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럼을 부끄러워하지 말자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사람마다 서로 다르게 반응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부끄러움은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조절하는 감정이다.
그래서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은 자기의 잘못된 행동이나 생각을 반성하지만,
부끄러운 줄 모르는 사람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뻔뻔하게 넘긴다.
그러나 부끄러움이 항상 양심과 관계된,
도덕적인 가치가 개입된 상황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할 때나 누군가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도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이런 경우는 도덕이나 양심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이때 나타나는 부끄러움은 ‘노출에 대한 두려움’이다.
‘실수하면 어떻게 하지?’
‘저 사람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예기 불안’ 때문에 부끄러워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심리학자나 정신분석학자들은 부끄러움은 두 갈래로 나뉜다고 말한다.
하나는 스스로 일정한 기준을 만들어 놓고 자기가 부족하다고 평가할 때 나타나고,
또 하나는 자신의 약점이 외부에 노출될 때 생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도덕한 일을 저지르고도 태연한 인간들은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일까.
오강섭 교수(강북삼성병원·정신과)는 “그렇지 않다”라고 말했다.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은 인간의 유전자에 프로그래밍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지 기능이 싹트는 만 2세를 넘어야 부끄러움을 알기 시작하고,
자기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이 감정을 제대로 느끼게 된다.
침팬지와 개를 제외한 다른 동물에게는 부끄러움이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부끄러움의 정도가 개인마다 다른 까닭은 자라는 환경과 고유한 경험에 따라
이 감정이 강화되거나 둔해졌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어린 시절부터 지나치게 책임의식을 강요받거나,
결벽증을 키워 온 사람,
늘 칭찬을 받아야 안심이 되는 ‘인정 중독자’들은 부끄러움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창피나 모욕을 심하게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도 유난히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 되기도 한다.
명품 좇는 과시욕 뒤에 부끄러움 숨어 있다
최근 <부끄러움>이라는 연구서를 펴낸 이호영 교수(아주의대 명예 교수)도
성장 과정에 있었던 몇몇 사건 때문에 유난히 부끄러움을 많이 타게 된 경우이다.
그는 열여덟 살에 인민군에게 쫓겨 팬티만 입은 채 거리를 헤맸던
기억 때문에 평생 대중 목욕탕이나 수영장 가기를 꺼렸다.
그 사건 이후로 신체 노출을 유난히 부끄러워하게 된 것이다.
또 훌륭한 의대 교수였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의대에 입학했지만
주변에서 늘 아버지와 자신을 비교하는 바람에 점점 열등감을 갖고 부끄러워하는 성격으로 변했다.
이 책에서 이교수는 부끄러움은 매우 고통스런 감정이라고 지적한다.
사람이 부끄러움을 느끼면 맥박이 빨라지고
얼굴이 빨개지며 몸이 떨리는 것은
물론 정신까지 아득해지기 때문에 피하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고통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피하거나 감추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부끄러움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피하려다가는 오히려 위험에 빠진다.
대인공포증이나 알코올 중독과 같은 정신 질환에 걸리는 것이다.
또 부끄러움을 피하려다가 사나운 성격이 되기도 한다.
특히 남과 자신을 강박적으로 비교하는 사람들이 그런 위험에 빠지기 쉽다.
그런 사람은 남보다 못하다는 수치심을 견디기 어렵다.
그래서 자신이 우월하다는 점을 과시하려고 든다.
남보다 비싼 옷을 입어야 하고,
남들이 구하기 힘든 명품을 소유함으로써 자신의 부끄러움을 감추려고 한다.
명품을 밝히는 사람의 마음 속에는 ‘과시욕’이 깔려 있고, 그 과시욕 밑에는 부끄러움이 숨어 있는 것이다.
자기 중심적인 사람일수록 부끄러움 덜 타
부끄러움을 피하기 위해 상대방을 공격하거나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이호영 교수는 “상대가 무슨 이야기를 하면 말꼬리 잡고 상대를 공격하거나
다른 이유를 들어 상대를 비난하는 사람은
자신의 부끄러움을 감추려는 심리가 성격으로 굳어졌다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정치인이 부끄러움을 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교수에 따르면 ‘은폐 훈련’ 덕이다.
물론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라면 정치판에 뛰어들기도 힘들겠지만,
정치인은 직업상 부끄러움을 감추는 능력을 키울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자기애가 강한 사람일수록 남보다 부끄러움을 덜 탄다.
자기 중심적이기 때문에 자기의 태도가 대인 관계에
어떤 부정적 영향을 주는지 상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이 결핍된 사람일수록 남에 대한 배려가 없을 뿐더러
남이 어떤 감정을 느낄지 상상하고 이해하는 공감 능력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정신과 전문의들은 부끄러움은 모자라도 문제고 지나쳐도 병이 된다고 말한다.
김병후 원장(김병후 정신과 의원)은
“지금 우리 사회가 맞닥뜨린 문제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사람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데에 있다”라고 지적했다.
김영희 프로듀서(MBC 제작팀)도 “요즘에는 우리 사회에서 부끄러워하거나
수줍어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10년 전에 시민들을 인터뷰하려고 거리에 나가면 절반 이상이 도망갔는데,
요즘에는 마이크 앞에서 쭈뼛대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이러한 변화는 경쟁 시대에 성공하려면 자기를 근사하게 포장해서 팔 수 있는
‘배짱’이 필요하다는 이데올로기가 일구어낸 ‘성과’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다가는 남보다 앞설 수 없고,
부끄러워하며 쭈뼛거리다가는 처질 수밖에 없다는 이데올로기가,
사람들로 하여금 얼굴에 철판을 깔도록 만든 것이다.
그러나 정신과 전문의들은 배짱이 넘치는 사람들로 가득한
오늘 우리 사회에 남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김병후 원장은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은 손해만 보고,
뻔뻔한 사람이 성공하다 보니 짜증 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라고 말했다.
‘도덕의 추’가 사라지면서 부정 부패와 비리가 난무하고,
‘나만 성공하면 된다’는 이기심이 사회를 지배하게 됨으로써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타는 사람이 워낙 적다 보니 이런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대인공포증을 치료하기 위해 정신과를 찾은 한 환자의 말이다.
“낯선 사람만 만나면 너무 떨려서 고쳤으면 좋겠는데,
이 성격 때문에 오히려 사업은 잘된다.
거래처에 가면 당신 같은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속이겠냐며 모두 계약에 응해주기 때문이다.”
끝으로 잘못을 모르는 줄 알고 있지만
다 알고 있다는 사실 조차도 모르는 얼간이 양아치가 있다고 한다
너!자신을 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