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근대 초 유럽전쟁사를 논할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름인 '테르시오'는 사실 상당히 많이 오해되고 있는 개념이다. 사람들은 종종 '테르시오 전술' 혹은 '테르시오 진형' 등의 이야기를 하지만 그것은 대부분 잘못된 이미지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이미지는 많은 부분이 1955년에 마이클 로버츠가 주창한 '군사혁명론(the military revolution)'을 통해 성립되었다. 여기에 따르면 테르시오는 거대한 장창병 보병 방진을 화승총병이 감싼 형태의 모습을 한, 사람으로 구성된 일종의 '이동 요새'였다. 그리고 이 전술은 16세기에 유럽을 지배했으나, 17세기에는 마우리츠와 구스타프 아돌프 같은 혁신적인 선구자들에 의한 더 근대적인 개혁으로 탄생한 신형 전술에 의해 점차 도태되었다는게 로버츠의 도식이었다.
이 도식은 대단히 영향력 있는 지위를 꽤 오래 차지했으며, 아직까지도 상당수의 개설서와 대중서는 이 설명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90년대 이후의 새로운 연구에 따라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 도식은 상당히 문제가 많은 도식이다. 특히 테르시오에 대한 설명은 거의 대부분 틀렸다.
이 글은 기존 군사혁명론의 문제점이나 관련 논쟁들을 세부적으로 다루려는 글은 아니다. 이번 글에서는 테르시오가 가장 빈번하게 오해를 받는 부분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가장 최신의 연구결과를 소개하고자 한다.
오해 1: 테르시오는 전술 이름도, 대형 이름도 아니다
우선 웹상에서 종종 언급되는 '스페인의 테르시오 전술'이라든가, '테르시오 진형'이라는 표현 자체가 잘못된 것임을 먼저 밝혀둬야 할 듯 하다. 테르시오는 특정한 전술을 가리키는 명칭도 아니고, '선형진'류의 진형을 지칭하는 명칭도 아니다. 테르시오는 스페인 고유의 군 편제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합스부르크 왕조 치하 스페인의 보병부대는 두 종류의 부대로 편성되었다. 그중 하나가 '테르시오(tercio)'이고 다른 하나는 '레히미엔토(regimiento)'였다. 이중 테르시오가 일반적으로 좀더 정예병으로 구성된 엘리트 부대였다.
당시 가장 기본적인 전술 단위는 '콤파니아(compañía)' 즉, 요즘으로 치면 중대였는데, 대략 10-12개 중대가 모여 하나의 테르시오를 구성하였다. 즉, 테르시오와 레히미엔토는 모두 중대 위에 있는 연대 개념의 부대 단위인 것이지, 특정한 전술과 진형을 가리키는게 아니다.
오해 2: 전형적인 테르시오의 전투 대형 같은건 없었다
그렇다면 두번째 오해. 테르시오는 흔히 생각하듯 언제나 거대한 방진을 이루고 총병이 둘러싸는 진형을 구성하고 싸우지 않았다. 첫번째 단락에서 설명했듯이 테르시오는 서로 다른 10-12개의 중대를 하나로 묶어놓은 조직을 가리키는 명칭이었을 뿐이다. 당연히 '테르시오라면 이런 대형'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그렇다면 스페인 테르시오들은 어떤 대형과 전술로 싸웠을까? 케이스 바이 케이스, 그때그때 달랐다. 즉, 테르시오는 모든 부대가 일괄적으로 따라야 할 표준대형이 있는게 아니라, 지휘관들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대형과 전술로 싸웠다. 적군의 규모, 적군이 즐겨쓰는 전술, 날씨, 지리, 아군의 사기와 숙련도 등등 여러가지 상황에 따라 테르시오가 구사하는 전술은 판이하게 달랐다. 가령, 아군이 막 모병되어 실전경험이 부족한 병사들이 많다거나, 지금은 방어전을 펴야 할 떄라고 판단된다면 방진을 칠수도 있었고, 아군 대부분이 노련한 고참병이라 대형을 엺게 펼쳐도 좋다고 판단된다면 횡대 대형으로 싸우는 식이었다.
