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guys who have to get 慈悲軍 창설론 본 글은 작년 2005년 10월 19일 수요일자 서울신문 30면 ‘오피니언’란 ‘발언대’에 기고한 “자비군(慈悲軍)을 창설하자”는 對政府 정책 제안을 바탕으로 작성된 입법정책 논문이다.
- 저출산 고령화 사회의 생로병사 복지보장과 국방의무의 남녀평등 현대화-
金池洙(전남대 법대 조교수)
Ⅰ. 머리말
최근 들어, 특히 한 여고생이 여자도 남자처럼 군 복무 기회를 달라는 헌법소원을 제기하면서, 여성의 병역의무에 관한 열띤 논란이 부쩍 늘었다. 중앙일보와 평화방송이 공동 기획한 공개토론이 그 대표다. 중앙일보 2005년 9월 22일 목요일 제12658호 43판 32-33면의 “논쟁과 대안” ‘여성징병제 논란’ 참조. 평화방송 TV(케이블/위성)에서는 ‘평화포럼’이란 주제로 9월 22일부터 4회 방송되었다고 한다. 재작년 국회의원 선거철을 앞두고는 갑자기 노인복지와 효도법 문제가 정가와 국민여론을 한바탕 휩쓸기도 했다. 여권신장과 남녀평등의 시대흐름 속에 급속해지는 저출산과 가족해체 및 고령화 추세가 노인질병의 요양복지 및 병역요원 격감을 급박하게 예고하여, 국가사회의 시급한 정책해결을 요구하는 현안이 되고 있음 뜻한다. 시기로나 주제로나 두 문제가 따로 거론되어 갑론을박의 단편 주장들이 오갔지만, 필자는 두 문제가 현재 우리 사회의 여러 중대한 측면들을 종합 반영하며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므로, 이를 유기적 통일체계로 파악하고 함께 해결하려는 종합대책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Ⅱ. 본론의 핵심요지 : 남자는 平和軍, 여자는 慈悲軍!
결론부터 요약하자면, 현재 남성 전투력 위주의 군대를 국토방위의 平和軍으로 삼고, 이에 대응하는 여성 保衛力 중심의 慈悲軍을 창설하여 노인·중증장애자·난치병환자·임종환자 호스피스 등의 보건요양과 고아·결손가정 아동의 양육 등 사회 전반의 복지업무에 투입하자는 것이다. 여성 중 조건이 맞는 자원자의 일부는 군대의 수요와 여건형성에 따라 평화군에 종사할 기회를 부여하고, 이에 상응하여 남성 중에서도 종교나 양심의 이유로 병역을 기피해 온 부류나 특히 간병에 적성 있는 남성에게는 인권보장의 차원에서 신교 및 양심의 자유를 존중해 자비군에 대체 복무할 권리를 준다. 아울러 심각한 이농과 농촌고령화로 황폐화될 위기에 처한 농지를, 전통 兵農一致 정신을 되살려 앞으로 여유 군인력으로 직접 또는 대리 경작함으로써 그 수입을 군비에 보탠다면, 일석삼조의 상승효과를 크게 거둘 묘책이 되리라 기대한다. 이에 율곡 선생님께서 주창하신 십만양병설의 선견지명 혜안을 찬탄하며, 그 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백만 자비군의 창설을 공식 제안한다.
Ⅲ. 자비군의 근거와 필요성
우리 전통문화의 한 연원인 중국 고대 정치철학사상에서는, 예로부터 홀아비·홀어미·고아·독신 같은 鰥寡孤獨을 잘 보살피는 사회보장과 복지정책이 민심을 얻고 천하를 다스리는 王道仁政의 급선무로 손꼽아 왔다. 孟子, 梁惠王 下편 제5장 참조. 「齊宣王問曰: 人皆謂我毁明堂, 毁諸已乎? 孟子對曰: 夫明堂者, 王者之堂也. 王欲行王政則, 勿毁之矣. 王曰: 王政可得聞與? 對曰: 昔者文王之治岐也, 耕者九一, 仕者世祿, 關市譏而不征, 澤梁無禁, 罪人不孥. 老而無妻曰鰥, 老而無夫曰寡, 老而無子曰獨, 幼而無父曰孤. 此四者, 天下之窮民而無告者. 文王發政施仁, 必先斯四者. 詩云: 哿矣富人, 哀此煢獨.」
이러한 정치철학사상의 전통은 현대 사회주의 중국에도 면면히 계승된다. 비록 그 대의명분은 마르크시즘으로 재포장했지만, 그 실질내용은 여전히 전통 王道仁政을 이상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예컨대, 중국은 건국 초부터 농업합작화를 추진하였는데, 시기부터 농촌지역에서 특히 鰥寡孤獨에 대한 이른바 ‘五保’라는 사회보험제도를 실행하였다. ‘五保’에 관하여 ≪1956년부터 1967년까지의 전국농업발전綱要≫는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農業生産合作社는 노동력을 결핍하고 생활을 의지할 곳 없는 社內의 鰥(홀아비)·寡(홀어미)·孤(고아)·獨(독신자)의 社員에 대하여, 마땅히 생산에서는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노동에 참가할 수 있도록 적당히 안배해 주고, 생활상으로는 적당한 배려로 吃(음식)·穿(의복)·燒(연료)·敎(아동과 청소년 교육)·葬(장례)(의 5大 기본 民生)을 보호하여 그들의 生養死葬(살아 생전의 부양과 사후 장례) 모두가 보장되도록 해주어야 한다. 上海辭書出版社, 辭海(縮印本), 1979년 판, 31쪽 ‘五保’조 참조.
