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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제55장 帝皇을 위해
주루(酒樓), 몹시도 날고 허름했다. 하나, 그 안에는 천하에서 가장 유명한 삼인(三人)이 앉아 있었다.
"자네들에게 미안하네. 정말 뭐라고 할 말이 없어…"
그 들은 모두가 백의(白衣)를 걸치고 있었다. 한 초로의 노인(老人)이 괴로운 표정으로 입을 열자 그 옆의 노인이 말을 받았다.
"명성, 너무 괴로워 할 것은 없네. 우리 삼천황은 백년지기가 아닌가… 필시 자네에게 말 못할 고충이 있었음을 이해하고 있네."
오오…! 환우삼천황(桓宇三天皇)---! 이들이 바로 전설적인 기인들 이란 말인가? 명성천황은 괴로운 듯이 단숨에 술잔을 비웠다.
"말하겠네. 나로 인하여 자네들이 모두 무림으로 나왔으니 내가 무슨 면목이 있겠나."
"…"
이인(二人)의 시선은 일제히 명성천황을 향했다. 사실, 그들 환우삼천황은 한 낱 한시에 은거를 결심하고 무림에서 물러 났었다. 한데, 명성천황을 제외한 이인(二人)은 모두 한 여인(女人)이 들고 온 하나의 옥부(玉符)로 인하여 무림에 나오게 된 것이었다. 옥부(玉符)! 그것은 명성천황의 신물이었기에… 이때, 명성천황은 괴로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사실 스스로의 무공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네. 더욱이 진법(陣法)이나 그밖에 역리(易理)에 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었지…"
"…"
이인(二人)은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고 듣기만 했다. 환우삼천황! 그들 또한 그 이름에 대한 대단한 명예욕과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고, 지금 명성천황의 말을 듣는 순간 일말의 불안감이 싹트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내, 명성천황은 계속 말을 이었다.
"한데… 그 자부심은 한 중년여인(中年女人)을 만남으로 인하여 철저하게 무너져 버렸고 그로 인하여 자네들에게도 피해를 주게된 것이네."
"그럼…?"
천뇌천황이 의아한 듯 물으려 하자 명성천황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네. 나는 그 중년여인과 진법을 겨루었네… 한데 그 여인은 무공은 물론 그 어떠한 종류의 공부에서도 나를 능가하였네."
일순, 천뇌천황은 신음 하 듯이 중얼거렸다.
"결국… 그렇게 된 것이군. 그 중년여인은 숭리의 대가로 자네의 신물을 요구 하였고… 자네는 내줄 수밖에 없었겠지…"
명성천황은 괴로운 듯 또 한잔의 술을 비웠다. 묵묵히 듣고만 있던 천검천황 역시 술잔을 비우고 나서 중얼거렸다.
"및어 지지가 않는군. 아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자네가 패하다니… 그것도 진법으로…"
허자, 명성천황은 천검천황을 향해 시선을 던지고는 입을 열었다.
"내가 지금 이 말을 꺼내는 까닭엔 또 다른 이유가 있네. 환우삼천황의 명예보다도… 자네들에 대한 미안함보다도 더 심각한 이유가…"
더 심각한 이유…? 문득, 명성천황, 그는 천뇌천황의 얼굴에 시선을 못 밖았다.
"천뇌, 자네는 벌써 짐작을 했을테지?"
천뇌천황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네. 나는 벌써부터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예감을 느끼고 있었네."
명성천황은 쓸쓸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역시 자네는… 천뇌. 그 예감을 느끼게된 이유를 말해 줄 수 있겠나?"
천뇌천황은 고개를 끄덕이 고 나 서 즉시 입을 열었다.
"첫째는 정천혈맹주에 관한 것이네. 혹 그녀와 마천제황의 표정을 자세히 본적이 있나?"
"…"
"맹주는 지혜가 뛰어나지만 결코 간교한 음모를 꾸미는 자는 아니네. 하나, 마천제황이라는 청년의 눈은 온통 분함과 한으로 가득차 있었네."
명성천황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말을 하니 생각이 나는군. 그런 눈빛은 정당하게 패했을 경우에는 결코 나타날 수 없는 것이었지… 그래 또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천뇌천황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가 입을 열었다.
