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이문열에 대해 몹시 뜨거웠었죠?
그런 이문열을 저는 읽었답니다. 젊은 날의 초상, 이라는 제목은 많이 들어보았는데 헤세의 젊은 날의 초상도 있고, 같은 제목의 영화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소설속에 나오는 주인공의 연배가 나와 비슷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관심이 갔고 그래서 다른 사람의 삶을 염탐하는 느낌으로 소설을 읽었습니다. 요즘에 저는 매우 다른 사람의 인생에 관심이 많거든요.
나는 나만의 인생을 살뿐 각자의 인생을 다 살아 볼 수 없다는 점을 매우 안타깝게 여기는 저로서는 한 사람의 인생이 리얼하게 담겨있는 소설은 꼭 읽어봅니다.
젊은 날의 초상은 특별한 줄거리가 있다기보다는(물론 줄거리 있죠) 서술체 속에 담긴 주인공의 사고흐름을 읽어야만 할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나와 비슷한 부분도 있고, 이미 나는 초탈했다고 믿는 시행착오를 이제서야 멋모르고 저지르는 주인공의 가여운 모습도 있고, 미처 나는 겪게 될줄 몰랐던 미래가 담겨 있기도 하였습니다.
한가지 의심스러운 점은 젊은 날의 초상, 에 나오는 주인공은 진실성은 가졌지만 사실성은 없는 인물일지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당연히 소설속에 등장하는 허구의 인물이니까요. 그렇다면 이 세상에 실재하지 않았던 인물 하나의 인생을 읽어낸다고 해서 제가 무슨 느낌이 오는 걸까 하는 생각 혹은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공감받은 인물이라 해도 그는 결국 엄밀히 말해서는 현실에 있어본 적 조차 없던 사람이고 따라서 그 소설 속 인물을 토대로 나 자신이 펼쳐가던 모든 생각이, 전제가 된 인물이 허구임으로 인해 다 무용지물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말입니다.
아주 간단하게 두갈래로 생각해서,
젊은 날의 초상을 읽고 나는 영훈처럼 살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해도 어차피 영훈이라는 사람은 내가 사는 현실에는 없는 사람이니까 그 사람처럼 살았던 사람은 원래부터 없었던 것이고 따라서 나의 다짐도 무의미하게 되는것이죠.
또 설혹 내가 그 인물에 상당히 공감해서 나는 저 사람과 같이 삶을 살아가야겠다, 라고 느껴도 내가 본받고자 하는 그 인물은 실제로 살아있는 인물이 아니므로 나의 이 다짐또한 공허한 대상을 따라해보려는, 그래서 역시 결과적으로는 허구일 수 밖에 없는 다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허구인 소설을 삶의 모델로 삼기엔 다소 회의가 든다는 나의 이 말은,
"우리기쁜 젊은날"을 방황으로 일삼고 "그해겨울"을 죽기살기로 보내면서 아무대책없이 결말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소설 어느 페이지에서는 너무나 손쉽게 '어느덧 나는 어엿한 회사원이 되어 있다' 라고 한마디 표현해줌으로써 그 파란많던 젊은 날의 초상과 지금의 내 모습과의 어떤 개연성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점때문에 더더욱 뒷받침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는 가끔 어떤 영화나 드라마에서, 매우 치열하게 주인공들이 생을 살아가다가 그들이 어떻게 이 시점을 이겨나갈 것인가 숨죽여가며 쳐다보는 나를 무안하게 만들정도로 너무나 간단히 "그로부터 십년후" 라는 자막 한마디와 함께 이전의 모든 상황은 종료되고 언제부터 시작했는지도 모를 다른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을 보여줄때 느껴지는 당황스러움과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우리들의 삶을 보여준다고 하지만 실제 우리의 삶은 이렇게 한 시절을 살아가다 갑자기 모든게 뒷처리 하기 힘들다고 해서 어느날 갑자기 약 10년후, 이렇게 말해버리고 알지 못하는 미래로 도망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원래부터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최근들어서 갑자기 매우 강해진 나의 이 생각을 위로해보고자, 저의 나이와 비슷한 연배가 등장하여 젊은 날을 살아가는 인물의 초상을 그렸다고 전해지는(?) 이문열의 이 소설을 (기존의 이문열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 혼란스레 융합되어) 반신반의하며 읽어내려갔지만 여전히 답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