프로펠러 비행기인데, 사진을 찍기 위해 날개가 가리지 않는 맨 뒷자리를 주문했다.
비행기가 작아 낮은 고도로 비행하며, 모든 좌석이 창가에 있어 사진찍기에 더 없이 좋은 기종이다. 그러나, 남알프스 전 지역이 두터운 구름으로 덮여 있어 구름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다.
옆자리에 앉은 분이 목적지를 물어보기에 폭스 빙하에 간다고 하니 마이클이라고 인사하며, 마침 목적지가 같다면서 함께 가자고 한다. 공항에 도착하니 마이클이 다니는 회사의 존이라는 직원이 멋진 영국제 랜드로버 차량과 더불어 기다리고 있다.
폭스 빙하는 호키티카에서 차량으로 약 2시간30분 거리에 있다. 뉴질랜드 서해안의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 왼쪽으로는 3,000m가 넘는 고봉들이, 오른쪽으로는 거친 파도의 타즈만해가 저녁 노을을 받아 웅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간은 오후 9시가 다 돼 가는데, 여름의 긴 낮 때문에 아직도 붉은 노을이 서쪽 하늘을 적시고 있다.
뉴질랜드는 저위도에 있어서 뉴질랜드 최남쪽으로 내려가면 하루 중 16시간동안 해가 떠 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내려가다가, 폭스 빙하에 대해 기사를 쓴다고 하자, 아름다운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며 내일 아침 일찍 만나서 같이 사진 찍으러 가자고 한다.
아침 일찍 약속장소로 가니, 존이 차를 주차해놓고 기다리고 있다. 차량으로 약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도달하니, 헬리콥터 한 대가 기다리고 있다. 알고 보니 마이클은 이 지역 헬기투어회사 사장으로 이 지역 홍보를 위해 흔쾌히 헬리콥터 지원을 허락한 것이다. 폭스 글라시아는 인구 약 200명의 작은 마을인데, 주민들은 대개 폭스 빙하와 관련된 관광업에 대부분 종사하고, 몇몇 사람들은 숙박업과 농장을 하는 아주 단출하고 깨끗한 마을이다.
헬리콥터에서 내려다보니 주변에 사람이나 그밖의 것과 비교할 만한 것이 보이지 않아 그 규모가 실감나지 않는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개미보다 더 작은 사람들과 헬기가 빙하 위에 착륙해 있는 것이 보인다. 거대한 용이 꿈틀거리며 내려오는 형상의 이 어마어마한 빙하는 경사가 심한 곳은 얼음이 갈라져 비늘을 곧추세운 것처럼 보이고, 경사가 약한 구간은 물 흐르는 듯한 유동적인 모습으로 10km 남짓 내리닫고 있다.
빙하를 넘어가자 삼각형의 깨끗하고 웅장한 봉우리가 시선을 가로막는다. 바로 뉴질랜드 최고봉인 마운트 쿡이다. 헬리콥터는 빙하의 전 구간과 마운트 쿡, 마운트 타스만을 지나 저 멀리 푸카키 호수가 보이는 곳까지 갔다가 다시 빙하 위를 날아 출발지로 되돌아 왔다. 40~50분 동안의 이 비행은 뉴질랜드에서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비행이었다. 뉴질랜드 여행 중에 약간의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면, 권하고 싶은 투어다(www.mountainhelicopters.co.nz).
알파인 가이드 집결지인 주차장
새벽 6시30분. 남섬의 서해안에서 보기 드물게 맑은 날씨로 하루가 시작됐다. 계란 두 개를 완숙으로 프라이하고, 치즈 두 장, 양배추, 햄 두 장에 빵 3장을 덮어 ‘에너지’ 점심 샌드위치를 완성했다. 카메라와 물 2리터, 라면 한 봉지를 배낭에 넣고 출발 준비 완료.
아침 9시15분 드디어 마을 한 가운데의 ‘알파인 가이드’라는 트레킹 주관회사의 건물로 갔다. 마을이 워낙 작아 쉽게 찾을 수 있다. 회사는 가이드가 35명이나 있는 뉴질랜드 최대의 알파인가이드 전문회사로 1974년에 설립됐다.
간단한 주의 사항과 간이 아이젠, 그리고 묵직한 비옷 한 벌씩을 나누어 준다. 신발과 양말까지 모두 준비되어 있어 특별한 준비나 별도의 비용이 없이도 빙하 트레킹을 할 수 있다. 약 12명의 등반객에 2명의 숙련된 가이드가 한 조가 되어 움직인다.
