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추억이 된 토니 풀리스의 스토크 시절
토니 풀리스 감독은 유독 맨시티에 약한 면모를 보였다. 리그에서 맨시티를 만났을 때의 전적은 무려 1승 4무 12패다. 스토크 감독 시절, 2009년 1월에 한 번 이겨본 경기가 리그에서 맨시티를 꺾은 유일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당시엔 전반 37분에 로리 델랍이 다이렉트 퇴장을 당하며 위기에 빠졌으나 전반 종료 직전에 터진 제임스 비티의 결승 골을 잘 지켜내 1대 0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그 이후 무려 15번의 리그 맞대결에서 한 차례도 승리하지 못했다.
풀리스 감독으로서는 참 지독한 맨시티 징크스다. 특히 단순한 전적을 넘어 중요한 순간마다 맨시티에 발목을 잡힌 것으로도 유명하다. 대표적인 사건 두 가지를 지금부터 소개한다.

1992년 본머스 감독으로 부임해 지도자 커리어를 시작한 풀리스는 1995년에 질링엄에서 두 번째 팀 지휘를 시작했다.
# 1998-99 시즌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PO 결승전 /
맨시티 2대 2 질링엄 (PK 3대 1, 맨시티 승)
지금도 잉글랜드 현지에서 명경기로 회자하는 유명한 경기다.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PO. 다시 말해 3부 리그에서 2부 리그로 올라가는 세 팀 중, 자동 승격을 확정한 리그 1, 2위 팀을 제외한 나머지 한 팀의 주인공을 가리는 플레이오프다. 지금으로선 맨시티가 3부 리그에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지만, 엄연히 사실이다. 그 당시 라이벌 팀 맨유가 트레블을 이루며 황금기를 누리는 동안, 맨시티는 깊은 암흑기에 빠져 있었다.
1995년에 질링엄의 감독을 맡은 풀리스는 4부 리그에 머물던 질리엄을 얼마 후 3부 리그로 승격시키며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기세를 살려 내친김에 2부 리그 승격까지 이룬다는 포부가 굉장했다. 그리고 기어코 기회가 왔다. 1998-99 시즌, 3부 리그에서 4위에 올라 승격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했다. 그리고 플레이오프 준결승에서 프레스턴 노스 엔드를 꺾고 결승 진출을 이뤘다. 그들의 상대 팀은 리그 3위에 위치했던 맨시티. 맨시티는 준결승에서 위건을 꺾고, 2부 리그 승격을 이루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후반 81분, 칼 아사바 골 (맨시티 0대 1 질링엄)

후반 87분, 로버트 테일러 골 (맨시티 0대 2 질링엄)
단판으로 치러진 결승전은 질링엄의 승리가 될 확률이 높아 보였다. 후반 81분, 그토록 기다리던 선제골이 질리엄의 칼 아사바에게서 나왔다. 이후 87분에 로버트 테일러가 쐐기 골을 터트리며 질링엄이 2대 0 리드를 잡았다. 모두가 경기가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기적이 발생했다. 종료를 얼마 안 남긴 후반 90분에 맨시티의 케빈 호록이 추격 골을 성공했고, 무려 90+5분에 폴 디코프가 극적인 동점 골을 넣어 승부는 2대 2가 됐다. 결국, 기세가 살아난 맨시티는 승부차기 끝에 질링엄을 3대 1로 꺾고 2부 리그 승격을 확정했다.

후반 90분, 케빈 호록 골 (맨시티 1대 2 질링엄)

후반 90+5분, 폴 디코프 골 (맨시티 2대 2 질링엄)
니키 위버의 선방으로 맨시티의 승격이 확정된 순간. 상대 팀 입장에선 약간의 도발(?)로도 보일 수 있는 동작 후 미친 듯이 웸블리 피치를 뛰어다녔는데, 잉글랜드 현지에서도 '크레이지 런'으로 익히 알려진 장면이다.
이 경기 결과 때문에 두 팀과 두 팀 감독의 명과 암이 엇갈렸다. 2부 리그 승격을 이룬 맨시티는 곧이어 프리미어리그 승격을 확정하며 암흑기를 끊었다. 이 과정을 함께한 조 로일 감독도 많은 찬사를 받았다. 이후 맨시티는 중간에 한 번 더 2부 리그로 강등되는 아픔이 있었지만, 곧바로 프리미어리그에 복귀했고 얼마 후 만수르를 만나 새 역사를 만들었다. 반면 풀리스 감독은 승격이 좌절되자 계약 조항에 있는 보너스 지급 문제까지 시달리며 끝내 질링엄 감독직에서 경질됐다. 커리어 사상 두 번째 지휘팀인 질링엄에서의 마지막 시즌을 결국 맨시티에 의해 망치고 말았다.
# 2010-11 시즌 잉글랜드 FA컵 결승전 /
맨시티 1대 0 스토크
풀리스 감독은 자신의 7번째(5번째이기도 하지만, 2005년 여름에 경질된 후 플리머스를 한 시즌 지휘하다 복귀) 지휘 팀인 스토크 시티를 구단 역사상 최초로 FA컵 결승에 올려놓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결승전에서 또 한 번 맨시티에 발목을 잡혔다. 후반 74분, 마리오 발로텔리의 슈팅이 수비수를 맞고 튕겨 나오자 이에 빠르게 반응한 야야 투레가 강력한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시종일관 수비적으로 나섰던 스토크는 선제 실점 허용 후 동력을 잃었다. 그렇게 맨시티가 42년 만에 FA컵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영광의 순간을 맞았다.

