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밖에 없다.
오래전이다. 나는 별안간 쓰러진 일이 있었다. 당시에는 의료기계도 많지 않았던 시대다.
남편은 정신 잃은 나를 안고 이 병원 저 병원을 뛰어다녔다.
병명도 모르는 상태로 “이러다 죽는데” 하는 어느 의사의 말을 듣고 남편은 병원 문을 나오며 계단을
딛을 수가 없어 휘청거렸다.
그래도 천행으로 마지막으로 들린 어느 작은 병원 의사가 내 상태를 상세히 살피더니
자궁밖 임신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그리고 소견소를 써주며 급히 큰 병원에 가라고 했다. 나는 개업한 지 며칠 안 된 한양대학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즉시 수술을 받았다.
링거병을 몇 개 달고 수술실에서 나온 내 얼굴이 불으레 한 것을 보고 남편은 살았구나 하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한다.
몸이 조금 회복되자 4살 7살 9살 된 아이들이 엄마를 부르며 병문안 오자
남편은 며칠 전 일을 생각하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 후 생활을 하다 내가 남편에게 못되게 하면 남편은 죽을 걸 살려줬는데
은혜도 모른다는 말을 했다.
나는 누구를 위해서 살았는데 내가 죽었으면 애들하고
어떻게 살았겠어 하고 오히려 내가 큰소리를 쳤다.
세월이 좀 지났다. 그때도 감기로 시작해서 6개월이 넘도록 무섭게 앓았다.
아무리 병원에 다녀도 좋은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 몸무게가 40Kg 아래로 내려가자
의사가 아닌 남편이 직접 나셨다. 남편은 유명하다는 한약방을 찾아 약을 지어왔다.
그리고 하루에 4번씩 약을 다린 약물을 시간에 맞춰 주었다.
또한 서울 서울 경동에서 몸에 좋다는 약초를 구해 다리거나 즙을 내서 주었다.
꼬박 4달 가까이 불 앞을 떠나지 않았던 남편이다.
그렇게 해 나는 건강을 회복했다. 당시에 나는 남편이 너무 고마워 속으로 약속했다.
앞으로 남편에게 바락바락 대들지 않고 잘할 것이라고.
그리고 남편의 노후도 내가 열심히 챙길 것이라 마음을 먹었다.
이제는 부부 둘다 늙었다.
그런데 남편이 약간의 치매증세를 보인다.
나는 예전에 내가 감기를 앓았을 때 남편이 나한테 하듯 남편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자식들은 아무리 잘한다 해도 여벌이다.
그냥 울타리에 지나지 않으니 기대하지도 않는다.
나는 의기 소침한 남편을 위해 적극적으로 스킨쉽을 한다.
아침에 일어난 남편의 부스스한 머리털을 쓸어주며 이렇게 눈 떠줘서 고맙다고 한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닭살 부부 행각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반찬을 맛있게 만들어 남편이 밥 한술이라도 더 뜰 수 있도록 노력했다.
오전에 두 노인은 흰머리 털을 날리며 서로 붙잡고 동네 주위를 산책한다.
부부는 길섶에 있는 의자에 앉아 주위 경관을 즐긴 후
까페를 찾아 라테를 한 잔씩 한다.
오후엔 남편을 태우고 하남시 팔당 주위를 돈다.
그리고 콩나물국⸴ 밥을 사 먹고 집으로 돌아온다.
저녁이면 남편은 지난 얘기를 꺼낸다.
남편이 평생 살아오던 중 제일 혼난 것은 정신을 잃은 나를 안고 다녔던 것이라고⸴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끼친다고 한다.
그리고는 나의 머리를 주먹으로 가볍게 친다.
죽을 것을 살려 준 은혜를 아느냐고 한다.
나는 웃으며 “고마워요⸴ 사랑해요” “우리 서방님 늙어도 미남이야”하며
두 손으로 남편의 얼굴을 감싼다.
그리고 하고 잘 때도 손을 잡아주며 “좋아요?” 물으면 남편은 “응. 행복해”라고 말한다.
그러던 어느 늦은 밤 딸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 지금 집에 계시냐 묻는다.
나는 남편의 누운 자리를 보니 남편이 없다.
분명히 내 옆에 누웠었는데 내가 잠든 사이 집 밖으로 나갔나 보다.
딸은 누구한테 연락을 받았는지 어느 산자락 밑에서 쓰러진 아버지를 모셔왔다.
이 밤에 왜 나갔냐고 물으니 남편은 잠결에 내가 기침을 하니
구경만 할 수 없어 약국을 찾는데 찾지 못하고 길을 잃었단다.
