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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전의 박지성 |
징크스에 관한 잡설을 길게 나열한 것은, 엊그제 사우디 원정에서 기나긴 징크스를 끊어낸 대표팀 축구 때문이다. 불안하게 경기를 시작했던 대표팀은 시간이 갈수록 안정감을 찾았고 상대 공격수 하자지가 어설픈 연기력으로 퇴출된 뒤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돋보였던 것은 박지성의 플레이다. 아직 낯익지 않은 주장 완장을 찬 채 한국 공격을 주도했던 박지성은 자신이 왜 진정한 팀 플레이어인지를 보여주는 탁월한 경기 운영으로 팀에 귀중한 원정 승리를 안겼다.
맨유의 '지킬'과 대표팀의 '하이드'
주목할만한 점은 맨유에서와 대표팀에서 완연하게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박지성의 플레이다. 소속팀 맨유에서 ‘원더풀4’ 호날두-루니-테베즈-베르바토프의 빈 곳을 메워주며 팀 공격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박지성의 역할은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뒤 판이하게 달라졌다. 대표팀에서 박지성은 기량에서나 전술적인 부분에서나 팀 플레이의 핵심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것은 심리적으로나 실질적으로 모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되는데, 이 과정에서 동료들의 신뢰와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그라운드 위에 올라서는 순간, 맨유의 박지성과 대표팀의 박지성은 마치 도플갱어처럼 같은 몸, 다른 인격으로 나뉜다. 도플갱어의 문학적 변용인 '지킬 박사와 하이드(지킬 앤 하이드)'에 빗대 표현하자면, 맨유의 박지성이 보다 이성적인, 타인의 역할을 배려하고 동료들의 활약을 지원하는 ‘지킬 박사’의 모습이라면 대표팀의 박지성은 보다 적극적이고 주도적이며 거침없는 모습의 ‘하이드’다. 그리고 하이드처럼 거침없이 그라운드를 누빈 박지성은 중동 원정에서 극히 부진하던 한국이 사우디와의 지긋지긋한 악연을 끊어내는 데 큰 공헌을 세웠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역시 공격 전환 과정에서의 역할이다. 맨유에서는 동료들에게 최대한 빨리 볼을 넘겨주고 빈 공간을 찾아 전진하는 플레이로 팀 공격의 균형을 맞춰주는 역할에 충실했다면 대표팀에서는 아예 공격의 방향과 템포를 조절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전반전 역습 상황에서 유리한 지점에 얻어낸 프리킥이나(전반 15분께), 본인이 공을 잡고 최전선에 나와 있으면서도 무리한 돌파를 시도하기 보다는 한 수 위의 키핑력으로 상대 수비진들을 집중시킨 뒤, 왼쪽에 발생한 빈 공간으로 오버래핑하는 이영표에게 패스를 연결하는 장면을 보자. (전반 37분께) 맨유에서의 박지성과 대표팀의 박지성은 각각의 팀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다르고 그에 따라 상대 수비수들의 견제에도 차이가 있다. 이러한 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본인이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대표팀의 박지성과 맨유의 박지성은 분명 다른 스타일이다. (파울 상황에서 심판에게 달려가는 '완장' 박지성의 모습도 이러한 차이를 보여주는 또다른 장면일 것이다.)
소속팀 맨유에서는 온순한 '지킬 박사'다 |
재미있는 것은 팀 내에서의 이러한 입지 차이가 박지성에게 조금 더 확고한 자신감을 심어주고 있다는 점이다. 팔뚝에 채워진 완장에서 오는 힘일수도 있지만, 맨유의 박지성이 슛을 아끼고 동료들에게 기회를 양보하는 등 조금은 소심한 지킬 박사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대표팀의 박지성 플레이는 힘과 여유가 묻어난다. 이근호의 선제골을 돕는 장면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마치 포르투갈 전의 결승골을 연상케하는 이영표의 오른발 크로스 장면에서 박지성은 자신을 마크하던 사우디 수비수를 순간적인 몸놀림으로 벗겨낸 뒤 그 후위에 발생한 공간에서 여유로운 가슴 트래핑에 이은 번개 같은 크로스로 이 날 결승골이 된 선제골을 완벽하게 이끌어냈다. (후반 30분께) 박스 안쪽으로 과감한 돌파를 시도하며 순식간에 5명의 수비수를 제친 뒤 골키퍼와의 1대1 상황을 만들어낸 것(후반 17분께)이나 박스 외곽에서 과감한 오른발 중거리슛으로 상대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순간(후반 23분께) 역시 맨유의 박지성과 다른 대표팀 박지성의 단면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거꾸로 생각하면, 이러한 모습은 맨유에서의 박지성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이유가 된다. 전체 팀의 레벨과 동료들의 역량을 고려하면 맨유에서 보조자의 역할에 충실한 박지성의 플레이는 매우 헌신적이며 그래서 맨유가 박지성을 중용하는 이유가 된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박지성에게 정반대의 평가가 내려지기도 한다. 자신의 진가를 더욱 더 빛낼 수 있는 플레이가 아쉽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중상위권 팀에서 붙박이 주전으로 뛰라'는 요청은 분명 이해할만하다. 하지만, 선택은 박지성의 몫이고 현재 박지성은 맨유라는 거대 클럽에서 세계최고 수준의 동료들에 자신을 최적화시키는 데에 더 흥미를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주어진 환경을 바꾸려고 하기 보다는 그 환경에 맞춰 팀과 동료들이 최대치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자신을 조율하는 데에 자신의 역량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맨유의 박지성에 아쉬움을 갖다가도 그의 선택이 팀에 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는 것도 그래서다. 대표팀에서 '하이드'로 변해 적극적으로 공격을 주도하는 그의 모습에서 개인보다 팀을 중시하는 그의 장점을 다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지킬이든 하이드이든, 박지성의 존재가 대표팀을 위기에서 구해낸 것만은 분명한 것이니 그저 박수를 보내며 그의 선택을 지지할 수 밖에. '지성이형의 존재감은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이근호의 고백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출처 : 네이버뉴스 - 축구전문가 서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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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박문성 해설위원도 그렇고 이런 해설자분들이 쓰는 칼럼은 정말 보기가 좋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 좋은데...사진 왜 저런 표정의 사진만...
한준희 해설위원은 이런거 안쓰나요??ㅎ
어제 사우디전에서 돌파력은 정말 대박이었는데... 맨유에서도 멋진 모습 기대합니다~
궁금한건 네이버뉴스 댓글보면 박지성선수 욕하는 사람들 꽤 많은것 같던데 왜 그런거죠?-_-;
거긴 어느 선수든 그래요 ㅇㅅ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