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감 주는 대화법
듣기, 읽기, 쓰기가 있다.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는 한 몸이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야 상호 부족한 부분을 보완한다.
말을 잘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다..들으면 쓸거리가 생각나고, 말하면 쓸거리가 정리된다. 말을 잘하고 잘 쓰려면 많이 읽고 들어야 한다. 또한 듣고 읽은 것은 말하고 썼을 때 확실하게 자기 것이 된다. 읽기와 듣기는 입력이다. 쓰기와 말하기는 출력이다. 우리 몸이 먹은 것은 배출해야 탈이 나지 않듯이 입력한 것은 출력해서 표현해야 한다.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는 함께 할 때 완전해진다
원리 원칙에 때라 갈게 설명해주기보다 한 마디로 상대방이 알기 쉽게 말해 주면 좋아한다. 상대가 경제 지식이나 상식이 부족하더라도 알아들을 수 있게 수준에 맞게 야기해주면 좋다. 너무 아는 게 많아 수준이 높은 사람은 장황하게 설명하지만 알아들을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면 상대방이 조금 더 쉽게 알아들을 수 있다.
공감 잘해주는 사람. 공감 능력이 뛰어나는 사람이라 표현하겠다.
“여보, 우울해서 나 빵 샀어.”
했을 때 방에 초점을 두지 말고 우울에 초점을 맞춰 물어봐주는 대화가 아픈 사람. 내 아픔에 더 공감해주게 된다. (T보다 F 성량의 사람이 되어보자.
신뢰감을 주게 말하자. (자기가 말한 것을 지키고 긍정 마인드로 말하고.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고 알려주는 것으로)
좋은 관계, 좋은 사람이 되는 것. 인간관계의 불편함은 대화(밀)에서부터 시작된다.
대화를 잘하는 사람은 환명 받는 사람이다 환영 받는 사람의 공통점은?
대화의 무게 종심을 상대방에게 주는 사람. 말하기가 아닌 대화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잘 들어주고, 호감을 주고. 잘 수용해주면 된다.
돈이 불안 완화제, 고통 진정제이면 안 된다.
연설의 처음은 재미로 시작되어야 한다. 스티븐 잡스는 하버드 대 졸업식에서 공유의 단서를 어릴 때 어려운 환경에서 학교를 그만 두었다고 말함으로 해석의 여지를 열어두고 감성의 공유 기회까지 주어 듣는 자들이 재미를 느끼게 하는 이야기를 했다.
재미는 상대의 흉내내기(성댐사)에서부터 시작, 의사소통이 잘 된다. 게 가 있어야 대화가 가능하다.
백세 시대에 재미와 창조(의미)가 만나는 지점에서 오늘을 살자. 가장 창조적인 것은 공부법-카드 정리. 내가 즐거워서 부른 노래로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는 게 행복이 아니겠느냐?
그림- 동영상이 생김으로 시간을 그대로 찍을 수 있었다. 세계최초의 영화는 마술사가 하듯 사람을 앉혀놓았다가 화면을 짤라 편집하면서 사람이 사라지게 했다가 다시 사람이 나타나게 했다. 2~3개의 카메라로 찍은 것을 잘라 갖다 부쳐서 시간을 짤라내는 것. 편집한 것을 연결하니까 그 가운데 것을 해석하게 된다. 멀쩡한 한 사람의 표정을 앞에 두고 뒤에 관에 들어간 아이, 웃는 아이 등으로 다른 사물을 보이게 하면 똑같은 표정을 보게 하면 그 뒤에 본 것과 연결하여 그 사람 표정이 달리 보이게 된다. 그러니 시서이 인류의 마음이 된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이것이 시대 관점이 되어 원근법으로 발전하였으며 보는 방식에 딸 사람의 마음도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것을 리차도 패드의 실험으로 해보자. 이야기를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이며 듣게 한 사람과 고개를 가로저으며 듣게 한 사람으로 나눈 뒤 나중에 그의 마음이 어떻게 변했는가 살펴봤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던 사람들이 긍정 마인드를 더 많이 갖게 되더라는 것이다.
심리학적으로 재미와 창조는 동의어다 빗자룰ㄹ 아이레게 주면 타고ㅓ 하늘을 날아간다. 헬리포토 이야기가 재미 있다. 어른에게 빗자룰 주면 청소할 생각부터 한다.
재미 중에 가장 재미있는 것은 공부하는 거다. 학교는 재미있게 사는 기능을 가르치는 곳이다 프로우(몰입- 흘러가는 상태) 창조적 삶이 되려면 재미 있어야 한다. 팔광(고스톱 화톳장에서. 보름달 속에서 달에서 방아 찧는 토끼를 찾아 내어 화토 속에 사는 동물 찾아내기 게임이 재미를 느껴보게 한다.
삶을 주체적으로 살며 외로운 시간을 가져야 한다 혼자 덥고 잔 이불을 햇빛 충전하고 “야!‘ 감탄하는 것이 내행복의 기준이다.
원근법에서 소실점은 한 군데로 정해질 필요가 없다. 어느 각도에서 그림을 보는가에 따라 그림 속 여인의 팔길이가 기하학적으로 길고 짧은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지휘자가 곡을 해석하는 것은 지휘자의 속도에 따라 해석되고 달라진다. 음악을 들으면 몸을 움직이게 된다. 카랴얀은 음악을 한 사람이 아니라 영상을 만들어내는 사람으로 음악을 영상을 보여준다. 듣는 사람을 영상(그림)으로 보여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