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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9일 화요일 [(홍)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여자에게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마태 11,11). 예수님의 이 말씀처럼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에 앞서서 그분의 길을 닦고 준비한 위대한 예언자이다. 이러한 요한은 헤로데 임금의 불륜을 책망하다가 헤로데의 아내 헤로디아의 간계로 순교하였다(마르 6,17-29 참조). 세례자 요한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한 것은 4세기 무렵 그의 유해가 있던 사마리아의 지하 경당에서 비롯되었다. 주님께서는 예레미야 예언자에게, 허리를 동여매고 일어나라며, 내가 너를 유다의 임금과 대신들과 사제들과 나라 백성에게 맞서게 하겠다고 하신다(제1독서). 헤로데는 자기 생일에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추어 손님들을 즐겁게 하자 그에게 맹세한 대로 세례자 요한의 목을 베게 한다(복음).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1,17-19 그 무렵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17 “너는 허리를 동여매고 일어나,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그랬다가는 내가 너를 그들 앞에서 떨게 할 것이다. 18 오늘 내가 너를 요새 성읍으로, 쇠기둥과 청동 벽으로 만들어 온 땅에 맞서게 하고, 유다의 임금들과 대신들과 사제들과 나라 백성에게 맞서게 하겠다. 19 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7-29 그때에 17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붙잡아 감옥에 묶어 둔 일이 있었다. 그의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 때문이었는데, 헤로데가 이 여자와 혼인하였던 것이다. 18 그래서 요한은 헤로데에게,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다. 19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20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기 때문이다. 21 그런데 좋은 기회가 왔다. 헤로데가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을 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22 그 자리에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가 춤을 추어, 헤로데와 그의 손님들을 즐겁게 하였다. 그래서 임금은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나에게 청하여라. 너에게 주겠다.” 하고 말할 뿐만 아니라, 23 “네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 하고 굳게 맹세까지 하였다. 24 소녀가 나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무엇을 청할까요?” 하자, 그 여자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라.” 하고 일렀다. 25 소녀는 곧 서둘러 임금에게 가서,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청하였다. 26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27 그래서 임금은 곧 경비병을 보내며,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 경비병이 물러가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28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 29 그 뒤에 요한의 제자들이 소문을 듣고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무덤에 모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세례자 요한이 탄생하였을 때, 유다의 온 산악 지방 사람들은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루카 1,66) 하고 말하였습니다. 아기의 아버지 즈카르야는 성령으로 가득 차 “아기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리고 주님을 앞서 가 그분의 길을 준비하리니”(루카 1,76)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요한 1,29)이라고 부르며, 자신의 사명은 그분을 이스라엘에 알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요르단 부근의 모든 지방을 다니며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습니다. 요한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로 권고하면서 기쁜 소식을 전하였고, 헤로데 영주에게 바른말을 하여 결국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요한에게 앙심을 품은 헤로디아는 그를 죽일 기회를 얻습니다. 그녀의 딸 살로메는 고관대작들이 모여 있는 잔치에서 춤을 잘 춰 헤로데의 환심을 사자, 상으로 요한의 목을 청합니다. 물론 이는 헤로디아의 간계입니다. 헤로데 임금의 명으로 참수당한 요한의 목을 본 헤로디아는 승리감에 도취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의 수난은 하느님의 섭리로 이미 준비된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의 길을 준비하는 요한의 죽음은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인 요한은 자신의 수난과 죽음으로 이 세상의 권력자들이 메시아를 어떻게 다룰지 예언하였습니다. 요한의 수난은 우리에게 회개의 세례와 수난의 세례를 받도록 초대합니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
