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마장호수에 간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새끼 고양이를 만났는데 너무도 삐쩍 마른 상태로 겁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멀지 않은 곳에는 어미가 있었는데 그 어미를 보니 자신의 어린 새끼를 무엇을 먹이고 어떻게 보호할지 고민하며 살아갈 것이 눈에 보였습니다. 이처럼 한낱 미물도 자신의 새끼를 위해 고생하고 살아갑니다.
성경은 “아들을 내어주신 이가 어찌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겠느냐?“(롬 8:32)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는 과연 아들이 중요했을까요? 아니면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이 중요했을까요? 아들조차 이미 내어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도 직장과 사업도 그리고 우리 교회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염려는 우리 믿음을 갉아먹기 시작할 뿐 아니라 어느 순간 우리 마음을 완전히 장악해 버립니다.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내 안에 남아 있는 상처나 트라우마가 자꾸만 불안을 속삭이면서 일어나지 않은 일을 대비하라고 종용합니다. 결과적으로 내일을 걱정하는 마음이 돈에 대한 집착으로 연결됩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전쟁이 많았고 그 때문에 징병을 당하든지 피난을 떠나든지 할 때 재물을 보존하기 위해 그것을 땅 속에 묻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땅은 가장 안전한 장소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너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재물을 모으기는 하되 그것을 무엇을 위해 쓰느냐가 중요한지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늘에 쌓아둔다함은 하나님의 뜻대로 재물을 쓰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재물에 대해서도 선한 청지기가 될 것을 요구합니다. 성경은 또한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합니다. 첫 번째 주인이 하나님이라면 두 번째 주인은 재물을 뜻합니다. 물론 돈 자체는 악하지 않기 때문에 돈 버는 일도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돈에 대한 집착이 하나님으로부터 우리 마음을 빼앗아 가고 결국 돈을 우상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추수 감사 절기는 농경민에게 있어서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많은 물질적 축복을 받는 날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풍성한 수확물로 인해 물질에 대한 유혹을 가장 많이 받는 날이기도 합니다. 이럴 때 우리 마음을 하나님께 두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하나님의 뜻을 위해 써야겠다는 마음을 가질 때 돈의 지배를 받지 않고 돈을 지배할 수 있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삶에 여전히 고난과 아픔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없이 우리를 붙들고 버틸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제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더 이상 근심하지 마십시오. 공동체를 이루는 이유는 아픈 일들에 대해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함께 기도로 버텨가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나눴던 예수님의 고별 기도의 핵심도 그러합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이 하나인 것처럼 우리들도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하신 것은 힘든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그 어려움을 함께 이겨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적 믿음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하나님 한 분과만 교제하며 살아가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거대한 풍랑에 혼자 버틸 수 있다며 맞서려는 어리석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 기도하는 것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도 죽고 형제도 죽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안의 염려를 모두 버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염려가 사라져야 감사가 생겨납니다. 공중 나는 새를 먹이신다고 말씀하셨지만 하나님께서는 먹이를 모아놓고 새가 그저 먹기만 해도 되도록 상황을 만들어 주시지는 않습니다. 일찍 일어나서 열심히 먹이를 찾아다닐 때 그의 먹이 활동을 도우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 되십니다. 그런데도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경제적 어려움입니까? 자녀들의 문제입니까? 아니면 건강 문제입니까? 힘든 중에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들의 백합화와 공중의 새를 언급하시며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책망하시던 말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며 추수 감사절을 맞아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가겠다고 고백하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