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이어서 뉴전주 알프스산우회 벗들과 함께 금오도 비렁길을 걸었다
금오도는 주위에 있는 돌산도, 소리도, 월호도, 두리도, 개도 등과 함께 금오열도를 이룬다
섬의 모양이 자라를 닮았다고 하여 뜻으로 ‘금오도(金鰲島)’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황금(金) 자라(鰲)의 섬이다
무명이었던 금오도가 세상 속으로 성큼 걸어나온 것은 순전히 비렁길 때문이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덤벼들었던 비렁길 동백숲에서 장렬하게 낙화하였다....아이구 죽겠네 ^*^
전주에서 새벽 5시 10분에 출발하여 약 3시간 만에 여수 돌산도 신기항에 도착하였다
신기항은 한적한 시골 항구였지만 금오도에 들어가는 관광객들로 인해 많이 분주하였다
여수항에서 출발하면 행해 거리가 1시간 이상으로 길고, 뱃삯도 비싸다
이곳 신기항에서 출발하면 뱃삯도 5,000원으로 싸고, 약 25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신기항에서 금오도행 여객선은 하루 7회 운행하고 있다
관광객이 몰리는 봄이면 주말과 일요일에는 운행 횟수를 증편하고 있다
이곳 선착장에서 미역국에 밥을 말아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9시 10분에 출항하는 배를 탔다
신기항과 금오도 여천항을 오가는 한림페리9호는 승용차는 물론 대형버스까지 실을 수 있다
우리가 타고 온 버스도 한림페리호에 싣고 정시에 출항하였다
걱정하였던 미세먼지도 심하지 않고, 바다도 잔잔하여 출발은 매우 좋았다
금오도 향하는 길목에 수려한 자태의 화태대교가 시야에 들어왔다
이 다리는 여수시 돌산읍 신복리와 남면 화태도를 연결하는 1,345m의 사장교다
금오도 주민들은 육지화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금오도를 섬으로 남겨놓았다.
처음엔 연륙교 공사에 찬성했지만 섬의 정체성을 잃고 몰락한 타 지역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섬으로 남기로 결정한 것이다.
참으로 고맙고 아름답고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 결정 덕에 금오도는 섬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으며, 섬의 향취를 찾아오는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신기항을 출항한지 약 25분 만에 금오도 여천항에 도착하였다
옛사람은 금오도를 ‘거무섬’이라고 불렀다.
산림이 워낙 우거져 멀리서 보면 온통 검어서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1884년까지 이 섬에는 민간인이 살 수 없었다.
조선왕조가 봉산(封山)으로 지정해 함부로 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함구미까지 걸어가는 길 옆으로 푸르게 자라고 있는 방풍나물이 눈에 띄었다
금오도에 방풍 재배가 본격화된 것은 불과 육칠 년 전이다.
방풍이 값 비싸고 약효가 뛰어난 나물이라는 방송을 본 어떤 이가 해변에 자생하는 방풍 씨앗을 받아다 재배를 시작했다
전국에서 유통되는 방풍나물의 95%가 이곳 금오도에서 생산된다고 한다
요새는 관광객들이 방풍나물을 한 자루씩 사가기도 한다.
금오도는 섬이지만 어업보다는 농사가 많다.
전에는 고구마가 주 작물이었는데 방풍 재배가 시작된 뒤로는 고구마를 거의 심지 않는다.
여천항에서 함구미마을까지 한 시간 이상을 걸어서 왔다
함구미까지 차로 실어다 주고 가는 화요산악회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함구미(含九味)는 들쭉날쭉한 9개의 해안절벽이 아름답다는 의미인데, 비렁길은 바로 그 해안절벽 위를 걷는다.
비렁길의 입구를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는데 현지 할머니께서 입구를 친절하게 가르쳐 주셨다
‘비렁’은 ‘벼랑’의 여수 사투리...비렁길은 그 유명세처럼 최고의 섬 트레일이다.
해안절벽을 따라 땔감을 구하고, 낚시를 하러 다녔던 길을 따라 금오도 비렁길이 조성되었다
함구미마을 뒤 산길에서 시작해 바다를 끼고 돌며 형성된 코스로 두포→직포→학동→심포→장지를 잇는 5개 구간으로 구성돼 있다
우리 일행은 3코스의 끝인 학동까지 걷기로 하고 기분좋게 출발하였다
미역널방은 비렁길에서 맨 처음 만나는 절경이다
약 90m 높이의 해안절벽 위에 형성된 너럭바위다.
주민들이 미역을 지게로 지고 와 널어놨던 곳이라 그런 이름이 붙었다.
