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자유는 어떻게 특권이 되었나
모든 불평등 가운데 가장 최악은 시간 불평등이다! - 왜 누군가는 충분한 시간의 자유를 누리고 다른 누군가는 밥벌이에 인생을 저당 잡혀야 하는가
먹고사는 일에 우리의 시간을 길들이는 자본주의 메커니즘을 파헤치다
시간은 건강 다음으로 우리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 하지만 이 책이 보여주는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시간을 실질적으로 통제하지 못하며, 많은 시간을 원치 않는 활동에 쓰도록 강요받거나 유도되고, 자신이 원하는 활동을 할 기회를 박탈당한다.
역사상 대부분의 지배자들은 대중이 생존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과 노동의 양에 무관심했다. 현대의 노동자들은 국민경제와 경제성장에 공헌하는 존재로 여겨져 왔다. 시간에 관한 진정으로 진보적인 정치가 더욱 필요해졌는데, 그것은 만성적인 초과 노동과 과도한 노동을 해결하는 것, 그리고 모든 불평등 가운데 가장 최악의 시간 불평등에 주목하는 것이다.
1970년대 이래 산업적 시간 체제는 정보기술혁명으로 인해 두드러진, 이른바 제3의 시간 체제에 의해 대체되었다. ‘제3의’라는 개념은 부분적으로 경제를 1차(농업, 어업, 광업), 2차(제조업), 3차(서비스업) 부문으로 구성되는 것으로 보는 전통적 묘사에서 비롯되었으며, 또 부분적으로는 이전의 농업적 시간 체제 및 산업적 시간 체제 이후의 제3의 시대라는 점에서 유래한다.
제3의 시간은 시간 사용의 불분명함, 활동 유형 간 경계의 붕괴, 주어진 기간에 여러 활동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경향 등의 특징이 있다.
제3의 시간 체제는 본질적으로 스트레스가 심하다. 이것은 신자유주의의 중추적 성격 특성, 경쟁과 자기 기업가 정신과 연관되어 있다.
제3의 시간은 혼돈이었다. 제3의 시간은 산업적 시간보다 더 나빴다. 산업적 시간에 적합한 낡은 정책에 의존했기 때문에 시간의 시작 이애 존재했던 과제, 어떻게 시간의 자유와 시간의 평등을 성취할 것인가에 대한 진보적 정책의 발전을 가로막았다
정치와 경제는 시간 사용을 전유하는 적절한 방식을 찾는 데 달려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모델을 제공한 바 있다. 자본주의를 비판한 사람들 대부분이 저지른 역사적 오류, 그리고 표면적을 자본주의에 반대한 정당들의 분명한 역사적 오류는 자본주의 지지자들이 노동을 위한 시간과 소비를 위한 시간이라는 이원론을 시간 사용을 논의하는 프레임으로 만들도록 허용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물었어야 했다. 왜 우리는 진정한 여가가 사라지게 놔두었는가? 왜 우리는 자본주의를 변호하는 자들이 공유화를 게으르고 기생적인 일이라며 묵살할 때 공유화를 구출하지 못했는가? 왜 페미니스트들은 돌봄을 일로서 정당화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는가? 아마도 최종적으로 20세기 노동주의의 정당성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지대 추구 자본주의의 과잉과 프레카리아트의 성장이 필요했던 것 같다. 아마도 그동안 내내 명백해야 했던 것을 분명하게 하는 데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이 필요했던 것 같다. 돌봄과 공유화가 ‘핵심적 서비스’라는 것을 말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미래가 돌아오고 있으며, 시간은 분명 해방되고 있고, 더욱이 더 평등하게 공유되고 있다. 사회개혁가들의 마음에서는 아직 현실이 아니지만 말이다. 시간의 정치는 오로지 거기서부터 개선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