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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늑대
양민주
이솝 우화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교훈도 주지만, 늑대가 양을 물어가 잡아먹는다는 사실에서 무서운 동물임을 깨닫기도 한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지 않는 늑대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을까?
야트막한 산 아래 위치한 창녕군 유어면 진창리는 나의 안태 고향이다. 산을 넘으면 하얀 백사장의 낙동강이 흐르고 마을 앞에는 지금은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들로 변했지만 커다란 어울늪이 있었다. 나는 유년시절부터 청소년기를 거기서 보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고향에서 일어났던 늑대에 관한 희미한 사건 하나를 그려 본다.
어느 날 우리 마을에 이삼십 대로 보이는 젊은 형제가 이사를 왔다. 형은 가정을 이루어 어린 자녀가 몇 명 있었고, 동생은 출가하기 전으로 보였다. 그 사람들은 마을에서 제일 높은 위치에 토담집을 짓고 산비탈을 개간하여 담배농사를 지었다. 그 당시 담배농사는 정말 경이로웠다. 기후조건이 맞지 않는 지역에서 최초로 하는 농사였기에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때 비로소 나는 담배는 담배나무에서 잎을 따 말려 가루를 내어 종이에 만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젊은 사람들이 열심히 담배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동네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멀리서 담배밭을 바라보면 진한 연두로 무성하게 자란 담배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고, 불을 피워 담뱃잎을 말릴 때 피어오르는 연기 또한 아름다운 풍경이 되었다.
담배농사가 유난히도 잘 된 어느 해 여름밤인가보다. 농부의 아내는 농사일에 지쳐 마당에 덕석을 펴고 어린아이들과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깨어보니 아이 하나가 없어져 버렸다. 부랴부랴 이웃의 동네 사람들과 가족들이 횃불을 밝히고 아이를 찾아 나섰다. 아이는 담배밭 가운데 깊숙한 밭고랑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늑대가 아이를 물어다 뜯어먹고 간 것이었다. 이 처참한 광경을 처음 목격한 농부의 동생은 너무 놀란 나머지 혼이 나가버렸다고 했다.
그 당시 또래의 동네 아이들은 밤마다 모여 긴 막대기로 칼싸움도 하고, 편을 갈라 담력이 큰 날쌘 아이 한 명을 마을 깊숙한 곳에 숨겨두고 삼삼오오 모여 다니면서 먼저 찾아내는 편이 이기는 씨앗찾기라는 놀이를 했다. 고샅길을 돌아다니며 길의 모퉁이를 돌 때 가끔 그 혼이 나간 사람이 불쑥불쑥 나타나 겁을 주었다. 그 사람이 무섭기는 했지만, 사람을 해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정착하여 잘살아 보기 위해 일군 담배밭이 자식의 무덤이 되고 동생을 정신 이상자로 만든 그곳을 더는 볼 수 없었던지 한두 해를 더 살고 그 사람들은 마을을 떠났다.
어릴 적 여름밤이면 아버지는 마당에 덕석을 깔고 그 위에 모기장을 치고 주변에는 해충이 달려들지 않게 담뱃가루를 뿌리고 모깃불을 피웠다. 부엉이 울음소리 들려오는 모기장 안에서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별을 보며 늑대와 여우 이야기를 들으며 잠을 잤다. 잠잘 때마다 늑대가 나타날까 봐 무서워 아버지의 품속으로 파고들던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지금에 와서 믿기도 어려운 늑대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우연히 고향 유어면 진창리 소식을 알고 싶어 컴퓨터 검색을 하다가 희미하게 기억하는 사실이 신문기사로 보도된 내용을 찾았기 때문이다. 사라져버린 늑대가 신문 속에서나마 나에게 존재를 알리려 했는지 외면 못 할 인연으로 다가온 것 같아 놀랐다. 기사 내용을 그대로 옮겨보면 이렇다.
“경향신문 1965. 08. 04. 기사(뉴스). 늑대, 두 어린이 교살 창녕군하, [부산] 지난 2일 하루 동안에 창녕군하 두 곳에서 늑대에 몰려 2명이 즉사했다. ▲이날 밤 10시 30분쯤 창녕군 장마면 광리 780 박복수 씨의 장남 학원(6) 군이 가족들과 같이 집안 마당에서 잠자다 늑대에 물려 죽었다. ▲이날 새벽 2시 30분쯤 창녕군 유어면 진창리 태조 씨의 4녀 지녀(9) 양이 어머니와 함께 집안 마당에서 잠자다 늑대에 물려 죽었다.”
오십년이 지난 녹슨 기억을 떠올려주는 기사를 보면서 잠깐이나마 회상에 젖어보았다. 늑대는 왜 가축과 사람을 해치는 동물로 태어나 슬픈 역사를 신문에 남겼을까. 신문을 보고 유추해 보면 매우 굶주리고 지친 외로운 한 마리 늑대의 소행으로 보인다. 창녕군 장마면과 유어면은 이웃한 면으로 높지 않은 산의 능선으로 이어져 있다. 어슬렁거리며 산속을 헤매다 곤히 잠들어 있는 무방비의 아이를 발견하고 본능으로 배를 채운 것 같다.
본능은 야성적일 수 있지만 남을 속이는 거짓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양의 탈을 쓴 늑대’라고 부른다. 늑대는 정직함에도 사람에 의해 거짓말을 하는 동물로 매도되고 있다. 사람의 나쁜 면을 대변할 때 늑대에 견주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자연의 세계에서 늑대의 눈에 비친 인간은 단순한 적일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늑대의 본성인 야성을 존중하고 두려워하여 조심하였더라면 어땠을까.
늑대가 사람을 물어뜯어 잡아먹었다는 사실에서 무서운 동물로 인식됨은 틀림없다. 늑대가 지은 태생적 야성의 죄 때문일까? 지금은 인간이 우리나라에서 늑대를 멸종시켜 버렸다. 이젠 늑대를 무서워해야 할 이유가 없다. 늑대가 사라짐으로써 두려움과 무서워해야 할 감정마저 없어지는 현실이 되었다. 이는 사람이 약탈자 늑대가 되어간다는 방증일지도 모른다. 사람이 사물에 대한 두려움과 무서움을 잃어버린다면 사물을 함부로 다루어 세상은 황폐해질 것이다. 그 옛날 신문 기사에 등장하는 늑대가 그리운 건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