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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를 두려워하는 야곱
32: 1∼12
○ 에서를 만날 준비
1. 야곱이 그 길을 진행하더니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2.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왕상2:8, 눅2:13
3. 야곱이 세일 땅 에돔 들에 있는 형 에서에게로 사자들을 자기보다 앞서 보내며 수24:4
4. 그들에게 부탁하여 가로되 너희는 이같이 내 주 에서에게 고하라 주의 종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라반에게 붙여서 지금까지 있었사오며
5. 내게 소와 나귀와 양떼와 노비가 있사오므로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고하고 내 주께 은혜 받기를 원하나이
다 하더라 하라 하였더니 창33:8, 15
6.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가로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인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창33:1
7.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한 종자와 양과 소와 약대를 두 떼로 나누고 창35:3
8. 가로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
9. 야곱이 또 가로되 나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10.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리를 조금이라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삼하7:18
11.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하옴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냄이니이다 잠18:19
12.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정녕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창28: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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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은 형 에서를 향한 두려움과 갈등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갈등과 두려움과 미움의 관계를 해결하기 전에는 야곱의 마음에는 평강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 해가 지나기 전에 여러분의 관계의 어려움이 해결되기를 축원합니다. 갈등을 가지고 새 해를 맞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특별한 뜻이 있어서 화해와 용서에 대한 말씀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야곱이 외삼촌이자 장인인 라반의 집에서 살았던 20년은 갈등의 세월이었습니다. 그는 가까스로 외삼촌의 집에서 도망치다시피 나왔습니다. 그러나 라반에게 추적을 당해서 그와 다시 만나는 난처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 와중에 라반은 야곱을 헤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이 상황에 개입하셨고 덕분에 야곱은 어려움을 모면합니다. 드디어 하나님의 도움으로 야곱은 처자식과 재산을 모두 이끌고 그토록 그리워 하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에 오릅니다.
그러나 그토록 그리워했던 고향 땅이었지만 그곳으로 가는 것이 즐겁지만은 않았습니다. 멀리서 있을 때는 그립기만 했던 아버지의 집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는 두려움으로 떨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절망감마저 느낄 정도의 상황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20년 전 집을 떠나올 때 형에게 사기를 쳐서 장자권을 빼앗은 사건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집으로 돌아가고자 했을 때 제일 마음에 걸리는 것은 형 에서였습니다. 에서는 야곱에 대한 분노를 품고 그를 죽이려 했었습니다. 야곱이 집에서 도망나올 때 어머니 리브가는 ‘네 형 에서가 너를 죽이려 하니 나는 두 아들을 한 날에 잃을 수 없다. 그러니 도망가라’고 일러줍니다. 그리고 리브가는 에서의 화가 풀리면 야곱이 집으로 돌아오도록 조처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스스로 고향으로 돌아가야 겠다고 결단하고 라반의 집을 떠날 때에 이르러서도 리브가에게는 끝내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리브가로부터 아무 소식이 없었다는 이야기는 형 에서가 마음을 풀지 않아서 계속해서 동생에 대한 감정이 나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야곱과 에서의 오랜 갈등
야곱은 이미 라반의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입니다. 어렵게 라반의 집을 떠나온 데다가 라반과 계약을 맺어서 서로의 땅을 침범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한 상황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내리셨기 때문에 야곱은 어쩔 수 없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무서운 형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야곱은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이런 갈등은 우리의 가족들과 형제들 사이에도 있고 직장에서도 있습니다. 겉으로는 서로가 다 편안해 보여도 속에서는 갈등과 증오가 끓고 있는 것입니다. 가족이란 서로 보지 않을 수도 없고 헤어질 수도 없는 사이입니다. 그렇지만 가족끼리 서로 사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복수하고 죽이고 싶어하는 경우를 우리는 보게 됩니다. 돌아온 탕자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집을 떠난 탕자, 그는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아버지의 간섭을 피하면 행복해지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돈이 있으면 행복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아버지의 집을 멀리 떠나 돈을 다 쓰고나자 불행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돼지치기가 되어 돼지밥을 먹고 살아야 하는 신세가 되었을 때에야 후회를 하며 아버지의 집을 그리워 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아버지의 집에는 돌아가고 싶지만 아버지가 용서하시고 받아들여주실 것인가를 고민합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아들로서가 아니라 품꾼으로는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생각으로 집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합니다. 아마도 그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한걸음 한걸음이 불안했을 것입니다. 야곱의 마음도 그랬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기
야곱에게는 갈등이 많습니다. 그는 이 갈등을 해결하지 않으면 결코 행복할 수 없었습니다. 인간관계의 갈등을 가지고서는 돈도 명예도 소용없습니다. 부모, 친구, 형제사이의 갈등이 풀어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로 화해를 생각하며 금년이 지나기 전에 우리들 안의 모든 갈등과 미움과 화해되지 않은 것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풀어지기를 원합니다. 이 모든 갈등이 다 풀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갈등관계에 있는 이들에게 찾아가십시오. 야곱은 이런 갈등이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길이 즐거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웠습니다.
