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시장이 여러 요인에 의해 부침을 겪을 때도 SUV만큼은 흔들림 없이 성장했습니다. 해치백과 왜건의 땅인 유럽 대륙도 이런 분위기에서 예외일 수는 없었는데요. 특히 고급 브랜드가 내놓은 D세그먼트 SUV의 경쟁은 현재 더욱 치열해졌습니다.
2004년 X3가 문 열고 2008년 1차 붐 일고
1990년대 후반 메르세데스의 M클래스와 BMW는 X5가 문을 열면서 시작된 고급 SUV 시장은 완성차 업체들에는 신대륙이나 마찬가지였죠. 깃발을 먼저 꽂은 자에게 영광은 고스란히 돌아갔습니다. 높은 마진이 보장된 이 시장에 2004년 BMW가 X3라는 D세그먼트 SUV를 내놓으며 한발 앞서 나가게 됩니다.
X3가 2004년 등장한 후 EU에서만 매년 7만 대 가까이 팔렸고 글로벌 마켓에서도 큰 성장을 이뤘습니다. 경쟁자들이 지켜만 보고 있을 리는 없었겠죠? 2008년 메르세데스 벤츠 GLK를 시작으로, 볼보는 XC60을, 그리고 아우디는 Q5를 차례로 내놓습니다. 이때부터 고급 중형급 SUV의 붐이 일며 경쟁은 첨예해졌죠.
시장을 독식하다시피 하던 X3는 경쟁자들 출현으로 잠시 주춤하는가 싶더니 다시 유럽에서 판매량 1위 자리를 탈환하게 되는데요.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 평균 EU 기준 6만3500대 이상을 팔았습니다. 아우디 Q5가 같은 기간 5만8600대, 볼보 XC60이 대략 4만8000대가량 팔리며 뒤를 쫓았습니다. 반면 벤츠 GLK는 X3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2011~2013년 EU 평균 판매량(출처: carsalesbase.com)
BMW X3 : 6만3525대
아우디 Q5 : 5만8631대
볼보 XC60 : 4만7980대
벤츠 GLK : 3만1163대
갑자기 밀려나기 시작한 X3와 넘버 1이 된 XC60
한창 잘 나가던 BMW X3는 2014년, 그러니까 2세대 부분변경 모델이 등장 시점부터 판매량이 평균 4만 대 중반 수준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아우디 Q5가 치고 올라갑니다. 라이벌로부터 1위 자리를 가져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거죠. 그런데 북유럽 경쟁자를 잊고 있었습니다. 순식간에 볼보 XC60이 Q5까지 추월해버린 겁니다.
XC60은 2014년 EU에서 6만2845대를 팔더니, 2015년에는 7만7197대까지 판매량을 늘려버렸습니다. 2016년에는 8만2990대로 자신이 세운 판매 기록을 다시 깨버렸죠. 거칠 게 없어 보였습니다. 2위 주자인 아우디 Q5도 2016년에 7만대를 돌파했지만 XC60의 성장세를 따라갈 수는 없었습니다.
혜성처럼(?) 등장한 GLC
XC60의 질주는 세대교체를 앞둔 시점까지 계속됐습니다. 판매량은 한순간도 고개를 떨군 적 없었고, 이 기세라면 EU에서만 연 10만 대 판매도 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X3와 Q5, 그리고 XC60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동안 저~만치 밀려 있다고 생각했던 메르세데스가 갑자기 무서운 속도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2015년 하반기 GLK 대신 새로운 이름표를 달고 나온 GLC는 본격 판매가 시작된 2016년 유럽에서 7만대 이상 팔려나가며 아우디 Q5를 83대 차이로 따돌리고 2위 자리까지 오릅니다. 그리고 2017년 드디어 일을 내고 말죠. 한 해 동안 유럽에서 11만1193대를 팔아치우며 10만대 벽을 처음으로 돌파합니다. 같은 해 볼보 XC60은 9만9023대를 팔았고, Q5는 7만388대가 팔려나갔습니다.
경쟁에서 한발 물러서 있었던 메르세데스 GLC는 이름과 스타일을 바꾸며 놀라운 반전을 이뤄냈습니다. 만약 2만7385대가 팔린 GLC 쿠페까지 판매량에 포함된다면 XC60과 차이는 훨씬 더 벌어지게 됩니다. 반전도 이런 반전이 있을까요?
원년 영광을 향하여 반전을 꿈꾸는 X3
그렇다면 2018년 결과는 어땠을까요? 아직 정확한 통계가 나와 있지 않지만 10월까지 누적 판매량을 통해 2018년 결과를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을 듯합니다.
2018년 1~10월 EU 고급 중형 SUV 판매량 (carsalesbase.com)
벤츠 GLC : 10만6271대
볼보 XC60 : 6만6016대
아우디 Q5 : 5만4840대
BMW X3 : 5만396대
알파로메오 스텔비오 : 2만6330대
레인지로버 벨라 : 2만3377대
재규어 F-페이스 : 2만947대
렉서스 NX : 1만9583대
포르쉐 마칸 : 1만6231대
11월과 12월 결과가 포함되지 않은 상황에서 GLC는 이미 연간 판매량 10만 대를 유럽에서 넘겼습니다. XC60과의 차이가 더 벌어진 거죠. 하지만 지금까지 10년 동안 유럽에서 고급 D세그먼트의 판매 1위 자리는 계속해서 바뀌어 왔다는 걸 생각하면 방심은 금물입니다.
특히 주춤하던 BMW X3는 세대교체 단행 후 빠르게 판매량을 끌어 올리는 중입니다. 유럽 및 러시아 터키 등 44개국 자료를 소개하는 포커스 투 무브(focus2move)에 따르면 2018년 11월까지 GLC는 11만2671대, XC60은 7만6759대, Q5는 6만7110대, X3는 5만6524대를 팔았고, 이중 신형 X3는 전년 대비 34.1%의 큰 성장률을 보였습니다. 상대들을 압도한 성장세였습니다.
X3의 이런 상승세는 독일에서 판매량을 늘린 게 컸고, 현재 분위기라면 올 2019년에 X3는 볼보의 자리까지 충분히 위협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반대로 XC60은 2세대 신형 등장 후 되레 판매량이 마이너스로 돌아섰는데요. XC60도 2019년이 유럽 내 판매량을 제대로 가늠할 수 있는 해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더욱 치열해질 고급 중형 SUV 시장
앞서 보여드렸듯이 벤츠, 볼보, 아우디, BMW 정도였던 D세그먼트 고급 SUV 시장은 2010년 이후 등장한 새로운 도전자들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상황입니다. 심지어 유럽에서는 힘 한 번 제대로 못 쓰고 있던 렉서스조차 NX와 같은 SUV로 유의미한 판매량 경쟁을 할 정도가 됐죠.
GLC의 독주는 과연 계속될까요? 볼보는 다시 고삐를 죄고 추격을 할 수 있을까요? 처음 유럽 땅에 D세그먼트 고급 SUV의 깃발을 꽂았던 X3는 명예 회복을 할 수 있을까요? 새로운 Q5가 나오려면 시간이 아직 많이 남은 아우디는 어떻게 경쟁해나갈 계획일까요? 전혀 예상치 못한 강자의 부상은 또 이뤄질까요? 이들의 경쟁과 전략이 무척이나 흥미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