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마음 하늘에 닿다(시109:1-20)
갈등
1. 어느 날 한 사람의 가슴에 화살 하나가 꽂혔습니다. 그런데 피가 흐르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아무 상처도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괜찮아 보이는데요?”“별일 아닌 것 같은데요?”그 사람은 알고 있습니다. 화살이 몸이 아니라 마음을 뚫었다는 것을요. 화살은 쉽게 빠지지 않습니다. 혼자 있을 때 더 아프고. 밤이 되면 더 선명해지고. 기도하려고 하면 더 떠오릅니다.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억할수록 더 깊이 박히고. 생각할수록 더 아파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살면서 이런 화살을 맞아본 적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이해받지 못한 상황. 오해 속에서 들려온 이야기. 믿었던 사람의 차가운 태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아직도 화살이 남아 있습니다. 오늘 시인의 노래는 그 화살을 맞은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무너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의 기도를 들어보면 압니다. 그의 마음은 지금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시인의 노래 시작은 1절,“내가 찬양하는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옵소서.”이 말은“하나님, 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십니까?”입니다. 시인의 고통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사람들에게서 오는 고통, 또 하나는 하나님의 침묵입니다. 2절,“그들이 악한 입과 거짓된 입을 열어 나를 치며 속이는 혀로 내게 말하며.”
2. 시인의 상처는 칼이 아닙니다. 주먹도 아닙니다. 말이었습니다. 사실이 아닌 이야기. 왜곡된 말. 사람을 무너뜨리는 언어. 그 말들이 화살이 되어 그의 마음에 꽂혔습니다. 그에게 더 깊은 고통이 있었습니다. 4절,“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그들은 원수가 아닙니다. 낯선 사람도 아닙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입니다. 함께 웃었던 사람. 마음을 나누었던 사람. 신뢰했던 사람. 그 사람이 이제 나를 향해 말을 쏟아냅니다. 그가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합니다. 선으로 대했는데 악으로 돌아옵니다. 사랑했는데 미움으로 돌아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장면이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도 이런 일을 겪습니다.
가까운 관계 속에서. 신뢰하고 사랑했던 사람에게서요. 우리는 가장 깊은 상처를 받습니다. 그 상처는 점점 그의 삶을 흔듭니다. 그는 이제 조용히 설명할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기도가 점점 더 격해지고. 마음은 더욱 무너져갑니다. 시인은 이렇게까지 노래합니다. 6절,“악인이 그를 다스리게 하시며 사탄이 그의 오른 쪽에 서게 하소서.”이게 도대체 무슨 기도인가요?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가요? 상처받은 마음은 그냥 머물지 않습니다. 그 마음이 움직입니다. 어딘가를 향해 올라갑니다“내 마음에 꽂힌 화살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요?”
갈등 심화
3. 시인의 노래가 이어집니다. 처음에는“왜 나를 이렇게 합니까?”였던 마음이 점점 더 넓어지고, 더 깊어집니다. 시인은 11절,“고리대금하는 자가 그의 소유를 다 빼앗게 하시며 그가 수고한 것을 낯선 사람이 탈취하게 하시며.”시인의 상처는 마음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그의 기도 속에는 상대의 삶 전체가 무너지기를 원합니다. 12절,“그에게 인애를 베풀 자가 없게 하시며 그의 고아에게 은혜를 베풀 자가 없게 하시며.”시인은 그 사람의 주변에서 사랑이 완전히 사라지기를 원합니다. 13절,“그의 자손이 끊어지게 하시며 후대에 그들의 이름이 지워지게 하소서.”시인의 노래는 단순한 기도가 아닙니다.
그의 마음이 무너진 자리에서 터져 나오는 절규입니다. 처음에는 작은 불씨였습니다. 말 한마디. 오해 하나. 상처 하나. 그것을 그의 마음속에 두었습니다. 꺼지지 않도록 계속 붙들었습니다. 그 불씨가 점점 커져서 온 집을 태우는 불이 되었습니다. 시인의 마음은 상처가 불이 되었고. 그 불이 그의 기도를 삼키고 말았습니다. 14절,“여호와는 그의 조상들의 죄악을 기억하시며 그의 어머니의 죄를 지워 버리지 마시고.”시인은 그 한 사람만이 아니라 그의 과거까지. 그의 가문까지. 그의 모든 존재까지 지워지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확장됩니다. 이 장면이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도 상처를 오래 붙들면 그 사람만 미운 것이 아닙니다.
4.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이 싫어지고. 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싶어집니다. 시인의 노래는 16-17절,“그가 인자를 베풀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와 마음이 상한 자를 핍박하여 죽이려 하였기 때문이니이다, 그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더니 복이 그를 멀리 떠났으며.”시인은 단순히 분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공의를 끌어와 자신의 분노를 정당화했어요. 시인의 노래를 읽으며, 우리 스스로 묻습니다.“나는 지금 어떤 기도를 하고 있는가?”하나님께 맡기는 기도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이용해서 내 마음을 풀어내는 기도입니까?“ 나는 상처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가, 아니면 상처를 붙잡고 하나님께 주장하고 있는가?”“나는 공의를 구하고 있는가, 아니면 복수를 원하고 있는가?”사랑하는 여러분, 상처는 죄가 아닙니다. 아픈 것도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나 상처를 붙잡고 있으면, 그 상처는 반드시 변합니다. 아픔은 분노가 되고. 분노는 판단이 되고. 판단은 다른 사람을 무너뜨리고 싶은 마음으로 바뀝니다. 더 두려운 것은 그 불은 상대를 태우기 전에. 먼저 내 마음을 태웁니다. 오늘 시인의 노래는 우리에게 묻습니다.“지금 당신의 마음은 어디까지 와 있습니까?” 아직 상처입니까? 분노입니까? 아니면 누군가를 향한 무너뜨리고 싶은 마음입니까? “그 마음을 어디로 가져가고 있습니까?”