근데 현대 복지국가 실현을 지향하는 우리나라 헌법도 제10조에서 “모든 國民은 人間으로서 尊嚴과 價値를 가지며, 幸福을 追求할 權利를 가진다. 國家는 개인이 가지는 不可侵의 基本的 人權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義務를 진다.”는 기본원칙을 선언하고 있다. 이어 제34조에서 國民의 ‘人間다운 生活을 할 權利’와, 이에 상응한 國家의 ‘社會保障·社會福祉의 增進에 노력할 義務’를 규정하면서, 구체로 ‘女子의 福祉와 權益의 향상’을 위한 노력과 ‘老人과 靑少年의 福祉向上을 위한 政策’ 실시 및 ‘身體障碍者 및 疾病·老齡 기타의 사유로 生活能力이 없는 國民’의 보호를 열거하고 있다. 시대와 문화의 차이에 따라 시각과 표현방식에 현저한 차이가 존재하는 것 같지만, 인간의 福樂을 궁극이상으로 추구하는 실질상의 기본내용과 정신은 전통과 현대의 인간 정치사회가 별반 다를 게 없다.
근래 전통시대 남존여비의 차별을 바로잡기 위한 ‘女子의 福祉와 權益의 향상’은 이제 괄목할 만큼 이루어지고 있거니와, ‘老人과 靑少年’(고아, 결손가정 유기아동) 및 ‘身體障碍者 및 疾病·老齡 기타의 사유로 生活能力이 없는 國民’의 보호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국가 정책의 비중과 우선순위에서 건강한 여자보다는 노약자나 중병환자·장애자 등이 훨씬 앞설 것은 두 말할 나위 없이 자명하다. 이러한 헌법상 국가의 사회보장 및 복지정책 시행의 의무에 비추어 보아도, 자비군의 창설은 선견지명의 선진 복지국가 건설에 요긴한 핵심 방안이 될 것이다.
특히, 현대 들어 물질문명 및 의학의 발달로 평균수명은 크게 늘어 고령화 사회가 되고 있지만, 자연을 떠난 인위문명생활로 그리 건강하지 못한 노령화 삶이 급증하고, 장애아동의 출산과 각종 불의의 사고로 인한 고아 및 이혼율 급증으로 인한 결손가정 아동도 크게 늘어, 이들에 대한 의료보양의 사회비용도 기하급수로 증대하고 있다. 고혈압·심장병·당뇨병 같은 문명병은 이제 더 이상 어른 특유의 성인병에 그치지 않고, 중풍·치매 같은 노인질병도 아주 흔해졌으며, 게다가 에이즈(AIDS: 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 후천성면역결핍증)·광우병·구제역·조류독감·사스(SARS: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 같은 신종 괴질이 수시로 발작해 만연·창궐하는 형편이다.
옛말에 ‘가난 구제는 나랏님도 못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老病(노인과 질병) 요양은 나랏님도 못한다’는 말이 추가될 형편이다. 옛날의 가난이나 요즘의 요양복지나 재정예산만으로는 국가조차 감당할 수 없음이 역사경험상 거의 확실하다. 또한 산업화와 핵가족화로 가족이 거의 해체된 마당에, 노인과 질병 요양문제가 전통 효도윤리를 내세우거나 심지어 ‘효도법’을 제정해 개별가족에 강요해서 해결될 때는 이미 지났다. 또 그러지 않아도 건강보험·국민연금·실업보험·산재보험 등 각종 사회보장보험이 의무화되어 각 개인이나 가정 사업체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되고 있는데, 새로이 노병보험을 전 국민 필수가입항목으로 강제한다면, 강한 반발심리와 저항까지 일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런 요양복지는 단지 돈으로만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고, 따스한 인정과 사랑을 필요로 한다. 경제측면에서만 파악하여 국가의 예산지원이나 본인들의 사회보장보험 강제가입 등의 재정정책에만 천착한다면, 이는 지나치게 고루하고 편협한 사고며, 만족할 만한 시원한 해결책도 결코 못된다. 맞벌이 부모가 자녀한테 사랑 대신 돈만 많이 주었을 때 그 자녀의 심성과 인격이 원만하게 함양되는 경우가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 보라. 자비군의 부드러운 마음과 손길은 생로병사의 요양복지에 億兆원의 예산보다 훨씬 막강한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사실 수량경제학으로만 따져도, 자비군의 사회경제적 효과는 그 유지비용 및 기회비용을 훨씬 능가할 게 분명하다.
慈悲란 본디 仁愛나 兼愛·博愛와 상통하는 말로 利他의 사랑을 뜻한다. 그러나 慈悲는 구체 의미가 좀더 세심하게 구분되어, 慈는 남한테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적극 사랑을 가리키고, 悲는 남의 고통이나 슬픔을 덜어 주는 소극 사랑을 가리킨다. 이는 仁의 구체 실행방도로써 언급되는 恕(용서)의 황금률이, “너희는 너희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먼저 남에게 대접하라.(Do as you would be done by!)”는 도덕의 기본원리로서 적극 황금률과, “자기가 받고 싶지 않은 일은 남한테 베풀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는 법의 기본원리로서 소극 황금률로 구분되는 것과 비슷하게 상응하는 개념이다.
慈悲는 어머니가 병든 자식을 위해 온갖 고통과 희생을 감수하며 돌보면서, 자식만 병이 나아 건강해진다면 차라리 자신이 자식 대신 아파 앓고 싶은 그런 마음이다. 또한 성현들이 중생들의 어리석음과 죄악을 일깨우고 인도하면서 마침 내는 중생을 대신해 고통과 질병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심지어 목숨까지 바치는 그런 숭고한 사랑을 가리킨다. 그러니 노인과 장애인과 중병환자와 고아 등을 위해, 그들의 아픔과 슬픔과 외로움과 괴로움을 함께 나누어 덜어 주며, 잠시나마 조금이나마 기쁨과 즐거움과 위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랑 넘치는 사회복지 봉사요원으로서 ‘慈悲軍’을 창설해 적절한 양성과 훈련을 통해 잘 활용한다면, 명실상부한 복지사회가 이루어질 것이다.