"무영초객이네."
"무영초객…?"
이인(二人)은 의외인 듯 나직이 반문했다. 천뇌천황은 단호 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네. 그는 분명 엄청난 금제(禁制)에 이성을 잃은 자가 분명하네. 그런데…"
그는 돌연 천검천황을 주시하며 말했다.
"무영초객의 몸에서 풍기는 기도는 바로… 해천검궁의 만상해천검결(萬象海天劍訣)이었네."
순간, 천검천황의 무심한 표정은 홱 변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네. 본궁은 백 년 동안 무림에 단 한 번도 나간적이 없거늘…"
천뇌천황이 그의 말을 끊으며 입을 열었다.
"자네의 말은 틀렸네. 천룡백작 표리성… 그는 자네의 외손자가 아닌가? 또한 그는 만상해천검결을 익히지 않았는가."
아아…! --- 천룡백작 표리성! 그는 바로 표리천영의 부친이 아니던가!
일순, 천검천황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나.. 그 애는 이미 죽었으며 나는 그 애와의 인연을 끊었네."
천뇌천황은 고개를 저었다.
"자네가 무영초객을 보았다면 그가 죽었다는 말은 못할 것이네. 또한 자네의 가슴에는 아직도 그에 대한 정(情)이 살아있네."
오오…! 이 것이 대체 무슨 말인가? 무영초객이 그럼 천룡백작 표리성이란 말인가? 표리천영의 부친인..
정녕 비극(悲劇)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 항산에서는 무영초객이 표리천영을 죽이려 하고 있지 않은가? 대체 어찌해 이런 엄청난 비극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하여튼 이때, 천검천황은 격동을 참을 수 없는 듯 몸을 가늘게 떨고 있었다.
"그… 그럴 리가…? 아닐세. 분명 자네가 보았을 것이네…"
이때였다. 주루안으로 한 검사(劍士)가 쏘아져 들어오더니 천검천황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해천검궁의 검사인 듯… 검사는 천검천황이 채 묻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궁주님, 그… 그녀가 사라졌습니다."
천검천황은 흠칫 놀라며 반문했다.
"사라지다니…? 어디로 말인가?"
검사는 고개를 숙인채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나흘 전에 식사를 가져갔을 때 이미 보이지 않았습니다."
옆에서 명성천황이 물었다.
"그녀라니?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순간, 천검천황은 암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표리성의 부인이네. 그 애의 복수를 한다고 하기에 만류해 놓았었지… 분명 항산으로 갔을 것이네."
그는 신형을 일으키며 말을 이었다.
"미안하네. 나는 어서 그곳으로 가봐야 하겠네…"
그가 일어서자 이인(二人)도 동시에 일어섰다.
"같이 가세나. 어쨌든 우리 삼천황은 백년 만에 만나지 않았는가?"
삼인(三人)은 동시에 신형을 날려 항산으로 향했다. 하나, 그것으로 인하여 한 가지 소홀히 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명성천황이 꺼낸 심각한 이유에 관한 것이었으며, 천뇌천황이 말한 심상치 않은 예감이었다. 그것…! 바로 그것이 그들의 목숨을 단숨에 앗아갈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소홀히 하고 말았으니… 과연?
× × ×
수만 쌍의 눈동자가 단 이인(二人)을 향하고 있었다. 무영초객! 마천제황 표리천영! 한데,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마주보며 조금치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 뒤로, 마침내 신비천녀의 음성이 떨어졌다.
"무영초객, 뭐하고 있나요? 어서 그의 목을 치지 않고…!"
"…"
무영초객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하나, 그의 검(劍)은 여전히 뽑혀지지 않고 있었다. 신비천녀는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들었으나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나는 어짜피 어머니의 노예… 그분의 뜻을 여기서 거역할 수는 없다! 나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녀는 돌연 비파를 뜯기 시작했다. 땅! 뚱땅…! 중인들은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러 나, 그녀의 손이 비파를 뜯기 시작하자 무영초객의 우수가 힘겹게 움직였다. 스르릉… 맑은 금속성이 터져나오며 검은 그찬란한 광채를 드러냈다.