세례자 요한의 황홀한 일몰 구약시대의 마지막 대예언자로서 구세주 오심을 지극정성으로 준비했던 세례자 요한의 황홀한 일몰을 묵상합니다. 참으로 겸손했던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세사의 전면에 등장하시자 잘 차려놓은 무대를 지체 없이 예수님께 넘겨드리고 자신은 조용히 무대 뒤로 사라졌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마지막 모습은 참으로 을씨년스럽고 신산(辛酸)하기 그지없습니다. 사악한 복수의 화신 헤로디아의 희생양이 됩니다. 어둡고 깊은 감옥에 갇혀 있다가 목이 잘려져 쟁반 위에 담겨집니다. 그리고 그 쟁반 위에 담겨진 세례자 요한의 머리는 헤로디아 앞으로 배달됩니다. 그 머리를 보고 깔깔대며 희희낙락했을 헤로디아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의인 중에 의인이었던 세례자 요한의 이 끔찍하고 고통스런 최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할 정도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억울한 죽음은 어쩌면 곧 뒤따라올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의 예표입니다. 예수님의 선구자이자 예언자였던 세례자 요한의 죽음 안에는 더 억울하고 더 천부당만부당한 예수님의 죽음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 땅을 거쳐 간 모든 사람들 가운데 가장 큰 고통, 가장 큰 슬픔, 가장 큰 좌절을 느꼈던 사람이 누구일까요? 그분은 세례자 요한이 당했던 참수의 고통보다 훨씬 더 끔찍하고 처참한 십자가형의 고통을 겪으신 분,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고통을 겪으신 분, 고통의 가장 극점에 가면 거기에 누군가가 한 분이 서 계시는데, 그분이 바로 고통의 인간, 십자가의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슬픔을 치유해주기 위해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고통 가운데 가장 큰 고통을 몸소 겪으신 분이 계십니다. 바로 수난 당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죄와 고통, 십자가와 죽음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이런 인간을 예수님이 구원하실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 자신이 먼저 밑바닥 인간의 연약함과 질병과 고통을 직접 짊어지셨고, 고난과 저주의 쓴잔을 기꺼이 마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무게가 너무 무거워 죽을 지경인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조금만 참아. 힘내!” 하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보다는 우리보다 더 무거운 십자가를 선택하셔서 직접 지고 우리보다 앞서 가십니다. 이처럼 우리의 하느님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던지 굳이 당신이 겪지 않으셔도 될 고통조차도 함께 겪으신 자비의 하느님이십니다. 우리보다 더 큰 고통을 겪으시면서 우리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십니다. 결국 세상살이가 힘들 때 마다, 고통이 너무 커서 포기하고 싶을 때 마다 우리가 찾아가야 할 곳은 하느님 아버지의 극진한 자비의 표시인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그곳에서만이 우리는 참 위로와 참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고통과 십자가, 일부러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수난과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하느님 아버지께 간절히 청했습니다. “아버지 피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거두어주십시오.” 하고 청했습니다. 그러나 살다보면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고통과 십자가가 있습니다. 백번 깨어나도 이해할 수 없는 억울한 사건, 난 데 없이 다가온 정말 원치 않은 불행, 이유가 없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이런 신비로서의 십자가 앞에서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십자가에 대한 긍정적 수용과 하느님의 시간을 기다리기 이 두 가지입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쓴 소리 기꺼이 듣기
어제 제가 있었던 성당의 주일학교 교사하던 자매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직 미혼임에도 불구하고 약간은 엽기적인 면이 있는 자매입니다. 저는 자신을 포장하는 사람보다 그런 소탈한 면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 자매는 조금 지나치게 소탈합니다.
어느 날 이 자매가 원피스를 입고 직장에 출근하였다고 합니다. 속이 다 비치는 원피스라 속치마를 입고 입어야하는 옷이었습니다.
직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한 아저씨가 자기를 부르며 쫓아오더랍니다. 이 자매는 자신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러는 줄 알고 그냥 모른 척 하고 더 빨리 걸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사람의 발걸음도 빨라졌고 갑자기 자기 몸으로 그 자매를 가리더라는 것입니다. 이 자매는 “아이! 왜 그러세요?”라고 쏘아붙였습니다. 그러자 그 아저씨가 얼굴이 빨개져서, “팬티에 속치마가 씹혔어요.”라고 말해주더라는 것입니다. 이 자매는 속치마가 팬티에 씹혀서 올라가 팬티가 다 비치는 채 한 참을 걸어왔던 것입니다. "너무나 창피했지만 그 아저씨가 참 고맙더라고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충고해 주는 사람도 좋은 사람이지만 그 충고를 고맙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겸손함도 중요할 것입니다. 충고를 해 주는 사람이 처음엔 곱게 보일 수가 없습니다. 저도 사람들에게 제가 잘못하는 것이 있다면 충고를 해 달라고 청하곤 합니다. 그런데 너무 많은 잘못의 지적을 한꺼번에 받으면 그만 짜증이 나고 맙니다.
