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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교회] 분향하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향을 드리는 기본 동작은 두 가지인데, ‘익투스’(ictus)와 ‘둑투스’(ductus)입니다.
익투스는 향로를 높이 들고 분향하는 대상을 향하여 밀었다가 뒤로 당김으로써 향이 대상을 향해 분출되게 하는 동작이며,
둑투스는 익투스 동작을 하다가 향로를 가슴 쪽으로 잡아당겨서 멈추는 것입니다.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277항은 분향하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분향이 ‘공경의 의미’를 지니는 경우에는 향을 드리기 전후에 깊은 절을 합니다. 향을 드리는 구체적인 방식은 익투스와 둑투스를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아래처럼 세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 대부분의 대상에는 익투스의 횟수에 상관없이 둑투스 세 번으로 향을 드립니다. 다만, 제대에 준비된 예물 자체는 아직 공경의 대상이 아니므로 ‘봉헌의 의미’로 절 없이 분향하며, 십자가와 제대보다 먼저 분향하는데, 둑투스 세 번으로 분향할 수도 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방식대로 십자를 세 번 그으면서 분향할 수도 있습니다.
둘째, 성인과 관련된 대상에는 익투스 횟수에 상관없이 둑투스 두 번으로 향을 드리며, 이는 미사를 시작할 때만 할 수 있습니다. 성모상을 포함하여 공적으로 공경하도록 전시된 성인들의 유해와 성화상이 이에 해당합니다.
셋째, 제대는 공경의 대상이어서 절해야 하지만, 향을 드릴 때에는 ‘제대의 신학 표상인 십자가’에 향을 드리기 전후에 깊은 절을 하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제대에는 둑투스 없이 익투스를 반복하면서 향을 드립니다. 대부분의 본당처럼 제대가 벽에서 떨어져 있고 십자가가 제대 뒤 벽면에 있는 경우에는 제대 주변을 돌면서 익투스를 반복하여 향을 드리다가 십자가 앞을 지날 때에 십자가에 둑투스 세 번으로 향을 드린 후 계속하여 제대에 분향합니다. 제대 뒤 벽이 아니라 제대 위나 옆에 십자가가 있는 경우에는 제대에 앞서 먼저 십자가에 분향합니다
[기도하는 교회] 설탕을 첨가한 포도주를 미사주로 사용할 수 있나요?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322항은 “성찬례에 쓰일 포도주는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으로, 다른 물질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천연 포도주여야 한다.”고 기본 원칙을 제시합니다. 미사에 사용할 포도주를 다른 물질과 혼합해서는 안되며 진정성이나 출처가 의심스러운 포도주를 사용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됩니다.(구원의 성사 50항)
그러나, 미사에 사용되는 포도주는 쉽게 변질되지 않도록 다소 높은 도수를 유지하는 것이 관건인데, 포도 재배 상황에 따라 포도의 당도가 일정 수준에 미치지 못할 때에는 도수를 올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설탕을 첨가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한국 기후에서 재배한 포도가 당분이 적으므로, 한국 주교단의 청원에 따라 신앙교리성은 1972년 12월 16일자로 “지역적 실정에 따라서는 미사주의 장기 보존을 위해 필요하다면 설탕의 혼합량이 12% 이상이 되어도 좋다.”는 허락을 교황 성하로부터 받아서 한국 주교단에 통고하였습니다.(『경향잡지』 1973년 2월호, 통권 제1259호, 11쪽)
한편, 시중에 판매를 목적으로 유통되는 포도주는 당도를 높이고 도수와 향미를 유지하기 위해 설탕 외에도 여러 가지 다른 물질을 혼합할 수 있으므로 시중에 유통되는 포도주를 미사주로 사용하는 것은, 부득이한 사유와 그에 따른 교구장의 허락이 없다면, 피해야 합니다.