우리의 탐험대장은 그레함이라는 연세 지긋한 분으로, 오늘의 7-8시간 당일산행을 책임질 사람이다. 빙하에 길을 낼 곡괭이와 각종 안전도구가 들어있는 커다란 배낭을 메고 오늘의 빙하 트레킹을 지휘한다.
빙하 입구까지 아주 오래된 버스로 이동하는데, 버스의 제작 연도를 보니 1953년이라고 적혀 있다. 스쿨버스로 사용되던 버스를 버리지 않고 이 회사에서 불하받아 수리 후 다시 사용하는데, 그 오래된 라운드형 디자인이 오히려 멋스럽다.
약 15분 정도 버스로 이동하니 빙하가 녹아 밝은 회색을 띠는 강이 보인다. 빙하로 향하는 트랙의 입구에는 넓은 주차장이 있는데, 주차장 주위부터 빙하가 깎은 절벽이 좌우에 위협적으로 버티고 서 있다.
이곳에서부터 트랙이 시작된다. 가이드인 그래함이 우리는 이미 빙하를 밟고 있다며, 곡괭이로 주차장 바닥을 파자 아무것도 없는 듯한 땅속에서 얼음 덩어리가 깨져 나온다. 빙하가 녹은 회색 물이 곳곳에 작은 연못들을 이루었는데, 맑은 물이 엷은 파란 색을 띄어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폭스 빙하 주차장~빙하 입구
빙하쪽을 향해 강 좌측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는데, 산기슭에서 강 옆까지 무너진 돌무더기들이 가득 차 있다. 폭우가 내리면 작은 개울의 수량이 많아져 이러한 돌들이 함께 쓸려 내려오므로 개울을 건널 때 발목을 다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빙하 끝부분에 도착할 즈음 빙하 왼쪽 숲길로 들어간다. 빙하 끝 보다 더 높은 고도에 이와 같이 온대림이 있는 곳은 세계적으로 매우 희귀하다고 한다. 지구온난화의 결과로 새로 생긴 이 숲은 약 40~50년밖에 되지 않아 아름드리 나무는 없지만 숲 전체에 이끼가 끼어 있고, 나뭇잎들은 모두 건강한 연록색을 띄고 있다.
40분 남짓 오르막 계단과 오르막길을 오르면, 손잡이로 체인을 만든 벼랑을 따라 트랙이 연결된다. 벼랑을 돌자 빙하 하단부에서 상단부로 굽이쳐 올라간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어제 헬기를 타고 본 모습보다 훨씬 더 역동적이다. 게다가 금방 땀이 식어 오싹할 정도로 찬 기운은 또 다른 감각을 통해 빙하를 느끼게 한다.
지그재그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빙하 좌측으로 내려가면 이곳에서부터 빙하를 밟는 트랙이 시작된다. 입구에서 끝에 강철 팁이 달린 지팡이를 하나씩 받고 출발장소에서 받은 아이젠을 신발에 착용한다. 아이젠은 탈착식 간이 아이젠으로 신발의 중앙에 착용한다.
빙하 입구는 높이 20m가 넘는 급경사라 빙하 얼음을 깨서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도 의미가 있지만, 이와 같이 녹아 없어질 얼음의 예술작품을 필자 같이 평범한 사람들도 경험할 수 있도록 ‘안전하게’ 만든 얼음계단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본다.
밝은 햇볕 속에서 빙하 횡단
얕은 크레바스에 얼음을 채워 만든 길 좌우의 벽에는 하늘색보다 더 파란 얼음이 보인다. 빙하 위에 흐르는 개울을 지나니 길도 없는 빙하 그 자체를 걷는 트래킹이 시작된다.
빙하 표면의 여러 가지 굴이나 구멍이 만들어진 원인을 알면 재미있다. 흰 얼음 위에 떨어진 나뭇잎 하나가 햇빛을 모아 깊이 1m나 되는 동굴이 되기도 하고, 빙하를 수직으로 뚫어 무시무시한 깔때기형의 배수구를 만들기도 한다. 나뭇잎의 짙은 색 때문에 주변의 얼음에 비해 더 많은 빛을 흡수해서 더 빨리 녹게 한 것이다.