또 ‘사랑도 기술’이란 말이 있듯이, 자비봉사도 처음에는 약간의 외부강제나 제도상의 타율에 의해서라도 연습하고 훈련할 필요가 있다. 타고난 성현이 아니고서야, 누가 처음부터 스스로 고되고 힘든 봉사활동을 기꺼이 즐겨 하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 비슷한 이치로, 자식이 제 부모한테는 공경과 효도를 다하도록 가르치기보다는, 남의 부모나 노인한테 봉사하는 계기에 친부모에 대한 효심이 일깨워지도록 간접 교육의 효과를 상당히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일찍이 맹자는 군자가 자식을 몸소 가르치지 않고, “예로부터 자식을 서로 바꾸어 가르친다”고 역설했다.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예뻐한다”는 속담처럼, 부모(특히 어머니)는 자식에 대해 아무래도 본능적 사랑에 눈이 멀고 자식 또한 친밀한 부모를 존엄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에, 자식을 도의와 이치에 따라 공정하고 객관중립으로 잘 인도하기가 어려운 까닭이다.
맹자의 설명에 따르면, 부모가 자식을 직접 가르치기 어려운 주된 심리적·윤리적 이유는, 부자 관계라는 혈연적 親情의 심리와 교육이라는 도덕적 義理의 윤리 사이에 형성되는 미묘한 갈등과 모순 때문이다. 가르침이란 반드시 올바름(正道)으로 이끌어야 하는데, 올바른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면 노여움이 일며 책망하기 마련이다. 부자간에 꾸짖고 나무라며 혼내게 되면, 그러지 않아도 이른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라고 하는 미묘한 본능적 심리갈등 내지 경쟁의식이 있어 거리감이 있는 부자관계에 친함이 형성되기(父子有親)는커녕, 도리어 감정과 도의(의리)를 상하게 된다. “부모가 도둑이라고 해도 자식한테는 도둑질하지 말라고 가르친다”는 것인데, 부모가 항상 올바른 군자의 모범만 보일 수는 없지 않은가? 근데 부모가 자식한테 말로는 올바르게 행하라고 가르치면서 자신은 더러 올바르지 못한 짓을 하게 되면, 자식이 보고는 속으로나 심지어는 겉으로도 “나한테는 올바르게 살라고 가르치더니, 당신은 올바르지 못하면서!”라고 비판하게 되어 부자관계가 망가진다는 것이다. 부자간에는 血親의 恩情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므로, 善과 정의로 책망하게 되면 서로 소원해지고 갈라진다. 부자간에 멀리 갈라지면 가정이 파괴되고 사회가 불안해지므로, 이보다 더 큰 不祥事는 없게 된다. 孟子, 離婁上편. 「公孫丑曰: 君子之不敎子, 何也? 孟子曰: 勢不行也. 敎者必以正, 以正不行, 繼之以怒, 繼之以怒, 則反夷矣.夫子敎我以正, 夫子未出於正也, 則是父子相夷也. 父子相夷則惡矣. 古者易子而敎之. 父子之間不責善, 責善則離, 離則不祥莫大焉.」
家和萬事成을 내세우며 父子有親을 위시한 五倫을 국가교육 및 사회윤리의 핵심으로 역설하고 봉행한 전통교육의 이념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이제 시대가 완전히 바뀌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서로 뒤바뀌었으며, 남자와 여자가 지위도 완전히 역전되고 있다. 本末이 전도되어 末端이 근본처럼 행세하는 세상이라 末世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예로부터 예법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 적절히 변화해 왔다. 세상의 변천과 인심의 타락이 제아무리 통탄스럽다고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사회와 국가를 유지하려면 최소한의 인륜과 도리나마 법령과 형벌을 통해서나마 강행하여야 함은 어쩔 수 없는 시대요청일지 모른다. 이제 부모를 자식이 직접 봉양하던 ‘孝’道는 문화박물관에 보존해야 할 전통 윤리도덕이 되어 버리고 있다. 옛날 군자가 자식을 서로 맞바꾸어 가르쳤듯이, 바로 똑같은 그 이유와 원리에서, 이제는 거꾸로 신사숙녀라는 소인이 부모를 서로 맞바꾸어 봉양해야 할 때가 되어 가고 있다. 옛날 ‘학교’를 세워 “교육은 국가의 百年大計”라고 중시했듯이, 이제는 ‘慈悲軍’을 창설하여 “奉養(복지)은 인류의 千秋事業”이라고 추진해야 할 것 같다.
근래 고입이나 대입 선발시험에서 내신성적으로 각종 사회봉사활동경험을 반영하면서, 마지못해서 형식적으로나마 거의 대부분 학생들이 참여하는데, 물론 유명무실한 기록도 많지만, 특히 양로원이나 장애복지시설에 다녀온 학생들의 感想과 다짐을 들어보면, 확실히 사랑과 자비심을 일깨우고 고양시키는 효과가 제법 큰 제도임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또 근래에는 대학에서도 예컨대 ‘대학과 봉사활동’ 같은 과목을 정식교과로 채택해 수강학생들한테 도움이 필요하면서도 소외된 병약자나 노인들을 보살피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법연수원에서도 예비법조인들의 현장실습 교육의 일환으로 무료법률상담 같은 전문봉사 외에 사회복지시설에 가서 통상의 복지봉사활동도 ‘법조윤리’ 교과목의 일부분으로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훈습하다 보면, 노인과 장애자에 대한 연민과 동정심이 자극될 것이고, 나아가 부모나 조부모에 대한 효도의 마음도 저절로 일어 인간성을 자각하게 되면, 봉건유물로 매도되어 버림받은 전통 윤리도덕이 새롭게 소생하여, 해체 일로를 치닫고 있는 가족의 재구성과 사회유대 강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Ⅳ. 여성의 국방의무 평등분담과 慈悲軍의 실현 가능성
‘여성의 군복무제’에 대한 논의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주지하듯이, 이스라엘 같이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국방병역의무를 이행하는 모범국가가 이미 존재하고, 독일·스위스·스웨덴 등의 나라에서도 여성도 국방의 의무를 져야 한다는 논의가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으며, 실제로 대만·말레이시아·쿠바 등의 나라에서는 각기 다른 방법으로 여성도 국방의 의무를 지고 있고 한다. 이렇게 여성의 국방의 의무는 더 이상 비켜 나갈 수 없는 사회적 필요악이요, 세계적 추세임이 분명하다.