다만 흔히 생각하는 창병 방진을 총병이 둘러싼 거대한 대형은 생각보다 꽤 드물었다. 이것은 주로 개활지에서 회전을 벌일때 유용한 방식인데, 당시 유럽 전쟁에서 대규모 회전은 꽤 드문 형태였고, 테르시오가 활약했던 네덜란드와 플랑드르 지역에서의 전투는 더더욱 그러했다. 그보다는 소규모 인원들의 척후전, 스커미쉬가 더욱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런 경우 테르시오의 지휘관들은 테르시오를 구성하는 중대들 중에 주로 화기로 무장하고 경험이 풍부한 병사들을 빼내서 독립부대를 구성하여 파견했다. 앞서 말했듯, 테르시오는 10-12개 중대의 결합이었기 때문에, 세부적으로 부대를 어떻게 결합할것인지는 지휘관의 재량이었다.
따라서 테르시오는 언제든 커졌다, 작아졌다 할 수 있었고,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다른 형태의 진형에서 다양한 전술을 구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전술적 유연함이 테르시오의 최대 강점이었다.
오해 3: 테르시오는 17세기 신형전술의 등장으로 인해 도태된 것이 아니다
사실 앞선 오해 1,2를 이해한다면 이건 매우 당연한 소리다. 애초에 도태될 '테르시오 전술'이나 '테르시오 진형'이라는게 없는데 도태되었다는게 말이 안되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전 개설서나 대중서에 등장하던 '둔중한 테르시오에 비해 유연한 마우리츠의 선형진과 구스타프 아돌프의 화력을 중시한 대형이 테르시오를 도태시켰다'라는 서술도 자연히 틀린 서술이 된다.
앞서 설명했듯, 테르시오는 거대해질 필요가 있으면, 거대한 대형을 치고, 얇은 대형으로 싸울 필요가 있으면 그렇게 했으며, 창병이 중요하다 싶으면 창병 비율을 늘렸고, 화력이 중요한 때다 싶으면 총병 비율을 늘릴 수 있었다. 게다가 테르시오는 초창기부터 레히미엔토보다 화기의 비중이 높았다.
17세기의 전투 대형을 보면, 테르시오나 스웨덴군이나 네덜란드군이나 잉글랜드군이나 세부사항에 어느정도 차이는 있지만, 일반인이 보면 쉽게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어느 하나가 시대에 뒤떨어져서 도태되고 하는 식의 내러티브는 더이상 학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결론
즉, 테르시오는 어떤 특정한 형태의 전술과 진형이 아니라 스페인의 정예 보병부대 그 자체였다. 그리고 도태되기는 커녕 17세기 내내 유럽에서 가장 효율적인 군대 중 하나로 명성을 날렸다. 예전처럼 니우포르트 전투로 테르시오는 지고 마우리츠의 선형진이 떴다거나, 로크루아 전투로 테르시오가 몰락했다거나 하는 설명은 역사적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서술이다. 무엇보다도, 개별 전투 하나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현재 학계에서는 지양되는 설명 방식이다. 또한 지금은 17세기 스페인의 몰락 담론 자체가 그 신빙성을 크게 의심받고 있는 상황인데다가, 전투에서 몇번 패했다고 해서 그 군대의 시대는 끝났다는 류의 서술은, 그러면 한번도 패하지 않는 군대야만 효율적인 군대라는 이상한 서술이 되버린다.
참고
Eduardo de Mesa, The Irish in the Spanish Army in the Seventeenth Century (Woodbridge, 2014). 테르시오의 효율성에 대한 가장 최신 논의를 담고 있는 영어권 연구서
Antonio Jose Rodriguez Hernandez, Los Tercios de Flandes (Madrid, 2015). 역시 비슷한 내용으로 스페인 학계의 최신 논의를 담고 있다. 에르난데스 선생은 바야돌리드 대학 사학과 교수
David Parrot, "Strategy and Tactics of the Thirty Years' War: The 'Military Revolution'". 로버츠 테제에 가해진 90년대의 여러 공격들 중 대표적인 논문에 속하는 글이다.
첫댓글 흠
테르시오관련 기존설명을 읽으면서
응? 왜 총병을 자유사격으로? 총병일변도인 전열보병때 오히려 화망을 형성했는데? 저래선 화기의 효과를 체감할수있나?
총병들이 기병돌격시 어디로 숨었다는거지?
등등의 의문이 많았는데
순수창착이었기때문에 그렇다는? ㄷㄷㄷ
그럼 스페인의 쇠퇴로 전장에서 테르시오 언급이 준게 흔히 말하여지는 테르시오의 몰락일까요?(17세기 스페인 몰락도 어폐가 있다고 말씀하셨지만서도)
테르시오는 그냥 편제명이기 때문에 몰락했다는게 말이 안되고, 스페인은 부침은 때때로 있었지만 18세기까지도 내내 유럽 3강이었습니다.
