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음악목사가 된 어느 목사님의 일화이다.
그의 어린 시절의 꿈은 성악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는 찬양을 아주 잘했는데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고 한다.
혼자 있을 때에는 찬송이 잘 나오지만, 다른 사람이 있을 때는 공명이 되지 않고 목소리가 떨리고 눈 앞에는 막막함만이
아른거렸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음악목사가 되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신학 공부와 심방에만 몰두하였는데,
한번은 어느 자폐증 언어장애아를 방문해 자신의 부끄러움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찬양을 하고 있었다.
“두려워 말라. 어린 양이여, 땅과 하늘에 권세 잡은 이…”
그때 한 어린이가 손을 잡아 끌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무척이나 더듬거리면서 말이다.
“정도사앙님, 나와서 가티 풀러줘요.”(전도사님, 나와서 같이 불러줘요)
우리는 늘 자신이 잘하는 것만을 남 앞에 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자신감을 가지고 내가 못하는 것을 하는 사람은 그것을 정복할 수 있다.
당신은 당신의 약점에 대한 도전을 하고 있습니까?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 '주님의시선' 카페와 카페지기가 섬기는 '마산시민교회'가 더 풍성해 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합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빌립보서 4: 8-13
"한국인의 의식구조"라는 책을 쓴 모 신문사 논설위원 이 규태 씨는 이 책 속에서 '한국인의 숙명론적인 의식구조'를 논한 바 있습니다. 그는 흥부네 집을 인용하며 재미있게 한국인의 의식을 설명했습니다. 흥부는 아들을 25명이나 두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이 많은 아이들에게 옷을 지어 입히는 일만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래서 흥부는 옷 겸 이불 겸 해서 큰 멍석에다가 구멍 25개를 내고 그것을 아이들에게 덮어 씌웠습니다. 이러니 아이들 중에 하나만 화장실을 가려고 해도 자다말고 다같이 일어나 쭈루루 몰려나가야만 됐지요. 이런 아이들을 향해 흥부는 "옷도 못 입고 이렇게 고생하는 것은 다 너희들 타고난 팔자야"라고 말했습니다. 이 규태 씨는 이 이야기를 예로 들면서 운명을 체념적으로 받아들이는, 운명에 약하고 감정에 약한 한국 사람들의 의식을 꼬집고 있습니다. 이런 의식은 현실을 개혁하고 장애를 극복하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자세는 숙명에 매인, 운명에 끌려 다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한국인들의 이런 숙명론적인 의식은 그리스도 신앙으로 극복되어져야만 할 것입니다. 이런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간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사도 바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이런 바울의 고백은 숙명을 극복하는 신앙의 힘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폴레옹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지요?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
바울이나 나폴레옹이나 같은 말을 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 근본 바탕이 완전히 다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폴레옹은 자기 자신을 믿는 신념에서 한 이야기이고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과 섭리를 믿는 신앙에서 한 이야기입니다. 근본 바탕이 다르기 때문에 말은 같았어도 두 사람의 결말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말년에 나폴레옹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한 후 귀향살이를 하며 쓸쓸한 여생을 보냈습니다. 반면,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로마에 전함으로 세계를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바꿔놓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바울은 신약성경의 절반 이상을 기록함으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을 얻게 하는 전도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무엇에 근거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있었을까요?
본문을 통해 네 가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 바울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고 성령으로 거듭난 바울은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사울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을 반대하던 자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제자로 변화된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는 신앙적인 자기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자기 정체성(self-identity)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처럼 자기확신이 뚜렷한 사람이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게 됩니다.
신앙적인 자기확신이 세워지지 않으면 그 사람은 자기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모방적인 인생을 사는 것에 불과하고 모조품 인생, 허수아비와 같은 삶, 흉내내는 인생을 사는 것일 뿐입니다.
둘째, 바울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능력주시는 자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기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안에 있으며 성령이 자기를 지키고 보호하신다는 경험과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로마서 12장과 고린도전서 12장, 에베소서 4장에서 감동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은사에 대한 체험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내리시는 무한한 능력과 지혜와 은사를 경험했고(고전12:1) 그 은사와 능력과 뜨거운 사랑이 심령 속에서 불타고 있었기 때문에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선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바울은 여러 가지 자랑할만한 것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능력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좋은 가문의 사람이었고 많은 지식을 갖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비범한 인물에 들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능력이 이런 데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고백합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 된 우리들도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 안에서 이처럼 모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위대한 역사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런 역사를 이루시기를 원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셋째, 바울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긍정적인 생각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는 사람을 네 종류로 구분합니다. 먼저는 '안 된다고만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일평생 무슨 일 하나 제대로 성취하지 못하고 살게 된다고 합니다. '미지근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변덕쟁이입니다. 아침에 결심하고 저녁에 흩어 버리는 타입입니다. 또 '큰 소리만 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로는 만리장성을 쌓고, 말이 앞서고, 말로는 자신 있고, 말은 과장되지만 그 말에 힘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전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할 수 있다는 생각,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목표를 향해서 가능한 방법을 찾고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역사를 바꾸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적으로 이런 자세를 갖게 될 때 그는 복 받는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는 실패까지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는 "실패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라고 말합니다.
무슨 일을 하다가 실패했더라도 "이제는 끝이다, 내 인생은 절단 났다"고 절망하지 말고 "다시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패는 자기가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배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도 했습니다. "실패했으니까 모든 것이 끝났고 얻은 것 하나 없이 손해만 보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실패 때문에 실패하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웠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는 지혜를 얻었다"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또 "실패는 당신이 결코 그것을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약간 오래 걸릴 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실패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버렸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방법과 목적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로버트 슐러 목사는 "불가능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불가능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넷째, 바울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구체적으로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성공연구가로 불리는 나폴레옹 힐이라는 사람은 여러 사람을 조사한 후 성공과 관련해 흥미 있는 통계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조사결과 백 명 중 2명만이 자기 인생을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결혼에 있어서도, 직업에 있어서도, 그리고 자녀양육에 있어서도 스스로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2%뿐이라는 것입니다. 나머지 98명은 성공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왜 성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한결같이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실천력의 부족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바울의 고백도 모르지 않습니다. 긍정적 사고를 해야 하고, 믿음을 지켜야 하며, 목표를 세워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다 알면서도 안 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실천력의 부족 때문입니다. 아무리 생각이 좋고 계획이 좋아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위대한 인생을 살 수 있는 비젼과 방법을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바울처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고백과 간증을 하게 될 것이고 축복된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주 안에서 승리가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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