예컨대, 미국에서 유학하다 귀국하여 필자의 강의를 수강한 한 신문방송학과 학생이 필자의 慈悲軍 창설론에 대한 소감문에서 유학 중에 TV 프로그램에서 본 내용을 참고로 소개하였는데, 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모병과 징병에 관해 미국 내에서 상당한 인지도를 가진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토론했던 것을 시청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의 몇몇 사회학자와 징병제 국가출신의 몇몇 패널들이 토론에 참가했습니다. 독일, 이스라엘, 대만 그리고 한국의 한 여자였습니다. 각국의 패널들은 ‘내 나라를 지키는 데 남녀노소가 어디 있느냐?’, ‘내 나라인데 왜 내 손으로 지킬 수 없게 하느냐?’ 등을 주장했습니다. 교포인지 한국에서 온 학자인지 모르겠습니다만, 한국을 대표한 여성패널은 ‘왜 여자가 군대를 가야 하느냐? 여자는 신체적으로 총 쏘고 훈련하는 힘든 일을 하기엔 적절하지 않다.’ ‘한국의 문화에는 오랜 기간 남자가 국방의 의무를 수행했기 때문에 여자는 안 가도 된다.’ 등을 주장했습니다. 토론에 참가한 모든 사람은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토론의 끝에 쇼의 호스트였던 오프라 윈프리가 ‘한국의 여자들과 결혼해야 하는 한국남자들에게 조의를 표한다.(I want to condole to married with Korean women.)’라는 클로징멘트를 말할 땐, 부끄럽고 창피해서 정말 숨고 싶었습니다. 이렇듯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인권신장과 관련 없는 자신들의 이기적 이익을 얼마만큼이나 더 극대화 할 수 있을 것인가가 관심의 초점인 것 같습니다.”
이제는 우리도 국방의무의 남녀 평등 분담을 새로운 시대조류와 세계추세 속에서 새롭게 조망하여 재정립해야 할 때가 되었다. 실제로 우리 군에서도 일부 지원 여군의 강건한 활약은 여성의 일반병역복무 능력이 갈수록 크게 향상되고 있음을 구체로 뚜렷이 입증해 주고 있다. 더구나 최근 각종 여론조사 결과 남성보다 오히려 여성(50%남짓) 자신들이 병역의무의 평등부담을 더 원하고 있는 걸로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한겨레 21, 2005년 8월 16일자, 제572호, 44-59면에서 「여자도 군대 가자」는 題下에 크게 다룬 특집기사 참조. 그러나 우려되는 부작용과 해결될 문제점도 아직은 적지 않으며, 성에 따른 일반 적성 및 능력의 차별화성향을 감안한다면, 여성은 아직은 자비군을 위주로 하되, 예외로 군의관·법무관·방위산업체 등 전문직역과 공익근무를 포함한 일부영역에서 평화군을 허용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몇 년 전에 새 천년 21세기를 맞이하면서, 앞으로는 3F의 시대가 될 거라는 관측이 한때 나돌았다. ‘female(여성) feeling(느낌) fashion(유행)’의 시대라고 했던 것 같다. 특히 한국의 딸들은 여성 특유의 부드러움과 섬세함을 모성의 강인한 정신집중력과 잘 조화시켜, 예컨대 양궁이나 골프 같은 운동경기 분야 등에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위업들을 많이 연출해 내고 있다. 이러한 여성 특유의 부드러운 섬세함과 온화한 자비심을 국민건강과 국가사회 방위에도 적극 동참시키는 것이다. 또한 첨단정보산업 발전과 함께 전통 군대 및 전투 개념도 현대 들어 크게 변화하고 있어, 여성의 전통병역복무의 가능성과 필요성도 크게 확대되고 있으므로, 평화군의 참여기회도 점차 넓혀 가는 게 유익하겠다. 현재 보충역이 맡는 공익요원 업무도 대부분 여성이 더 잘할 수 있는 영역들이므로 함께 맡아도 좋다.
한편, 첨단 과학기술의 발달에 의한 군의 현대화 과학화로 기존 군대의 감축이 논의되는 마당에, 남녀평등 구색 맞추기에 급급한 여성의 군복무 주장은 막대한 국방예산을 가중시키고 국가 경쟁력의 심각한 손실을 초래한다는 반론이 있는 줄 안다. 그러나 자비군은 병영생활이 아닌 재택 출퇴근 방식을 채택하면 예산이나 불편 및 불안 문제가 크게 해소될 것이다. 또 나중에 상황의 획기적 변화가 발생하는 경우 모병제에 의한 일부 소수정예화로 전환하는 방안은 별론으로 치더라도, 아직 현행 국방의무 체제 아래서는 군대인원의 다소에 따라 복무기간의 장단을 다소 신축성 있게 조정하는 방편이 공평부담의 정신에 합당할 것이다.
그리고 그 동안 현실 문제로 어쩔 수 없이 도외시되었던 부분들, 예컨대 적십자나 기타 민간 사회복지기관의 자발 봉사자들에게 내맡기고 있는 각종 사회문제 해결에, 자비군이나 체격 및 체력 조건이 미치지 못해 대체 복무하는 인력들을 활용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불러올 수 있고, 또한 국가 경쟁력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이러한 군인력의 투입은 비단 사회와 직접 수혜자한테만 유익한 게 아니라, 자비군이나 대체 복무자들에게도 얼마든지 자아개발의 장이 될 수 있다. 대학생들이 취직하기도 사회에 적응하기도 몹시 힘든 현실 상황에서, 일부분이나마 자비군이나 대체 복무 기간 동안 자신의 전공 및 관심분야에서 의무 봉사를 하면서 사회 적응력을 높일 기회를 마련한다면, 이 또한 훌륭한 개선책이 되지 읺겠는가? 체계적인 정책의 입안과 운영의 묘에 따라서 인력을 다방면의 적재적소에 투입만 한다면, 큰 틀에서 사회복지와 개인의 능력을 동시에 증진시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충분히 이루어 낼 수 있다.
