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번 국도의 어머니 마사 에반스는 실존 인물일까?
- 대공황 시대의 66번 국도와 위장된 진실(후편)
* 먼저 이 글을 읽기 바란다. 그래야 이야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https://cafe.daum.net/biocode/3w8I/902
오늘 아침, 여섯 아이를 데리고 낡은 수레를 밀며 대공황의 66번 국도를 맨발로 걸어갔다던 서른두 살의 여인 '마사 에반스'의 이야기를 올렸다. 내가 조금 더 손질했다. 글을 읽은 분들이 아마 가슴 아파했을 것이다. 마사라는 여인의 그 불굴의 의지에 눈시울을 붉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리 말했듯, 이제 서늘한 진실의 소나기를 맞을 시간이다.
이 사진과 감동 스토리는 AI로 조작된 가상 이미지와 거짓 서사가 결합한 픽션이다. 역사상 '마사 에반스'라는 여인은 66번 국도 위를 저런 모습으로 걸어간 적이 없으며,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전시되었다는 유모차 역시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가짜 뉴스는 도대체 왜, 어떻게 만들어져 온 인터넷을 떠돌게 되었을까.
1.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들었나?
이 이미지는 소셜 미디어(X 및 레디트 등)의 AI 이미지 생성 커뮤니티에서 처음 등장했다. 창작자들은 초창기 AI 이미지의 허점이던 '뭉개지는 손가락'이나 '튀는 질감'을 극복하고, 1930년대 빈티지 흑백 사진의 거친 입자감(필름 그레인)과 명암비를 완벽하게 재현했다.
자세히 보면 아이들의 눈동자 초점이 미세하게 어긋나 있고, 다리의 상처와 붕대가 너무 깔끔하다. AI가 만든 이 '너무나 완벽해서 기괴한' 사진에, 누군가 대공황 시절의 비극을 교묘하게 짜깁기한 '마사 에반스 스토리'를 소설처럼 퍼뜨리고, 이것이 번역되어 국내 인터넷까지 감동 실화로 위장해 들어온 것이다.
2. 이 가짜 이야기가 베낀 '진짜 원본'은 있나?
이 거짓이 이토록 강력한 공감을 일으킨 이유는,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절에 실제로 있었던 비극을 기초로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무도 목격하지 못하고, 아무도 사진을 찍지 못한 그 어딘가에서는 이보다 더 참담한 일이 실제로 있었을지 모른다. 살아남기 위해 모두가 다 몸부림치던 시대였으니까. 그게 이 가짜 서사의 힘이다.
이 가짜 이야기의 진짜 원본은 사진작가 도러시아 랭(Dorothea Lange)이 1936년 3월에 촬영한 《이주민 어머니(Migrant Mother)》라는 불멸의 사진(아래), 대공황을 다룰 때마다 반드시 등장하는 사진이다.
당시 미국은 경제 붕괴와 함께 '더스트 볼(Dust Bowl)'이라 불리는 사상 최악의 황사 가뭄이 겹쳐, 농지를 잃은 수십만 명의 농민이 캘리포니아로 일거리를 찾아 줄지어 피난을 가던 참혹한 시절이었다.
사진작가 도러시아 랭은 얼어붙은 천막 안에서 굶주린 아이들을 품에 안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한 미국인 어머니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 속 실제 주인공은 '플로렌스 오웬스 톰슨(Florence Owens Thompson)'이라는 여인으로, 당시 그의 나이는 AI가 만든 글 속 마사처럼 실제로 서른두 살이었다.
이 단 한 장의 사진이 신문에 보도되면서 미국 사회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삶의 희망을 다 잃은 듯한 표정, 겨우 서른두 살의 여성의 얼굴에서 이런 참담한 표정이 나오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물론 우리나라 육이오전쟁 중 피난가는 어머니들에게서 이런 표정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사진이 신문에 실리자마자 미국인들도 큰 충격을 받았다. 즉각 구호물자가 이주민 캠프로 쏟아졌다. 그리고 이 여성 플로렌스는 겨우 살아남았다.
3. 호모 퀘스치오니스(Homo Quaestionis) : 의심하는 인간이 살아남는다
AI 기술은 이제 역사마저 조작하고, 우리의 가장 순수한 감정인 '공감'과 '연민'을 해킹하여 조회수를 높이는 단계에 이르렀다. 아무리 눈물이 핑 도는 감동 서사라 해도, 무턱대고 믿기 전에 단 1분만 멈추어 서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것은 진짜인가? 이 이면에 숨겨진 의도는 무엇인가?"
인류의 조상 호모 사피엔스에서 한 단계 더 진화하여, 진실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논증하는 '의심하는 인간(Homo Dubitans)'만이 이 고도로 조작된 정보화 시대에서 자기 영혼을 지켜낼 수 있다.
조계종 총무원장이 정치 이념으로 들끓는 사회를 향해 5분 선명상을 하자고 열심히 외치건만 응답하는 이들이 없다. 불교신자들도 안한다. 거짓의 바다, 음모의 웅덩이, 편가르기의 진흙탕에서 5분 선명상은 결코 성공할 수가 없다. 5분 동안 목청 높이며 구호를 외쳐야 하니까.
비록 마사 에반스 이야기는 가짜지만, 1930년대 그 모진 비극 속에서도 자식을 살려내기 위해 진흙탕을 굴렀던 진짜 어머니들의 역사만큼은 가짜가 아니다. 가짜 사진에 속아 가짜 눈물을 흘리기보다, 그 시대의 진짜 아픔을 기록한 도러시아 랭의 <진짜 사진>을 보며 <진짜 역사>를 기억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조작된 역사, 꾸며낸 역사, 덧칠한 역사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료(史料)만으로 세상을 보자. 나는 거짓을 저주한다.
* 이 사진들만 올리면 내가 오직 진실만 찾아다니는 중도주의자라고 할 수 없지. 그래서 대공황시기보다 더 살아남기 힘들던 육이오 때 사진 몇 장 올린다. 진짜 비극 육이오전쟁은 이미 이 나라에서 잊혀진 역사가 돼버렸다. 육이오전쟁을 떠올리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 세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아이를 안고 강을 건너 피난가는 남자(아래 맨위), 전쟁을 피해 들판에서 담요를 두른 채 숨어 있는 여성과 그의 아들. 미군 종군기자가 다가가자 여인이 공포로 울먹거린다(아래 중간), 반드시 돌봐야만 하는 동생을 안은 채 무너져 내린 학교 터에서 공부 중인 여학생, 전쟁 중에도 교육은 멈추지 않았다(맨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