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매산 3부 능선 오른편에 운동기구가 놓여있다. 그 곁 솔숲에 제법 튼실한 소나무 가지는 나를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두 팔을 길게 늘어뜨린 끝을 모아 나무판자를 얹어 무릎을 만들었다. 누구나 앉으면 흔들리는 나를 사람들은 그네라 부른다. 아이들이 장난감인 양 밀고 당기고 흔들고 나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나른한 봄볕에 깜빡 졸고 있을 때 그네다! 하는 음성이 들려 정신을 차린다. 투박한 돌계단에 올라서며 나를 처음 본 듯 반기는 사람들이 반갑다.
한 사람이 내 무릎에 몸무게를 살짝 얹는다. 그리고 발을 구부려 앞으로 나아가기를 반복한다. 물병만 달랑 넣은 어깨가방이 전부인 이 사람, 처음 한 말이‘여기에 그네가 있는 줄 몰랐네’하는 섭섭한 말이었다. 그리고 한동안 찾아오지 않았다.
오랜만에 보는 그가 스틱 대신 목발을 짚었다. 창백한 얼굴을 보니 어려움을 당한 모양이다. 근교의 산은 다 등산했다며 자부심이 대단하던 사람인데, 세상일이란 한 치 앞을 모른다더니 그의 풀죽은 모습에 마음 쓰인다. 어인 일 일까.
그날은 그의 운명이 달라지는 날이었다. 그들은 힘들다고 소문난 옥녀봉을 올랐다. 그늘진 곳에는 녹지 않은 눈이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내리막이 경사 40도는 되겠다고 한마디씩 했다. 그러나 경험이 많은 산대장을 믿는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산은 높을수록 아름답다는 찬사를 아끼지 않으며 내려오는 길이었다. 더 높은 산도 등반했지만, 사고 한번 없었다는 대원들의 자만심이 문제였을까.
하산할 때가 더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한 사람이 바위를 딛고 건너가는 걸 보았다. 바위는 평평한 듯 보이지만 밑으로 갈수록 좁아져 가분수 꼴이다. 바위 아래는 절벽이다. 이 길 외는 다른 대안이 없다. ‘이 바위 괜찮겠지.’하고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곧 ‘문제없다.’라는 최면을 걸면서 스틱을 한 손에 몰아 쥐고 낮은 자세로 살포시 한 발을 올렸을 때다. 약간 흔들린다 싶어 놀라 건너뛰려고 뒷발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발이 미처 떨어지기 전에 몸이 먼저 앞으로 솟구쳤다. 순간 바위는 썩은 이 빠지듯 무너지기 시작했다. 바로 한발 뒤에 섰던 산대장이 팔을 붙잡았지만, 이미 중심을 잃은 두 사람은 바위와 같이 굴러내리고 말았다.
119가 도착했다. 바위에 머리를 심하게 부딪친 산대장은 영영 깨어나지 못하고 말았다. 그는 발목과 정강이뼈가 조각나고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병원 치료는 어렵사리 끝났다 했지만, 간신히 살아난 그는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활달한 본모습과는 달리 말을 잊어버린 사람 같았다. 그가 유일하게 찾는 곳이 동매산의 그네다. 멍하니 앉아 하늘을 보다가 눈물을 훔치는 모습에서 그는 우울증이 심한 사람 같았다.
그를 정신신경과 의사 앞에 앉힌 사람은 남편이다. 의사는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나 억울함을 다 말해보라고 했다. 하얀 가운의 그는 볼펜을 굴리며 귀와 눈만 열어놓고 환자의 작은 움직임도 예의 주시했다.
그날, 등산했던 사실마저 까맣게 지우고 싶은 사람이다. 의사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 해도 그 순간을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다. 자기는 우울증과는 상관없다고 우기며 남편의 만류에도 진료실을 나오고 말았다.
좁은 산길을 휘적이며 걷는 그의 앞에 맨몸을 드러낸 아카시아가 있다. 검은 혹을 잔뜩 짊어진 아까시나무는 어깨가 심하게 굽었다. 잎이 무성할 때는 보이지 않았다. 혹 덩이를 제 살인 양 껴안고 서 있는 아카시아가 안쓰럽다. ‘버릴 수 없으면 보듬고 가야지.’ 하는 속삭임이 어느 쪽에선가 들린다. 동병상련의 아픔이리라. 그가 울고 있다. 그동안 참았던 울분을 씻어내듯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그의 얼굴이 며칠 새 한층 밝아졌다. 궁금했지만 나는 그네다. 내가 그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 세상 만물은 다 그를 응원하고 있다고 어떻게 알려 줄까. 봄이 올 때까지 터널 같은 겨울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가 다시 왔다. 그의 남편이 다정하게 손을 잡고 있었다. 아카시아 꽃향기가 골짜기에 가득하다. 그가 가만히 그네에 앉는다. 불안하고 우울했던 그를 안정시킨 것은 남편의 세심한 배려와 따뜻한 사랑이었다. 그 온기가 오롯이 전해진다. 나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
싸라기 같은 하얀 꽃이 핀 쥐똥나무를 보라고 했다. 별을 닮은 작은 꽃이 지면 까만 쥐똥이 옹골지게 열린다고 했다. ‘뭐? 쥐똥? 아, 새까만 것이 쥐똥을 닮았지.’ 잎이 넓은 개오동나무는 허연 진을 풀어 번식하려 하지. 사람의 호흡기에 들어가면 기침과 알레르기를 유발하기도 해. 그는 내 말을 듣는지 고개를 주억인다. 나는 더 많은 이야기를 했다.
청설모 한 마리가 소나무 가지를 미끄러지듯 내려오다 그를 보았는지 멈칫한다. 번개같이 다른 소나무를 타고 올라간 청설모는 뾰족한 입으로 솔방울의 부드러운 곳을 갉고 있다. 그가 스틱을 들어 좇는 시늉을 했다. 나는 또 아는 체를 한다. 청설모는 생김새도 못났지만 잡식이라 못 먹는 것이 없어요. 다람쥐도 전멸시키고, 새도 개구리도 파충류는 완전 씨를 말리는 나쁜 놈입니다. ‘그래, 청설모가 있고부터 귀여운 다람쥐가 보이지 않아.’ 내 말에 그가 동의하고 그의 반응을 기다리는 우리는 친구다.
그가 소소한 푸념을 늘어놓으면 나는 바람을 부추겨 살랑살랑 흔들어 준다. 내가 그에게 위로가 되었을까 그가 자주 웃는다. 우리는 웃는다.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