Ⅴ. ‘국방’과 ‘군역(병역)’의 개념 해석에 관하여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법 자체뿐만 아니라 법의 해석적용도 시대에 따라 변화·적응해 가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예컨대, 독일의 유명한 법사학자 오토 폰 기이르케는 “소유권은 논리 범주가 아니라 역사 범주다”고 말했다는데, 실제로 소유권의 개념은 중세 때 오랫동안 상급·하급의 중층구조로 분할되었던 것이, 근대 들어 자본주의 시민사회의 발달과 함께 신성 불가침의 배타적 절대권으로 승화되어 근대민법의 기본 원칙이 되었는데, 불과 2백년도 채 되기 못하여 현대복지국가 이념의 등장과 함께 소유권 공공의 원칙으로 수정되고 토지 公개념이 보편화된 실정이다.
헌법상 ‘국방’의무의 개념도 지금까지 일반 편견과 고정관념처럼 단지 무력에 의한 ‘국토방위’에만 국한할 필요는 없다. 남녀평등과 시대수요에 비추어 국방의무를 현대화 해석하자면, ‘국가사회의 방위’와 ‘국민생존의 防護’까지 포함한다. ‘국토’란 ‘국민’과 ‘주권’을 가능케 하는 ‘사회질서’랑 함께 잘 어우러져야 비로소 ‘국가’를 이루는 하나의 기본요소에 불과하다. 국가가 제대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국토’의 보전이 필수지만, 현대복지국가 개념의 등장이 아니더라도, 건강하고 평안한 국민생활과 사회질서의 확보도 또한 중요한 필수조건이다.
한편 우리 헌법은 제39조 1항의 법률이 정하는 ‘국방의 의무’와 달리 동조 제2항에서는 ‘병역의무’의 이행이란 표현을 써서, ‘국방의 의무’가 마치 남성의 전투력 중심의 ‘병역의무’로 한정되는 듯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그러나 굳이 두 개념간의 차이를 따져 시비를 논하자면, ‘국방의 의무’가 포괄적인 상위의 일반추상개념이고, ‘병역의무’는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는 구체화된 하위의 복무개념으로 구분하여 해석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사실 병역의 ‘兵’이란 본디 도끼(斤)를 두 손으로 받들어 쥔 모습을 본뜬 상형문자로서, 무기를 든 전투병의 개념이다. 그래서 노자도 兵은 본질상 상서롭지 못한 물건이며 군자의 기물이 아니기 때문에, 道가 있는 사람은 이를 좋아하지 않으며 부득이한 경우에 최소한도로 사용한다고 강조한다. 전쟁이란 이기든 지든 간에 수많은 人命 殺傷과 財貨 파괴를 수반하는데, 戰勝을 좋아한다면 결국 殺人과 파괴를 즐기는 것이며 天下를 통치할 만한 度量과 德性을 지니지 못한 자다. 따라서 戰勝한 개선장군은 그 숱한 殺人 때문에 喪禮로써 맞이해 哀悼해마지 않는다. 老子, 제31장: 「夫佳兵者, 不祥之器, 物或惡之, 故有道者不處. 君子居則貴左, 用兵則貴右. 兵者, 不祥之器; 非君子之器, 不得已而用之, 恬淡爲上, 勝而不美; 而美之者, 是樂殺人; 夫樂殺人者, 則不可得志於天下矣. 吉事尙左, 凶事尙右, 偏將軍居左, 上將軍居右. 言以喪禮處之, 殺人之衆, 以哀悲泣之. 戰勝, 以喪禮處之.」
한편 ‘軍’은 휘장을 친 수레를 본뜬 글자로, 작전지휘부나 보급부대의 수레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자비군이란 침대에 누워 보살핌을 받아야 할 노병환자들이 주된 대상이므로, 실내의 침상 수레를 연상하면 ‘軍’의 문자상 본래의미에 포함시킬 수 있겠다. 그러므로 전쟁을 止揚하고 억제하여 평화를 유지하는 ‘平和軍’ 개념이나 요양복지에 봉사하는 ‘慈悲軍’ 개념을 동시에 함께 포괄하는 데는 ‘병역’보다 ‘군역’이 더 적절하고 온화하다고 사료되어, 굳이 ‘軍’役이란 용어를 선택한다. 전통시대에도 모두 ‘軍役’이니 ‘軍布’니 해서 ‘軍’을 일반보편 용어로 사용해 왔다. 근래 이러한 의미와 역사유래가 간과된 채 무심코 ‘兵’이란 글자가 잘못 사용되고 있는데, 앞으로 ‘병역’ 대신 ‘군역’으로 바꿀 것을 제안한다.
나라의 평화로운 안정과 번영 없이 어떻게 개인의 생존과 발전이 있을 수 있겠는가? 나라를 지키는 데 어찌 남녀노소의 구분이 있을 수 있겠는가? 모든 생명체는 자기생명보존과 종족생명보존의 본능이 자연법으로 부여되어 있다. 유기공동체인 국가의 존립과 영속적인 발전번영을 위해 국토·국민·주권을 수호하는 포괄적 국방의무는 국가공동체의 구성원인 온 국민이 함께 지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자연법의 요청이고 명령이다.
Ⅵ. 남녀평등의 현대화와 性 대결의 원만한 화해
군필자 가산점에 대한 여성의 위헌 신청과 헌재의 위헌결정 이후 남성들의 불만과 원성은 갈수록 고조되고, 급기야 여성의 평등한 병역의무 이행 운동의 한 주된 動因이 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문제는 남녀의 감정상 性대결 양상으로 치닫는 이러한 갈등과 대립은 생산성과 창의성이 거의 없는 파괴적 소모전으로서, 남성이나 여성 모두에게 이로울 게 전혀 없으며, 국가 민족의 장래에도 결코 밝지 못한 그림자만 드리울 뿐이다. 이러한 감정대립의 소치로 설령 여성의 병역의무가 전면 실현된다고 해도, 그 앙금과 불만으로 인한 부작용과 비용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염려된다. 따라서 이러한 정서적 불화와 불만을 정화하고 해소하면서 병역의무의 남녀평등 문제를 한 차원 승화된 경지에서 건설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도, 남녀 性의 실제 차이에 구체로 입각한 자비군 양성 대책은 현실로 가장 바람직한 正反 和合의 변증통일 방안이 되리라 믿는다.