1, 2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그 길을 진행하더니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하나님은 언제나 야곱보다 한 걸은 앞서 가십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야곱을 더 사랑하셨습니다. 야곱이 썩 잘한 일도 없고 야곱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게 처신한 것도 아닌데 하나님은 야곱을 무조건 사랑하십니다. 야곱이 위기에 처했을 때도 라반의 꿈에 나타나셔서 야곱을 도우십니다. 그리고 에서를 만날 야곱의 두려움을 아시기에 천사를 보내서 동행하게 하십니다.
야곱은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여러분도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에 차지 않아도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그분의 조건없는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군대를 만났는데 너무나 인상적인 만남이어서 그곳에 ‘마하나임’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마하나임’은 ‘하나님의 큰 무리’라는 뜻입니다.
천사들은 야곱과 하나님의 약속대로 고향에 갈 때까지 야곱과 동행합니다. 야곱은 형 에서와 화해하기를 원합니다. 어떻게 화해는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용서할 수 없는 사람, 화해될 수 없는 관계에 화해와 용서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야곱을 통해서 발견합니다.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기도
화해와 용서의 첫 번 째 단계는 기도입니다.
생각하면 사람이 움직이지만 기도하면 하나님이 움직이십니다. 특별히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어떤 수를 쓰거나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관계는 더 깨지고 어려워 집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인간의 관계는 풀어지지 않습니다. 인간관계는 하나님이 풀어주실 수 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이렇게 어려울 때를 맞이해서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주셨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여러분 어떤 화해든지 기도하고 시작하십시오.
3∼5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세일 땅 에돔 들에 있는 형 에서에게로 사자들을 자기보다 앞서 보내며 그들에게 부탁하여 가로되 너희는 이같이 내 주 에서에게 고하라 주의 종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라반에게 붙여서 지금까지 있었사오며 내게 소와 나귀와 양 떼와 노비가 있사오므로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고하고 내 주께 은혜받기를 원하나이다 하더라 하라 하였더니”
기도보다 앞서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의 생각과 의지가 기도보다 앞서면 일이 깨어집니다. 기도는 충분히 그리고 깊이 할수록 좋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은 감동하시고 움직이십니다. 두번째 단계는 직접 화해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화해의 메신저를 보냅니다. 상처를 준 자가 상처를 받은 자에게 먼저 화해를 신청해야 하는 법입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갈등이 있는 상태에서 ‘네가 먼저 이야기 하면 나도 이야기 하겠다’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먼저 화해를 청하지는 않겠다고 생각합니다. 용서와 화해의 제일 큰 방해자는 자존심입니다. 자존심을 무너뜨리면 화해는 쉽게 이루어 집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아브라함은 롯과의 갈등이 일어났을 때 먼저 찾아가서 화해를 청합니다.
화해의 장벽 ‘자존심’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적극성을 갖기를 원합니다. 나이 많은 사람이 윗사람이 아니라 먼저 사과하는 사람이 윗사람입니다. 적극성을 띈 사람이 문제의 해결자입니다. 사과를 하는 사람은 복을 받는 사람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먼저 사과하는 사람이기를 바랍니다.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행동과 의지를 발휘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야곱은 에서와의 문제에 있어서 머뭇거리지 않고 사람을 내세워서 화해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가 메신저에게 전한 말을 살펴보면 야곱은 에서에게 ‘내 주’라고 말할 정도로 깍듯한 예우를 갖춥니다. 야곱과 에서는 쌍동이 형제 관계로 누가 윗사람이라 할 것도 없었지만 야곱은 최대한의 예우를 갖춥니다.
여러분,
대부분의 인간관계의 갈등은 교만에서 비롯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는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더해주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겸손보다 더 위대한 전략과 힘은 없습니다. 겸손보다 더 큰 정책은 없습니다. 겸손한 자는 어느 누구도 밉게 보지 않습니다. 자신보다 나이 어린 사람이나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 겸손한 태도로 다가가면 상대방은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하는 말에 논리가 없고 정의감이 없어서 상대방이 듣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태도가 교만하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겸손하면 틀린 이야기도 받아들이고, 오만하면 맞는 이야기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화해자가 되고 싶으면 말을 거칠고 오만하며 명령하듯 하지 마십시오. 남을 지배하듯이 말하지 마십시오. 겸손하게 말하는 것에서부터 화해는 시작됩니다.
타인을 대함은 겸손과 순수함으로
야곱은 메신저를 보내고, 예우를 갖추는 것과 함께 또 다른 화해의 단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5절을 보면 야곱은 자신에게 재산이 있다는 말을 합니다. 이런 말을 한 이유는 에서에게 신세를 지러 가는 것이 아님을 밝히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화해가 되지 않는 이유는 신세를 지는 태도를 갖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관계의 어려움이 해결 되지 않습니다. 화해를 한 뒤에 어떤 요구를 받게 되기 때문에 순수하게 화해를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받아들여 지지 않는 이유도 그 사랑이 순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자신의 재산이 많으므로 형에게 신세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립니다. 화해하고 싶을 때는 어떤 현실적 요구를 하지 마십시오. 화해는 순수하게 화해여야 합니다. 푸는 것은 조건없이 풀어야 합니다. 이것이 관계의 회복입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 야곱은 에서에게 ‘은혜받기를 원한다’라고 말합니다.