사실 충고를 받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인정도 받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서로의 잘못된 점을 충고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동반자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아내는 남편에게 또 남편은 아내에게 가장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충고를 해 주면 상대가 자신을 깔본다는 느낌에 잔소리 한다고 생각할 수 있어서 특히나 주의를 기울여야합니다. 따라서 충고해 주는 사람은 상대가 자신보다 못하다는 마음으로 판단하여 충고해서는 안 되고 또 충고를 받는 사람도 상대가 자신을 낮게 본다는 생각으로 충고해준다고 생각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헤로데와 헤로디아는 세례자 요한의 충고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헤로데는 눈의 가시 같은 요한의 충고를 기꺼이 듣기는 하였지만 결국엔 그의 목을 베라는 마지막 결정을 내립니다.
요한은 예언직을 마지막까지 충실하게 수행한 것입니다. 예언자의 운명은 순교입니다. 왜냐하면 충고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준에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충고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도 목숨을 걸고 잘못을 지적해 주는 사람만큼이나 큰 사람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결국, “예언자가 예루살렘 아닌 곳에서 죽을 수 있겠느냐?”하시며 당신도 당신이 하신 예언직 때문에 순교하셔야 함을 미리부터 아시고 계셨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눈의 가시처럼 여기고 그리스도를 없애버리려 하였기 때문입니다.
헤로데는 자신을 구원으로 이끌어 줄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충고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요한은 자신의 직무를 다 했으니 성인이고, 헤로데와 헤로디아는 그 충고를 받아들일 겸손이 없었으니 성인을 죽인 살인자가 되고만 것입니다.
본당 수녀님을 오래 하신 분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수녀님께 젊은 사제와 일하는 것이 편한지, 연세 드신 신부님과 함께 일하는 것이 편한지를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그 수녀님이 젊으신 분과 일을 하는 것이 말도 잘 통하여 편할 것이라는 대답을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수녀님의 대답은 반대였습니다.
그 수녀님은 젊은 신부님과 일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털어놓으셨습니다. 젊은 신부님은 수녀님들의 처지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연세가 있으신 신부님들이 편하다고 하셨습니다.
듣고 보니 그 말도 맞는 것 같습니다. 사제들에게 무엇을 충고해 주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는 모든 것들이 옳은 줄 알게 되고 어떤 때는 안하무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조금씩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이런저런 충고를 듣게 되고 그것을 받아들여 행동을 고쳐나가면 조금씩 더 성숙하여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연세 드신 신부님들이 젊으신 분들보다 훨씬 자비로워지는 것을 봅니다.
한문 시간에 외웠던 것이 생각납니다.
“양약은 고어구나 이리어병하고 충언은 역어이나 이리어행이다.” 즉,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고, 좋은 충고는 귀에 쓰나 행동을 고치는 데는 이롭다는 말입니다.
자신에게 좋은 충고를 해 줄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두는 것은 바다에서 나침반을 지니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달이나 북극성은 날씨에 따라 구름에 가리어질 수도 있지만 나침반은 항상 옆에 가지고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나침반을 옆에 두고 그 조언을 달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겸손함이 더 중요할 것입니다. 사람들의 충고를 주님의 충고로 받아들이고 자신을 변화시켜 나갈 수 있는 겸손함을 청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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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자 聖 요한님 수난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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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ome with the Head of St John the Baptist-CARAVAGGIO. c.1607. Oil on canvas, 90,5 x 167 cm. National Gallery, London
성 베다 사제의 강론에서
(Hom. 23: CCL 122,354. 356-357)
*성 베다 사제 학자 축일:5월25일.인창동성당게시판1181번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으심의 선구자
주님의 탄생과 복음 선포와 죽으심의 복된 선구자인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투쟁에서 하늘까지 놀라워 할 만한 용기를 보여 주었습니다.