주교회의는 미사주에 관하여 유효하게 합의하고 구체적인 규정들을 정할 수 있습니다.(「성찬례에 쓰는 빵과 포도주에 관하여 주교들에게 보내는 회람」 7항, 2017년 6월 15일, 경신성사성 N 320/17) 예를 들어, 주교회의는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수도회나 다른 단체에게 해당 국가와 수입 국가에서 성찬례에 쓰는 빵과 포도주의 생산과 보존과 판매에 관하여 검사를 수행하도록 위임할 수 있습니다.(『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2018년 57호, 121-124쪽)
[전례력 돋보기] 묵주 기도의 탄생과 본래 의미 - 10월 7일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150번의 성모송
묵주 기도는 후대에 와서 빛의 신비가 추가됐지만 전통적으로 환희·고통·영광의 신비를 묵상하며 150번의 성모송을 바치는 것이 근본이다. 그런데 150번의 숫자는 구약 성경 시편 전체의 숫자 150과 일치한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시편을 낭송하는 것을 핵심 요소로 하는 성무일도의 형태를 묵주 기도가 답습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묵주 기도는 전례에서 바치는 시편 기도를 대중화하면서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묵주 기도의 탄생
3세기부터 사막의 은수자들은 하루에 시편 1편부터 150편까지 모두 바치며 돌멩이나 곡식 낱알로 그 수를 기억했다. 뒤이어 형태를 갖춘 로마의 성무일도는 150편의 시편을 일주일 동안 반복없이 전부 바치는 원칙을 매우 강조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시편집도 귀하고 글을 몰랐던 신자들을 중심으로 긴 시편 대신 외울 수 있는 주님의 기도를 150번 바치는 관습이 생겨났다. 나아가 12세기에 예수님의 강생의 신비에 대한 신심이 확산되면서 주님의 기도 대신 성모송의 앞부분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루카 1,42 참조)를 150번 바치는 기도가 널리 퍼졌다.
이런 초기 형태의 묵주 기도가 확산될 수 있었던 건 ‘묵주 기도의 사도’라고 불리는 성 도미니코(1170—1221년)의 역할이 컸다. 성인전을 보면 성모님이 도미니코 성인의 환시 속에 나타나 이단과 맞서 싸울 영적 도구로 묵주 기도를 바치라고 분부하셨다는 전설이 있다. 그만큼 도미니코 성인과 도미니코회 수도자들은 묵주 기도를 설교와 함께 열심히 바쳤고 또 널리 전파했다. 성모송과 묵주 기도가 오늘날과 같은 형태가 되고 환희·고통·영광의 신비로 확정된 것은 1569년, 역시 도미니코회 출신 교황님이셨던 비오 5세 때의 일이다.
10월 7일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과 묵주 기도 성월
비오 5세 교황님이 묵주 기도를 공인한 지 2년 뒤인 1571년 10월 7일, 이탈리아 남동쪽 그리스의 레판토 인근 해역에 군함들이 집결했다. 언제나 서구 유럽을 위협하던 이슬람 제국과 오스만 투르크에 스페인 왕국을 필두로 한 교황청, 베네치아, 말타 공화국 등의 그리스도교 연합군이 레판토 해전을 벌이게 된 것이다. 이 전투에서 패한다면 로마와 서유럽의 그리스도교는 이슬람군의 무참한 칼날 아래 놓이게 될 운명이었다. 비오 5세 교황님은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가능한 많은 신자가 승리를 염원하는 묵주 기도를 바칠 것을 명하며 기도 행렬에 앞장섰다. 결국 기도가 이루어져 레판토 해전은 그리스도교의 승리로 끝났다. 교황님은 바로 다음날인 10월 7일을 ‘승리의 묵주 기도 축일’로 정했다. 이후 묵주 기도와 축일은 급속도로 확산되었고, 묵주 기도는 마리아 신심의 가장 뚜렷한 상징이 되었다.
클레멘스 11세 교황님은 1716년 스페인 지역에서 거행되던 10월 첫 주일의 ‘복되신 동정녀의 거룩한 묵주 기도 축일’을 전 교회로 확대했다. 나아가 1883년 레오 13세 교황님은 10월을 로사리오 성월로 지정했다.