실마리
5. 시인은 매우 거친 노래를 불렀습니다. 감정도 정리되지 않았고, 표현도 부드럽지 않습니다.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그는 마음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사람을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풀어내지도 않았어요. 속으로만 삭이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말하고 있습니다. 같은 상처라도 어디로 가져가느냐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어떤 사람은 계속 생각합니다. 머릿속에서 반복합니다. 그 상처는 점점 커집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말합니다. 이야기를 덧붙이며 퍼뜨립니다. 상처는 더 넓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눌러 둡니다. 상처는 더 깊어집니다
시인은 다른 길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 가져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가져가되, “잘 정리해서 가져가는 것이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 가져가는 갔습니다.”시인은 감정이 정돈되거나 평온한 상태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 나아갔어요. 이것이 신앙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생각합니다.“마음이 좀 정리되면 기도해야지.”“이런 생각으로는 하나님께 못 나가겠지.”시인은 정리되기 전에 가라. 괜찮아지기 전에 가라. 하나님은 우리의 말만 듣지 않으시고, 우리의 상태를 정확히 아십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질문이 바뀝니다.“내 마음이 어떤 상태인가?”가 아니라“나는 지금 그 마음을 어디로 가져가고 있는가?”
6. 사랑하는 여러분, 상처를 없애려고 하지 마십시오. 먼저 해야 할 것은 그 상처를
하나님 앞에 두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변화가 시작됩니다. 상처가 하나님 앞에 놓일 때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 그 문제를 다루기 시작하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첫 걸음은 이것입니다.“이 마음을 혼자 붙잡고 있지 않겠습니다.”“하나님께 가지고 가겠습니다.”상처받은 마음이 무너지지 않고 하늘에 닿기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손에 무언가를 꽉 쥐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든지 간에 너무 세게 붙잡고 있으면, 손이 펴지지 않습니다. 누군가 말합니다.“이제 손을 그만 놓으세요?”그 사람이 대답합니다.
“놓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놓을 수가 없습니다.”시인의 상태가 그렇습니다. 그는 이미 하나님께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 마음을 손에 쥐고 있어요. 그의 기도는 맡기는 기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여전히 붙잡고 있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 가져가는 것과 하나님께 맡기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가져가는 것은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이고. 맡기는 것은 내 손에서 내려놓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여기까지는 합니다. 하나님께 이야기합니다. 감정을 쏟아냅니다. 문제는 다음이 없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돌아와서도 다시 그 생각을 붙잡고. 다시 그 장면을 떠올리고. 다시 마음속에서 반복합니다.
7. 그러면 기도는 했지만, 마음은 그대로입니다. 오늘 시인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중요한 메시지가 이것입니다.“나는 지금 하나님께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내가 쥐고 있는가?”맡긴다는 것은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결정을 바꾸는 것입니다. 내가 해결하려는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 내가 판단하려는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 내가 끝을 내려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하나님, 이제 이 일은 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다루셔야 합니다.”이때부터 다른 일이 시작됩니다. 내가 붙잡고 있을 때는 내 생각이 계속 커지지만. 내려놓기 시작하면 하나님의 시선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내가 쥐고 있을 때는 감정이 중심이지만. 맡기기 시작하면. 하나님이 중심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풀어야 할 것은 상황이 아니라, 붙잡고 있는 손입니다. 이 시간 우리를 점검해 보기 바랍니다.“나는 지금 하나님께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내가 쥐고 있는가?”“나는 이 문제의 끝을 내가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가?”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계속 쥐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 맡길 것인가.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내려놓는 순간 하나님이 일하시기 시작합니다. 상처가 나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이끄시는 것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기대
8. 오늘 시인의 노래를 읽으면 마음이 불편해집니다.“어떻게 기도를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자리는 누군가가 대신 서야 하는 자리입니다. 우리는 상처받고. 분노하고. 때로는 무너뜨리고 싶은 마음까지 올라옵니다. 그 결과를 우리가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유 없이 미움을 받으셨고. 거짓된 말에 둘러싸이셨고.
아무 잘못 없이 정죄를 받으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 대신 모든 결과를 짊어지셨습니다.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내가 붙잡고 있던 분노의 끝을 예수님이 대신 감당하신 자리입니다. 우리는 이제 무너뜨리려고 살지 않고. 맡기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십자가에서 이 문제를 다루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기대
9.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마음에 꽂힌 화살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붙잡고 살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묻습니다“그 마음을 계속 쥐고 있을래, 아니면 내게 맡길래?”우리가 내려놓을 때 상처가 우리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이끄시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억울함을 모르지 않으시고. 우리의 눈물을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오늘 우리의 기대는 내가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신다. 상처받은 마음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닿는 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이것을 위해 함께 기도하고 응답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