지혜서가 말하는 바와 같이 "그가 사람들 눈에 벌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해도 불멸의 희망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의 탄생일을 축제의 기쁨으로 경축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는 자신의 수난으로 이 날을 거룩히 하였고 자신의 붉은 피로써 빛나게 하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기가 주님에 대해 이미 증거한 것을 순교로써 확인하였으니
우리는 오늘 그를 영적 기쁨으로 기념하고 마땅히 공경해야 하겠습니다.
복된 세례자 요한이 감옥의 사슬을 견디어 내고 자기 목숨까지 바치게 된 것은
우리 구속주이신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박해자가 그를 보고 그리스도를 부인하라고 하지 않고 진리를 말하지 말라고 하였지만
그럼에도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 죽었습니다.
그리스도 친히 "나는 진리이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요한은 진리를 위하여 자기 피를 흘렸기 때문에
그리스도에 앞서 태어나고 설교하며 세례를 베풂으로써 장차 탄생하시고
복음을 전파하시며 세례를 베풀려 하시는 그리스도를 증거한 것과 같이,
그분을 앞서 수난당함으로써 미래 그분이 당하실 수난을 예시했습니다.
이 위대하고 훌륭한 사람은 오랫동안 감옥의 사슬을 견디어 낸 다음 자기 피를 흘려 생애를 마쳤습니다.
자유와 천상 평화의 복된 소식을 전했던 그는 악인들에 의해 사슬에 묶였습니다.
빛의 증인으로 이 세상에 와 빛 자체이신 그리스도께로부터
빛을 발하면서 불타오르는 햇불이라는 말을 듣는 명예를 얻은 그는 감옥의 어둠 속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세상의 구속주께 세례를 베풀 특권을 받고
성자께서 말씀하신 성부의 음성을 들으며
또 성자께 성령의 은총이 내리는 것을 보게 된 그는 자신의 피로써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행복을 보상으로 받으리라는 확신을 지닌 그런 사람에게는
영원한 진리를 위하여 일시적인 고통을 당하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니라 오히려 가볍고 바람직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죽음은 본질적으로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요한에게는 기꺼이 받아들일 만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고백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의 팔마를 얻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을 특권뿐만 아니라 그분을 위해서 고난까지 당하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라는 사도 바울로의 말씀은 여기에 잘 맞는 말씀입니다.
바울로는 또 뽑힌 이들이 그리스도를 위해 고통당하는 것은 그리스도로 부터 받은 특권이라고 말합니다.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비추어 보면 우리가 겪고 이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Salome with the Head of St John the Baptist-CRANACH, Lucas the Elder
Panel.Bob Jones University Collection, Greenville
천박한 명예심을 가진 왕의 술취한 맹세,유혹적인 춤,왕비의 증오에 가득 찬 마음이 한데 어울려
요한 세자의 순교를 불렀다.
이 위대한 예언자는 그를 앞서간 수 많은 구약 시대 예언자들의 죽음을 슬퍼했다.
거부와 순교,’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는 잘못을 나무라는 데 주저하지 않았고 진실을 이야기하는데 망설이지 않았다.
그런데 왜? 자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고 그가 가진 것은 무엇인가?
이 위대한 예언자는 구세주를 맞이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예비하신 사람이었다.
그가 주장했던 유일한 권능은 야훼의 성령이었다.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다.
그분은 나보다 훌륭한 분이어서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다."(마태 3,11)
성서는 많은 사람들이 요한을 따랐으며 그에게서 위대한 힘을 기대하고 있었다고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다.
그러나 요한은 결코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사람들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는 그의 부르심이 준비를 위한 것임을 알았다.
때가 왔을 때, 그는 그의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었다.
"다음날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다시 그곳에 서 있다가 마침 예수께서 걸어가시는 것을 보고
"하느님의 어린양이 저기 가신다."하고 말하였다.
그 두 제자는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라갔다."(요한 1,35-37)
그리스도가 가는 길을 가리켰던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다.
그의 삶과 죽음은 하느님과 인간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것이었다.
그의 단순한 생활양식은 지상의 소유로부터 완전한 초월이었다.