현재는 1960년 전례력 개정으로 10월 7일에 축제를 지내며 그 명칭도 ‘복되신 동정녀의 거룩한 묵주 기도 축일’에서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로 변경했다. 명칭의 변경은 의미가 깊다. 이전에는 단순히 묵주 기도와 성모님의 도우심에 의한 승리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구세사 전체에서 은혜로운 전구로 도움을 주시는 성모님의 역할을 기억하는 축제로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성모님을 통해 예수님께로’
2002년 10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예수님의 공생활의 주요 사건에 초점을 맞춘 ‘빛의 신비’를 추가하시며 묵주 기도의 본래 의미를 다시금 강조하셨다. 묵주 기도의 초점이 성모님께 교회의 승리나 이단으로부터의 보호를 비는 차원을 넘어 그리스도와 성모님의 전 생애를 묵상하며 예수님의 신비 안으로 신자들을 이끌며 기도에로 옮겨진 것이다. 마치 복음의 요약집과도 같은 묵주 기도의 신비를 통해 ‘성모님을 통해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성모님 공경의 본래 의미가 잘 드러나게 되었다.
묵주 기도 안에서 성모님을 부를 때 성모님은 즉시 우리들의 시선과 마음을 예수님께로 향하게 해 주신다. 묵주 기도의 복되신 어머니 안에서 예수님의 현존을 느끼고, 그분의 신비 안으로 젖어 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이 아름다운 계절에 우리가 더욱 의미있게 묵주 기도를 바치는 방법일 것이다.
[기도하는 교회] 성찬 전례를 위한 예물 준비는 어떻게 하나요?
먼저 성찬 전례 전체의 중심이며 주님의 식탁인 제대를 준비합니다. 제대 위에는 성체포, 성작 수건, 성작과 성반, 성작, 그리고 미사 경본을 올려둘 수 있습니다. 신자들이 성찬 전례 동안 제대에서 일어나는 ‘신비의 행위들’을 쉽게 바라볼 수 있도록(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307항) 제대 위에는 오직 미사 거행에 필요한 것만 두어야 합니다. 회중의 시선을 배려하여 제대 위에 잡다한 물건들(물수건, 물컵, 손수건, 휴지, 『매일미사』, 프린트물 등)을 어지럽게 올려두지 말아야 합니다.(2023년 7월 2일자 주보 <기도하는 교회>)
그다음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될 빵과 포도주는 신자들이 제대에 가져오는 것이 좋습니다. 이는 과거 신자들이 전례 때 쓸 빵과 포도주를 자기 집에서 가져오던 전통의 영적인 가치를 살리기 위함입니다.(총지침 73항) 보통 주일이나 대축일 미사에는 신자를 대표하는 봉사자가 빵과 포도주를 들고 제대를 향해 행렬합니다. 예물봉헌자는 제단 앞에 도착하여 주례사제에게 예물을 건네주기 전후에 절합니다. 이는 ‘용무가 있어 다가갈 때와 용무를 마치고 물러날 때 절한다’는 기본원칙에 따른 것입니다.(주교예절서 77항) 이때 모든 신자들이 함께 절할 이유는 없으며 경건하게 마음으로 동참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미사에 사용하는 빵과 포도주는 관련 규정을 준수하여 생산한 것이어야 합니다. 성찬례에 사용할 수 있는 빵은 순수한 밀가루로 빚고 새로 구워 부패의 위험이 전혀 없어야 하며, 포도주는 포도로 빚은 천연의 것으로 부패하지 않아야 합니다.(교회법 제924조; 총지침 322항; 구원의 성사 50항) 한국가톨릭교회에서는 몇몇 봉쇄 관상 수도원에서 제병을 만들고 있으며, 포도주 역시 변질되거나 화학성분이 첨가되지 않도록 주교회의의 관리하에 미사주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교회] 보편지향기도는 어떻게 바치나요?