우리 헌법 제39조 제2항에서는 “누구든지 兵役義務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處遇를 받지 아니한다.” 고 규정하고 있는데, 사실 지금까지 남성들은 한참 학업에 전념해야 할 생기발랄한 청춘시기에 군에 2-3년씩 썩고 나오면 두뇌 기억력도 떨어지고 학업적응이나 사회복귀 능력도 무디어져 실질상 막대한 불이익을 받아 왔다. 그런데, 그나마 보상으로 시행되던 알량한 ‘군필 가산점’마저 형식상 남녀평등 논리에 따른 위헌결정으로 폐지됨으로써, 실질상 불평등이 현저히 심화되고 남성의 역차별이 가속화된다는 비판이 강하게 일고 있다. 헌법 제11조 제3항에서는 “勳章등의 榮典은 이를 받은 者에게만 效力이 있고, 어떠한 特權도 이에 따르지 아니한다.”고 규정하면서도, 제32조 제6항에서는 “國家有功者·傷痍軍警 및 戰歿軍警의 遺家族은 法律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優先的으로 勤勞의 機會를 부여받는다.”고 규정하여, 최근 낙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어려워지는 취업난에 1-2점을 다투는 각종 국가임용고시에서 유공자 자녀들이 가산점 혜택을 독점하여 절대 유리한 불공정 경쟁을 함으로써 형평성과 정의 문제가 심각히 대두되는 마당인데, 국가민족을 위해 군대 복무한 본인 자신은 도리어 실질상 불이익을 강요당하고 있으니, 이는 헌법(제39조 제2항) 위반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이는 것도 전혀 무리는 아니다.
물론 여성의 입장에서 아직도 취직에 불리한 사회제도와 의식의 걸림돌이 곳곳에 산재하는 가운데, 남성한테만 병역가산점까지 부여하는 것은 억울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 해결방법에서 가산점을 폐지하는 식이 아니라, 남성의 병역에 대한 시간적 손실분을 인정해 주고 여성은 여성 나름의 가산점 부여가 가능한 활동영역을 인정했어야 한다는 의견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만약 자비군과 같은 여성의 사회봉사 책임이 국방의무로 생긴다면, 이를 이행한 여성에게 남성 군필자와 똑같이 가산점을 줌으로써, 병역의무이행에 따른 가산점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Ⅶ. 권리의무 상호일치의 원칙
흔히 우리 전통 법관념은 의무와 형벌 위주로 전개되었고 서양의 법관념은 권리의 쟁취 역사로 대표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근대 서양법을 받아들인 이래 우리도 자유와 민주, 인권과 평등(특히 남녀평등)을 쟁취하고 신장시키기 위한 각종 사회(학생·노동·여성)운동에 엄청난 비용과 희생을 범국가적으로 계속 치러 왔다. 하지만 우리의 자유민주 의식과 인권 평등 관념도 이제는 성숙한 균형감각을 갖추어야 할 때가 되었다. 민주주의의 진부한 원론 같지만,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형식적 산술적 정의에 입각한 절대 평등만 고집할 게 아니라, 실질적 배분적 정의를 실현하는 상대 평등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일찍이 공자는 “見利思義”를 成人 군자의 인격 완성 요건으로 언급했다. 이익을 보면 의로운지 생각하고, 권리를 주장할 때면 동시에 의무도 이행할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이다. 여성이 사회적 약자로서 보호와 혜택만 요구하고 남녀평등을 내세워 여권신장에 투쟁만 일삼을 시기는 이미 지난 걸로 보인다. 얼마 전 법정투쟁으로 관철된 호주제 폐지와 여자의 친정 종중구성원 자격 인정을 보면서, 이제 여성운동은 권리쟁취가 아니라, 소속 구성원의 직책과 의무를 평등하게 부담하고 성실히 이행하는 방향으로 나갈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되었다. 용인 신도시 개발로 공공 수용된 종중 토지의 엄청난 보상금의 분배를 둘러싸고, 그 분할에 참여해 자기 몫을 쟁취하기 위해 법정으로 비화된 ‘여자의 종중원 자격 인정’ 투쟁과 합법쟁취 소식을 보면서, ‘남녀평등’이란 허울 좋은 명분의 저열한 동기가 마치 부친의 거액 유산 다툼을 벌이는 불초 자식들의 골육상잔처럼 황금만능주의 말세 중생의 탐욕스런 이기심의 극치로 느껴진 건 나만의 지나친 편견이었을까? 과연 그 여자들이 거액 보상금 분배문제가 불거지기 전에도 친정 종중 일에 발 벗고 팔뚝 걷어 부치고 남녀평등을 외치며 나섰을까? 과거는 불문에 부치고라도, 승소해서 자기 몫을 챙긴 뒤 앞으로라도 종중 대소사에 평등하게 봉사하고 희생할까? 죽은 뒤 시신도 친정 선산으로 묻힐까? 시댁 선산에 남편과 합장하는 걸 마다하고?!