@mr.snow 그래서 17세기 스페인몰락도 의문이 있다고 하셨군요
알겠습니다
@빌리븜 아닙니다. 신성로마제국의 위대한 가문 합스부르크가 없는 18세기 스페인은 몰.락.한. 스페인입니다!!!!! 부르봉따위 ㅉㅉㅉ
@havoc(夏服ㅋ) 으흠
그 합스부르크의 신성로마는 30년 전쟁 패전국 아니셨던가용
힘 없는 황제는 황제가 아닙니다
ㄷㄷㄷㄷㄷ
@빌리븜 개그인건 알지만 다큐로 받자면 패전국 아닙니다
역개루에서 처음 읽어봤는데 이곳에도 소개해주시다니 감사합니다. 테르시오 진형이니 뭐니 했던 이론은 상당히 오래된 이론이었던 거군요
국내 웹의 유럽사 담론이 대부분 그렇습니다
@mr.snow 이번에 저도 처음 알았네요. 스페인 고유의 창병 + 총병 방진 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콤파니아가 대략 어느정도 병력이 최대정원이었나요?
시대마다 다르고 16세기 전반부에 최대 300명이라는 기록도 있지만 비현실에 가깝고 대부분은 100명정도였다고 하더군요.
@havoc(夏服ㅋ) 그럼 테르시오도 대략 1000~1200명인가요?
@노스아스터 아마 그렇게 보면 될 겁니다. 최소 1000 최대 3000이었을걸요...? 제가 아는건 30년전쟁 이전 이야기라서 정확하진 않네요... ^^;;;
1. 군사혁명이론을 통해 좋은 해석들이 나왔지만 이제 퇴물이죠. ^^
2. 2번은 좀 새롭군요. 뭐, 쓰신것도 맞겠지만 저는 테르시오 즉, 당시 스페인군의 강점이자 혁신적인 특징은: ㄱ. 기병의존도를 팍 줄여버렸다는 점. ㄴ. 총병위주 전열진형을 도입했다는 점. 이러한 것들로 알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ㄴ사항인데, 지휘관들이 어느정도수준까지 유연하게 진을 짰을까요?
케바케입니다
@mr.snow 그렇습니까 ㅎㅎㅎㅎ 좀 더 알아봐야겠군요. 기계적으로 움직이던 군댄줄 알았는데... 하긴 30년전쟁만 해도 짜여진 대로만 전투를 치루는건 어려웠겠네요. ㅎㄷㄷㄷ
테르시오 전술에 대한 시각이 바뀌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ㅎㅎ
근데 저 첫짤은 제목이 뭔가요????
그냥 구글에서 긁어온거라 모르겠습니다
뭐 30년 전사를 봐도 총병 얼마 창병 얼마 분견대를 보냈다는 식의 기술이 많기는 한데..
흔히 알려진 케이스는 발렌슈타인의 대회전 때 사용하던 것이었을까요? 현재 이론대로라면 콘살로 데 코르도바의 "개혁"은 개혁이라기 보다는 시대적인 흐름을 정리한 쪽에 가깝다는 것이 되는 건지요?
일단 16세기와 17세기가 다르고, 개별 전투때마다 또 상황 따라 형태가 상당히 달라서 말이죠. 사실 발렌슈타인 때의 대형을 보면 16세기하고는 크게 다르거든요.
17세기 스페인의 몰락 자체가 허상이다... 좀 생각해보면 이것도 맞는 말이네요. 이탈리아 곳곳에 지배영토가 있고, 프랑스, 영국과 겨루며 남미대륙 전체를 거의 혼자 집어삼켜먹었던 거인이니.
사실 쇠퇴or융성 담론 자체가 요즘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긴 합니다. 거대 국가라는게 늘 부침이 있게 마련이고 모든 분야가 일괄 쇠퇴하는 것도 아니고 그 반대도 아니거든요. 로마의 3세기가 마냥 위기였냐 하면 그렇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죠.
@게오르기오스 가장 직접적으로는 나폴레옹의 망상과 그로 인한 전쟁이 이베리아 반도를 개판으로 만들어놨기 때문입니다.
흐흐 역알못도 재밌게 읽고갑니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