6절을 보십시오.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가로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인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불안한 소식이 들려옵니다. 화해를 신청하러 사람을 보냈더니 에서가 4백명의 사람을 거닐고 야곱을 만나러 온다는 전갈입니다. 그런데 6절을 보면 4백명의 사람을 데리고 오는 에서가 환영하러 오는 것이라든지 또는 싸우러 온다든지의 어떤 묘사도 없습니다. 분명하지 못한 메시지를 듣자 야곱은 제발이 저려 에서가 자신을 죽이러 온다고 생각하며 두려워 합니다.
이기적인 야곱
야곱은 순간적으로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래서 순식간에 자기를 지켜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재산을 두갈래로 나누어서 에서의 공격에서 반이라도 살아남아야겠다는 계산을 합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야곱이었습니다.
7, 8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한 종자와 양과 소와 약대를 두 떼로 나누고 가로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
야곱은 주도면밀하게 대처를 합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야곱이 극도로 불안해하고 있는 상태를 보여줍니다. 야곱은 두려움을 지나쳐서 절망감에 빠져있을 정도입니다. 야곱은 에서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 선물을 보냅니다. 선물로 사람의 마음을 사고자 합니다. 그것도 부족하게 느껴서 자식하고 부인을 보냅니다. 부인을 보낼 때도 몸종 출신의 부인들부터 보내고, 다음으로 레아를 보내고 사랑하는 여자 라헬을 마지막으로 보냅니다. 그리고 자기는 가지 않습니다. 이것이 야곱입니다.
그는 부인은 죽어도 자기는 죽지 않겠다는 극도의 이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만을 믿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런 위급한 상황이 닥쳐서야 비로소 하나님께 진지하게 기도합니다. 사람은 급하면 하나님을 찾습니다.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에 대한 발견으로 이어집니다. 마음이 가난해야 하나님을 찾습니다. 인간적인 방법과 의지가 모두 소용없게 될 때 하나님을 찾고 매달리게 됩니다.
9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또 가로되 나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야곱의 기도는 순수합니다. 우리는 처음으로 야곱의 순수한 모습을 보게됩니다. 야곱은 기도 중에 자신의 할아버지까지 들먹입니다.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의 하나님은 없습니다. 그는 조부와 아버지의 하나님까지 찾을만큼 다급했습니다.
하나님을 부르며 시작하는 기도
그러나 그의 모습은 귀여워 보이리 만치 순수합니다. 그는 너무 당황하고 힘이 들었던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믿음은 별로 대단치 않았던 것입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하나님과 야곱의 관계는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야곱을 돌보셨지 야곱이 하나님을 찾는 법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나의 하나님’이라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런 식이나마 하나님을 찾으니 다행입니다.
저의 경우도 생각해 보면 부모님의 기도와 신앙이 저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제가 누리고 있는 것도 먼저 하나님 나라에 가신 부모님의 기도덕분인 것 같습니다. 이처럼 중보기도는 중요합니다.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부인은 신실한데 남편은 별다른 믿음이 없어 부인은 남편을 위해서 많이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 기도는 남편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친구의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부른 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점입니다. 그는 고향에 돌아갈 때까지 지켜주시리라고 했던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습니다. 야곱은 참 약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요구하고 싶어도 성경을 읽지 않으면 약속이 어딨는지 모르니 약속을 붙잡을 수 없습니다. 그
래서 성경을 많이 읽고 기도도 많이 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알게 되는 것이 성경을 읽는 즐거움입니다.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하나님께 요구하십시오.
10절을 보십시오.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리를 조금이라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야곱은 자신의 무능력을 고백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손을 내밀고 도움을 요청합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나갈 때 ‘나는 무익하고 감당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시지 않으면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다음으로 야곱은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복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은혜를 기억하시고 붙잡으십시오. 야곱은 이렇게 4가지를 붙잡습니다. 먼저 그는 하나님을 부르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무능한 사람임을 고백하고, 자신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하옴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냄이니이다”
야곱은 자신의 현실의 문제를 솔직하게 내 놓습니다. ‘형이 나를 죽이고 처자식을 빼앗아가면 어떻게 합니까?’라며 자신이 두려워 하는 현실을 이야기 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정녕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기도가 끝나자마자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형을 두려워 말라. 내가 네게 큰 은혜를 베풀어 주겠다’. 이것이 약속이며 축복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누군가 너희에게 허물이 있다면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하라’, ‘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기도하면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산 자의 하나님
여러분, 산다는 것이 두렵고 미래가 불안하면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야곱처럼 기도하십시오. 약속을 붙잡으십시오. 죽은 자가 아닌 산 자의 하나님을 붙잡고 우리의 무능함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축복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게 큰 은혜를 베풀리라’.
>출처/저자| 하용조 목사
출처: 성경 벌레들 원문보기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