"…"
표리천영은 시선을 하늘로 던졌다.
(왜일까? 무영초객…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모든 미움이 사라지는 까닭은…!)
이때였다. 그는 군웅들 틈에서 두 인영이 소리없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걸인들이…)
흉칙한 몰골의 두 걸인, 그들은 은밀히 움 직여 그 중 하나가 무영초객의 바로 뒤로 다가서고 있었다. 또 다른 하나는 표리천영의 옆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사이에, 무영초객의 검은 천천히 허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몹시도 특이한 자세였다. 검과 몸이 나란히 수직으로 맞대어진 듯한… 어떻게 보면 검 위에 몸이 숨은 듯한 자세였다.
무영초객의 무심한 표정은 그답지 않게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고, 그의 검 또한 한풍 에 휘날리는 나뭇가지처럼 떨리고 있었다. 그러한 무영초객의 귀에는 또 다시 비파음이 강하게 전달되고 있었다. 뚱띠딩… 돌연, 멈칫거리던 무영초객의 검이 일 직선으로 허공을 갈랐다. 파아… 빠름! 그 빠름은 빛살과 같았다.
표리천영은 그 파란 섬광이 자신의 목을 향해 폭사되는 것을 말없이 주시하고 있었다. 그 순간, 팟…! 맑은 금속성이 터지며 무영초객의 검(劍)은 허공을 스치고 말았다. 동시에. 츄아아아… 앗! 한 자루의 검이 무영초객의 등을 파고들었다. 찰나, 팟! 마치 예측이라도 한 듯이 무영초객의 신형은 감쪽같이 종적을 감추었다. 이때,
"…!"
표리천영은 눈 앞에서 펼쳐진 검법에 경악의 표정을 떠올렸다.
(걸인… 한데 저 검법은…?)
이때였다. 그는 누 군가가 자신의 몸을 옆구리에 끼는 것을 깨닫고 시선을 돌렸다.
(걸인…?)
순간, 그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새… 생사비객!"
그 제서야 확연히 깨달아지는 것, 오오, 이들 두 걸인은 바로 죽은 것으로 알려진 추혼비객과 생사비객이 아닌가? 그들의 흉칙한 몰골, 그것은 그들이 죽음의 기로에서 간신히 소생했다는 것을 잘 말해 주고 있었다. 생사비객의 눈빛이 크게 흔 들렸다. 눈물… 그 뜨거운 것이 소리없이 뺨을 적시는 것이었다.
"제… 제황, 어서 이 자리를 피해야 합니다…"
하나, 휙! 휘--- 익! 휙! 그들이 미처 신형을 날리 기도 전에 수십 줄기의 인영이 그들을 둘러쌌다.
"마천제황, 네 놈은 죽어서도 항산을 벗어나지 못한다!"
구파일방의 지존들과 우내쌍천과 천우삼자는 물론 신비천녀 와 십전성녀까지도… 어디 한 군데를 돌아보더라도 빠져나갈 곳이 없었다. 이 때, 표리천영은 무영초객과 싸우며 수세에 몰려있는 추혼비객을 보았다.
(멍청한놈… 제 목숨이나 부지할 것이지…)
소리없이 눈물이 빰을 적신다. 생사비객은 표리천영을 옆구리에 낀 채 엄밀한 경계를 펴고 있었다. 죽음을 불사하는 모습… 이때, 문득 표리천영이 입을 열었다.
"생사비객, 본인을 아직도 그대의 주인으로 인정하는가?"
생사비객은 눈도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표리천영은 단호하게 명했다.
"그렇다면 나를 내려놓아라!"
"제… 제황?"
생사비객은 표리천영을 향해 놀란 시선을 던졌다. 감히 항거할 수 없는 눈빛, 그는 그 위엄에 눌려 표리천영을 땅 위에 내려놓았다. 일순, 표리천영은 십전성녀를 향해 말했다.
"맹주, 소생의 부탁을 들어 주시겠소? 생애에 단 한 번 뿐인 부탁이오."