이왕 남녀평등 쟁취하는 김에, 차라리 좀더 철저하고 완전하게 평등을 실현하고, 국민의 기본 의무의 이행에서도 균형 있고 공평한 분담을 하면 어떨까? 어차피 그게 시대의 흐름이고 대세이지 않은가? 물질문명과 전자제품의 발달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일까지 여성고유의 전통 일상가사가 특별한 의무부과처럼 느껴지지 않으며, 또 출산률의 격감으로 말미암아 여성이 병역의무의 대신충당으로 맡아 온 인구재생산의 사회책임도 그 비중이 현저히 낮아지고 있다. 이제는 여성의 권리와 평등이 신장되고 책임과 부담이 줄어든 만큼, 그에 상응하여 국민의 기본의무로서 국방의 의무에 여성도 특유성품에 맞갖은 형식으로 다소간 참여하는 게 정의와 형평에 맞지 않을까? 노령자와 중환자 장애인의 보살핌과 기타 사회가 필요로 하는 복지활동에 남성 군복무 기간의 절반 내지 3/4 정도 봉사하면 좋지 않을까? 그 대신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를 많이 출산하는 군필 여자에게는 일정한 비례의 장려금을 환급해 줄 수 있다.
Ⅷ. 자비군의 복무 대상과 방법 및 예외
자비군의 복무 방법과 조건은 앞으로 관련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공동 연구 협의하고 국민들도 함께 참여하여 衆智를 모아 合理적이고 合情적인 구체 청사진을 그려 가야 할 민족의 시대사명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전문가 연구와 국민토론의 실마리가 되도록 본인이 현재 생각나는 주요 골격에 관한 단편 구상을 제시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우선 여성 자비군은 남성 평화군처럼 집단병영생활을 강제하기보다는, 오히려 공익근무요원처럼 일반으로 재택 출퇴근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 좋겠다. 따라서 봉급은 따로 없이 복무기간 동안 自費로 생활하되, 교통비 정도 보조해 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러한 방법이 복지봉사업무의 성격이나 국가예산 절감 및 여성의 안전보호의 차원 등에서 바람직할 수 있으므로,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복무 방법은 일반으로 병원 간호사들의 교대근무방식을 모범으로 삼아 적절한 변화를 꾀하면 되겠는데, 요양기관 내에서 야간 당직근무를 하는 경우 기간의 혜택을 줄 수도 있겠다. 그리고 여성 자비군의 복무기간은 남성 평화군보다 조금 짧게 정한다. 남성 평화군의 복무기간이 장차 2년으로 주는 걸 기준으로 한다면, 여성 자비군은 복무대상자 수급상황에 맞춰 1년 6월 내지 1년쯤으로 줄일 수 있겠다. 그리고 자비군을 복무한 여성이 결혼해 자녀를 3인 이상 출산하는 경우, 여성 특유의 사회사명을 이행한 데 상응하여 군 복무 가산금 내지 출산 장려금을 일정 비례로 환급해 주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겠다.
반면 남성이 종교나 양심 또는 적성을 이유로 평화군 대신 굳이 자비군 복무를 대체 지원하는 경우, 그 복무기간을 일반 평화군의 1.5 내지 2배까지로 늘이되, 비교적 중증 장애자나 노환자들의 요양시설에서 강한 체력과 정신력이 필요한 고된 업무에 종사하도록 배치한다. 그 정도의 苦行을 인내하고 감수할 각오가 설만큼 확고한 신념이라야, 비로소 양심의 자유를 내세워 국방의무의 변통을 요청할 자격이 있으며, 일반 평화군에 복무하는 동료 남성들과 고난 정도를 비교형량해도 형평정의에 합당하리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복무 대상시설은 국공립 요양원과 기타 사회복지자선 단체 및 개인이 운영하는 각종 사회복지시설을 포함하되, 양로원 고아원 등 각종 시설의 공통 명칭을 ‘慈悲(福祉)院’으로 정하고, 특별히 재택 봉사를 제공하여야 할 만한 예외상황이 아니면, 중국의 ‘五保村’ 방식과 비슷하게 일반원칙상 ‘慈悲(福祉)院’ 시설에 수용하여 집중 봉사하면 여러 모로 효율성이 좋을 것 같다. 다만 그 봉사업무와 행정 및 보건위생 등의 관리감독을 엄격히 실시하여, 자비복지의 근본정신과 인간존엄의 기본권이 침해되거나 손상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한다.
또 자비군의 주된 봉사 대상은 의료보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노인질병이나 중증 장애자 임종환자 들의 요양 및 간병이므로, 보호자(부양인)도 없이 아주 가난한 생활보호대상자는 무료로 수용하더라도, 일반 입원자는 수익자 부담 원칙에서 실비 정도로 저렴하게 징수하여, 요양시설 및 자비군의 운영유지 비용에 충당한다. 자비군은 본디 효도법의 강제 시행 대신 채택한 대안의 성격도 함께 지니므로, 설사 자녀들한테 효도 윤리를 강요할 수는 없다고 하지만, 요양시설에 수용된 환자들의 실비용을 본인이 부담할 능력이 없는 경우, 법률상 부양의무를 지는 친족한테 국가(요양시설)가 본인을 대신해 법적 부양비를 대위 청구하고 징수할 수 있도록 합법화하는 제도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자비군의 창설을 기화로 노부모나 중환자를 국가(요양시설)에 떠넘기고 부양의무를 회피하는 얌체 자식들의 불효 불의는 사회정의와 인륜도덕에 비추어 결코 용납하거나 간과하거나 조장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의 ‘遺贈扶養協議’ 제도를 본받아서, ‘慈悲(福祉)院’에 입주하여 자비군의 봉사를 받을 老病者가 자신의 재산을 유증하는 조건으로 生養死葬(생전 노년의 부양과 사후 장례)의 봉사를 완전히 받을 수 있도록 일종의 특수 협약을 전형계약으로 일반화시켜 널리 시행해 봄직하다. 이는 慈悲(福祉)院 입장에서는 유증 조건부 부양 의무를 지고, 해당 국민(老病者)의 입장에서는 부양 조건부 유증을 하는 셈이 된다. 이 제도의 법률형식은 마치 중화민국 민법상 “유증이 의무를 부가한 경우, 受遺贈人은 그가 받을 이익의 한도 안에서 이행의 책임을 진다”(제1025조)는, 이른바 ‘의무가 부가된 유증’(우리나라 민법 제1088조의 ‘부담 있는 유증’)과 같거나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의무가 부가된 유증’의 형식으로, 쌍방 간에 실질상 중국 계승법상의 ‘유증부양협의’와 똑같은 법률효과를 달성할 수도 있다. 또 요즘 일부 시중은행에서 특수한 담보대출 제도로 선보이고 있는 이른바 ‘장기주택담보대출’(逆모기지론: reverse mortgage loan)도 비슷한 효과를 꾀할 수 있다.