여러가지 조형물들이 설치되어 있고, 쉬어갈 수 있는 벤치가 있어서 잠시 쉬었다 갔다
너는 피어나는 바람이었고
머문 적 없는 비였고
잠든 적 없는 별이었으므로
바닷내 푸른 미역널방에서 미끄러지고
붉은 동백숲에서 길 잃는구나
앞서 떠난 파도가
되돌아 오며 네 발목 잡는
숨찬 비렁길에 들어서면...............................김금용 <붉은 벼랑길> 전문
때로는 길도 스스로 끊어지며
절벽 위에 동백 한 그루 가까스로 세워둔 채
그대 그리움 벼랑으로 누워야 한다는 것을
그 끊어진 길에 이르러 나
숲 속 새소리로 가슴 지워야 한다는 것을
한정 없는 깊이로 무너져 내리는 꽃잎
계곡 물소리 밑에나 재워야 한다는 것을................................김완하 <동백꽃> 부분
수달이 자주 모여 놀았다 하여 '수달피비렁'이라는 생소하면서도 운치있는 이름이 붙은 전망대에 도착했다
현재 금오도 비렁길은 5개 코스, 총길이 18.5km가 개통됐다.
시종 바다를 굽어보는 벼랑길이어서 몸과 마음이 날아갈 듯 가뿐하다.
길이가 5km인 1코스만 2시간쯤 걸리고, 길이가 3.2~3.5km에 불과한 나머지 4개 코스는 각각 1시간 내외가 소요된다.
그러나 만만하게 보고 시작했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 있으니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
이곳은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이 세운 송광사라는 전설 속의 절터이다
전설에 의하면 보조국사가 모후산에 올라가 좋은 절터를 찾기 위하여 나무로 조각한 새 세마리를 날려 보냈다.
한 마리는 순천 송광사 국사전에, 한 마리는 여수 앞바다 금오도에, 한 마리는 고흥군 금산면 송강암에 앉았다고 한다.
송광사의 흔적은 전혀 남아있지 않았지만 주변의 수려한 경치로 보아 그런 전설이 나옴직하였다
신선대 절벽 위
벼랑길 하나 내려가면
그대에게 닿을 것만 같은데
길이 끝났다고
이내 돌아서는 곁으로 다시 길이 보인다
외딴 섬에도 길은 있고
섬과 섬 사이에도 길이 있다
지구의 한 점 모퉁이에서
일생을 걸어 나에게로 가는 중
모든 길은 시방 너에게로 통한다................................우동식 <나에로 가는 길>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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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코스의 중간 지점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그림같은 쉼터가 있었다
여기까지 오면 갈증이 느껴지기 땜에 방풍나물 부침개 안주로 막걸리 한 사발씩 마시고 가는 사람들이 많다
무명이었던 금오도가 세상 속으로 성큼 걸어나온 것은 순전히 비렁길 때문이다.
해안 절벽을 따라 내내 바다를 보면서 걸을 수 있는 금오도 비렁길은 청산도 슬로길과 함께 최고의 섬 트레일로 꼽힌다.
송광사 절터를 지나 2km 정도 가다 보면 신선이 놀다 갔다는 신선대가 나온다
너른 암반이 바다 쪽으로 펼쳐져 있는데 매우 위험하여 들어가지 못하도록 금줄이 둘러져 있었다
고즈녁한 신선대 위에서 우리는 신선이 된 느낌으로 우아하게 즐기다가 떠났다
금오도에는 비자나무, 동백나무 등 수목이 울창하다.
잣나무, 소사나무, 유자나무, 동백나무, 비자나무 등 다양한 수목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비렁길을 걷다 보면 갖가지 숲이 만들어진 터널이 종종 나타났다
대나무숲, 동백숲, 비자나무숲이 만들어준 푸른 터널을 걸으면 서늘함이 느껴진다
무릇 생명이 태어나는
경계에는 어느 곳이나
올가미가 있는 법이지요
그러니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에
저렇게 떨림이 있지 않겠어요
꽃을 밀어내느라
거친 옹이가 박인 허리를 뒤틀며
안간힘 다하는 저 늙은 동백나무를 보아요
그 아뜩한 올가미를 빠져나오려
짐승의 새끼처럼
다리를 모으고
세차게 머리로 가지를 찢고
나오는 동백꽃을 이리 가까이 와 보아요..............송찬호 <관음이라 불리는 어느 동백에 대한 회상> 부분
드디어 1코스의 마직막 지점인 두포(斗浦)마을에 도착하여였다
사람들이 금오도에 처음 들어와 살았던 곳이라 하여 ‘첫개’라 불리우는 곳이다
이것을 한자로 바꾸어 초포(初浦)로 불리다가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 때 두포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두 그루의 소나무 사이에 있는 칼국수집 앞에 금오도개척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1884년 봉산(封山)이 해제되어 주민들의 입주가 가능해지자 1885년 금오도에 민간인이 들어와 살게 되었다고 한다.