약 2시간 정도 더 가니 비스듬하게 빙하를 횡단해서 빙하 우측에 도착하게 된다. 주변에 떨어진 집채만한 낙석들 사이에서 점심 식사를 한다. 이와 같은 집채만한 낙석 아래가 오히려 안전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져간 ‘에너지 샌드위치’와 생라면을 부숴 먹었다. 생라면은 다른 외국인들에게 매우 인기가 좋아 오늘의 최고 음식이 됐다.
이 빙하 얼음 속에는 여러 가지 역사가 묻혀 있다. 1800년대의 화산활동에 의한 검은 색 재가 섞인 얼음, 1990년대의 자연 발화에 의한 오렌지색 얼음층도 보인다. 그 외에도 빙하가 바위를 깎아 만든 고운 진흙이 눈에 띄는데, 이 진흙은 여성들의 피부 미용에 큰 효과가 있다고 하며, 주로 콧등에 바른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파란 색의 블루 아이스(blue ice?청빙)가 눈에 자주 띄며, 대개는 이물질이 포함되지 않은 아주 깨끗한 백색을 띄고 있다. 날씨가 워낙 맑아 서로 얼굴을 쳐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햇빛이 얼음에 반사된다. 따가운 햇살 속에 차가운 바람, 곳곳에 파란 색을 띄는 엄청난 규모의 얼음이 합해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
빙하의 중턱까지 올라가자, 빙하가 파낸 산 아래의 계곡이 한눈에 들어온다. 수백m 위쪽의 경사가 가장 심한 곳은 얼음이 톱날처럼 삐죽삐죽 튀어 나와 있다. 이 구간은 폭스 빙하 전체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가장 불안정한 지역이기 때문에 진입이 완전히 통제되어 있다. 빙하 중심부에 들어오니 간간이 낮은 저음이 들리는데, 빙하가 무너지는 소리가 얼음을 진동시켜 전해오는 것이다.
사막의 이집트인 입 다물지 못해
오늘 하루의 트래킹 코스가 루프 트랙으로 되어 있어, 내려가는 길은 올라온 길과 방향이 다르다. 일행은 빙하의 작은 틈새를 지나고 급경사, 그리고 평평한 면을 지나 하산했다. 시계는 어느덧 오후 4시를 가리킨다. 불과 6~7시간만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흰 얼음과 햇볕에 얼굴이 검게 그을렸다.
빙하를 내려와 아이젠을 벗고 너덜지대를 따라 내려갔다. 낙석이 많기 때문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내려가야 한다. 빙하 끝에 오자 수십m 높이의 빙하 터미널과 빙하 밑에 뚫려있는 터널을 통해 밝은 회색의 급류가 강이 되어 흘러나온다.
오후 4시30분 주차장에 도착했다. 평생 두고 하기 힘든 빙하 트래킹을 7시간의 당일 트래킹으로 경험했다. 등반이나 빙하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라도 상관없으며, 장비 역시 전부 가이드회사에서 제공하므로 편리하다. 이 트래킹을 완주하는 데는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의 평균 체력을 가지고 있으면 된다.
함께 올라간 사람들 중에 이집트에서 온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그 빙하의 감동과 추위, 그리고 규모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빙하를 보지 못한 대부분의 독자들도 실제로 빙하 트래킹을 해보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 재미있는 뉴질랜드
베들레헴·요르단·피라미드 마을도 있다
뉴질랜드는 국가의 역사가 아주 짧은 신생국가(?)이기 때문에 새로운 마을이 생길 때마다 마을 사람들이 나름대로 이름을 붙이는데, 재미있는 지명이 많다. 특히, 고대 도시나 성서에 나오는 이름들이 뉴질랜드의 작은 마을에 붙여져 있다. 그 중 재미있는 것으로는 우선 ‘베들레헴’, ‘예루살렘’, ‘유대’, ‘요르단’이다. 물론 중동 지방에 이미 존재하는 도시 이름이다.
영국의 ‘캠브리지’, ‘옥스퍼드’도 있고, 문명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 ‘바빌론’, 그리고 ‘파르나소스’도, 그리고 이집트의 ‘피라미드’라는 이름의 마을도 있다. 이중 캠브리지를 제외하고는 거의가 불과 몇 가구 살지 않는 아주 작은 마을들이다.
글·사진 김태훈 Information Network LTD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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