그러나 근래 들어 자녀를 무조건 사랑하는 부모의 헌신적 본능감정을 악용하여, 부모의 재산만 미리 가로채고 노후 봉양은 내팽개치는 불효자식들이 갈수록 급증하고 있다. 요즘 독거노인들의 참상을 보면 농촌의 텅 빈 집은 옛날 깊은 산 속의 땅굴이나 별로 다를 것이 없어서, ‘현대판 집단 고려장’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이러한 불효 만행에 대하여, 국가사회 차원에서 법제도로 단호히 대처하고 잔정 많은 노부모들의 노후 봉양을 확보하여 사회 정의와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현대 법치복지국가의 매우 중요하고 시급한 시대소명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자비군의 국방의무화와 慈悲(福祉)院의 보편시행에 발맞추어, 중국의 ‘遺贈扶養協議’ 제도처럼 특별히 독립된 전형계약으로 일반화시키자는 것이다. 중국의 ‘遺贈扶養協議’ 제도에 관하여는, 金池洙, 中國의 婚姻法과 繼承法, 전남대학교출판부, 2003년 초판, 322-323면 참조.
한편, 의사와 사법시험을 합격한 예비 법조인에 여성이 갈수록 증가하여, 이제는 남녀의 성 비율이 거의 균형을 이룰 정도에 이른 현실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물론 군에서 필요한 의료나 법조 직무를 수행하는 데 여성이 남성보다 무능할 이유는 전혀 없다. 따라서 군의관이나 간호관 법무관 같은 전문직종은 여성의 평화군 지원을 허용하는데, 근무조건과 보수는 남성과 균형을 맞추되, 기간은 여성 자비군과도 균형을 맞추도록 배려한다.
특히 여성 자비군은 한두 가지 특별한 예외를 고려함직 하다. 우선, 전통시대 이른바 ‘犯罪存留養親’ 법의 이 점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金池洙, 『傳統 中國法의 精神 - 情·理·法의 中庸調和 -』, 전남대학교출판부. 2005년 초판, 161-8면 참조. 정신을 유추 적용하여, 자기 집안에 중증 노병자나 장애자가 있는데 자기 이외에 달리 간병할 가족이 없는 경우, 그 가족의 간병봉사를 허용하고 군복무로 인정해 주는 특례를 고려할 수 있다. 그러면 가족 간병의 효도와 자비군 복무의 국방의무를 동시에 실행하게 되어, 국법과 인정윤리가 원만히 조화를 이루어 산 교육이 될 수 있다. 예로부터 ‘효도는 모든 행실의 으뜸 모범’이라고 했는데, 산 효도교육이 실행된다면 국가사회의 안정유지와 평화번영은 정말로 탄탄한 반석 위에 올려질 것이다.
여성 자비군은 남성 평화군과 달리, 예컨대 국가대표선수나 미국 프로골퍼처럼 국위를 선양하며 외화를 획득한다든지, 특별한 재능을 발휘해 물질상 재화나 또는 정신상 가치를 크게 창출하여, 그로 인한 사회공헌이 자비군복무보다 현저히 뛰어난 경우, 특별위원회의 엄격하고 공정한 심사를 통해 현역복무 대신 넉넉한 군비대납을 극히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것도 고려될 수 있겠다. 이와 함께 현재 시행되고 있는 남성 (평화)군 복무의 특별감면혜택 대상자들도 단순면제보다는 군역을 대신 보상할 일정액의 납부를 요구하는 것이 형평의 법리에 맞겠다.
Ⅸ. 맺음말
과감히 발상을 전환해서 온고지신의 묘책을 꾀하자. “국방병역 革新, 老病복지 革新, 남녀평등 革新” 일본근대화의 상징인 ‘明治維新’을 통해 우리에게 익숙히 알려진 ‘維新’은 그러나 장기집권을 꾀하다 결국 종신집권을 하고 만 군사독재자 박정희 전대통령의 그릇된 욕심에서 비롯된 이른바 ‘十月維新’으로 말미암아 아주 부정적 인상으로 변질되어, 이제는 ‘維新’이란 말만 들어도 심한 거부감이 들 정도다. 그러나 ‘維新’의 출전은 멀리 시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주나라가 비록 오래 된 나라지만, 그 운명은 오히려 아주 새롭다.(周雖舊邦, 其命維新.)”는 구절에서 비롯되어, 日新又日新의 자기혁신과 향상발전을 뜻하는 성어가 되다시피 했다. 시월유신 제33주년에 즈음하여, 치를 떨던 악몽의 역사를 반성하고 되새기며, '시월유신'의 공과는 역사평가에 맡기면서, ‘維新’의 본래의미에서 ‘革新’이란 용어로 바꿔 쓴다. 으로 국운창성과 민족번영을 기약하며, 栗谷선생의 “십만양병설” 정신을 이어받아 “백만 慈悲軍의 창설”을 공식 제창한다. 이렇게 된다면, 남녀 성에 따른 분업과 개인의 능력발휘를 계기로, 남성에 편중된 국방부담이 덜어져 균형을 이루고 여성의 자아성취가 실현되어, 생산성이 증대되고 사회전반에 건강한 활력이 솟구치며, 국가사회 비용도 크게 절감되어 건실한 재정을 유지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남성의 무력위주 군대문화가 여성의 온유한 자비심 문화와 어우러져 음양조화를 잘 이루면, 평화롭고 살기 좋은 세계제일의 지상낙원을 이룰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옛날 행주산성에서 아낙들이 돌을 날라 장정들의 전투력을 도와 대첩을 이루었듯이!
첫댓글 헐,,,영어도 힘든데 한문까지..ㅠㅠ 안습입니다..저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