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지만 부드러운 지선 스님 2
법화경에 보면 구명리무염이란 말이 있다. 명예와 이익됨을 구하는 중생의 마음은 도무지 싫증낼 줄을 모른다는 뜻이다.
옛날 ‘일월등명불’회상에 묘광법사가 있었고, 그 묘광 법사에게 한 제자가 있었는데 이름이 구명이라 했다.
이 구명이라는 제자는 평소 명리를 좋아할 뿐, 경전을 외우고 익히는 데에는 게을렀다.
경전에서는 이 구명이라는 이를 미륵이라 하고 묘광 법사를 문수라 했다. 문수인 묘광은 부지런히 수행하고 경전을 익힌 덕에 연등블 등 여러 부처님의 스승이 되셨다. 미륵은 게으른 중에도 무수한 부처님을 친견한 공덕으로 육바라밀을 갖추고 이제야 겨우 석가모니 부처님께 미래의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를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아다시피 미륵은 미래의 부처님이다 불교는 누구나 깨달으면 부처님이 된다.
그렇다면 미래의 부처님이란 바로 우리들 자신이 아닌가. 문수는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로서 부처님이 될 모든 이들의 스승이다.
우리 모두는 문수보살을 스승으로 삼아 부처를 이루어야 하는 미륵인 것이다.
지금의 우리가 속된 명예를 좋아하고 이익을 좇아 분주하게 다니는 것이 바로 구명의 모습,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가지 희망은 그런 중에도 부처님을 친근히 해왔으니 장차는 부처님이 되리라는 믿음이다.
중생이 중생인 것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명리를 탐하는 마음 때문이다. 이것을 통칭 ‘상’이라고 한다.
금강경에서는 상을 4가지로 분리하고 이 4상을 버려야 성불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옛날부터 불가에서는 명리를 탐하고 불도를 실천하는데 게으른 이를 가장 천한 이로 취급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오늘날 한국불교의 현상을 돌아보니 모두가 명리승 뿐이다. 세속의 명리를 좇아 상내기를 좋아하고 불도수행에는 게으르다.
수행자가 명리를 좋아하면 아무도 존경하지 않는다. 옛 사람의 글에도 게으른 자는 천신이 싫어한다고 했다.
이 같은 결과가 지금 우리 앞에 나타나고 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오늘날 아무도 스님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존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어느 잡지에서는 종교. 기업, 학계 등의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이 크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설문 조사하여 발표한 일이 있다. 학계나 기업인은 차치하고 종교인을 보니 불교계의 스님으로는 성철 스님을 위시해서 의현, 법정. 지선 스님 같은 분들이 나왔다. 이 조사가 얼마나 공정하고 신빙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우선 이 네 분석 지지도를 다 합해야 겨우 20퍼센트 밖에 못된다는 사실에 놀랐다. 타종교의 모 인사는 76.4퍼센트의 지지도를 보였는데 말이다.
이따위 설문 조사 같은 것은 무시해도 좋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솔직히 나도 무시하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설문 조사와는 관계없이 현실적으로 불교계의 인사가 불교인이 아닌 일반 국민에게 얼마나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우리 자신에게 스스로 질문해볼 때 그렇게 긍정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불교를 대표하는 인사의 영향력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 불교의 대국민 영향력이라고 볼 때 실로 슬픈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왜 불교는 우리 사회에 아무런 영향력도 없고 불교인은 국민들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들 불자가 불교를 현대 사회 속에서 실천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불자로서 할 일을 다 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사회는 우리 불교인들을 존경해 주지 않는 것이다.
모두들 불교라는 이름을 팔아 자신의 명리만을 취할 줄 알았지. 자기라는 상을 버리고 보살의 바라밀행을 올곧게 실천해 내지는 못한 탓이다. 그저 절집 안에서 찾아오는 신도들에게 입으로만 불교를 말하고 마음으로만 했을 뿐 몸으로 실천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중에도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그 설문 조사에 지선 스님 같은 이의 이름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성철 스님은 한국불교의 상징적인 조계종의 종정이라는 직분을 가진 분이요, 의현 스님은 종단을 대표하는 총무원장이라는 소임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법정 스님은 철저한 무소유의 삶을 살면서 좋은 글로 감화를 주는 분으로 일찍부터 대중에게 이름이 아려져 존경받고 있는 분이다. 여기에 비하여 지선 스님은 종단에 아무런 벼슬도 없다. 그저 스님으로 민중의 고통을 들어주는 것이 불교를 올바르게 실천하는 것이란 생각 하나로 동분서주 바쁘게 살아오신 분이다. 그야말로 상을 버리고 자기 자신을 버린 보살행을 해 오신 분이다. 그러한 지선 스님이 불교계를 대표하여 일반 국민에게 영향력이 있다고 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앞으로는 우리들이 명심해야 할 점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세상에 이름이이 알려지고 하는 것이 불자의 본분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직 불교를 지금 우리들이 몸담고 있는 사회에 어떻게 실천해 내느냐 하는 일이 우리의 사명이라는 사실이다.
그 실천 하나를 올곧게 해낼 때 존경도 받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성스러운 권위가 따라오게 될 뿐이다. 다만 두렵고 부끄럽게 생각해야 할 점은 부처님 가르침을 온전하게 실천하지도 못했는데 세상에 허명이 높아져 명리를 탐하는 사람이 될까 하는 것이다.
진정 우리들의 마음 자세가 이러할진대 세상의 찌꺼기 같은 사람들의 허명은 돌아볼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다.
출처 ; 효림 스님 / 그 산에 스님이 있었네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