그의 마음은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부르심과 하느님께 집중되어 있었다.
하느님의 은총을 확신하는 그는 심판,회개,구원의 말씀을 전하는 용기를 가졌다.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 귀를 기울여야 할 부르심이 있다.
아무도 요한의 사명을 되풀이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는 그 같은 사명의 부르심을 받고 있다.
예수를 증거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소임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 의 지위가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말과 행위를 통해 다른 이들이, 예수님이 하느님이심을 아는 기쁨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유한한 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 구원의 무한한 은총에서 힘을 얻어야 한다.
"그 제자들은 요한을 찾아가 ’선생님, 선생님과 함께 요르단강 건너편에 계시던 분이 세례를 베풀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증언하신 바로 그분인데 모든 사람이 그분에게 몰려가고 있습니다’하고 말하였다.
요한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사람은 하늘이 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 앞에 사명을 띠고 온 사람이라고 말하였는데
너희는 그것을 직접 들은 증인들이다.
신부를 맞을 사람은 신랑이다. 신랑의 친구도 옆에 서 있다가 신랑의 목소리가 들리면 기쁨에 넘친다.
내 마음도 이런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요한3,26-30)
Beheading of St John the Baptist-DANTI, Vincenzo. 1569-71.Bronze, height: 243 cm.Baptistry, Florence
[성서의 인물]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세례자 요한 - 허영업신부.평화신문606호
세례자 요한처럼 당시의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 인물도 드물다.
세례자 요한이 활동한 시기는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가 그야말로 희망이라고는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암흑기였다.
이때 홀연히 나타난 세례자 요한은 그야말로 한줄기 빛이었으며
마지막 꺼져가는 희망의 불씨를 일으킨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철저하게 고통으로 점철된 비극의 인물이었다.
세례자 요한은 사제인 즈가리야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 사이에서 하느님의 은총으로 태어난 늦둥이었다.
그는 예수님과 인척이며 약 반년정도 먼저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콘]세례자 요한, 6세기 경
두번째로 오래된 이콘으로, 세례자 요한 왼쪽으로는 그리스도가,
오른쪽으로는 성모 마리아가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향해 보고 있다.
■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는 가죽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살았다.
요한이 사람들 앞에 나섰을 때 그의 말과 행동은 모든 이스라엘들의 마음속에서 폭발적인 힘과 에너지로 나타났다.
그의 출현에 대한 충격은 삽시간에 전 이스라엘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요한이라는 사람의 말을 들으면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갈 정도로 시원하다니까.”
“정말이야, 그분의 거칠 것 없는 말씀을 들으면 우리의 영혼이 깨끗해지는 기분마저 들더라구요.”
사람들은 요한의 말을 들으러 구름처럼 요르단 강으로 몰려들었다. 그의 선포는 너무나 힘있고 분명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
그의 가르침은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이 늘 외치던 메시지였다.
그러나 당시의 바리사이파나 율법학자들, 그리고 사두가이파나 열혈 당원들이 외치는 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그들 모두의 주장과 가르침은 조금씩 달라도 한가지 공통적인 것은
율법에 대해서는 열성적이고 하느님의 주권과 왕권에 대해 희망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한은 당시의 종교, 정치 지도자들과는 전혀 다른 주장을 했다.
요한은 예언자라는 점에서 당시의 여느 사람들과는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다른 이들은 미래에 이스라엘이 결국 승리할 것이라는 메시아에 대한 고대를 선포한 반면,
요한은 철저하게 재난과 멸망을 예고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않으면 처참하게 멸망할 것이다.”
그의 이런 선포의 목적은 이스라엘이 회개하도록 하는데 있었다.
요한은 죄인으로 구분되는 그룹, 즉 창녀, 세리, 군인들뿐 아니라 율법학자, 바리사이에게도 회개를 호소했다.
자신들은 의인이라 자처했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저 요한이라는 놈의 정체는 뭐야?”
그의 말은 지나칠 정도로 혹독하고 독설에 가까울 정도로 날카로웠다.
그러나 그의 말은 설득력 있었고 위엄이 있었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심지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소문마저 생겨났다.