교우들과 함께 드리는 미사에서는 원칙적으로 이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69항) 평일 미사라도 보편지향기도를 바칠 수 있으며, 특히 미사가 시작되기 전 바치는 각종 기도들은 미사 준비를 위한 침묵을 위해서라도 보편지향기도와 함께 바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주보 2755호, 4월 30일자 <기도하는 교회> 참조) 주례 사제의 맺음기도 앞에 공동체의 특별한 지향을 덧붙여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전례헌장 53항, 총지침 70항)
보편지향기도는 개인이 필요한 것을 청하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해 절실히 필요한 하느님의 은총을 청하는 기도입니다. 교회는 이 기도와 관련하여 지향의 내용과 순서를 이렇게 정해두었습니다:
1. 거룩한 교회를 위하여,
2. 위정자와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3. 온갖 어려움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위하여,
4. 지역 공동체를 위하여.(총지침 70항)
매일미사에 제시된 기도문을 사용하기보다는 각 공동체가 위 지침을 지키면서 스스로 기도문을 준비하여 바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주례 사제는 주례석에서 이 기도를 이끌며, 처음에 ‘손을 모으고’ 간단한 말로 기도에 초대하고, 마지막에는 ‘팔을 벌리고’ 맺음기도로 이 청원을 마칩니다.(총지침 71항, 138항) 보편지향기도를 대표로 바치는 사람의 자리는 독서대입니다.(총지침 197, 309항) 그러나 다른 알맞은 곳에서도 할 수 있으며 부제, 선창자, 독서자, 또는 다른 평신도가 대표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총지침 71항)
[슬기로운 ‘전례상징’] 혼인성사의 상징: 합의와 반지, 그리고 축복
2025년 한국은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20%가 넘는 고령사회에 진입하고, 2047년엔 서울 인구도 145만 명 줄어든다고 합니다. ‘인구감소’라는 용어가 자주 사용되며 그에 대한 여러 가지 이유 중에 저출산을 가장 큰 원인으로 이야기하지요. 결혼을 당연한 삶의 과정이라 여겼던 부모 세대와 달리, 현재의 청년 세대에게 결혼과 출산은 선택이 되었으며, 또한 하나의 숙제가 되었습니다. 결혼하고 싶어도 정규직 직장을 얻기도 힘들고 자녀에게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으며, 집 장만은 꿈이 되어버린 사회 현실은 청년들을 더욱 힘들게 합니다.
인류의 역사 안에서 교회는 혼인을 하느님 창조 사업의 지속, 그리고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 안에서 생각하고 하느님의 은총이 풍성한 성사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혼인성사에서 이러한 교회 지향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혼자들의 합의’와 ‘주례 사제의 혼인축복’에서 드러납니다.
거룩한 혼인 계약을 맺는 정혼자들!
두 사람은 서로 맺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창세 2,24)라는 구절을 통해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떠남’과 ‘결합’은 혼인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두 움직임입니다. 부모로부터는 육적·심리적·경제적으로 떠나야 합니다. 그리고 정혼자 두 사람이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과정을 설명하는 움직임이지요. 두 사람이 맺어지는 것을 하느님께서 축복하시고, 교회 공동체가 축하해주며 증인이 되어주는 것이 혼인성사이지요.
그러나 서로가 혼인 계약을 맺는 끈이 굴레가 되어서는 안 되고, 오히려 언제고 다시 그들을 갈라놓으려고 위협하는 것들에서 보호하는 끈이어야 합니다. 이 끈을 ‘사랑’이라 하지요. 이 사랑에 대해서 두 정혼자는 하느님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요한 4,8).
혼인하려는 뜻을 주님께 엄숙히 확인받는 정혼자들!
혼인 예식의 정점은 아무래도 정혼자들이 참석한 모든 이 앞에서 주님께 엄숙히 자신들의 혼인하려는 뜻을 확인받는 ‘질문’과 ‘합의’입니다. 주례 사제는 정혼자들이 자유로운 마음으로 혼인하려고 하는지, 또 서로 신의를 지키고 자녀를 받아들여 양육할 뜻이 있는지를 묻고 정혼자들은 각각 대답합니다. 그리고 정혼자들은 서로 오른손을 잡고 자신들의 뜻을 밝힙니다. “나 아무는 당신을 아내로 맞아들여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할 때나 아플 때나 일생 신의를 지키며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할 것을 약속합니다”.