그의 얼굴은 자조와 자학의 표정으로 참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부탁…! 그 것은 애원이었다. 당대의 마(魔)의 제황인 마천제황! 그가 이러한 말을 꺼내다니… 십전성녀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들어줄 수 있는 것이라면…"
표리천영은 죽음 직전의 처지에 몰려있는 추혼비객을 향해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무영초객의 손을 멈추게 하고 그들을 살려주시오. 마지막 부탁이오."
허자, 신비천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하나 또다시 어리석은 짓을 저지른다면 그때는 용서하지 않겠어요."
표리천영의 표정은 오히려 담담하게 변했다.
"물론이오."
이어, 그는 추혼비객과 생사비객을 향해 명했다.
"어서 이곳을 떠나라! 그리고 다시는 무림에 나타나지 마라!"
하나,
"안됩니다. 제황!"
"제황, 결코 그럴 수는…"
그들은 표리천영의 앞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고 오열했다. 표리천영은 차마 그들을 보지 못하고 하늘로 시선을 던졌다. 먼 지평선 끝에서부터 핏빛 황혼이 번지고 있었다. 이제 해가 지려는가? 죽음과 같은 어둠이 이제야 몰려 오려는가! 이 삶의 마지가 순간에… 표리천영은 단호하게 말했다.
"가라!"
그러나, 추혼비객은 고개를 쳐들고 입을 열었다.
"제황, 잊으셨습니까? 우리가 지옥에 가지 않으면 누가 가겠냐는 말씀을…"
생사비객은 눈물을 흘리며 말을 받았다.
"제황, 피와 죽음의 맹세를 잊으셨습니까? 보십시오! 저 위선의 무리들을…"
다시 추혼비객이 입을 열었다.
"우리는 결코 저들을 해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정(正)도 아니고, 마(魔)도 아닌… 살아있을 필요조차 없는 놈들을 거두었을 뿐입니다. 무림을 위해서…!"
생사 비객은 한맺힌 시선을 십전성녀에게 던졌다.
"하나, 저들은 주모님들을 간교한 방법으로 암살하였으며 독(毒)과 암수로써 우리를 죽였습니다!"
이때,
"…!"
십전성녀는 생사비객의 뜨거운 시선을 감히 마주보지 못했다. 왠지 몸이 떨려왔다.
(마천제황… 대체 그가 추구하는 마(魔)란 무엇인가?)
문득, 오직 정(正)만을 추구했던 자신에 대한 회의가 밀려왔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랬어… 그의 손에 죽은 자들은 모두 다 쓸모없는 무리였지… 우리들은 단지 그의 잔인한 살수에 두려움을 느꼈을 뿐이야…)
이때였다. 추혼비객은 분연히 일어나며 토하듯 외쳤다.
"제황. 저는 명(命)을 어기는 한이 있더라도 제황께서 일러주신 진정한 마(魔)의 길(道)를 따르겠습니다!"
돌연,
"차… 앗!"
그는 십전성녀를 향해 섬전처럼 덮쳐들었다. 하나, 십전성녀는 그의 살수를 조금도 의식하지 못했다.
(마천제황 표리천영… 어쩌면 나는 그에게 커다란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도 몰라…)
추혼비객의 검이 그녀의 미간을 꿰뚫으려는 찰나, 그는 돌연 목을 관통하고 화끈한 열기를 느꼈다. 동시에, 두 마디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추혼비객…!"
"크… 으… 악!"
피(血)! 그것이 왈칵 뿌려지며 하나의 인두(人頭)가 표리천영의 발 앞에 떨어졌다. 툭…! 추혼비객, 그의 인두는 놀랍게도 한(恨)이 가득한 속에도 어떠한 굳은 신념이 엿보이고 있지 않은가?
"흐흐…"
표리천영은 그의 인두앞에 털썩 무릎을 꿇으며 오열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지금 네 자신이 죽어진 이 순간에… 정(正)도, 마(魔)도 사람의 일이거늘 어찌하여 우리 들은 피 흘려 싸운단 말인가? 한(恨), 이젠 그 한(恨)도 눈물 처럼 메말라 버리고 걷잡을수 없는 회의가 밀려왔다. 그러한 그를 향해, 무영초객이 성큼 한 걸음 다가섰다. 하나, 이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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