요한은 백성들의 지도자인 사두가이파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서슴없이 말했다.
“너희는 겉과 속이 다르고 백성들에게 짐만 지우는 놈들이다. 너희는 독사의 자식들이다.”
“뭐라고, 당신 말 다했어?”
심지어는 유다의 왕인 헤로데까지도 호되게 질책했다.
요한은 헤로데가 자신의 동생의 아내인 헤로디아를 처로 맞아들인 일과 그 밖의 잘못된 일을 비판했다.
이 소식이 헤로데의 귀에 들어가자 그는 노발대발하여 화를 가눌 수가 없었다.
“여봐라, 요한이란 발칙한 놈을 옥에 가두어라!”
결국 요한은 왕에게 미움을 사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요한이 주장한 것은 이스라엘의 모든 이들이 인격적으로 회개하는 것이었다.
백성의 지도자나 왕도 여기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사람들이 요한에게 모여들었다.
“저희들이 회개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신들이 회개하려면 먼저 죄를 고백하고 세례를 받으시오.”
요한이 베푸는 세례는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회개의 표지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세례 운동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급속도로 번져 나갔다.
일반 백성들에게 많은 인기와 존경을 받았던 요한은 당연히 정치 세력의 견제를 받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국 요한은 헤로데 왕에게까지 서슴없는 말을 하여 참수를 당하고 만다.
■ 지도자는 비판의 소리 경청해야
세례자 요한은 명예나 권력을 탐하지 않고 정권에 대한 두려움 없이 옳은 소리를 외쳤던 에언자였다.
그의 용기는 당시 사람들 뿐 아니라 오늘에도 깊은 인상을 준다.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옳은 소리를 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높은 자리나 명예를 누릴 때는 더욱 그렇다.
잘못을 잘못이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는 자신을 버리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때로는 침묵을 지키는 소극적인 행동은 악을 동조하고 방조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사람들은 비판의 소리를 듣기 싫어 한다. 오히려 옳은 소리를 하는 사람을 미워하고 박해를 한다.
그러나 진정한 지도자는 귀에 역겨운 비판의 소리를 들으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멸망과 재앙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도자들은 비판의 소리를 겸허하게 귀 기울이고 달콤한 소리만을 하는 이들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The Virgin Appearing to Sts John the Baptist and John the Evangelist-DOSSI, Dosso
1520s.Oil on wood transferred to canvas, 153 x 114 cm.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구약시대에는 국민을 학대하고 향락에만 흐르는 폭군이 있으면
하느님께서는 곧 선지자를 보내어 그들에게 경고하셨다.
예컨대 아하즈왕에 대한 이사야 선지자의 충고 같은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폭군들은 그 잘못을 고치지 않고 오히려 충고해 주는 사람들은 독사와 같이 미워하며
그 생명을 빼앗는 일이 허다했다.
주님의 선구자요 구약의 최종의 예언자인 성 요한 세례자도 이러한 비운의 희생자 중 한 분이었다.
주 예수게서 공생활을 시작하셨을 때,
헤로데 아티파스라는 자가 로마 제국의 승인을 얻어 유다 분국의 왕위에 올랐다.
이는 저 베들레헴에서 무죄한 아기들을 학살한 헤로데의 아들인데,
부전자전이라 이도 역시 성격이 잔악무도해 그 정실 왕비인 베드이누의 왕 알레타스의 딸을 버리고
동생인 필립보의 아내 헤로디아를 취한 말할 수 없는 비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그런데도 보통 모세의 율법을 엄격히 이행한다는 바리사이나 그의 사람들도
왕의 위엄을 두려워해 누구하나 맞대고 충고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러한 때에 감히 왕의 궁전에 나타나 "동생의 아내를 데리고 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기탄없이 충고한 분은 곧 성 요한 세례자였다.
주님의 길을 바르게 하고 그 백성을 준비시키기 위한 사명을 띠고
빈부 귀천이나 남녀 노소의 구별 없이 다만 회개하는 길로 인도하던 이 고행자(苦行者)는
오직 주님의 뜻에 어긋나는 죄악을 책할 따름이요, 상대자의 신분 여하는 안중에 두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요한의 충고에 양심의 가책을 받은 것은 왕 자신보다도 헤로디아쪽이었다.