그 100주년이 되는 1995년도에 금오도개척기념비가 두포마을에 세워졌다
굴등전망대에 내려서니 젊은 부부가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다
바닷바람과 파도소리와 화사한 햇빛과 더불어 식사하는 모습이 꿈결같았다
두포와 직포의 중간쯤에 위치한 굴등마을은 영화 ‘혈의 누’ 촬영지다.
굴등마을은 수량이 풍부한 우물이 있고, 팽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어 해풍을 막아주는 등 천혜의 자연 조건을 갖추고 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살았지만, 지금은 모두 뭍으로 나가서 마을사람들의 별장처럼 이용되고 있다
굴등전망대를 지나면 마치 삿갓을 쓴 듯한 모양의 촛대바위가 나난다
촛대바위는 마을 주민들의 안녕을 기원했던 곳이라고 하는데, 남근석이라 부르기도 한다.
남근석이면 부드럽고 우람한 곡선이 있어야 하는데 너무나 날카롭고 거칠어서 거시기하였다
2코스의 마지막 지점인 직포(織布) 마을에 들어서니 발바닥에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옥녀봉에서 선녀들이 달밤에 베를 짜다가 무더위를 식히기 위해 바닷가로 목욕하러 와서, 날이 새는 줄도 모르고 밤새도록
목욕을 하고 놀다가 승천하지 못하고 훗날 소나무로 변하였다고 한다.
마을 이름을 직포(織布)라 한 것도 이러한 전설과 관계가 있다.
500년은 족히 됐을 법한 소나무가 수호신처럼 마을 중앙을 지키고 있다.
워낙 모진 해풍을 많이 맞아서 그런지 오히려 더욱 운치 있게 자라고 있다
이곳에서 지친 사람들은 대기하던 버스에 타고, 의욕이 넘치는 사람들은 3코스로 접어들었다
직포마을에서 출발한 비렁길은 바로 망산으로 치고 올라간다.
올라가자마자 동백나무가 좌우로 엄청난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계속 오름길이라 여간 힘이 들지 않는다
유달리 바람이 세게 부는 갈바람통전망대에 도착하였다
서쪽에서 부는 바람을 갈바람이라고 한다.
갈바람통전망대에서는 90m 높이의 두 절벽 사이에 난 틈으로 솟구쳐 오르는 바닷바람이 온몸을 시원하게 해 준다.
동백은 두 번 핀다.
나무에서 한 번, 땅에서 또 한 번.
살아서 한 번, 죽어서 또 한 번.
꽃 시절에 대한 한 치의 미련도 없이 절정에서 툭 떨어지는 꽃.
화려했던 날들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갈갈이 찢어져 흩날리는 벚꽃이나 목련꽃에 비해 동백은 얼마나 절조 있는가.
그래서 동백은 어떤 것이 꽃다운 삶인지를 되돌아보게 해 주는 생의 거울 같은 꽃이다.
걸어가면서도 어찌나 힘이 들던지 3코스에 들어선 것을 후회하며 매봉전망대에 올라섰다
매봉 정상 바로 아래 있는 이곳은 시야가 확 트여서 300도 가량 조망이 가능하다.
쪽빛 바다와 요철 같은 해안절벽, 바다를 오가는 배, 봄바다와 낭만을 만끽할 수 있다.
이곳에서 누구인지도 모르는 여인들에게 염치 불구하고 오이 한 토막을 얻어먹었다
3코스 종점인 학동마을이 보이자 마지막 힘이 솟구친다.
비렁다리는 갠자굴통의 협곡 사이를 이어주는 출렁다리다.
두 개의 반지를 형상화한 조형물 사이를 걷게 해 놓아 '언약의 다리'라고도 불린다.
다리 중간쯤 바닥에 투명 강화유리를 깔아놓아 아찔함을 더한다.
가락지처럼 생긴 이 다리를 연인이 같이 건너면 결혼에 성공한다 하여 벌써 '언약의 다리'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그런데 나의 연인은 버스에 남아있어서 쓸쓸하게 건너갈 수 밖에 없었다 ㅎㅎ
지친 걸음으로 학동(鶴洞) 마을로 내려서니 언덕에 우리 버스가 보였다
4코스 입구인 학동은 산의 모양이 학을 닮았다 해서 그리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바닷가에 들어앉은 마을이 다소곳하고, 골골마다 이어지는 돌담도 정겹다.
방풍나물밭에서 풀을 메고 있는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더니 반겨주셨다
부둣가에서 돼지 갈비와 비빔국수로 하산주를 마시고, 5시 20분에 출항하는 배를 타고 귀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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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行을 다녀와서
<섬>금오도 동백숲에서 장렬하게 낙화하다
나마스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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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2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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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여유로운 섬마을...
산객들도 여유롭고, 한산해 보여서 더욱 멋지네요...
비경도 멋지고 좋은계절 봄나들이 잘 구경했습니다~~~