후반 74분, 야야 투레 골 (맨시티 1대 0 스토크)
풀리스 감독이 결승에서 일을 낼 거라 기대하는 목소리도 컸다. 한 시즌 전엔 재경기 끝에 맨시티를 FA컵 16강에서 탈락시킨 전적이 있어 공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풀리스 감독의 맨시티 악연은 그대로 이어졌다. 결국, 스토크 시티가 역사상 최초로 FA컵을 우승하는 시나리오도, 그 역사에 풀리스 감독의 이름이 등재되는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현재 풀리스 감독의 웨스트 브롬위치는 분위기가 썩 좋지 않다. 1R 본머스전, 2R 번리전을 제외하고 리그 승리가 없다. 문제는 지난 시즌을 포함한 최근 프리미어리그 18경기의 기록을 놓고 봤을 때도, 이긴 경기는 이 두 경기가 유일하다는 것. 올 시즌은 이후 4무 3패를 거두는 데 그쳐 18위 에버튼과의 승점 차가 2점밖에 나지 않는 상황에 놓였다. 풀리스 감독을 향한 ‘축구가 재미없다.’, ‘공격이 단조롭다.’ 등의 반응도 점점 나오고 있는데, 최근엔 성적마저 좋지 않다. 지금 이 시점에 확실히 나아진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 풀리스 감독의 WBA 감독 커리어도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오늘 맨시티를 상대하는 풀리스 감독은 자신이 가진 악연을 넘어 WBA가 가진 맨시티와의 악연도 극복해야 한다. WBA는 맨시티를 상대로 (전체 대회 기준)12경기째 승리가 없다. 2010년 9월 23일 이후 7년 만에 승리에 도전해야 한다. WBA가 최근 리그 7경기에서 승리하지 못한 동안, 맨시티는 7연승을 이뤘다. 전적도 좋지 않은데, 흐름까지도 차이가 상당하다. 풀리스 감독의 대처가 궁금하지만, 재미를 볼 확률은 매우 떨어진다. 결국, 풀리스 감독이 가진 맨시티와의 지독한 악연은 오늘도 이어질 전망이다.
글 - 임형철 (SPOTV 해설위원)
사진 - 웨일스 온라인 / EFL 유투브 채널 / 잉글랜드 FA 유투브 채널 / 스카이스포츠

[이번 주 해설 일정]
2017년 10월 28일 토요일 오후 23시
2017-18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10R [웨스트 브롬위치 vs 맨체스터 시티]
SPOTV+ 생중계 (네이버, 다음)
경기 중계 후, 최고의 수훈 선수를 소개하는
'라이징 스타'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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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줄TV] 맨유 vs 토트넘 상세프리뷰 및 주말 빅매치 승부예측(10.28) - 펠레스코어 22회 1부
한 주 게스트로 출연했습니다. 많은 시청 부탁드려요!
첫댓글 오늘도 멋진 해설 부탁드립니다
빨리보고싶다
와 신기방기 ㅋㅋㅋ 좋은 해설 기대하겠습니다
해설 기대할께요~ 항상 수고 많으십니다
해설 기대하겠습니다 ^^
이렇게 악연이 깊을 줄은 몰랐네요!
특히 플레이 오프는 시티가 극적으로 올라가서 더더욱 아쉬움이 컸을 것 같아요.
흥미로운 글 정말 감사합니다!
해설이랑 라이징 스타 글도 기대할게요!!
오.. 어제 시티해설 듣고 해설하신분이 어떤분인지 찾아보고 있었는데 락싸하시는분이셨네요. 어제 해설 편안하고 포인트도 잘 짚어주셔서 좋았습니다. 계속 수고해주세요!
덧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용 읽고 울컥...ㅠ 정말 보람차네요 ㅎㅎ 더더 노력해서 앞으로도 꾸준히 발전하는 모습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주말 마무리 잘 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