그녀는 왕을 꾀어 곧 요한을 체포해 마케루스 시외에 있는 헤로데 성의 지하 감옥에 유폐시키게 했다.
그리고 기회를 봐서 그를 죽일 것을 왕에게 재촉했으나 헤로데는 요한이 위대한 예언자요,
국민의 존경을 받는자임을 알고 그 반동이 두려워 이를 승낙치 않았다.
그런데 마침 헤로디나에게 좋은 기회가 왔다. 헤로데 왕이 생일을 맞아 왕궁에는 성대한 축하연이 벌어졌고,
각국의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귀빈들이 늘어앉았다.
그때에 헤로디아는 자기가 데려온 딸 살로메로 하여금 헤로데 왕이 가장 기뻐하는 일장의 무용을 하게 했다.
눈썹과 눈이 바르고 몸맵시가 아름답게 균형 잡힌 그녀의 율동은 축하연에 모인 사람들을 매혹케 하고
그들의 마음을 흡족케 했던 것이다.
무용이 끝나자 사방에서 우뢰와 같이 울려나온 박수 갈채의 소리에 헤로데도 면목을 세워준 기쁨을 못 누르고
"참 잘 했다. 잘 했어. 네 소원을 말해 보아라. 무엇이든지 들어 주마.
네가 청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주겠다. 내 왕국의 반이라도 주겠다” 하며 굳을 약속을 했다.
무엇을 청할지를 모르는 살로메는 그의 어머니와 의논했다.
헤로디아는 지금이야말로 요한의 생명을 빼앗을 기회라 생각하고 살로메의 귀에다 이렇게 무서운 말을 전했다.
“요한 세례자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서 가져다 주십시오”하고 청하게 했다.
벌레도 죽일 줄 모르는 딸의 입에서 설마 이런 참혹한 말이 나올 줄은 몰랐던 헤로데의 놀람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만장의 빈객들 앞에서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주겠다”한 약속을 어기는 것은
왕으로서의 체면을 상실할까봐 내심 후회하면서도 하는 수 없이 경비병을 시켜서
옥중에서 요한의 목을 자르게 하고 그 머리를 쟁반에 담아 살로메에게 주었던 것이다.
성 예로니모가 전하는 말에 의하면, 헤로디아는 딸에게서 그 머리를 받자 증오에 가득 차
바늘로 그 혓바닥을 무수히 찔렀다 하니, 이 얼마나 가공스러운 여성이었던가!
이와 같이 주님께서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가장 큰 인물이라는 절찬을 받은
요한 세례자는 정의를 위해 귀중한 최후를 바쳤다.
이는 또한 세상을 구속하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거룩한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으로
끝까지 주님의 제자로서 적합한 죽음을 했다고 할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그의 제자들은 그 유해를 거두어 근처에 있는 묘지에 정중히 매장했는데,
후에 사마리아에 있는 엘시세오 선지자의 무덤에 합장했다.
또 그의 머리는 각지에 이송되어 처음에는 시리아의 에메사에, 다음은 콘스탄티노플에 보존되었으나,
1204년에는 프랑스의 아미안 시에 이송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유다의 유명한 역사가 요셉 플라비오에 의하면, 악왕 헤로데는
전처의 아버지 알레타스와의 전쟁에서 패배해 로마 황제 카리쿨라에게 왕위를 박탈 당하고
그 후 헤로디아와 살로메와 같이 갈리아 지방에 유배가서 쓸쓸한 일생을 마쳤다 하며,
살로메는 살얼음 위를 거닐다가 빠져 얼음에 목이 졸려 죽었다 한다.
St. John the Baptist-GRECO, El
c. 1600.Oil on canvas, 111 x 66 cm.
Fine Arts Museums of San Francisco, San Francisco
구약의 마지막을 순교로서 장식하신 주님의 사촌 세례자 성 요한 님이시여
님의 희생을 기억하면서 지난 날의 악습을 완전히 씻을 수 있도록 천상 기도의 축복을 보내 주옵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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