오늘이 일요일이고 시간이 늦어 약국이
다 문을 닫은 것을 남편이 모르고 어두운 길을 헤맨 것이다.
남편은 평생 오직 나만을 생각하며 사는구나 하는 생각에
나는 눈물을 흘리며 남편을 안았다.
이 세상에 뭐니뭐니해도 남편밖에 없다.
첫댓글 선배님 우연히 잔나비방에
머물렀어요
"남편 밖에 없다"
선배님 글을 읽다보니
선배님은 남편과 참 행복하게
사신분이란 생각을 하게 되네요.
참 보기좋은 천생연분.
선배님 남편과의 좋은 추억
생각하며 남은 세월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소녀처럼 보이는 이유를
지금 이순간 알았네요.
예쁜 글 감사합니다.
늘 단아한 외모를 글을
그리고 천성적으로 고운 마음으로 주위를 밝게 해 주시는 청담골님.
제가 살아가면서 홍복이다 생각하는 것은 청담골같은 분과 인연이 있다는 것입니다.
더운데 잔나비방까지 찾아주시고
더할 나이 없는 영광으로 생각하고 기쁨이 가슴에 넘칩니다.
더위 조심하시고 늘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아이고
눈물납니다.
40kg의 몸무게
지금도 가벼우시지요.
안고 날아가듯 병원으로 달리고
밤에 약국을 찾아대다 쓰러지시고
목숨처럼 사랑하는 부부의 모습
사랑받는 아내로
추억하는 아내로
세월이 가도 또렷이
낭만님
반갑습니다.
최신글로 읽을 수 있어서 첫댓글 쓸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이세상에 태어나 좋은 인연만큼 중요한 것이 없지요,
별꽃님의 인연처럼 소중한 것이 또 무엇이 있을까요,
정말 내 사랑이십니다.
언제나 곱고 단아한 모습 늘 그대로이시길 빌며 반가운 안부 전합니다.
더위 조심하시고늘 건강하십시요
잠시 숨죽이고 이공간에 머무네요.
참 진실 앞에 숙연 하기까지 합니다.
아름다운 부군과의 추억이 앞으로의 삶에
원동력이 되어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 되시기 바랍니다.
참 진솔하고 좋은글
늘 감사합니다.
경이님 뵙고 싶어요.
댓글이 정겹습니다.
글과 글로 맺은 인연이 얼마나 소중한지요
경이님
더위에 조심하시고 늘 건강하십시요
옛날 쓰셨던 글이군요
우리 옆지기에게 보여 주어야 할 글이어요
그때 그 행복 쭉 간직하셔ㅡ요
작주님 이 무더위 힘드시지요.
그런데 머무러 주심도 감사한데 댓글까지 주시다니요
황송할 정도로 감사합니다.
아마 이 글을 쓴 것도 모르고 올린 것 같아요,
갈수록 건망증은 더하니 이제는 제 걱정이예요
작주님 더위 조심하시고 늘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낭만 앗! 건망증 아니시구요
지금 상황의 글이 아니라는 제 느낌이었습니다
思夫曲 으로 읽혔기 때문에.......
실수였다면 죄송합니다.
@작주 아녜요 작주님
작주님 말씀이 맞아요.
건망증을 제가 자주 깜박깜박하다는 말씀입니다.
아주 많이 죄송합니다.
제가 글 실수로 선생님께 혼란을 드렸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요,
그래요 부부는 그런 거지요
남편~ 그리고 아내~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니 서로에겐
절대적인 존재~ 그런 존재가
옆에 없다는 현실에 가슴이
찣어집니다~~~ㅠ
달님님
고우신 외모에 풍성한 인품도 느껴지는 소중한 잔나비 후배님
간간이 올려주시는 사연이 애틋합니다.
달님님 현실에 억메이지 마시고 씩씩하게 건강하게 당당하게...
요즘 땐스를 배우시는 것 같은데 힘차게 즐겁게 사십시요.
더위 조심하시고 늘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낭만선배님은
잔나비방에 보배입니다 글도글이지만 살아오신 발자취도 아름답습니다 물론 인생길이 다 제각각 이지만 낭만선배님의 인생길에 또한 기립박수 보냅니다^^
어머나 록키님.
제가 이방에 보배라니요.
록키님 말씀에 제가 신바람이 납니다.
그리고 읽어 주시는 것만도 감사한데
이렇게 좋은 글로 댓글을 주시다니...
더위 조심하시고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