이 약속을 정말 ‘검은 머리 파 뿌리’가 될 때까지 지킬 수 있을까? 안셀름 그륀은 저서 ‘혼인성사’에서 “혼인성사는 소유욕과 자기 합리화와 오해 때문에 늘 부서지기 쉽고 위협받는 두 사람의 사랑을 그리스도가 흠 없이 온전하게 함을 의미”하며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던 예수님의 사랑이 신랑 신부의 사랑 속으로 흘러들어와 그 사랑을 변화시켜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곧 인간적 노력으로는 혼인 합의를 제대로 지켜나가기 힘들기에 우리를 구원하려고 모든 것을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필요함을 말합니다.
영원한 사랑의 상징인 반지!
혼인 합의를 통하여 정혼자들은 이제 ‘신랑 신부’로 불립니다. 합의에서 말로 신의를 드러냈다면, 이제는 반지라는 표지를 교환하면서 신의를 표현하고, 결혼반지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받습니다. 일반적으로 상대의 왼손 약지에 끼워주면서 다음의 말을 합니다. “나의 사랑과 신의의 표지로 당신께 드리는 이 반지를 받아 주십시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드립니다.”왜 결혼의 표지가 반지일까? 반지의 상징적 의미는 둥근 형태에서 비롯됩니다. “영원”을 나타내는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는 일종의 반지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끈을 맺어서 매듭을 만들어 고리 모양으로 둔 것 같은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반지는 병이나 재앙에 대한 보호, 자유 신분이라는 표지, 사회적 특권 지위의 징표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혼인할 때에 서로의 결합을 상징하는 의미의 반지 교환은 고대 로마의 풍습으로 그리스도교가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신의의 표지인 반지는 신랑 신부가 영원히 결속되어 있고 사랑이 그들 안의 모든 불완전한 것을 온전히 완성시키며 그들 서로가 신의를 지킬 것이라는 징표가 되어야 하지요. 그래서 서로가 선물이며 디딤돌이 아니라 걸림돌이라 여겨질 때, 결혼반지를 보면서 서로가 말로 표현했던 신의와 그에 따른 사랑에 얼마나 충실했는지를 성찰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주님께서 축복한 반지임을 기억하며 주님께 부부가 겪는 역경을 이겨나갈 힘과 지혜를 청하면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데 큰 도움이 되지요.
하느님의 축복으로 완성되는 혼인성사!
신랑 신부의 합의와 결합이 혼인성사의 근본이지만 그 절정은 축복과 함께 이루어지는 영성체입니다. ‘혼인축복’은 일반적으로 주님의 기도 후에 행하지만, 캐나다와 독일은 혼인 예식 안에 배치했고, 이탈리아는 반지 교환 이후에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두었습니다.
축복 기도를 살펴보면, “하느님의 딸 아무에게는”이라고 하며 신부(新婦)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만, 신랑(新郞)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습니다. 다만 “남편”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옛 북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로마의 규정과 풍습, 그리고 코린토 1서 11장 2~5절에 표현된 바오로 신학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혼인축복’은 유다 전통에서 유래된 혼인축복인 토비야의 기도(토빗 8,5-8)을 연상시킵니다. 축복은 구원 역사에서 활동하신 아버지 하느님을 기억하고, 성령을 청하며,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중개를 통하여 신랑 신부에 대한 은총을 간구합니다.
혼인을 준비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들의 혼인미사에서 읽힐 독서를 둘이서 함께 읽고 고민하여 선택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부부의 사랑을 더욱 굳건히 하고 자녀들을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양육하는데 기초가 되는 성경 구절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의 사랑은 ‘나는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한다’라는 원칙에 따르고, 성숙한 사랑은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받는다’라는 원칙에 따른다. 성숙하지 못한 사랑은 ‘그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라는 것이지만 성숙한 사람은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대가 필요하다’라는 것이다”라고 ‘사랑의 기술’에서 에리히 프롬은 성숙한 사랑의 차원을 말해줍니다. 여러분의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요?
자신의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를 살펴보는 것과 함께 혼인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혼인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리라는 ‘환상’은 결혼 생활을 ‘환장’하게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하느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펼쳐진 과정을 보면, 사랑은 아프고 고통을 인내하는 과정이며, 이 과정에서 만나는 기쁨과 행복의 순간들 덕분에 끝까지 갈 수 있는 힘을 얻는 여정이 아닐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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